기타칼럼
십계명 강해 5 - 제2계명(5)
십계명의 제2계명을 계속해서 살펴보자. 십계명의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4-6)
이제 십계명의 두 번째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야 할 문제를 보자. 그것은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주변에 보면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을 액자에 넣어 집 벽에 걸어 놓기도 하고 그 외에 삽화, 카툰, 일러스트 등등으로 장식용으로 또는 아이들 필통이나 책받침으로 더 나아가 주일학교 교재 표지로 사용하는 것을 본다. 과연 이러한 행위들이 올바른 것인가? 신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거나 사용하는 것은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요 또 하나는 신성이 없는 인성만의 예수 그리스도가 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거나 사용하는 것은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것이다.
필자도 무지하여 예수님의 그림을 이쁘게 사용하여 전도지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고 난 후 모든 전도지를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일학교로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다시 시켰다. 처음에는 다들 이해를 하지 못하였으나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우리의 앞선 개혁자들이 가르쳐준 내용을 통해 올바로 알게 되었다.
먼저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부분을 보자. 두 번째 계명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아닌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형상을 그리거나 나타내는 것은 분명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바로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이다.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에 보면 <문 97. 우리는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답. 하나님은 어떠한 모양을 가진 분으로 그려질 수 없으며 그려져서도 안된다. 피조물은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으나, 하나님은 피조물을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피조물의 모양을 만들거나 그것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을 금하신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 2절에 <삼위일체의 제 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셔서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동등이시나, 때가 차매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 사람에 속하는 모든 본질적 요소와 공통적 연약을 함께 취하셨으되 죄는 없으셨으니, 그는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그 여인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온전하고, 완전하고 판이한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변질, 합성, 혼동 없이 한 위에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었다. 이 분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며 한 그리스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바른 성경적인 고백은 모든 개혁교회 안에 인정되었고 이와 같은 정신에 서 있지 않는 모든 내용들은 철저하게 정죄되고 교회에서 제거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정통성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매우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교회의 객관적 신앙고백 기준을 무시하고 등한시 해왔기 때문에 정통적으로 사도 후에 그리스도에 신앙고백이 어떤 것이 참되고 바른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돈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즉 초기 교회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드러내며 지켜왔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교리적 내용을 오늘날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두 본성에 한 인격”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개되지도 않고 또한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신앙고백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과거 이단들이 행했던 모습들이 횡횡하게 된 것이다. 즉 신성을 무시하고 단지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강조해서 예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내고, 조각하고, 영상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이다. 어느 교회든지 주일학교의 공과를 보면 온통 예수님을 아저씨나 수염 난 할아버지로 그려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도 교회를 치장하고 장식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그리거나 또는 성찬식때는 배경 그림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계신 모습이나 채찍에 맞으시고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림으로 넣어 사용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요즘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교회에 장식하는 것도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은 정통적인 신앙고백의 기준에 입각하여 볼 때 과거 이단들이 행했던 일들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와 같은 비참함과 부패에 빠지게 된 것은 개혁교회의 객관적 신앙고백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기준만 최소한 알았다고 한다면 오늘날 이렇게 까지 성경의 참된 의미를 곡해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럽히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혼탁과 부패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칼케돈 신조는 동방, 특히 발칸반도의 저속화 된 기독교를 정화하기 위하여 753년 콘스탄티노플 노회에서 결의한 ‘성상 반대 결의’에 기본 정신이 되었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상옹호론자들 묘사해서는 안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묘사하려고 시도하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을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변명하는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가 보았고 또 전승된 그리스도의 육신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네스토리안들의 오류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육신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육신, 즉 신성과 분리되지 않으며 신성으로 완전하게 성육하여서 전적으로 거룩하게 된 육신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육신이 어떻게 이제 와서 신성과 인성으로 분리될 수 있겠는가? 즉 신성을 배제한 인성만을 그리스도로 표현할 수 있게는가 하는 문제이다. 과연 그런 인성만 표현된 예수님이 참된 예수님이겠는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자이신 하나님과 둔한 육신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도 또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인간 육신이 동시에 말씀이신 하나님의 육신이듯이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이 말씀이신 하나님의 영혼이어서 그의 영혼과 그 몸이 다같이 동시에 신화(神化)하였고, 따라서 그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았을 때도 그의 신격은 분열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있는 곳에는 그의 신격이 있고 그리스도의 몸이 있는 곳에도 그의 신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일 그가 고난을 받았을 때 신성이 그의 영혼과 몸에서 불리 될 수 없이 그대로 있었다면 어찌하여 어리석은 자들이 감히 그의 육신을 그의 신격에서 분리시키는 모험을 하여 그 육신을 마치 단순한 한 인간의 형상처럼 제시하려 드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신을 그의 신격에서 분리시켜서 그것을 단순한 육신의 본질에, 또 그 육신 자체의 인격에 돌려서 그것을 형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삼위일체에다가 제4의 위격을 도입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불경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 들어 간다. 더구나 그들은 신격에 의하여 성육되어서 신화된 그 육신을 마치 신화되지 않은 것처럼 제시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든 간에 묘사될 수 없는 신격을 묘사하여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혼동시키거나 단성성론자들처럼 혹은 그리스도의 몸이 신화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듯이 네스토리안처럼 제시하는 사람이 된다.
이처럼 칼케돈 신조의 바른 신앙고백의 내용을 교회가 바르게 이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곧 부패하여 다음과 같은 잘못된 결의를 하게 된 것이다. 즉 753년 콘스탄티노플 노회의 성상 금지 결의는 큰 충격을 서방교회에 주었고 성상을 안치하고 그 앞에서 경건생활을 실천하던 신자들을 자극하였다. 그리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제7차 에큐메니칼 공회를 787년 니케아에서 소집하여 753년의 콘스탄티노플 노회의 결의를 무효화하고 성상을 숭배 또는 예배할 수는 없지만 존경하며 절하며 입 맟출 수 있음을 결의하였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다같이 이 결의를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잠정적이었고 815년에 동사 양교회는 성상문제로 다시 분쟁에 들어갔다. 결국 서방 로마교회는 동방의 로마제국과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다. 여기서도 보면 처음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753년의 회의를 약간만 수정해서 받아들였던 것이 후대로 가면 갈수록 완전히 거부하는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의 역사와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모르다보니 심각한 죄를 행하고 있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죄다. 좋은게 좋다라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어기지 말자. 예수님의 모습을 그림이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 예수님의 모습을 그림이나 형상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것이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39 |
십계명 강해 5 - 제2계명(5)
쥬니어칼빈
|
2014.11.03
|
추천 0
|
조회 2350
|
쥬니어칼빈 | 2014.11.03 | 0 | 2350 |
38 |
십계명 강해 5 - 제2계명(4)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2321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2321 |
37 |
십계명 강해 5 - 제2계명(3)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2309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2309 |
36 |
십계명 강해 5 - 제2계명(2)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2610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2610 |
35 |
십계명 강해 5 - 제2계명(1)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2303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2303 |
34 |
십계명 강해 4 - 제1계명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3790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3790 |
33 |
십계명 강해 3 - 서론(3)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4257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4257 |
32 |
십계명 강해 2 - 서론(2)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2788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2788 |
31 |
십계명 강해 1 - 서론(1)
쥬니어칼빈
|
2014.11.01
|
추천 0
|
조회 3336
|
쥬니어칼빈 | 2014.11.01 | 0 | 3336 |
30 |
오늘날의 방언(tongue)은 진짜인가?
쥬니어칼빈
|
2014.04.22
|
추천 1
|
조회 6507
|
쥬니어칼빈 | 2014.04.22 | 1 | 6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