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프로그램

교회의 지도자들이 “관상기도 운동”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2-11-08 04:20
조회
5151

오늘 기독교를 파괴하는 가장 널리 퍼진, 그리고 가장 위험하고 악랄한 흑암의 역사는 바로 “관상기도” 라는 것이다.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관상기도” 의 위험성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거의 모른다. 그저 다른 교회에서 유행하니까 따라서 하는 것이다.  보통 교회에서는 <Spiritual Formation> 이니, <Contemplative Formation> 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Spiritual Movement> 라고 하기도 한다. 모두 같은 말인데 듣기 좋게 기독교 용어로 예쁘게 포장한 것 뿐이며 내용은 모두 꼭 같다.  요즘 소위 “성령운동” 을 한다는 것은 대개 이런 “신비주의” 운동을 camouflage 한 것이다.  이 운동의 眞面目을 아는 사람은 일선 목회자들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오늘 대부분의 목사들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이런 불건전한 신비주의 운동을 파헤치는 신학자들을 혹독하게 매도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정통으로 바로 믿는 미국 교단 중 오늘의< 관상기도>를 가르치거나 지지하는 교단은 한개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영국의 William Tyndale 은 화형당하면서 “주여 영국왕의 눈을 뜨게 도와 주소서” 라고 기도했다. 필자도 그런 심정으로 이 글을 써서 계몽 하고저 한다. Spurgeon 목사는 1861년 6월 8일 “수세중생설 Baptismal Regeneration” 에 관하여 설교하면서 초두에 이런 말로 시작했다. “여러분 중에는 오늘 내가 할 설교를 듣고 죽도록 나를 미워할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설교 도중에 문을 박차고 나갈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노리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관헌이 나를 체포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순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내 사명은 내 양심이 하나님 말씀에 속박되어 있는 까닭에 이 진리의 말씀을 오늘 여러분에게 설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란 말로 그의 설교를 시작했다.  필자도 그런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그러면, 요즘 교회마다 전염병처럼 유행하고 있는  소위 “Contemplative Prayer, 광상기도” 란 도대체 무엇인가? “관상기도” 란 우선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관상기도” 란 고대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하던 방법을 이용하여 意識의 變化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즉 “정신이 空虛한 상태”를 일으켜 본인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험 (Cosmic Self) 을 유발하는 행위인데 고대 신비주의와 밀교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항상 기독교의 용어로 포장되는 까닭에  목사들이 아주 쉽게 속아 넘어간다. 하물며 일반 평신도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운동은 평신도들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도입하여 교인들에게 권장하거나 “강요”하기 때문에 평신도가 따라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요즘 극에 달했다.  “관상기도” 의 근간은 汎神論 (pantheism, 하나님이 모든 것, 모든 것이 하나님 이라는 가르침, All is God, and God is all) 이다.  문제는 오늘 기독교 목사들이 무지하여 이런 위험한 관상기도를 도입할 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적극  권장하며 보급하므로 인하여 스스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독교를 파괴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위험한 정신상태에 이르게 하는 관상기도의 핵심은 <명상>한다는 것인데 이것을<Centering prayer> 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 기독교의 목사들이나 천주교의 신부들이 수많은 명상 서적들을 이용하고 있다. 요즘은 “분별력” 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어느 것이 진리 이고 어느 것이 비진리인지 분별할 성경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보면 오늘 교회에서 얼마나 성경적 분별력이 부족한지 알 수 있다.


       


National Pastors Convention (전국 목사 수양회) 가 그 첫 번째 사례이다.
2008년 수양회는 미국의 Zondervan 출판사 (이 출판사는 원래 개혁주의 책만 발간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건전하지 못한 책들을 더 많이 출판한다) 이나 InterVarsity Press (대학생 선교회 출판사인데 이 출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옛날 James Sire 박사가 펀집장으로 있던 1990년대까지는 건전했으니 요즘은 건전하지 못한 New Age 책들을 많이  출판한다). 이런 출판사 뿐만 아니라 선명회 (World Vision), www.Christianbook.com 이라는 서점, Vida 라는 (생명 이라는 의미) 라는 기관 등이 이런 목사 수양회 모임을 가능하도록 재정으로 지원했는데 2008년 수양회의 목적은 그들의 Bulletin 에 뷴명하게 적혀 있어서 누구나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 모임의 목적은 “....영혼을 윤택하게하고, 마음을 움직여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도록 한다” 라는 것이다. 이 모임에서는 Shelly Pagitt (신비주의자 Doug Pagitt 의 부인) 이 가르치는  “Christian Yoga” 도 배우면서, 참석자들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할 수 있다” 고 적혀 있다. 이 모임에서 세미나를 인도한 사람은 Joe Serman 과 Ruth Haley Barton 인데 이들은 모두 철저한 신비주의자들 이며 New Age 운동가 이다. 주목하라


