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교회론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2-11-01 05:06
조회
10306

오늘 강의의 제목은 교회론 입니다. 


이 시간에는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의 중요성, 교회의 조직, 교회의 사명, 교회의 직무, 교회의 임직원, 교회의 봉사, 교회의 성례식 등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에 출석하지만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갈 뿐, 교회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시간 강의를 통해서 교회를 보다 잘 알수 있는 기회가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I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란 한문으로는 敎會 라고 쓰지만 그 자체로서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교회는 가르치는 곳만이 아니며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원어에서 보면 ekklesia 라고 하는 헬라말의 의미는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 이란 의미입니다.  구약에서도 Kahal이라는 히브리말은 “부른다” 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좀 더 뜻이 명확해집니다. 한 가지 분명히 알 것은 교회란 건물을 말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건물이 있다 해도 그 안에 예배하는 성도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반면에 건물이 없고 땅속이나 야외에서 모인다 해도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라는 의미입니다.  행 11장에 보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예수 믿는 성도들을 “크리스챤” 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kahal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를 위해서 모이는 것을 말했습니다. 신약에서의 ekklesia 라는 말은 전에도 언급한대로 세상에서 특별히 빼내어 불어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마치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냄을 받은 것처럼 세상에서 세상사람 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던 우리를 하나님이 불러내어 하나님의 아들 딸을 만들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데,  성도들이 모인 특정한 장소를 말하기도 합니다. (행 5:11, 행 11:26, 고전 11:18, 고전 14:19, 28, 35.)   교회는 어떤 개인의 짐에서 모인 성도의 무리들을 가르킨다. 옛날에는 부유한 사람이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가령 롬 16:5, 23, 고전 16:19, 골 4:15, 빌레몬서 2절 등을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땅이나 하늘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신비스럽게 연합되어 있는  모든 믿는 성도들을 통틀어서 교회라고 합니다. 가령, 엡 1:22, 엡 3:10, 21, 엡 5:23-25, 골 1:18, 24 등을 보십시오.  


교회를 다른 말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가령, “주의 몸”이라고 합니다. 가령 고전12:27,엡 1:23, 골 1:18.
   교회를 “성령의 전” 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가령 고전 3:16, 벧전 2:5,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 이라고 합니다, 가령  갈 4:26,
   교회를 “거룩한 곳” 이라고 합니다 가령 12:22,
   교회를 “새 예루살렘” 이라고 합니다. 가령 21:2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 라고 합니다. 가령 딤전 3:15을 보십시오.


 


