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프로그램

세계 종교 통일 운동 (Interfaith Movement)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2-11-08 03:27
조회
5815

기독교가 오늘 까지 우리에게 전수되어 오는 동안  여러 가지 수난을 당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는 초대교회대로 온갖  이단 사상이 교회를 침식했습니다.  초대교회의 문제는 주로 영지주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영지주의 (Gnosticism)는 헬라의 철학사상을 기독교 및 다른 종교와 접목한 비성경적이고 비 기독교 적인 이교도적 이원론적 사상입니다  이런 철학이 교회에 침식하면서  아직도 교리가 오늘처럼 완전하게 정립되지 못했던 그 당시 성도들은 많은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서 교인들을 유인하며 다른 복음을 전파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유다서 골로새서 등에서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당시 영지주의 자들이 얼마나 교회를 파괴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1서를 기록하면서 영지주의를 경계하라는 뜻에서  4:1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영이 하나님에게 속 했나 시험하여 보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요한일서 4:2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니“ 라고 했는데 왜 이런 말을 썼을까요? 정통으로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인성을 입고 오신 것, 즉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런 교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 를 믿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정립된 것은 Ireanaeus 나 Tertullian, Augustine  Chrysostom 같은 교부들의 시대에 와서 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에게 받아 성경을 기록했고, 그 뒤를 이은 속사도들은 교리를 연구하고 정립하기보다 기록된 말씀을  그들의 문헌에 그대로 인용하는데 신경을 썼으므로 이들에게서 교리의 정립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속사도> 란 영어로는 <Apostolic Fathers> 라고 하고 Ignatius 나 Polycarp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죽고 난 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교회사에서 <교부> 영어로는 <Church Fathers> 라고 하고 이들 중에는 Tertullian, Irenaeus, Origen, 그의 스승이던 Clement of Alexandria, Augustine, Chrysostom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부들도 처음부터 완전한 교리를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성경 그 자체는 원본에 있어서 조금도 틀림이 없는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교리는 완전하여 조금도 수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그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지혜가 부족하여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같은 성경을 대하면서도 각자 해석이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theological schools, 학파> 가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겨에 잘못이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 이를테면 오늘의 패역한 Emergent Church 운동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재해석> 해야 한다고 하고, Elaine Pagels 같은 학자는 공관복음을 영지주의 복음인 <도마복음> 에 비추어서 다시 수정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Gnostic Gospels, N.Y.: Vintage Press, 1987).


 


처음 신약 성경이 기록될 때는  소문자 (miniscule)는 사용하지 않고 모두 대문자 (uncial)로만 기록했고 게다가 단어와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도 없었고, 구두점도 없어서 긴 문장이 계속 되어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몰라서 성경을 읽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학자들 간에 신약 본문 비평에서 같은 성경구절을 두고 이런 저런 다른 해석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본문비평은 중요합니다. 본문 비평은 오늘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신약사본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어느 것이 원본 (autograph) 에 가까운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가령 한국말에 “아버지가방에들어간다” 란 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은 “아버지가 방에 들어 간다” 고 해석하고 어떤 분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갔다“ 고 해석 할 수도 있는데 물론 후자의 경우는 상식에 맞지 않는 말로 어떻게 사람이 가방 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를 들자면 단어와 단어 사이에 간격이 없는 문장은 해석상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예를 영문에서 들어보면, “Godisnowhere" 입니다.  이 문장의 뜻은 무엇일가요? 어떤 분은 ”God is now here“ 라고 해석하고  어떤 분은 ”God is nowhere“ 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긴 문장에서 어느 단어 사이를 끊는가? 어디서 구두점을 찍느냐? 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게 마련이었습니다.


