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종교개혁 정신의 역사적 의의 / 최은수 교수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3-10-05 20:30
조회
5431

1. 서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성채교회 문 앞에 게시된 95개조 반박문은 시대의 정신을 일깨우는 서막이 되었다. 수도사 출신의 신학 교수인 마틴 루터는 자신이 경험한 영적 순례의 과정을 통해 기성교회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개혁적 당위성을 피력하였던 것이다. 젊은 루터의 외침이 있은지 벌써 484주년이 되었다. 16세기 당대 뿐 아니라 향후 전개된 역사의 흐름속에서 종교개혁적 외침들은 한 시대를 깨우며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교회에 역동성을 부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매 년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으면서 어느 순간 개혁이라는 단어조차 화석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위기를 느끼기도 하지만, 다시 한번 흐트러진 개혁의 옷 매무새를 단장하며 종교개혁의 원칙들을 챙기고 겸허히 역사의 현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먼저, 16세기 역사적 정황 이해의 차원에서 종교개혁 운동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특별히 마틴 루터의 독일에서 개혁이 먼저 일어난 원인들을 대략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루터의 사상을 중심으로 발전된 종교개혁의 정신들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끝으로 그 개혁적 정신들이 21세기 첨단과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기독교인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간략하게 보고자 한다.

2.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발생 원인

첫 번째 이유로 교회의 부패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견해는 인문주의자들과 개신교의 호전적인 역사서술을 통해 시도되었다. 또한 계몽주의 시대에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원인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교황권력의 남용이 심각한 지경에 있었는데, Julius II (1443-1513)의 경우 1503년부터 교황으로 봉직하면서 영적인 지도자라기 보다는 정치가이자 전사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나타내면서 교황 본연의 직무에서 이탈하였다. 교황의 과도한 부의 축적과 공개적인 부도덕도 문제였다. 즉 Innocent VIII (1482-1492)의 경우 그는 16명의 자녀들을 거느렸고, 그들의 결혼 예식을 바티칸에서 공개적으로 거행하였다. 교회와 성직자의 세속화도 한 몫 하였다. 성직자들이 축첩을 일삼으며, 성직을 매매하고, 성직을 이중으로 소유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더나아가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행해지는 공식적인 활동들, 즉 세례와 고해 등의 대가로 돈을 받아 부를 축적했으며, 심지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려 엄청난 재산을 형성하였다.
둘째로, 로마 교황청의 교황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주의 내지는 보편주의에 대하여 근대적인 국가 형태를 갖춘 각 국의 민족주의가 충돌하였다. 영권과 속권을 모두 장악하려 했던 교황들의 의도가 내정간섭의 빌미가 되었고 이런 지배구조를 원치 않았던 국가들이 교황권의 남용을 지적하고 나섰던 것이다.
셋째로, 교리적 탈선의 문제이다. 중세 후기 스콜라 신학내에서 Via Moderna의 길을 열었던 윌리엄 옥캄 (William of Occam)을 위시한 유명론자들과 Via Antiqua의 방식을 택한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한 실재론자들의 대립이 새로운 신학적 체계를 양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충되는 입장과 함께 더 이상 카톨릭이라고 불리울 수 없을 정도로 신조들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못했으며, 교리적 혼란의 양상을 짖게 드리우고 있었다.
넷째로, 사회 경제적인 요인이다. 1500년 경 유럽의 인구는 6천5백만 내지 8천만에 육박하고 있었는데, 약 60 여명의 소수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또한 중세 후기 상업의 발달과 도시의 형성을 통해 신흥 상업자본주의가 대두되는 과정에서 중세의 기본적인 경제 단위인 장원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었고, 자연히 봉건제 전반에 균열현상이 심화되었다. 봉건제의 구조속에 있었던 교회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정쩡한 자세로 자본 축적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비판적 시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다섯째로, 대중들의 종교적 열정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적 열심에 부응하여 종교개혁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대중들의 종교적 동향은 성경적이라기 보다는 미신적이었으며, 정상적인 체계를 이탈한 비현실적인 것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성지를 비롯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만한 곳으로의 순례, 새로운 기도문들과 촛대 사용의 증가, 묵주의 사용, 성자숭배, 유물숭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화 추진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인문주의의 발흥이다. 인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기독교 인문주의와 세속적 인문주의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기독교 인문주의는 라틴 고전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작들을 심도있게 연구하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성경을 원문으로 탐구토록 작용하였다. 1516년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럼, 왜 종교개혁이 독일에서 먼저 시작되었을까?
첫째로, 합스부르그 왕가가 누리던 신성로마제국의 보편성이 쇠퇴함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결국 각 지방의 봉건영주들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이들의 분쟁과 봉건제도의 붕괴로 사회불안이 가중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신흥 상업 자본가들의 영향하에서 영주와 도시들은 번영하고 있었다. 실제로, 1521년 85개의 도시들 가운데 65개가 제국 직할 도시로 되어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부한 상인들 손에 있었다.
둘째로, 제국의 대부분이 봉건적인 구조와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 영주들과 지방제후들에 의한 교회지배가 확산되었고, 반면 독일의 자금이 로마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증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와 성직자들과 관련하여, 일반대중들은 성직자들의 호사스런 옷차림과 종교세 등의 착취로 인하여 분노하고 있었다.
셋째로,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열정적인 대중들의 신앙적 분위기를 지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교회를 이용하여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3.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루터를 중심으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1538년 요한복음 강해 시리즈에서 루터는 ‘인간적인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소리높여 외쳤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은 인간일 따름이라고 강변했다. 루터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아무리 훌륭하고 고상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오류를 범하며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께만 의지할 따름이다. 그는 과장되어 말씀하지 않으셨고 또한 너무 과소평가하여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도록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고, 부족한 나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또한 나를 성령님과 친숙해지도록 하셨다. 그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무엇을 기대하고 소망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Murray, Liberation from Human Authority, p. 31)