II; 교회의 본질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개신교와 천주교의 입장이 다릅니다.  천주교회는 교회를 외적인 유형 기관이라고 주장하는데 알아 둘 것은 천주교에서는 외적인 유형교회가 모든 믿는 자를 포함한 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치는 교회” 와 “배우는 교회” 등 둘로 나누어서 가르치는 교회란 교황을 위시하여 추기경. 대 주교, 신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교황은 사도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하여 오늘까지 계속해서 일사불란하게 교황권이 계승되어 온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배우는 교회란  일반 성도들을 말하며 이들은 “가르치는 교회” 즉 교회 지도층에 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 역사를 잠시 더듬으면, 정통신학자 Augustine으로 부터 Thomas Aquinas의 자연신학을 통해서 천주교의 교리가 나오게 되었고, John Wycliffe나 Jan Hus 그리고 Martin Luther나 John Calvin을 통해서 종교개혁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개혁주의는 천주교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천주교의 잘못된 교리를 성경 적인 신앙으로 바로 잡으려는 운동이 16세기에 전 구라파에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갔던 종교 개혁이 었습니다.  어쨋던, 천주교는 이렇듯, 교회의 지도자들과 일반 성도들을 같은 반열에서 생각하지 않고 엄격하게 분리합니다.  한편,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에서는 “교회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신비스럽게 연합되어 있는 무형의 유기적 영적 공동체”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 교회의 다양한 성격
      가. 전투적교회와 승리의 교회
지상의 교회를 "Church Militant" 즉, “전투적인 교회”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성도는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가는 십자가의 군병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인 Satan 과 싸워야 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죄와 싸우면서 천성을 향해서 날마다 돌진하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늘 나라에 올라가서 주님과 온전히 사귈 때의 교회인 "Church Triumph" 즉 승리의 교회와는 다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싸움은 모두 끝나 이제 싸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축복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곳이므로 전투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투적인 교회의 개념이 요즘은 점점 사라져 가고 무기를 던지고 방심하는 생활로 변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나.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또한 교회를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로 구분해서 생각합니다.  무형교회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교회는 본질상 신령한 영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누가 구원 얻은 성도이고 누가 아니지 우리의 육안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구원 얻은 성도들을 통틀어 무형교회 라고 부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 요리문답 제61문에,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면 모두 구원을 얻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면 모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무형교회란 거듭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무형교회는 교회의 성례 식 때나  말씀 선포 시에 신앙고백을 하고 또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하는 공동체로서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이므로 유형교회의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형교회와 유형교회가 항상 평행 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때는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이 유형교회에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게 됩니다. 이 말은 오늘의 교회가 진실한 성경 적인 성도를 수용하기를 기피한다는 말이며, 또한 신실한  성도가 출석할만한 참된 교회가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많지만 참으로 성경 적인 교회는 희귀합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기보다는 청중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려는데 더욱 신경을 쓰다 보니 참 교회의 모습은 살아 지고 참 성도는 갈 길을 못 찾아 헤메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요즘에 바로 믿는 사람, 즉 무형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점점 유형교회에서 소외되는 일들이 많아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2. 교회의 속성
      교회의 속성은 무형교회에 해당하는 말인데 천주교에서는 반대로 전적으로 유형교회의 속성을 말합니다.  내면보다는 외면을 더 중요시하는 천주교의 신학에 기인합니다.


 


  가. 교회의 통일성:
      천주교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천주교를 통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Ecumenical 운동에 앞장섭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예배를 드리는 유형교회에서의 하나됨을 강조합니다. 천주교는 다양하게 많은 교파들과 공조하면서 선교를 펄쳐 나갑니다. 가령 1993년에 만들어 진 이른바 ECT,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라는 단체가 그런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원래 천주교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 진 이 선교 기관에는 개신교 목사들이 많이 가입되어 교리를 초월하여 선교사업에  천주교와 공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칭의의 개념과 개신교의 개념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서로 다른데 어떻게 이런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무시하면서 선교에 공조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그래서  Colson나 Packer 같은 개신교 목사는 아직도 남아서 활동하고 있지만 John White 같은 개혁파 계통의 목사님은 가입하였다가 후에 즉시 탈퇴한 것입니다.  교리를 헌 신짝 같이 버리는 풍조가 요즘은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나. 교회의 거룩함:
         천주교는 교회라는 기구를 통해서 겉으로 거룩해 지는 것을 강조하여 각종 예배의식이나 도덕적 관념에서 외면에  신성을 강조하는 반면, 개신교는 교회라는 기구보다는 개인 성도들의 마음의 거룩함을 강조합니다. 개신교는 성결한 생활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목적을 갖고 마음의 생각을 거룩하게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다. 교회의 보편성
         천주교는 사도시대로부터 계승되어 왔다는 사실과 또 교회가 세계에 가장 많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강조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런 건물보다 내적인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에 속한 성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외적인 면에 신경을 쓰고 개신교는 내적인 면을 강조하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다른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III. 교회의 세 가지 특징:
     참 교회라면 다음의 세 가지 특색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의 교회는 그런 구별이 점덤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 특징이란 다음의 세 가지 입니다.
     1. 말씀의 선포:
       참 교회는 말씀의 선포가 있어야 하는데 말씀의 선포가 없는 교회 이를테면 Quaker교파 같은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닙니다.  말씀선포가 있다 해도 성경적인 말씀이 아니면 또한 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령, 요 8:31-32, 47, 요 14;23  요일 4:1-3 요이 9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상의 교회가 완전할 수는 없다 해도 기독교의 근본적인 핵심 교리는 바로 전해져야 하며, 성경을 가장 바로 가르치는 교회가 참다운 교회인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이런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이라고 할 것입니다.


