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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유그노" 는 누구인가?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2-11-06 00:20
조회
4584

유그노 (The Huguenots) 라 함은 프랑스에서 천주교의 가르침을 배적하고 신약적 예배를 드리던 개신교 사람들로 제네바에 가서 칼빈에게서 영향을 받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프랑스에 와서 전도하여 이들의 전도를 받은 개신교 신도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마치 영국의 청교도 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1500년대에서 1600년대에는 강력한 천주교국가로서 당시 새로 일어나고 있던 루터나 칼빈, 파렐, 르페브르 (Luther, Calvin, Farel, LeFevre) 등의 개신교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Scotland에서 개혁가인 John Knox 와 싸우던 Mary 여왕도 결국 프랑스의 왕자와 남편보다 한살 위인 16세게 결혼하여 계속 프랑스의 지원을 받으면서 종교개혁을 탄압했습니다. Knox가 목회하던 Scotland Edinburgh 에 있는 St. Giles Church 에 Mary 여왕이 부하를 거느리고 와서 예배을 인도하는 Knox 와 늘 "무력“ 충돌이 있었고, 그때마다 Knox 의 교회 교인들은 앉아 있던 의자를 들고 메리 여왕의 군대와 대항하였습니다.


 


나중에 Mary 여왕은 물론 London 에 가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세력은 프랑스였습니다. Knox 자신도 George Wishart 개혁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호위병 노릇을 하다가 Wishart 목사가 David Beaton 이라는 St. Andrews 추기경에게 잡혀서 Scotland 의 St. Andrews 교회(대학) 앞 인도에서 화형으로 순교당하게 되자 프랑스 군에 의해 체포되어 프랑스 군함에 끌려가 19개월동안 노를 젓는 일을 하였고, 석방된 후 영국 London 에 가서 개신교 신자였던 Edward 왕에게 가서 궁중 설교가로 일하기도 했는데 바로 그 Knox를 19개월동안 고생시킨 사람들은 천주교를 믿는 프랑스의 군함이 었습니다.


 


 프랑스출신 칼빈은 1539년 프랑스 남단에 있는 Strassburg를 근거지로 개혁주의 개신교를 전파했고 (Calvin 이 Geneva에서 추방되어 피신한 곳도 바로 이곳 Strassburg 이며 그는 이곳에서 프랑스 개신교 신자들을 놓고 목회하던 중 다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그를 다시 불러서 Geneva 로 돌아가서 55세에 소천 할 때까지 <Geneva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목회하였습니다. 그는 얼마나 사역에 열중했는지 글에 읽어 보면 “나는 너무 바빠서 하늘의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 버릴 정도”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 요점은 칼빈이 이미 1539년 개혁주의 개신교 신앙을 이곳에 전파하여 개혁주의 교회가 교단으로 조직되지 않은채 독립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를 믿게 되었고, 또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의 제네바로 가서 칼빈에게서 배웠고 그들이 다시 프팡스에 와서 개혁주의를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핍박은 상당히 심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Guise 공작 의 세도가 대단하여 프랑스를 쥐고 흔들때 였습니다. Guise 는 자신이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그가 하는 일은 개신교 사람들을 잡아 처형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1562년 3월 1일 그의 동생이주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가는 도중 바로 이웃에 있는 곡식 창고에서 개신교 사람들 (유그노족) 들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며 천주교식이 아닌 신약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그의 군대를 동원하여 예배를 드리던 700명에게 발포하여 36명이 현장에서 죽고 100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앞으로 9회에 걸친 유그노족 (프랑스이 칼빈주의자) 와 천주교 군대와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는 첫 마찰입니다 (William Stevenson. Story of Reformation, Knoxville, Tenn.: Knox Press, 1956, p. 98).



그로부터 싸움은 쉬었다 또 시작하고 또 쉬었다 계속하고 Henry 왕의 Edict of Nates (난테의 직령, 1598) 때 까지 계속됩니다.  약 100년간 천주교와 개신교가 싸움이 없이 비교적 조용했으나 1685년 난테의 칙령이 폐지 (revocation) 되면서 다시 싸움을 시작되고 나중엥 Napoleon Bonaparte 때에 와서 비로서 종교의 자유를 찾게 됩니다.


 