전국 목사 수양회 라는 엄숙한 모임에 어떤 사람들이 강사로 초청되는지 눈여겨 보라,
그래서 오늘 “부흥회” 니 “세미나” 니 “수양회” 가 대부분 위험 천만하다는 것이며 가급적이면 참석하지 않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데 유리할 때가 많다.  Ruth Haley Barton 은 Nashville, Tennessee 에 본부를 둔 <Shalem Institute for Spiritual Formation> 이라는 신비주의 교육 기관과 <Pathways Center for Spiritual Leadership> 이라는 기관에서 교육받은 뉴에이지 운동가이며 신비주의자이다. 이들 두 사람은 합작하여 소위 <The Transforming Center>  라는 신비주의 철학 연구소를 만들었다. (www.thetransformingcenter.org 참조). Barton 은 현재 이 기관의 회장인데 시카고에 있는 대형교회인 Willow Creek Community Church (Bill Hybels 목사 시무) 에서 집회를 자주 가지기도 한다.


       


Barton 은 <관상기도>를 가르치는데 그녀는 1999년 미국의 Discipleship Journal (vol 113)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런 간단한 기도를 하라, 즉 ”Here I am." 이라고.  그리고 나서는 이 말을 여러 번 되풀이 반복하라. 그리하면 의식이 변화하면서 <내가 우주와 하나가 된 것> 과<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 을 깨달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가 된다고 가르친다. 여기에 위험성이 있다.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해 버리고 범신론을 믿는다. 조물주 야웨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며 피조물인 인간과는 서로 구별된 천상천하의 대 주재 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무지에서 나온 사탄의 역사 이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New Age 사상과 동양종교의 영성을 수용하며 전파하고 있다


요즘은 복음주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목사들 중에서도 ”신비스런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생각으로 동양 종교의 신비주의를 도입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요즘 기독교의 신학 풍토는 변해 가고 있다 유명한 Rick Warren, Brian McLaren, Richard Foster, Tony Campolo, Eugene Peterson 등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특히 요즘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면서 교회마다 앞 다투어 사들이는 Eugene Peterson 이 편집한 "The Message: The New Testament in Contemporary Language" (Navigator Press 2008) 에는 “Lord Jesus"  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모두 잘라 버렸다. 하나님은 성경을 파괴하는 죄를 결코 경히 여기지 않으신다. 성경을 마음대로 파괴해도 된다는 자유와 특권을 하나님이 어느 인간에게도 주신 적이 없다.


       


신비주의자 Peterson 이 만든 신약성경 The Message 에는 “Lord Jesus" 라는 말이 모두 삭제된 대신 그 자리에  “Master Jesus"라는 말로 77번 대체했는데 "Master Jesus" 란 말은  New Age 운동에서 쓰는 용어 이다. 원래 “Lord Jesus" 라는 말은 King James Version 에는 115번 기록되었고 NKJV 에도 같은 수효대로 기록되었고, NASV 에는 100회 나오지만 Eugene Peterson 의 The Message: The New Testament in Contemporary Language 라는 성경에는 단 한 번도 안 나온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서 그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 을 보라. 실로 경천동지할 말로 번역했다. 이 성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한 대목만 읽어도 이 성경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 수 있으리라. 주님이 가르친 기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은 기도문이 되었다. 그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에 매료되어 있는가를 보면 오늘 “속임수” 의 정도가 어떠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목사들이나 신도들이 얼마나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는가를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 하고저 하는 분은 www.biblegateway.com 에 방문하기 바란다.