 


     2. 성례의 집행: 
       말씀이 선포되어도 성례가 없으면 참 교회가 아닙니다.  성례는 2 가지인데 세례와 성찬입니다. 이 두 가지 성례는 모두 말씀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례 식은 반드시 말씀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례는 반드시 합법적인 성직자가 집례할 것이며 반드시 믿는 사람들이 참여할 것입니다. 마태 28:19, 마가 16:16, 행 2:42, 고전 11:23-30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에서는 일곱 가지 성례를 주장합니다.  영세(세례), 고해, 견진. 미사, 혼인, 신품, 종부 등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태복음 28장과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세례와 성찬등 두 가지 성례만 명령하고 있습니다.  한편 기독교 교파라고 하면서 성례가 없는 교단도 있습니다.  성경대로 시행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3. 권징의 시행: 
      교인이 잘 못하면 권징이 있는가?  오늘의 교회는 말씀선포나 성례식이 있다고 해도 권징이 바로 되어 있는 교회는 거의 없어서 이 점이 가장 약점입니다.  권징은 교회의 순결을 지키고 교리의 오도를 막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것을 등한히 하면 진리가 침식되고 혼합주의에 빠지게 되어 버립니다.  오늘의 대부분의 교회가 이런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태 18:18,  고전 5:1-5, 13, 고전 14:33, 40, 계2:14-15 등이 교회에서 권징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세 가지 교회의 특징을 말씀드렸습니다만 말씀의 바른 선포는 선지자의 사명이고 성례는 제사장의 직분이며, 권징은 왕의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이 바로 지식, 거룩함과 의 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지식은 선지자의 직분을 말하며,거룩함은 제사장의 직분, 그리고 의는 왕의 직분을 말하며 그리스도도 이 세가지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로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제사장으로  이 땅에서는 택함 받은 백성의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승천한 후에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왕의 직권으로 지상 사역에서는 자연만물이 그에게 순종했으며 지금은 하늘에서 세상을 다스리며 성도들을 다스리십니다.


 


IV. 교회의 체제
  교회의 체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교파마다 다릅니다.
  1. Quaker 교회와 Darby 교파
    “교회의 정치 체제는 어떤 체제이건 간에  반드시 타락하게 되고 기독교의 정신과 위배되기 때문에 어떤 교회의 정치 체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성경말씀 대신에 특별 계시를 인정하고,  사람이 만든 교회의 정치 체제 대신에 하나님이 계시로 주신 체제를  도입하고,  설교 대신에 즉석에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으로 권면 합니다. 여러 사람이 회동해 있다가 한 사람이 성령으로 계시를 받으면 그 말씀을 회중에게 전하는 형태의 예배입니다.  주어진 성경 말씀외에는 다른 계시가 없습니다.


 


  2. Erastus파 교회
    이들은 주장하기를 교회란 정부에 예속된 하나의 사교(社交) 기관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모든 직원들은 교회를 다스릴 권리가 없으며 모든 교회 직원들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서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라가 교회를 다스리고, 권징을 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출교 (黜敎, excommunication)하기도 합니다. 이런 교파는 교회의 독립성과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 인 것을 부인합니다.  17세기에 웨스트민스터 신아고백서를 만들 때 이들 Erastus 파들의 방해로 상당한 곤난을 당한 일을 역사에서 읽어 볼수 있습니다.  이 교리는 원래가 영국의 한 의사 였던 Thomas Erastus 가 주창했다 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Erastian  이라고 합니다.


 


  3. 성공회 교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교회 관할권을 사도들의 계승자인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부여 했다고 믿습니다. 일반 교인들은 교회 일에 간섭할 권리가 전혀 없다고 가르칩니다. 지금 영국 국교의 정치 체제가 여기에 속합니다.