결국 루터의 기준은 그리스도요 그의 말씀이었다. 이것에 근거하지 않는 그 어떤 것이라도 진리일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교회의 스승들인 암브로즈, 어거스틴, 그레고리, 제롬, 버나드, 베네딕트, 도미니크, 프란시스 등과 같은 인물들이 거룩하고 고상한 인물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그들도 여전히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그들이 주장한 교리들이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논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수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힌다.
루터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훈과 훈계를 순종하지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레고리,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기타의 인물들이 주장한 교리적인 내용들을 승인했다고 말한다. 결국 그리스도 보다 인위적인 것에 더 의지함으로 수도사들과 수녀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순례의 행위들과 성자숭배 등이 파생되었다고 루터는 주장한다.
루터는 교황이 신령한 주님의 말씀에 면죄부, 순례들, 금욕적인 규제들을 첨가했다고 지적하면서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고 반문한다. 아무리 교황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종이며,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겸허히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루터는 교부들의 가르침이든, 교황의 명령이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준으로 검증의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의 교리와 일치할 경우에만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부들과 기타 모든 경건한 스승들의 가르침이 담겨져 있는 서책들을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앞에 가져와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루터는 다음과 같이 강변한다.

그리스도의 품을 떠나지 말라. 그 어떤 것도 그 분으로부터 갈라놓지 못할 것이다. 병아리들이 어미닭의 날개아래 거하듯이 그리스도의 날개아래 거하라. 그 분이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겨서 먹히우리라. (p. 34)

사실 루터는 1531년 10월 31일 성채교회 문 앞에다 게시한 95개조 반박문 제1항에서 이와같은 정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 하셨을 때, 그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참회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 (Bettenson, p. 186)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1546년에 개최된 트렌트 종교회의(Session IV.8)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과 전통이 대등한 권위를 가지며, 계시의 두 원천이라고 천명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이러한 결정은 마틴 루터가 주장한 Sola Scriptura에 대한 반동에서 기인하였다. 중세 교회가 성경과 전통을 동등하게 취급하게 되고, 교황이 이 둘 위에 군림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스콜라 철학의 전통까지 가세하면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는 요원해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루터는 그레고리 1세 이후 형성된 신학전통에 반대하여 ‘오직 성경’ 원칙을 주장하였고, 교황만의 성경해석권에 반대하면서 ‘성경 자체의 자기 해석’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을 천명했던 것이다. 루터는 교황 뿐 아니라 교부들, 교회 회의들도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가 성경의 것보다 우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루터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총의 복음이었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켰다.
루터는 율법과 복음을 말하면서 전자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경각심을 갖도록 한다면, 후자는 죄용서의 약속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율법은 복음의 배경으로써 율법을 선포함이 없이 죄용서를 약석하는 복음을 선포할 수 없다. 율법은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또한 율법은 진노의 위협아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해준다. 루터는 율법의 이중적 용례를 말해준다. 첫째로, 율법의 세속적 용례로써 율법과 질서를 유지토록 하며 악을 방지한다. 둘째로, 율법의 신학적 영적 용례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고상한 관계와 연관된 율법의 용례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죄를 깨닫도록 해 주는 율법이라는 것이다. 복음은 약속에 따라서 죄의 용서를 예비하며, 마음의 충동으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영감을 제공한다.

Sola Fide, 오직 믿음

루터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저주아래 놓여 있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에 있었다. 인간의 행위나 업적으로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근거에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이들이 그 분 앞에서 완벽하게 의롭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이것은 법적인 선언이다.
이와 반대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례들, 계명들, 교회가 제정한 규례들, 선행과 공조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점에 대하여 루터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욕을 극복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행위 자체만을 생각하며, 만약 그들이 가능한 최대한의 많고 큰 일을 행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잘 했고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그들은 행위들로 머리를 썩히고 그들의 자연적인 힘을 소멸시키거나 적어도 쓸모없이 만들어 버리기까지 한다. 인간이 신앙없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 대한 전적인 무지의 발로이다.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p. 113)

루터는 선행을 신앙의 열매로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선행을 하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행위를 행하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신앙으로부터 시작하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p. 115) 루터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행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행에 대한 그릇된 견해 곧 칭의가 행위에 의해 얻어진다는 어리석은 가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의 양심을 구속하고 올바르게 하며 보존함으로써 우리는 행위가 없을 수도 없고 없어서도 안되지만 의가 행위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p. 127)

Sola Gratia, 오직 은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자유롭고 무조건적인 호의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믿음을 가진 죄인들에게 선물로써 자유로이 주어지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이것이 인간적인 선행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의 원인이 된다.

Soli Deo Gloria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위적인 것들에 돌려버렸다. 교황, 성직자들, 거짓 교리들, 심지어 신자들 자체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이점에서 루터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당신이 하나님에게 돌려야 할 참되심의 영광과 하나님께 합당한 모든 선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가 참되시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p. 105)

4.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종교개혁의 정신은 16세기 당시 역사적 정황속에서 시대의 기준이 되어 정도를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향후 전개되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이 정신들은 개인과 교회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적 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는 개혁교회의 후예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제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로, 인위적인 영광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둘째로, 인위적인 Lordship and Headship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셋째로, 인위적인 제도와 관습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넷째로, 왕권과 제사장권의 회복
다섯째로, 성경 권위의 회복
여섯째로,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의 회복
일곱째로, 지속적인 자기 갱신과 개혁의 과제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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