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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제1주일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5-10-03 08:11
조회
2425

1: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입니까?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몸과 영혼이 모두 미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주께서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치러주셨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듯이 주는 나를 지켜주십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룹니다. 내가 주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위안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는 위안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갑니까? 성도들이라고해서 세상에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생각지 못한 일로 어려움과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성도와 세상 사람들이 받는 위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인하여 위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거나 성공을 위안으로 삼습니다. 자녀가 잘되고 사업이 잘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안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연기와 거품같이 곧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이 교리문답은 무엇이 성도들의 참된 위안이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소유가 되었는가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은 마귀의 소유가 되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마귀의 모든 권세와 그의 소유에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냥군의 올무에 잡혀 있던 새가 자유를 얻듯이 우리도 마귀의 올무에 잡혀 그의 소유에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마귀의 소유에서부터 벗어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어서 벗어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1:18.19)

 

둘째,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십니다. 성경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마태복음10:29-30),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누가복음 21:18)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사냥꾼의 손에 의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분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29) 어느 누구도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굳게 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합니다. 또한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다니면서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앗아 갈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39)

 

참 성도는 이러한 것으로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위안을 삼는 것으로 우리는 위안을 삼아서는 안됩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몸과 영혼이 모두 미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며, 눈동자 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이러한 기쁜 위안 속에서 살고 죽기 위하여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의 죄와 그 비참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문제를 알아야 해답을 찾듯이 나의 죄가 무엇이며 그 죄로 인한 비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9-10) 죄로 인한 비참이란 그들(아담과 하와)의 타락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하고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현세의 모든 비참과 죽음 자체, 그리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1:8,9)라고 말씀하였습니다. , 죄로 인한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영적으로 죽음의 상태에 이르렀으며 그 결말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어떻게 그 죄와 비참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아무 소망도 없이 죽어야만하는 비참한 자리에 그저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실상 인간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음의 비참한 자리에서 벗어날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부패,무능력)’으로 인해 인간 스스로는 이 비참함에서 벗어 날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은 했어도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이 의지로 말미암아 비참한 자리에서 벗어 날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즉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셋째, 어떻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인가 하는 일입니다. 죄의 비참함과 이 비참함에서 벗어난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그렇습니다.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교리문답의 시작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는 교리문답의 시작을 어떻게 시작 할것인가를 나누다가 오늘 성에서 들었는데 프랑스에서 위그노가 다시 살해되기 시작했다는군요. 신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죽이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았나 봅니다. 이제는 수십 명씩 죽인다는군요. 지난번에 바씨에서 교회 안에 있던 위그노들이 포위되었던 때를 기억하시지요? 그때 60명이 죽었고 200명이 부상당했지요. 여자나 어린아이들이라고해서 봐주지도 않았잖아요. 이제 싸움이 3일 지났는데 100명 이상이 죽었다는군요라고 올레비아누스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선제후께서 피난민들을 따뜻이 대해 주실 것입니다. 스페인 박해자들을 피해 도망쳐온 네델란드 사람들을 선제후께서 환대하신 일을 보세요. 비어 있던 수도원과 쇠나우 지방과 프랑켄달 지방의 비옥한 골짜기를 그들에게 주셨잖아요. 이 난민들에게 사역하기 위해 페투루스다테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왔다더군요. 그러나 프랑스에서 저지대(네델란드)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만이 위로가 되시겠지요라고 우르시누스가 답하였다.

 

올레비아누스 입을 열고 위로에 대해 말씀하시니 트리에르의 어느 나이 드신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여보게 일생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셨다는 믿음이 주는 위로 말고 다른 위로는 없다네... 저는 그 말씀을 잊은 적이 없었어요. 그것이 제 믿음의 시작이었지요다른 위로는 없다....어떻습니까? 우리의 교리 문답의 시작으로 딱 좋지 않습니까?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해서 교리문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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