 


  4 현재 로마 천주교
  성공회와 비슷하지만 더욱 더 철저하게 주교들의 사도들의 계승자라고 믿고, 교황은 수제자 베드로의 직통 후계자로서 절대로 무오한 지상의 교회의 머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대표자이므로 교황은 교리문제를 결정짓고, 예배를 주장하고, 또한 교회의 정치를 시행나갈 권리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5. 회중교회
   이것도 독립교회를 주장하는 형태입니다.  각 지교회는 다른 교회와 관계없이 완전히 독립되어 존재한다고 믿으며 교회를 다스리는 권리는 전적으로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직원은 상징적인 인물들일 뿐, 교인들의 위임한 일 이외에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18세기에 일어났던 New England의 제1차 각성운동 때 회중교회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6. 국가 교회
   모든 지 교회는 그 나라에 있는 한 교회의 지 교회들이므로 국가가  예배를 주장하고 교리 문제나 권징 문제가 발생하면 국가가 개입하여 해결하고 대회를 소집하기도 합니다. 대회를 소집한다고 해도 사건을 결정할 권한은 오로지 국가에 있다고 믿는 제도입니다.


 


7. 개혁교단 및 장로교단의 정치
    가. 교회의 머리이시며 모든 권위의 근거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1)유기적 의미에서.
          교회는 몸으로서 모든 성도는 그 몸에 붙어 있는 유기적 지체들인데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을 불어넣으시며, 영으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가령 요한복음 15:1-8,  엡 1:10, 22-23, 엡 2:20-22, 엡 4:15, 엡 5:30, 골 1;18, 골 2:19, 골 3:11 등을 참고하십시오.


       2) 교회의 왕으로 다스리는 권세자라는 의미에서 마태 16:18-19, 마태 23;8,10, 요 13:13, 고전 12:5, 엡 1:20-23, 엡 4:4-5, 11-12, 엡 5:23-24 등 성경 구절을 보면,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직원들을 세우시고 교회 직원들에게 필요한  권세를 주시고 그 직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면서 교회에 항상 임재 하여 계십니다.


 


   나.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서 그의 권세를 행사하심.
       그리스도는 힘으로가 아니라 그의 말씀과  영으로 교회를 다스리신다.  모든 교인들은 무조건 그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유일한 왕은 그리스도 이므로 그의 말씀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법 그 자체이며 순종할 의무가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원들은 이런 권세로 옷을 입었고 따라서 주님의 권세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다.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권세를 부여하심.
       그리스도는 그가 세우신 교회를 이끌어나감에 있어서 필요한 권세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권세를 주었지만 특히 임직자 들에게 더욱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의할 것은 교인들이 직원들을 선출하지만 선출된 직원들의 권세는 회중교회처럼 백성이 위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것 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원 되는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라. 통치권은 각 개 교회에 있음
      각 지 교회의 통치권은 그 교회의 당회에 있고, 그 상회인 노회나, 대회, 총회에 있습니다. .


 


V. 교회의 직원
    항구직과 임시직원으로 구별됩니다. 
    1. 임시 직원: 
       가. 사도들: 
           사도들이란 12사도와 바울을 말하는데 이들에게는 특정한 자격이 부여 되어 있었는데 즉.
          1).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았습니다. 가령 마가 3:14, 갈 1:1
          2).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1
          3). 자신이 성령으로 감동된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전 2:13 살전 4:8
          4). 그들의 멧세지를 이적과 기적으로 확증지을 수 있었음. 고후 12:12, 히 2:4,
          5. 그들의 수고함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은 증거가 있는 사람 고전 9:1, 고후               3:2, 갈 2;8
     
      나. 선지자:
         신약에도 선지자란 말이 나온다. 가령, 행 11:28, 행 13:1-2, 행 15:32, 고전 12:10, 고전 13:2, 고전 14:3, 엡 2;20, 엡 4:11.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 전도자:
        신약에 “전도자” 라는 말이 나오는데. 예를 들면,  행 21:8, 엡 4:11, 딤후 4:5 등.
        빌립, 마가, 디도나 디모데가 모두 전도자에게 속합니다.   사도들을 동행했습니다.