 Huguenots 가 천주교에게 당한 무서운 핍박중에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갈 것은 이른바 <성바돌로매오 날의 대 학살> 사건입니다. 1572년 8월 24일 <St. Bartholomew's Day, 성바돌로매오의 날> 에 Charles IX 의 섭정을 하고 있던 Catherine 왕후의 사주로 인하여 유그노족이 큰 수난을 당했는데 빠리(Paris) 에서만 10,000 명이 무참히 도끼로 죽임을 당했고, 프랑스 전국에서 7만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Stevenson, ibid., p. 101). 프랑스의 천주교 교인들은 거리에 나와 춤을 추었고,로마에 있던 교황 Gregory XIII (그레고리 13세) 는 이날을 <축제의 날>로 선포했고, 프랑스 수도 빠리에 와 있던 스페인의 대사는 본국정부에 보고하기를, “Not a child has bee spared. Blessed be God, 애기 한명도 살려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로를 찬송합니다” 라고 말했고, 당시 세계 최대강국 (이때는 아직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Spain 의 남단 Trafalgar 해전에서 영국 Nelson 제독에게 패하기 전임. 이 해전은 1805년에 있었는데 이때 이 해전에서 영국이 승리하므로 그때부터 스페인은 패권을 영국에게 양보하고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음) 인 스페인의 필립 II 왕은 평생에 단 한번 처음으로 웃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천주교와 유그노 사이에 제4차 전투가 일어났고, 그 뒤를 이어 쉬었다 싸웠다하면서 많은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나바르의 앙이 (Henry de Navarre)> 가 왕위에 오르면서  어떻게 하면 양측이 화해를 이룩할까 궁리를 많이 하면서 그 자신은 천주교에 입교했지만 내심 개신교를 동정하였습니다. 1598년 4월 13일 드디도 난테의 칙령 (Edict de
Nantes)를 공포하였고, 이로서 9회에 걸여서 싸우던 천주교와 유그노의 싸움을 끝나고 앞으로 약 100년간은 평화시대가 오지만 천주교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1685년 난테의 칙령은 철폐되어 무서운 핍박이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천주교는 이렇게 많은 개신교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유그노족이 개혁주의에 끼친 영향을 말하려면 그 당시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당시 영국은 Henry VIII 가 만든 Anglican Church 라는 국교가 천주교 식으로 예배를 드려 이를 못 마땅히 여기는 사람들이 화란과 연락하면서 개혁주의를 전파해 나가던 시절이어서 외국에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을 많이 수용하던 시절이었고, 화란은 당시 스페인의 필립 2세 와 싸워 개신교가 승리하여 천주교와 싸우다가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받아서 보호하는 천국이었고,  화란 사람들은 이미 천주교세력인 스페인의 필립 2세 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여 Leyden (어떤 분은 Leiden 이라고 표기하기도 함) 대학교를 세웠던 시절입니다.  미국은 개방되어있던 곳으로 아직 나라가 세워지기 전인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난테의 칙령이 폐지되면서 시작한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유그노족들은 주로 화란으로, 영국으로 피신했으나 대부분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주로 뉴욕의 Staten Island를 본거지로하고 여기서 선교했습니다 지금도 Staten Island 에 가면 유그노족의 칼빈주의 교회들이 많습니다. 프랑스 어를 사용하는 교회는 거의 없고 지금은
화란계 교회가 그러하듯, 모두 여어를 사용합니다. Grand Rapids, Michigan 에 있는 화란의 개혁교단도 처음에는 화란어로 예배를 드리다가 30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영어로 에베를 드린다고 합니다 (Kromminga 교수의 1983년 특강 중에서 들은 말).


    


개혁주의에 끼친 공헌을 말한다면, 첫째. 프랑스 개신교의 터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며, 둘째, 나폴레옹이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면서 유그노족의 칼빈주의 사상이 널리펴저서 1789년 7월 17일 프랑스 혁명군이 Marselles 의 Bastil 감옥을 점령하면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정신 “자유, 평등, 박애” 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고, 셋째가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핍박을 피하여 네넬란드로 피신한 유그노족은 화란에 들어가 신앙노선이 같은  화란개혁주의에 가담하여 화란 개혁교단의 중추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그노 족 30만명이 외국으로 피신했고, 프랑스에 남은 유그노족은 심한 핍박속에서 대부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혹한 방법으로 샬해 되었습니다. 언어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화란어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의 중간이라고 할수 있는데 유그노족의 역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그노족은 프랑스에서도 나라 발전에 공헌을 했지만 세계 도처에서 개혁주의를 전파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프랑스는 유그노족을 추방하여 나라가 망하였고, 구라파는 유그노족을 영입하여 나라가 부강해졌다“ 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들의 공헌은 국내에서 교리를 정립하는데서나, 신앙생활에서나 천주교로 인하여 피폐해진 프랑스를 바로 잡은 기수들이었고, 해외에 나가서는 가는 곳 마다 개인이 모두 하나같이 개혁주의 신앙을 전파하는 역군으로 개혁주의 신장에 이바지 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금 프랑스의 개신교도는 모두 유그노족 들인가?
유그노족은 프랑스 개신교의 선구자이며 줄기 입니다. 지금의 <L'Iglese Reformee Francaise> 즉 (프랑스 개혁교단) 은 유그노족이 만든 교단입니다.  프랑스에 개신교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개가 있지만 가장 교세가 큰 것이 유그노족입니다. 처음에는 심히 적은 무리로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는 교파 였으나 오늘 프랑스 개신교 중에서는 <프랑스 개혁교단>을 이루어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천주교는 건재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중에서는 유그노죽의 “프랑스 개혁교단”이 제일 큽니다.


 


그 외에도 초대교회의 이단자인 Nestorius의 제자들이 만든 <Chaldean Christian Church> 라는 교단도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심히 약하고 있지만  이 교파는 프랑스 보다 주로 이란 과 이라크에서 많이 교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4년전에 <북미주 보수 장로교단 및 개혁교단 (North American Presbyterian and Reformed Council, NAPARC)> 에 정회원으로 가입한 <L'Iglese Reformee de Quebec  큐벡 개혁교단> 에도 유그노족의 후예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이므로 요즘은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모르몬교, 통일교도 들어가 있을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오늘 여기서 우리의 논의의 대상은 아닌 줄 압니다.


 


참고로 앞서 소개해 드린 William Stevenson 의 Story of Reformation 의 “프랑스” 편을 참고하시면 더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오래된 책이라서 구입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Amazon.com에서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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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에 힘쓰시는 형제 자매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를 빕니다.  어두운 시대에 바른 개혁주의를 전하는  교육 기관인  본 선교회를 위해 시간나는 대로 하루에  5 분씩 꼭 기도해 주십시오.그리고 본 선교회 홈페이지를 많은 친지분들에게 소개해주십시오.  곧 본 선교회 회지 <뉴스레타>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감사 합니다.


 


튤립 교육 선교회// 튤립 신학 연구원
상담역: 김명도 교수

www.tulipministries.com

rv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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