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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제15주일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6-04-08 22:34
조회
2161

37: ‘고난을 받으사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 예수님께서 전 생애를 특히 그의 마지막 순간에 전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친히 몸과 영혼으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정죄로부터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영생을 주시기 위한 유일한 구속 제사였습니다.

 

고난과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고난과 죽음은 생명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결과는 평안과 영생입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로 고난과 죽음이 인간에게 왔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참된 의와 영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인류는 비참함속에 머물러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소망 없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는 즉, 군병들에게 수치와 조롱과 희롱을 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가시어 그곳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희롱을 당하였습니다. 만왕의 왕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또한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는 것이나 머리를 맞고 옷을 벗기는 희롱을 당하는 것은 수치중의 수치입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태복음 27:28-31)

 

예수님께 왜 이런 고난을 받으셔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심판 아래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는 친히 몸소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로 인간은 구원을 얻게 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정죄로부터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영생을 주시기 위한 유일한 구속 제사를 위해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4,5)

 

38: 왜 예수님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셨습니까?

: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 위에 선고되어야 했던 엄격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에 대한 만족이 이루어지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범죄한 인간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형벌도 피하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죄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의 댓가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공의는 피 흘림입니다. 피를 흘려야만 범죄한 인간의 죄가 사해 지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9:2) 그런데 문제는 이 하나님의 요구에 만족을 드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나 능력을 지닌 자가 범죄한 인간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흠 없고 죄 없는 피를 가진 자가 없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어린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1:21)님은 십자가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 시킬 수 가 있었고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신의 백성들은 구속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죄를 감당 할 자가 없습니다. 하늘의 그 어떤 천사도 이 땅의 그 어떤 성인도 우리의 죄를 감당 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하시기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6~8) 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죽음이 아니고는 해결 될 수 없습니다. 칼빈은 원래 정죄를 받아 죽고 멸망한 우리는 의와 해방과 생명과 구원을 그리스도에게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것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라는 베드로의 유명한 말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같다...그리고 참으로 죽음 자체에서도 그가 기꺼이 하신 복종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기꺼이 바치는 희생이 아니면 의를 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기는 "자기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이를(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적절한 말씀을 첨가하셨다. 이런 뜻으로 이사야는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라고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함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셔야 했으며 그의 피가 요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에게만 유효하다는 사실입니다.

 

39: 예수님께서 다른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다는 확신을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범죄한 인류가 용서함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군가가 그 죄의 값을 치러주는 것뿐입니다. 범죄한 죄의 값에 상응하는 값을 치루기만하면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죄의 값을 치를 만큼 자격이 있습니까? 아담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 중에 누가 이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증언처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0) 라는 말씀처럼 그 죄의 값을 치를 만한 의인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에 그 죄의 값을 치를 수 가 없습니다. 죄인은 죄의 값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없는 의인만이 죄의 값을 치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의 값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의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의 값을 치를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완전한 희생양이 되십니다. 구약의 제사를 보면 염소나 황소의 피를 흘려야만 용서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 염소나 황소들은 흠 없고 점 없는 것으로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사는 완전한 제사가 아닙니다.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단번에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행해지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흠 없고 점 없으신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릴뿐만 아니라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저주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온 세상의 죄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죽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말이 보편 구원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구속의 적용은 오직 택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한되어 있다는 말을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말로 오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범위 즉, 대상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저주받아야 마땅할 죄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저주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가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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