 


   2. 항구직
      가. 장로
      행 11:30, 14:23, 15:2, 6, 22  16:5, 20:17, 21:18 등에 보면, 장로와 목사가 상호 같이 사용됩니다.  행 20:17, 28, 딤전 3:1, 5:17, 19, 딛 1:5,7 벧전 5:1-2  두 직분이 서로 혼동되어 사용되지만 장로는 주로 나이에 중점을 두고 목사는 교회를 돌보는 직책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 교사
      처음에는 교사직이 없었는데 이유는  사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후에 교리를 바로 가르칠 교사라는 직책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 엡 4:11,  딤전 5;17, 딤후 2:2. 등이 말하고 있는데 이단들이 침투하자 전문적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것 같습니다.  소 아세아 일곱 교회의 사자들은 바로 이런 교사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계 2:1, 8, 12, 18, 3:1, 7, 14 등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 집사
     신약에 집사가 나옵니다.  빌 1:1, 딤전 3:8, 10, 12,  사도행전 6:1-6에 초대교회의 첫 7 집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deacon” 은 dia, con. os 등 세 단어의 합성어로서 먼지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3. 교회 항존직의 부르심
     교회의 항존직에는 두 가지 부르심이 있어야 하는데  외적인 부름과 내적인 부름이 그 것입니다. 
교회의 항존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적인 부름이 있어야하고 또한 외적인 부름이 있어야 합니다.  내적인 부름은 하늘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말이 아니고  본인이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직분을 받아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런 자질을 구비하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내적인 부름입니다.  본인이 그런 마음만 있다고 해서 되어 지는 것은 아니라 자격도 갖추어져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외적인 부름이란 교회에서 그의 신앙과 인격적인 자질을 인정하여 그를 직원으로 선출해 주는 것들 말합니다.  이런 두 가지 부름이 있어야 교회의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 이런 자격을 따지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본인이 교회에서 직원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만으로 되어 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인격이 훌륭해 보인다고 해서 되어 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해도 머리로만 알 뿐 심령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교회의 직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의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는 모두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믿는 도리를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인격자들이었고 이런 사람들이 사도들의 임명으로 교회의 일을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행 6:2-6, 행 14:23 등을 꼭 참고 해야 할 것입니다.


 


   4. 임직과 안수
      지 교회에서 직책을 부여하는 예식은 임직식과 안수 인데.  임직과 안수는 항상 동시에 행해지는 예식입니다.  가령 임직을 먼저 받고 나중에 기회 있을 때에 안수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임직에는 안수가 따르는데 안수 한다는 말은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은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고 구원 여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안수 하는 일을 구원과 연관시키려 하지만 잘 못된 생각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는 정도의 안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보다는 차원이 높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 지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사울 같은 사람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임직 식을 받고 기름으로 안수를 받았지만 결코 구원받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세례가 구원을 받는 방법이거나 구원을 인치는 행사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세례를 받는다고 구원이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세례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는 단지 속 사람이 회개하고 거듭났을 때 그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되는 사실을 겉으로 나타내 주는 표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속 사람이 중생하지 않은 상태로 세례를 받으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구약 때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임직할 때 기름으로 안수 하였지만 신약시대에는 행 6:6, 행 13:3, 딤전 4:14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손을 머리에 얹어 안수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안수의 원래의 의미가 점점 잊혀져 가고 있고 단지 하나의 의식 정도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VI. 교회의 치리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관할할 치리회가 여럿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지 교회마다 당회가 있고, 당회가 셋 이상 모이면 노회가 있고, 노회가 셋 이상 모이면 대회, 대회위에는 총회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들 기관들은 세상적인 권력 기관과 다릅니다. 이들은 어디 까지나 주의 몸된 교회, 즉 성도들을 세워 나가기 위한 목적을 갖습니다.  당회는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는데 장로 2명이 안되면 준당회(準堂會)가 됩니다.  목사는 교회의 대표자로서 노회의 관할 하에 있으며 노회에서 안수 받고 노회의 지도를 받게 되고 장로는 지 교회의 교인들의 대표자로서 당회에서 안수 받고 당회의 지도를 받으며 목사나 장로, 집사 등의 직원 선출은 세례교인들이 모인 교인 총회 (공동의회)에서 3분의2 이상의 득표로 선출됩니다. 