       


Rick Warren 은 미국 남가주 Saddleback Community Church 를 목회하는 분으로Purpose-Driven Life 라는 책과 Purpose-Driven Church 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다. 이 책들은 전 세계에 수천만부 판매 되었다. 그의 Purpose-Driven Life 라는 책의 제11일 째 보면, Warren 은 독자에게 “호흡기도”를 종용하고 있다.  이 말은 어떤 구절이나 혹은 단어를 여러 번 mantra (呪文)형식으로 되풀이 하는 것인데 이런 방법은 중세기 Desert Fathers 라고 불리는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수도사들이 하던 버릇이다.


       


이런 주문식 기도는 힌두교의 요가나 선불교 (Zen Buddhism) 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관상기도를 가르치는 무리들은 동양종교의 힌두교나 불교의 가르침을 기독교에 도입하여 겉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향상시킨다고 하나 실제의 의도는 기독교의 독특성 (uniqueness) 을 없이하고 종교를 New Age 사상으로 통일하자는 의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문을 외워 머리를 비우고 외식변화가 생기면 머리가 공허해지고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New Age 사람들은  Higher-Self, 이나 Self-Realization (Alpha State) 이라고 하고, 기독교 신비주의자는 “황홀한 경험으로 하나님을만났다” 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열반적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실제로는 이때 성도는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다른 신을 따르는 상태에 있게된다. 그러므로 위험한 것이다.


       


Ruth Haley Barton 이란 여자는 전에 Bill Hybels 의 Willow Creek 교회에 몸담은 적이 있고, 수도 워싱톤에 소재한 Shalem Institute for Spiritual Formation에서 훈련받은 인물인데 항상 <조용한 곳에서 혼자 기도할 것> 을 종용하며, 기도할 때는 “관상기도”를 권한다. 그가 2008년 전국 목사 수양회에서 강사로 나서서 labyrinth (祈禱迷路)와 요가와,
관상기도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들 신비주의의 교회 파괴 활동은 결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Eugene Peterson (The Message: The New Testament in Contemporary Language 를 만든 사람) 은 Sue Monk Kidd (신비주의를 믿는 여자) 가 쓴 책 When the Heart Waits 라는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한 때 침례교 신자로 교회생활하던 Sue Monk Kidd 가 지금은 비성경적인 관상기도를 전파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 책을 Peterson 이 추천해 준 점을 생각하면 Peterson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그가 만든 The Message 는 시약성경은 과연 개혁주의 입장에서 믿을만한가? 여기서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기도할 것> 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오늘의 “사이비” 들은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관상기도와  침묵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조용함, 침묵” 의 의미를 잘 모를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말하는 “침묵”은 그런 뜻이 아니라.  “고요함” 또는 “침묵” “silence" 란 말은 불교나 힌두교나 神智學會 (Theosophical Society 1883년에 러시어 여자 Helen Petrovna Blavatskey 가 NY 에 창립한 단체 이름) 에서 기도할 때 사람이 스스로 유발( 誘發) 하는 “의식 변화 상태,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외계와 연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성도들이 주목할 것은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ASC" 라는 말이다. 우리 말로는 ”의식변화상태“ 를 말한다. 주문을 자꾸 외우다 보면 제 정신이 아니고 비정상적 의식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고요하다” 혹은 “침묵” 이란 말은 밀교(密敎) 하는 사람이나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자신이 “신의 경지” 에 이르러 신의 의식을 경험함을 말한다. 명상이나 관상기도나 힌두교의 요가나 선불교에서나  Thomas Merton, Thomas Keating, Basil Pennington, Bede Griffiths, Brennen Manning  같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 간에서 모두 그 목적은 바로 이런 의식변화 상태에 이르기를 원하는 것이다. 관상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철학을 기독교에 도입하겠다는 의도임으로 개혁주의 성도는 이를 극구 반대하는 것이다.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며 (딤전 2:5) 사람이 만든 다른 신의 이름으로 드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성도는 신명기 13장 초두를 잘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죽이라” 고 명령한다. 이런 분명한 성경말씀을 외면하고 그런 피조물을 따라가는 성도는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얻기를 원하는가?


