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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제10주일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5-10-03 08:25
조회
2299

27: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 섭리란 하나님께서 항상 지니고 계신 전능하신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꽃잎과 풀잎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양식과 음료 건강과 질병 번영과 궁핍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애로운 손길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권능으로써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다스리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와 섭리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단번에 완성하신 순간적인 창조주로 삼는다는 것은 차디찬, 그리고 무미건조한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주가 처음 시작될 때와 다름없이 그 후 영속적인 상태에 있어서도 똑같이 하나님의 권능이 빛나고 있음을 우리가 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망령된 이교도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섭리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기를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하늘에서 팔짱만 끼고 지켜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쇠의 관리자로서 모든 사건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독자들은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눈 못지않게 그의 두 손에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세기22:8)고 하였을 때,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장래의 일을 예지하신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난국과 당황케 하는 일을 언제나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그 미지의 사건에 관한 걱정을 맡기고자 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섭리는 행위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예지에 대하여 크게 떠벌리는 것은 지나친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자연" 현상을 조정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바람을 일으켜 많은 메추라기를 자기 백성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려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강한 바람을 보내 광풍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을 우주의 통치자로 생각지 않는 자들은 이것을 사물의 통상적인 과정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할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이 없이는 바람이 일어나지도, 불지도 못한다고 믿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름과 바람의 행로를 원하시는 대로 지도하시며 이 가운데서 자신의 특별한 권능을 실제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고 하면,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시편104:3-4)라고 하신 말씀은 사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역시 바다가 강한 바람으로 거센 파도가 일 때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 임재에 대한 강력한 증거임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시편107:25).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시편107:29).

 

28: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앎으로써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 범사에 감사하게 되고 역경에 처할 때는 인내하게 되며 장차 아무것도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큰 확신을 갖게 됩니다. 만물이 온전히 그의 것이기에 그의 뜻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움직이거나 움직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이해하여 우주만물과 인생의 길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미 다 결정되었다고 말합니다. ,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무엇을 선택하고 행한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알아서 하시며 결정되었는데 내가 할 것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모든 것의 원인과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즉 인간에게는 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운명론자입니다. 사실 운명론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목적도 없이, 의미도 없이 막연히 던져진 존재이기에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섭리는 이들이 말하는 운명론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8,9)

 

또한 하나님의 섭리는 운명이나 우연한 사건과는 정반대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만사가 우연히 발생한다는 견해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공통적인 신념으로 되어 왔으며, 오늘날 역시 모든 사람들은 그와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패한 견해로 말미암아 섭리에 대하여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확실히 흐려졌으며 뿐만 아니라 거의 매몰되다시피 되었습니다. 사람이 강도나 짐승을 만났다고 합시다. 바다에서 갑작스런 강풍을 만나 파선을 당했다고 합시다. 집이나 나무가 넘어져 압사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이 광야를 방황하다가 굶주림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파도에 밀려 표류하던 중 마침내는 항구에 다달아 아슬아슬하게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했다고 합시다. 인간의 이성은 이 모든 사건들을 그것이 번영이든 불행이든 모두 운명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태복음10:30)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은 자라면 누구나 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 원인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은밀하신 계획에 따라 만사가 지배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생물들은 각각 본래 자신의 특성을 부여받았다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현재의 손으로 지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주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효력을 계속 부어 주시는 기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그것들을 이런 일 저런 일에 적절하게 사용하신다고 칼빈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택한 성도들을 보존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목적과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만사를 지배하십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능을 주장하시는 동시에 이 전능을 우리가 인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구실로 인간의 신중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솔로몬은 미래 일에 대하여 논하면서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섭리와 쉽게 조화시켰습니다. ,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없이 이런 일 저런 일을 대담하게 계획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동시에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언16:9). 이 말씀은, 우리가 앞날을 준비하며 모든 문제를 정리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의하여 방해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에 항상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삶의 한계를 정해 주셨으며 동시에 그것을 잘 돌보도록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는 생명을 보존하는 수단과 도움을 예비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위험을 미리 알 수 있게 하셔서 불의의 습격을 당하지 않도록 경계와 대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명백해졌으며,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생명의 보호를 위탁하셨다고 하면, 우리는 마땅히 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가 만일 우리에게 구조의 수단을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미리 위험을 경고하시면 우리는 무모하게 그 속에 뛰어 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대비책을 마련해 주시면 우리는 마땅히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 인생은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측량할 수 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수많은 악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무수한 죽음의 위기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눈을 돌리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대상은 신뢰할 가치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공공연하게 위협하고 절박한 죽음으로 협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뿐입니다. 배를 타 보면 우리와 죽음 사이에는 단 한발자국의 거리가 있을 뿐입니다. 말을 타 보면. 한 쪽발이 미끄러지면 우리의 생명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도시의 길 거리를 걸어가 보면 지붕 위의 기왓장과 같이 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옥은 계속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어, 낮에는 가난해지지 않을까. 밤에는 우리 위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위협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왜냐하면, 살아 있으나 반은 죽은 것과 다름없고 그런 사람은 마치 예리한 칼날이 항상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것과 같은 허약한 마음으로 불안하고 활기 없는 한숨을 내쉬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가진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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