 


    만일, 지 교회에서 당회원간에 문제가 생기면, 상회인 노회의 지도를 받는데 흔히 노회의 시찰회에서 일을 처리합니다. 노회나 대회, 총회에는 이런 일을 대비한 기관들을 두고 있습니다.  노회는 양자의 소송내용을 모두 정중하게 듣고 공평하게 처리해야 하며 어느 한편의 이익을 두둔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문제는 여기에서 기인하는데. 노회 시찰부나 재판국에서 어느 한 편만 유리하게 편을 들어주어 교회의 분쟁이 해결되지는 커녕 더욱 악화되고 결국은 교회 분열이라는 슬픈 결과를 낳게 되는 일을 많이 봅니다.  만일 교회가 어느 교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독립해 있다면 이런 때에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상회 (上會, higher court) 가 없으니 호소할 곳이 없고 개 교회가 혼자서 처리해야 하니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총회가 여럿 모이면 교단 협의회를 만들게 되는데 가령 미국의 보수 장로교단과 개혁교단이 합하여 “북미주 보수 장로교단 및 개혁교단 협의희” (NAPARC) 를 1975년에 만든 것 같은 것이나 비교적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여러 교단 총회가 합하여 1948년에 화란의 Amsterdam에서 WCC 라는 세계 교회 협의회를 만든 것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늘에도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때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WCC 나 그 산하의 NCC 같은 기구는 성경을 바로 믿으려는 NAPARC 와 대립하여 있어서 각자 자기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WCC 는 회원 교단이 130 여개가 되는데 반하여 보수 개혁교단인 NAPARC 는 7개에 불과하고 그중에서 CRC라는 화란계 교단은 자유화 되면서 NAPARC 의 정 회원권 (正會員權)을 박탈당하여 CRC 에 속한 많은 한인 회원들은 KCPC (Korean Christian Presbyterian Church) 라는 교단을 창설하여 교회 생활하고 있습니다.  미국 회원들은 CRC에서 탈퇴하여  ARC 즉 Allied Reformed Church 라는 교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머리인 교회는 점점 말씀에서 불순종하게 되어 분열되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VII. 교회의 권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창설하시고 또한 필요한 권세와 권위를 부여하셨는데 그는 왕으로, 교회의 머리로, 영적인 세계에서 영적으로 백성을 다르시도록 이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맬 권세”와 “풀 권세”를 주었는데  마태복음 16:18에 보면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용인할 일과 금할 일등을 결정할 권세를 사도들에게 주었고 그 권세는 하나님의 교회에 주셨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직원들은 교인들을 통해서 선출하지만 직원들의 권세는 교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교회의 권세의 성질
      그리스도가 교회에 부여하는 권세는
      가.  영적이다.
          교회의 권세는 어디까지나 영적인데 이 말은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만 역사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다스리신다는 말입니다.
가령, 집사들의 사역은 대부분 보이는 육적인 일인 반면, 목사의 일은 말씀을 통해서 사역하는 무형적이며 영적인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개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폭력 사용은 금물이지만 기독교 전체가 악의 세력에 위협을 받을 때는 중세의 십자군 모양으로, 혹은 종교개혁 가들처럼  마땅히  십자가의 군병으로 무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개 교회에서 행정적인 문제나 금전 문제로 인한 폭력 해결은 금하며 어디 까지나 교회의 치리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은혜롭게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권세는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일과  말씀에 의거해서 권세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교회의 권세의 종류
      그리스도가 왕의 직분, 선지자의 직분, 제사장의 직분 등 3중직을 갖고 있듯, 교회는 3중직을 갖고 있습니다.
     가.  가르치는 권세
          교회는 진리를 전승 받았고 말씀에 나타난 진리를 순수하게 보존하여 대대에 계승하며 불신앙의 풍조와 싸우며 진리를 사수할 엄숙한 책임과 권세가 교회에 있습니다.. 딤전 1:3-4 나 딤후 1:13, 딛 1:9-11 등이 이를 증명합니다.  죄인이 죄를 회개하도록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여 만방이 복음을 듣도록 해야 하는데 가령 고후 5:20 이나, 딤전 4:13, 딤후 2:15 등에서 그런 권세가 있음을 읽어봅니다. 또한 교회는 신앙고백서나 신경(信經)을 만들어서 믿는 도리를 바로 전해야 할 권세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목회자들을 양성할 권세가 있다.  딤후 2:2.


