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칼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제17주일
제45문: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첫째,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성취하신 의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미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광스러운 우리의 부활에 대한 보증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16-20)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죽음 앞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인류 어느 누구도 이 죽음을 이긴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한사람만이 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주의에 물든 사악한 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략 4가지의 주장을 합니다.
첫째, 기절설: 예수님이 죽지 않고 십자가에서 잠시 기절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둘째, 도난설: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셋째, 환상설: 예수의 제자들이 무의식 중에 그분이 살아나셨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니 다시 살아나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오류설: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잘못 찾아갔고 빈 무덤을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다 거짓되며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한 것도 아니요 또한 부활하셨다고 인정을 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며 창세전에 선택받아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이 받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오늘날 부활절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며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부활절 절기를 지키는 문제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절 절기는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교회역사가 라은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절’(Easter)이란 단어는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지 않고 튜턴족(Teutonic, 게르만족) 다산 여신 ‘에스테레’(Estere)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녀에 대한 축제는 4월에 있었고 그 달에 여신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로부터 희생제들을 요구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 가보면, 부활절은 고대 여신 ‘이쉬타르’(Ishtar)로 돌아갔으며 메리를 신성화하려는 서방종교, 즉 로마 카톨릭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역사가 Hyginus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크기의 계란은 하늘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졌습니다. 비둘기들이 둑에서 뛰어 놀던 그곳에서 고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데 그 알이 부화되어 베누스(Venus)가 나왔습니다. 그런 후 그녀는 시리아 여신, 즉 아스타르테(Astarte)라 부릅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계란들은 이집트 신전들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드루이드(Druid)라는 이름으로 봄철에 의식들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절 토끼(Easter Bunny)는 역시 에스테레 또는 아스타르테의 튜턴의 이교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교도들은 다산성 때문에 다산의 상징으로 산토끼를 찾는 축제를 행했습니다. 이 축제의 동안 계란들은 새롭고 풍부한 봄의 상징으로서의 산토끼에서 나왔다고 믿어집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부활절 절기가 과연 성경적인지 묻고 싶습니다. 어린아이라도 쉽게 분별 할 수 있는 것을 왜 오늘날 교회들이 분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회가 인본주의에 물들어 성경의 가르침을 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고자 하는 악한 성품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신앙고백서들을 살펴보면 <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 24장 (거룩한 날들과 금식들과 음식들의 선택에 관하여)>...
사순절 때의 금식에 관하여는 고대 교부들의 글들이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금식을 성도들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이미 초기에도 변질된 금식의 여러 형태와 관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초기 교부인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어떤 이는 하루만 금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이틀을, 어떤 이는 그 이상 혹은 40일간을 금식하라고 말한다. 금식에 대한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 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벌써 우리 시대 이전에 생겼다. 내(이레니우스) 추측으로는 이것이(사순절 금식) 사도시대로부터 전승된 것(금식)을 무시하고 또한 소홀히 여기거나 무식함 때문에 다른 습관에 빠진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단편집) 3, Ⅰ, 824이하>.
<프랑스 신앙고백서 제24조>...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변호자이시며, 또 그가 자기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기도하도록 명령하시므로, 따라서 하나님이 자기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모범과 일치되는 기도가 아니면 올바른 것이 못되기 때문에 죽은 신도들을 대신하여 드리는 기도에 관한 착상은 불합리하며 예배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유도하는 사단의 생각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구원하려고 하는 모든 다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을 해치는 것이므로 배격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연옥이 동일한 출처에서 나온 착각으로 생각하며, 거기에서 또한 수도원의 서약, 성지순례, 성직자의 결혼금지, 육식금지, 특정 제일(祭日)들(성일<聖日>들=부활절 및 성탄절 등)을 지키는 의식들, 고백제도, 면죄부 그리고 사죄와 구원을 얻는 공적을 세우려는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생겼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배격하는 까닭은 그것들에 부착되어 있는 공로사상만이 아니고 그것들이 사람들의 양심에다가 멍에를 메우는 인간의 발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절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쯔빙글리는 “절기와 장소가 그리스도에게 묶여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에 속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절기와 장소에 속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합법적인 자유를 강탈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운다”(쯔빙글리의 67개 조항, <축제와 순례에 대하여> 중에서)
칼빈은 “그러므로 특정한 날들의 미신적 준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일 수 밖에 없다”(제네바 1차 교리 교육서 4계명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무한히 귀중한 피의 값으로 교회의 자유를 사셨건만 그 교회가 잔인한 압제에 눌리며 산더미 같은 전통에 거의 압도(각종 의식과 절기들)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고안한 가장된 예배 행동을 아무리 우리가 기뻐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일체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곧 판단할 수 있다. 또 확실히 주께서는 친히 여러 구절에서 그런 행동들을 명백하게 거절하실 뿐만 아니라 심히 미워하셨다.”(기독교강요 4.13.1 중에서)
존 녹스는 “금식일의 미신적 준수, 성탄절, 주현절 등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율법, 회의, 율령으로써 사람들의 양심에 부과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교리에 반대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전적으로 몰아내야 한다고 판단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가증스러운 것들의 준수를 고집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세속 행정 장관의 처벌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언한다”(제자도 제 1권 중에서)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09문에서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이 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지 않으신 어떤 종교적 예배를 고안하고, 의논하며, 명령하고, 사용하고, 어떤 모양으로 인정하는 것들이며, 거짓 종교를 용납하는 것과 하나님의 삼위(三位)나 그 중 어느 한 위의 형상이라도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가지든지, 외적으로 피조물의 어떤 형상이나 모양으로 만든 것(그림, 조각상, 영상화)이며, 이 형상이나 혹은 이 형상 안에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일이며, 거짓 신들의 형상을 만들고, 그들을 예배하거나 또는 그것들에 속한 것을 섬기는 것이며, 우리 자신들이 발명하고 취하든지, 전통을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받았든지, 옛 제도, 풍속, 경건, 선한 의도, 혹은 다른 어떤 구실의 명목으로 예배에 추가하거나 삭감하여 하나님의 예배를 부패케하는 미신적 고안, 성직 매매, 신성 모독,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와 규례들에 대한 모든 태만과 경멸, 방해, 반대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이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 절기는 성경적 절기가 아닙니다. 부활절을 Easter Day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바벨론의 창녀였던 이쉬타(Ishtar)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즉 이 말은 우상인 여신을 섬기는 날입니다. 이렇게 더러운 날이 어떻게 교회에서 부활절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며 지켜야하는지....성도들이여 깨어 바른 성경의 교리로 믿음을 세워 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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