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칼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제8주일
제24문: 사도신경은 어떻게 구분됩니까?
답: 셋으로 구분됩니다. 즉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창조, 성자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 성령 하나님과 우리의 성화가 그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닙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12명의 사도들이 각기 1구절씩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AD4세기 루피너스러는 신학자가 “사도신조주석”을 쓰면서 사도신조를 열두 사도가 썼다고 하는데서 기인한 것으로 신뢰할만한 것이 되지를 않으며 이미 종교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영향을 받은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사도 신경은 초대교회가 성도들을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는 세례 예식에서 사용되던 세례 문답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단 교리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정통적인 교회의 신앙 고백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터툴리안 (AD160-230) 신학자의 저서 “이단들을 반대하는 진술”에 보면 오늘날과 같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전능하신 하나님 세계의 창조주를 믿사오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면 이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하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천국에 오르사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또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또한 이레니우스의 제자 히폴리투스(AD160-236)가 작성한 “히폴리투스 신경”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들이나 개혁자들이나 오늘 성도들의 믿음은 하나의 믿음으로 같은 고백을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이 로마카톨릭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에서는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도신경에 대한 역사의 오해입니다. 잘못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신경은 로마카톨릭의 작품이 아니라 초대교회때부터 교리적 가르쳐 온 신앙고백으로 사도들의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 카톨릭의 작품이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유산임을 알아야 합니다. AD750년경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이 확정되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주일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도 신경을 예배 시간에 암송하지 않는다고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앙고백위에 세워진 교회가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것은 올바르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와 신앙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와 같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신앙고백이 무엇인지 바르게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열두 개의 고백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각기 종목을 다시 소속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3인격 또는 위(位)와 그 사역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렇다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각기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세분의 각각의 사역과 계시에 나타난 각각의 인격 때문에 구별이 될 뿐, 세 분은 항상 함께 있습니다.
신경(Creed)은 라틴어 크레도(Credo; I believe) “나는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경은 1인칭, 단수로 시작되는 신앙고백으로 우리말에 신경 또는 신조는 같은 뜻입니다. 신경은 종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교리 선언이며, 사도들이 기독교의 중요한 근본 진리들을 요약하여 진술한 교리적 신앙고백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말은 사도들의 사도신경의 교리들을 그대로 신봉한다는 뜻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자들의 고백으로 성경적인 고백서로서 믿습니다. 정통 기독교에서 믿고 고백하는 신경에는 사도신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니케아신경, 칼케돈신경, 아타나시우스신경등이 있습니다. 어느 신경을 고백하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신경을 믿지 않고 부인하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신경을 믿지 않고 부인하는 자들은 거짓 무리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곳에 가지 말아야 하며 멀리해야 합니다.
제25문: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라 하면서 왜 삼위(三位), 즉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합니까?
답: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삼위(三位)가 곧 유일하고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십니다. 그는 존재와 완전성에서 무한하시고, 가장 순결한 영으로서 볼 수 없고, 몸과 지체가 없으시며, 사람과 같은 성정도 없으시고, 변치 않으시고, 광대(크심)시고, 영원하시고, 헤아릴 수 없으시고, 전능하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시며,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자유로우시고, 가장 절대적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장을 보게 되면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신다. 그는 존재와 완전성에서 무한하시고, 가장 순결한 영으로서 볼 수 없고, 몸과 지체가 없으시며, 사람과 같은 성정(性情=passions)도 없으시고, 변치 않으시고, 광대(크심)시고), 영원하시고, 헤아릴 수 없으시고, 전능하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시며,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자유로우시고, 가장 절대적이시다. 그는 모든 일을 자신의 변함없으시고 가장 의로운 뜻의 계획을 따라 행하시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다. 그는 가장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고, 죄악과 죄과(罪過)와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를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는 이시다. 동시에 그의 심판은 가장 공의롭고 무서우며, 모든 죄를 미워하시고, 결단코 사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완전한 생명과 영광과 선(善)과 행복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본질에 있어서, 그리고 자기에 대하여 홀로 완전히 자족하신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만드신 피조물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그들에게서 아무 영광도 얻으려 하지 않으시고, 다만 자신의 영광을 피조물들 안에서, 그것들에 의해서, 그것들에게, 그것들 위에 나타내실 뿐이다. 그는 홀로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시요, 모든 만물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가장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며, 그것들에 의하여, 그것들을 위하여, 또는 그것들 위에 자신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신다. 그의 앞에서는 모든 만물이 드러나며, 나타난다. 그의 지식은 무한하시고, 무오하시며, 피조물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우연하거나 불확실한 것이 없다. 그는 그의 모든 계획과 그의 모든 사역과 그의 모든 명령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시다. 천사들과 사람들과 기타 다른 피조물은 어떠한 경배나 봉사나 순종이든지 그에게 드리는 것이 마땅하며, 그는 그런 것들을 받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본체(本體)는 하나이시며 곧 동시에 삼위(三位)이시다. 즉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 라고 고백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단 사상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을 알아야 합니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신론: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사상으로 성자와 성령을 부인하며 성부만을 믿습니다. 2. 삼신론: 하나님이 세분이라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라 한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3. 종속론: 예수님께서 성부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는 것으로 즉, 성부 하나님이 제일 높고 성자와 성령은 열등한 신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4. 양자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부어서 아들을 삼았다는 견해입니다. 양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은 비록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지만,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비로소 성령을 통해서 신적 요소가 부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여러 가지 신적인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이때에 성령을 통해서 부여된 권능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5. 양태론: 성부와 성자를 한 하나님의 다른 양태(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말하는 사상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성부로 신약에서는 성자로 오순절 이후로는 성령으로 나타나심으로 설명하거나, 또는 집 안의 가장이 자녀들 앞에서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 되며, 회사에 가면 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사실은 한 사람입니다. 또는 태양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서 열과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성부는 태양이라면, 성자는 비취는 광선이고, 성령은 태양에서 나오는 열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양태론자들은 "삼위(位)"를 구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교회안에서 이런 이단 사상들이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고백은 결국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고백은 정통 기독교의 핵심이며 지켜야 할 신앙의 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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