       


Quaker 의 배경을 가진 (Quaker 는 신비종교 임) Richard Foster 는 Thomas Merton과 그 외 몇몇 기독교 신비주의 인사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그의 책 Celebration of Discipline 을 썼고 유명해 졌는데 그는 서양의 기독교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행사했다. 관상기도를 가르치는 또 다른 기독교 신비주의 학자 중에 Basil Pennington 이 있다. 그는 <관상기도 하는 법> 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1.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당신의 마음속에 역사하실 그 하나님의 마음에 들 거룩한  단어를 하나 선택하라 (예를 들면, 하나님, 예수, 아바, 아버지, 어머니, 마리야, 아멘 등)또 다른 예를 들면, 사랑, 평화, 자비, 들어라, 놓아주라, 조용하라, 믿음, 의지하라, 네 (yes) 등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어느 것이든 본인이 마음에 드는 단어를 택한다.
2. 평안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선택한 단어를 말한다.
3. 다른 생각이 나면, 또다시 전에 선택한 단어를 반복한다.
4.. 기도시간이 끝나면, 눈을 감은채로 2분 정도 가만히 기다린다. 이 때 몸이 뜨거워 지거      나, 기분이 좋거나, 환상을 보거나 과거가 생각난다. 이것을 Alpha State 라고도 하는데     이는 곧 기도하는 본인이 의식을 변화시킨 가운데 성경을 떠나 마귀와 교통하는 결과이다. .http://www.contemplativeoutreach.org/site/DocServer/MethodCP2008.pdf?docID=121     를 클릭하여 참고할 것.


 


관상기도의 영향을 받는 목사들


그러면 Ruth Haley Barton 은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사탄에 올무에 씨우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의식 변화,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를 추구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지 비기독교적인 염매들이 귀신을 불러오기 위해서 사용하는 “의식변조” 방법을 주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딤전 4:1).. 다시 말하면, “관상기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기독교를 모르는 영매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동일한데 이런 수법이 요즘에는 기독교의 탈을 쓰고 마치 기독교의 기도 방법인 것 처럼 가장하고 나온다는 것을 직적하려는 것이다. 요즘 이런 ‘관상기도“ 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런 방법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앞서 신명기 13장을 인용하여 어급한대로 하나님은 오히려 이런 일을 금하신다.


       


인도에서 많은 밀교 서적을 발간한  신지학회(Philosophical Society) 출판 자료에 의하면,  사람이 “의식변화” 상태 (이것을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ASC 라고 한다) 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관상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어쩌면 그리도 신통하게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성도 중에서 “관상기도” 에 열중하는 사람은 본인이 알건 모르건 사탄의 계교에 빠져 행동한다는 것을 웅변으로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또다시 언급하거니와 구약 신명기에서 특히 18장에서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령했고, 또한 신명기 13장5절에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죽이라‘ 고 까지 엄하게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렇게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의식변화상태”에 들어가면  불신자 중에서 귀신을 믿는 밀교나 “기독교를 믿는다“ 고 장담하는 사람에게나 꼭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상기도‘ 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는 생각은 사탄의 속임수이며 실제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한다.  관상기도는 매우 워험한 장난이다. 마치 ouija board 를 가지고 장난하는 것과 꼭 같다.  요즘 “예수를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靈音盤 (ouija board) 을 가지고 있으면 실제로 사탄이 틈을 타서 교신(交信)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음반” 으로 인하여 화를 당하는가? 성경도 모르고 교리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지금 교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교리 공부가 절실하게 필요한다. 영음반의 위험성에 대하여는 Edmond C. Gruss. The Ouija Board: A Doorway to the Occult.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94 를 참고함이 좋을 것이다. 영음반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책이다. 영음반이 이렇게 위험해도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들은 경고 한 마디 없이 무관심하다. 이런 가운데 교회 청소년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들어 영혼이 병들어 가고있다.  사탄과 가가이 하는 자는 반드시 “정신 이상’ 상태를 초래하여 정신병에 걸리든지 아니면 “난폭한자‘ 가 된다. 집안에 사탄에 관한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필자는 논문을 작성할 목적으로 상당히 많은 뉴에이지 운동가들과 영지주의 운동가들, 신비주의 학자들, 불교 힌두교 에 관한 책들을 궁입하여 연구하다가 논문이 끝난 후 그런 책들은 모두 버렸던 일을 기억한다.