    나. 치리권.
        교회의 치리권은 두가지가 있는데
        1) 조정하는 권세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고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4:33).  교회에서는 모든 일을 질서 있고 정중하게 해야 하는데  교회를 다스릴 규정을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2). 교회는 권징의 권세를 주었다.
     교회의 순결을 위해서 권징을 행해야 합니다.  마태 16:19, 마 18:18, 요 20:23, 고전 5:2, 7, 13, 고후 2;5-7 등을 보십시오. 


  


다. 구제의 권세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할 때 말씀을 전하면서 귀신을 내 쫓는 권세를 주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권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그들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은사는 성경 완성과 함께 중지되어 오늘에 와서는 주로 빈자를 구제하는 일로 제한되게 되었습니다.  행 4:34에 보면, 초대교회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의 대상으로 알고 일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빈자를 구제하는 일을 중요시하고 있으을 봅니다. 가령 행 11:29,  행 20:35,  고전 16:1-2,  고후 9:1,6-7,  12-14,  갈 2:10, 딤전 5:10 등을 참고 바랍니다.



VIII. 은혜의 방편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등 두 가지 뿐입니다.
      1 말씀
        말씀이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인데,  말씀이 은혜의 방편이라는 말은  기록된 성경 말씀을 말함이며 새로 오는 어떤 특별한 계시를 말함이 결코 아닙니다. 흔히들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지만 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말씀은 비단 교회에서만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모든 성도들을 통해서 역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성례가 은혜의 방편이라는 말은 성례 식을 할 때에 말씀이 동반해야 함으로 그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혜를 받는다는 말인데 말씀은 어디서나 증거할 수 있지만 성례 식은 반드시 자격 있는 성직자가 집전할 것이며 또한 성례 식은 교회에서만 되어 지는 행사입니다.


      


 가.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
        Pelagius 파 나 18세기 19세기의 합리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성령의 도움이 필요없이 지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회개의 결과가 온다고 믿는가 하면, 또한 도독폐기론자들 (Antinomians)은 말하기를 성령의 도움만 있으면 된다고 가르치는데 외부로부터의 말씀 선포는 필요 없고 내부에서 나오는 음성, 내부의 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적인 가르침은 말씀은 성령의 도구이며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그 말씀이 죄인을 회개시키는 역사를 가져올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말씀은 성령의 역사와 같이 역사할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율법과 복음을  서로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이 없이 복음을 알 수 없고 복음이 없이 율법을 알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복음을 믿을 것을 말하고 있고, 복음은 구약의 율법이 우리 생활에서 성취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율법과 복음 혹은 은혜의 관계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이 없이는 죄인이 죄인된 것을 알 수 없으며 따라서 복음의 필요성을 모릅니다.  신약성경에서 율법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것은 다음 신약구절을 미루어 알수 있습니다, 즉, 마태 5;17-19, 롬 13:10, 엡 6:2, 
야고보서 2:8-11, 요일 3:4 등입니다.


  


   다. 율법의 역할
     이 세상에서 죄악을 억제하고 선을 권장하는 것이 율법이 하는 일이지만  그 보다도 크게 세 가지를 하는데 첫째, 윱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됨을 깨닫게 해 줍니다.  로마서 3:20을 보십시오.  둘째, 그래서 자신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을 깨닫고 몽학 선생인 그리스도에게 스스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갈 3:24.을 참고하십시오.  셋째, 생활의 길잡이를 제공해 줍니다. 율법은 우리가 살아 갈 생활의 법칙이란 말입니다.


  


  라. 복음의 역할
     구약의 율법이 제시한 구원의 길을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으로 밝히 보여주는 구실을
하며 죄인에게 믿음과 회개로 그리스도에게 나아 오라고 권면하며  진정으로 믿고 회개하는 이들에게 현재와 미래에 걸처서 모든 구원의 축복을 약속해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말입니다.



