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칼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제23주일
제59문: 이 모든 것을 믿으면 당신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습니까?
답: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의로운 자가 되며 영생의 후사가 됩니다.
여기서 이 모든 것이란 제20문부터 제58문까지 살펴 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을 배움으로 얻는 유익을 두 가지로 가르칩니다. 그 유익은 의로운 자가 되는 것과 영생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의로운 자가 된다는 것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의로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공로나 선을 통해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의 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이사야 64:4)
우리 주변에는 법 없이 사는 의로운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진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다 더러운 의와 같습니다. 죄인인 인간들이 의로운 자가 되는 의를 얻는 것은 인간 스스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의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이 의로운 자가 되는 그 의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상대적인 의를 말합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법 없이 사는 자를 의로운 자라 말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진 의는 상대적인 의이지 절대적인 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 일컬음을 받는 자는 상대적인 의를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절대적인 의를 가진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안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된 자는 영생의 후사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제58문에서 잠시 말한 것처럼 인간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존재로서 세상 사람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자 몸부림치는 것을 나누면서 이들의 수고는 다 헛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참된 영생을 얻는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안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임을 59문에서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대해 잠시 살펴 볼것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이 만든 고백서가 아닙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이 한 줄씩 말하는 것을 모아서 사도신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이것은 AD4세기 루피너스러는 신학자가 “사도신조주석”을 쓰면서 사도신조를 열두사도가 썼다고 하는데서 기인한 것으로 신뢰할만한 것이 되지를 않으며 이미 종교계에서는 받아 들이지 않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영향을 받은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사도 신경은 초대교회가 성도들을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는 세례 예식에서 사용되던 세례 문답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단 교리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정통적인 교회의 신앙 고백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터툴리안 (AD160-230) 신학자의 저서 “이단들을 반대하는 진술”에 보면 오늘날과 같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전능하신 하나님 세계의 창조주를 믿사오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면 이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하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천국에 오르사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또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또한 이레니우스의 제자 히폴리투스(AD160-236)가 작성한 “히폴리투스 신경”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이 로마 카톨릭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에서는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도신경에 대한 역사의 오해입니다. 잘못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의 작품이 아니라 초대교회때부터 교리적 가르쳐 온 신앙고백으로 사도들의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 카톨릭의 작품이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유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AD750년경에 확정되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주일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도신경을 예배 시간에 암송하지 않는다고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앙고백위에 세워진 교회가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것은 올바르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와 신앙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와 같습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고백이 무엇인지 바르게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예배 때 신앙고백을 고백하는 것은 당연하며 신자들도 반드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제60문: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있습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하였고 그 계명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못했으며 아직도 죄로 향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고소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무가치한 나를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치 내가 죄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순종하신 것을 내가 순종한 것처럼 대하시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의 의와 성결을 나의 것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것뿐입니다.
이 땅에 사는 인간들 중에 양심으로나 행동으로 죄 짓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9-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를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행하여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선이나 착한 행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일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받게 하는 믿음도 인간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선물입니다. 이 믿음의 선물로 의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받아야 하는 믿음은 누가 받는 것입니까? 인간이 스스로 믿음을 가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떤 자연인이 이제부터 내가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믿어집니까? 아닙니다. 믿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은 창세전에 예정하신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1:3,4, 2:8,9)
제61문: 왜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까?
답: 하나님께서 나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내 믿음에서 어떤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성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인간의 공로나 선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인간의 공로를 내세워 하나님 앞에 의를 내 세우려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의 행위입니다. 의롭게 되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누구나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택자들만이 받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택자들이 받는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설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의를 인간에게 줄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사탄의 종이며 거짓선지자입니다. 인간의 의는 더럽고 부패한 의입니다. 오직 흠없고 정결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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