       


이런 관상기도를 하면 우리의 정신상태가 이상한 경험을 한다. 정상적이 정신 상태가 아니라 비정상적 정신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저들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상태” 라고 착각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악령”이 우리 정신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사탄의 나라로 들어간다. 영매 (spirit guide)들은 이런 기회에 여러 가지 “계시” 비슷한 것이나 ‘환상“ 같은 것을 보여 주어 마치 이런 것들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 이라고 믿게 유도한다.


       


이런 일로 인하여 오늘 교회에서는 환상을 보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 사람 등이 많이 생겨나고 교인들은 아무런 “분별력, discernment" 이 없으므로 모두 액면 그대로 받아 드리고 “저들은 남이 받지 못하는  신령한 은혜”를 받은 것처럼 착각하는 속임수에 빠진다. 영계의 유혹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얼마나 그럴사한 것인지 오늘의 성도들은 목사이건 평신도이건 신학지식의 결핍으로 바로 분간할 능력이 없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사탄은 자유로 성도들을 유혹하고 교인들은 잘 넘어간다.


일단 사탄에 넘어간 다음에는 정통으로 가르치는 목사를 핍박한다. 그래서 싸움은 같은 집안에서 벌어진다.  사탄의 속임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Kurt Koch 가 쓴Occult ABC, Grand Rapids, Mich.: Kregel Publishing Co, 1977 을 참고 하라. 이 책은 이중환 목사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크르트 코흐 저. 사탄의 전술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예루살렘 출판사가 1978년에 펴냈다.  평신도는 물론이고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사서 읽어야한다. $15.


       


기도하는 사람이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문(呪文, mantra) 을 반복하여 외우면서 조용한 침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는 “의식 변화 상태” 는 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앞서 누누이 언급했다. 신앙이 변질된 오늘의 “사이비 성도들” 은 동양종교 (힌두교, 불교 등) 에서 성행하고 있는 이런 비성경적인 관습을 열심히 모방하고 있는데 이는 전에 언급한대로 중세에 신비주의 수도사들 (이들을 <Desert Fathers> 라고 한다) 이 행하던 관습이다.  오늘 이런 관상기도는 기독교 교계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로  유행하고 있으며 기독교를 무서운 속도로 파괴하여 모든 종교를 통일하여 하나로 만들려는  사탄은 우리를 성경에 서 떠나 밀교를 믿게 하고 있는데 사탄의 계교는 상당히 성공적인다. 기독교 성도들이 영적으로 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상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열광적인 이상야릇한 감정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 가까이 나가는 길이 절대로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밀교의 세계는 항상 “경험” 을 중심으로한 “영적경험“ 에 중짐을 두고 있으며 성겅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경험위주” 의 신앙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한다 (고린도후서 5:7을 보라. 아브라함은 그 좋은 본보기 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굳게 의심없이 믿었다. 히브리 11장13절을 보라. 이것이 바른 신앙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반드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요 4:24).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은 성경에 명시된대로 예배 드린다는 말이요 “신령으로” 란 말은 바른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다. 즉 시은자 (성삼위 하나님) 중심이며 수은자 (즉 성도)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의 예배는 수은자 중심 (교인들의 기분 중심)으로 흘러간다. J.P.Moreland 같은 이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우상화하고 있다” 고 비난하지만 성경이야말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 이다.


 


성경 대로 살라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3대 motto 중 하나이다. 다른 두 가지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높이는 것‘ 이고 또 하나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높이는 것“ 이다.  오늘 개혁주의를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목사들이나 평신도들이나 간에 이렇게 신앙하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르 주위에서 살펴보라,


전에 武術士이며 사탄교에 심취햇던 사람이 말하는 관상기도에 관한 간증
과거 여러 해 동안 사탄교에 심취했다가 지금은  MDDL Discernment and Study Ministry 을 운영하는  Marx Debono-DeLaurents (막스 드보노 들로렌트) 는 그가 쓴 <Contemplative Prayer>(관상기도) 라는 글을 틍해서 어떻게 자기가 사탄을 숭배하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간증해 준다. 간증 내용을 들어보자:


       


 “내가 과거 뉴에이지 운동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영적 세계와 내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주문(呪文, mantra) 을 열심히 외우면서 한편 내 마음으로 영계 (靈界spiritual entity) 가 말하는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영이 내게 말해 주는 것이면 나는 믿고 따랐다. 그러나 내가 구원 얻고 나서는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과거에 사탄을 숭배하던 일과 관상기도 하던 일을 회개하고 무술사로 일하던 일도 모두 버렸다.  과거 20년 동안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과거 내가 믿다가 버린 그 사탄의 관습이 예전 그 어느 때 보다도 요즘 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경적인 영성훈련” 이라는 이름으로 닥아 오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런 관상기도는 약 3,000 년간 있어 왔으나 오늘처럼 “성경적” 이라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적은 없었다“ 라고 간증한다.[www.maxddl.org/Contemplative Prayer.htm].


Dekayrents 가 긴증하던 이런 일이 모두 밀교의 일부분인데 요즘은 이런 밀교가 기독교의 소위 “영성훈련”으로 둔갑하여 아무도 제재하지 않고 정상적인 기독교 활동 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 영적 경험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은 “경험”을 통해서 분별력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의 탈을 쓴 밀교” “기독교의 탈을 쓴  동양신비주의” 를 믿도록 거짓 영적 경험을 체험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고후 11:15). “거짓” 이란 말을 정의하자면, 남을 속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다른 것으로 모방하는“ 행위이다”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counterfeit] 을 보라.


       


사탄은 바로 이것을 좋아하고 이것이 사탄이 전문으로 하는 사역인데 요즘은 “성경을 신비적 영성” 이라는 형식으로 성도들을 미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늘 기독교의 복응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목회현장이고, 신문이고, 방송이고 간에  얼마나 많이 속이 넘어가고 있는가를 우리들 주위에서 살펴보라, 가공할만하다 .그렇지 않을 듯한 목사, 신학자들이 모두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세계 도처에서 넘어져 간다.  과거에 성경에 충실하던 목사들이 요즘은 모두 신비주의에 빠져든다. 한국이나 미국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모든 잘못된 교리들이 “기독교 이름으로” “영적 성장‘ 이란 이름으로,  또는그 유명한 “영성훈련”이란 이름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요즘의 소위 “영성훈련” 은 대부분 이런 그릇된 “기독교의 탈”을 쓴 불건전한 신비주의 이다. 비단 목사만 아니라 누구든지 요즘은 “영적분별력” 이 없는 사람이나 “성경에 무식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속아 넘어간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신학자” 들이 속아 넘어가 이상한 이단을 가르치는지 보라. 지옥이 없다고 하는 John R. Stott, 하나님은 미래를 모른다는  Gregory Boyd 목사,  성경 말고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지 못하면 신자가 아니라고 하는 부산의 모 대형교회 C 목사, 무엇이든 머리에 그림을 그리고 (visualization)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가르치는 서울에 있는 모 대형교회의 C 목사, 가난한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가르치는 미국 Los Angeles 근교 Pasadena 의 모 미국계 신학교 교수 W 목사,  누구든지 선행만 하면 어떤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다고 가르치다가 죽은 유명한 부흥사 G 목사,  교회성장을 원하거든 교회에서 절대로 “죄”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Garden Grove 의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어느 대형교회의 S 목사, 몰몬교도 총회에 가서 “모르몬 교가 이단이 아닌데 어떤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단으로 매도하니 내가 기독교 신자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사과합니다‘ 라고 말한 Pasadena 의 어느 신학교 교장 M 박사 (2002년 11월 Christianity Today자 특종기사),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합하여 같이 전도할 수 있으니 대화하자는 문서에 서명한 서울의 세계적 대형교회 C 목사, 등 그 수는 끝이 없다.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보실까? 아니면, “사탄의 종” 이라고 보실까?  (고후 11:3-4).