      2. 성례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라고 했는데 말씀을 살펴보았고, 이제 성례를 봅시다. 천주교에는 성례의 종류가  영세(세례), 견진, 미사, 혼인, 신품, 고해, 종부 등 일곱 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성례는 두 가지 뿐입니다.  세례 와 성찬 등 두 가지입니다. 세례는 구약의 할례에 해당하는 것이며 성찬은 구약의 유월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양피를 베어 할례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징표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양피를 베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고 그 전에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징표를 보여 준 것 뿐입니다. 애급의 장자들이 죽던 그 날 밤,  이스라엘백성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서 한 사람도 인명의 손실이 없이 보존되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그 죽음의 천사가 지나간 것은 문설주의 양의 피를 보았기 때문인데 양의 피가 무슨 대단한 위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상징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유월절을 대신하여 신약시대에는 성찬식을 행합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을 생각하며 더욱 더 믿음을 돈독히 하여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생활하겠다고 다짐하는 예식이 바로 성찬 예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나타 난 말씀은 우리를 위해서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생각하면서 옷깃을 여미고 주님에게 충성하려는 각오를 더 하는 마음으로 떡을 받습니다. 또한 잔을 받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성찬식에 참여 할 수 있으므로 어린이는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성찬식에 대해서 천주교에서는 떡과 포도즙이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를 화체설 (化體說transubstantiation) 이라고 합니다.   성찬식 할 때 마다  예수 님이 죽는다고 이들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번에 (單番)에 자기 몸을 드렸다” 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 번 드릴 것을 한번으로 대신했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같은 제사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루터 파에서는 성찬식 때 예수님의 피와 살이 성찬상에 공존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공존설(共存說 consubstantiation)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혁파에서는 신비설(神秘說) 혹은 “영적 임재설” 을 주장합니다. 즉 성찬식 때 “떡과 잔을 통해서 또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신비스럽게 연합된 것을 확인하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은혜가 임한다” 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신비설 이라고 합니다.   성찬식에는 개방식과 폐쇄식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 사람들이라고 교파에 관계없이 모두 참여하도록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경적으로 믿는 사람, 즉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만 참여 시킵니다. 이를 폐쇄적 성찬식 이라고 합니다. 개혁파 교회는 대부분 폐쇄적인 성찬식 제도를 택하고 자유주의 교회에서는 개방식 성찬식 제도를 택합니다.  성찬식은 은밀한 죄를 짓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사람, 죄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본 교회 세례 교인이라도 성찬 예식에 참여 할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면 분변하지 못하고 즉 준비 없이 성찬식에 참여 했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경종을 울려 줍니다.


 


     세례란 소속교회의 목사가 베푸는 의식인데  속 사람이 중생한 것을 겉으로 나타내 주는 표에 불과합니다 그것 자체가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세례를 받는 다고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 거짓으로 신앙고백하여 세례를 받아도 그 세례는 아무 효과도 없으며 아무런 축복도 없게 됩니다.  침례교에서는 어린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직도 믿는 도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파에서는 어린애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근거는  창세기 17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어약을 맺을 때 아브라함과 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녀와도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이므로 그 말씀에 근거하여 부모중 어느 한 분만 믿어도 유아 세례를 베풀게 되는데,  이때 부모는 하나님 앞과 회중 앞에서 그 어린이를 위해서, 또 그 어린이와 함께 기도할 것을 서약하며 그 애가 15세가 되어 물정을 알게 되면 다시 회중 앞에서와 하나님 앞에 서서 신앙을 확증하게 되는데 이를 입교(入敎, confirmation)라고 합니다. 


 


세례는 반드시 구원의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지 않아도 속사람이 중생했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례식은 모두 성직자가 집례하며 성직자가 아닌 분이 집례할 수 없습니다.  옛날 1880년대 영국에서 출현한 세대주의의 창시자 John Nelson Darby 라는 사람은 Plymouth Brethren 이라는 형제교회를 만들어서 기성교회의 모든 체제를 부인하여  교인들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성찬식을 베풀었는데 이는 비 성경적입니다.  오늘의 세대주의는 이를 시정하여 개 교인이 집전하는 폐단을 시정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를 바로 이해하고 교회의 머리는 바로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바른 교회 생활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교회론, 끝-


 


튤립 신학 연구원  원장
김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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