       


오늘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나 신학생들이 비성경적인 밀교에 입각한 기도방법을 배우고 있는가?   신학교의 개강예배가 있기 전에 가지는 “영성훈련” 이라는 것이 대개 그러하다. 어떤 학교에는 노골적으로 “Spiritual Formation" 이라는 간판을 내 걸고 있다. 예수님은 그런 기도를 가르친 적이 없다. 성경 어디에 머리를 비우고 주문을 반복해서 외우라고 가르치는가? 성경은 오히려 중언부언하지 말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 아뢰라 라고 가르친다. 중언부언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다. 마태복음 6:6-8 을 보라,  물론 건전한  “영성훈련” 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영성훈련은 참으로 드믈다. 대개가 관상기도를 중심으로 모이는데 이것은 심히 위험하다.


       


Renovare 운동을 가르치는 Azusa 대학의 Richard Foster는 그의 책 “Celebration of Discipline” (한국에서는 “영성훈련” 이란 이름으로 번역됨)에서 기도할 때는 “손바닥을 위로 아래로 뒤집으며 [불교에서 처럼] 기도해야 한다고 엉뚱한 교리를 가르친다 (p31, p.40). 그는 또한 기독교가 수용하지 못할 신비주의를 가르치는 Thomas Merton 의 기도를 예로 들고 있다 (p.21). 성경 어디에 손바닥의 자세를 가르치는가?  우리가 아는대로 불교에서는 기도할 때 Foster 가 가르치는대로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가 또 뒤집어 위로 향하게하면서 기도한다. 기독교 성도들이 이런 기도 형식을 따르라고 그는 가르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지금 한국에서 인기리에 (?) 여러 기독교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므로 이런 학생들이 졸업후 목사가 되어 목회할 때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교인들에게 독약을 먹이게 될 것이 명약관화 (明若觀火) 하지 않은가?


       


교회의 지도자들이 “관상기도” 나 “영성 훈련” 의 해독을 아는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분별없이 아무 것이나 “남이 하면 받아 드린다”  이른바 “domino 현상” 이다.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많은 이적과 기사로 할 수 있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한다. (마태 24:24). 교회 지도자들이여, 성도들이여, 영적 싸움이 시작되었다. 성경을 알자. 분별력을 갖자.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전하고 성경대로 신앙생활하자.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말자. 지금은 <속임의 시대, Age of Deception>  이다. 어디에 가도 말씀을 바로 전하는 “집회”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분별력을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자. 성경을 역사적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연구하자. 혼자 공부하면 오도 (misleading) 되기 쉽다.


      


그러므로 참다운 성도는 지금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무장할 때이다.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연구하고 성경을 철저하게 공부하여 기독교의 탈을 쓰고 교회에 침투하여 우리의 영혼을 멸망케 하는 사이비 종파와 싸워야 한다.  강대상에서 홀러 나오는 목사의 설교를 액면 그대로 받지 말고 베뢰아 교인들 처럼 (사도행전 17:11)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성경을 통해서 진위를 가리면서 설교를 들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나 그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베르기 신앙고백>, <도르트신경> <케임부릿지 선언> 과 같은 고전적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많이 공부해 두어야 한다. 지금은 속기 쉬운 때이다. 속지 말자. 천하 보다 귀한 내 영혼이 <사이비 사역자> 들의 ‘거짓 복음“ 으로 인하여 손상 받을 수는 없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딤전 4:1).


 


미국에서 관상기도를 가르치는 학교 명단 (이 학교들은 적어도 한 학기 이상 관상기도를 가르친 적이 있다고 조사기관 Lighthouse 가 말하고 있다. 이상은 그 명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교와 신학교가 "관상기도 Contemplative Spirituality" 를 인정하고 장려하고 있다.  관상기도를 거부하는 신학교는 개혁주의 계통의 정통신학교들로 그 숫자는 다섯 손가락으로 곱을 정도이다.


Christian Colleges - A Dangerous Place For Young Christians - June 2006
Biola University - January 2005
Dallas Theological Seminary - April 2005
Assemblies of God Theological Seminary
Assemblies of God Theological Seminary r 2005
Wheaton College Promoting Contemplative Spirituality - March 2006
Azusa Pacific University,    etc.


글: 김명도 교수
    튤립 교육 선교회
    튤립 신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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