 


가령 원문에서 보면 로마인서 5:1에 “화평을 누리자” 인가? 아니면 “화평을 누리고 있도다” 인가? 하는 문제도 대두 됩니다. 물론 이것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분리나 구두점과는 관계가 없고 단어의 철자 문제에 따라 서로 두 개의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경우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 보면, 어떤 성경에는 “화평을 누리도다” 라고 되어 있고 어떤 성경은 “화평을 누리자” 라고 되어 있음을 봅니다. 다른 이유는 복사하는 사람이 글자 한자를 잘 못 받아 썼기 때문에 일어난 혼란입니다. 영문에서는 “Let us have peace" 인가? 아니면 ”We have peace" 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전자는 문법적으로 “직설법 indicative mood) 이고 후자의 경우는 문법적으로 ”접속법, subjunctive mood" 를 쓰는 "hortatory sentence)입니다.


 


옛날에는 성경을 파피루스 (papyrus) 나 양피지 (parchment) 에 기록했고 이런 것들은 오래 갈 수 없어서 6년 내지 7년에 한 번씩 교체했습니다. 성경을 복사하고 옛 사본은 불태우든지 아니면 독에 넣고 땅굴속에 넣어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47년에 발견된 것이 유명한 “사해두루말이 Dead Sea Scrolls"입니다.  성경을 복사할 때 복사기로 한 것이 아니고 대서사 (amanuensis) 서너 사람을 모아 놓고 한 사람이 성경을 불러 주었습니다. 받아쓰는 사람은 틀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우렸습니다.


 


그러나 복사 하는 과정에서는 사람이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같은 단어를 두 번 중복해 쓰기도 하고 어떤 분은 한 단어나 한 줄을 빠트리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문제의 로마서 5:1 은 어떤 사본에는 echomen eirenen" 또 어떤 사본에는 ”echwmen eirenen" 으로 되어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exw" 라는 동사의 직설법 현재이고 후자의 경우는 "exw" 동사의 접속법입니다. 그래서 전자는 “화령을 누리도다” 란 말이고 후자의 경우는 “화평을 누리자” 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 한 글자 “0" 인가 혹은 ”w" 인가 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등비평 즉 사본학 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경을 정확히 읽도록 도움을 주기 위하여 Robert Estienne (로베르 에스띠엔느) 라는 종교개혁 시기의 프랑스의 인쇄업을 하던 사람이 신약성경을 오늘과 같이 대문자, 소문자를 구별하여 쓰고 단어와 단어를 띠어 쓰고 구두점을 바른 곳에 찍었습니다.   Robert  Estienne 혹은 Robert Staphanus (로베르 스테파누스) 라고 불리우는 학자가 이런 놀라운 그리고 엄청난 일을 해 냈습니다. 우리가 교회사 특히 “종교 개혁사” 를 공부하면서 사람의 이름이 두 개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당시 위험한 종교의 핍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쓰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Robert Estienne 도  Robert Staphanus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Robert Estienne 는 1503-1559 에 산 프랑스 사람으로 인쇄업을 하고 있었지만 학자로서 종교개혁기에 성경을 많이 연구한 분이고 1551년에 성경의 절수를 구별 짓는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그 분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성경을 원어로 읽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누군가가 다른 분이 그동안에 그 일을 담당했겠지만 Estienne 은 그런 놀라운 일을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초대교부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조직신학의 인간론  인죄론, 기독론, 교회론, 성령론, 구원론, 종말론 등을 정립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점차적으로 기독교의 믿는 교리가 완성되었는데 가령 예를 들자면 185-254 까지 살았던 Origen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사람은 원래가 하늘에서 신의 존재로 존재하다가 출생하여 인간으로 태어날 때 흙으로 인간의 몸을 입는다” 라고 가르쳤으니 오늘의 모르몬교와 같은 가르침을 주었고  또한 “사람이 죽으면 다시 교육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고 하였으니 오늘의 천주교의 “연옥의 교리” 를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런 그의 가르침은 나중에 그가 깨닫고 나서 모두 바른 신학으로 고쳤지만 처음에 갈팡질팡 하면서 교리를 연구할 때 그런 잘못도 저질렀던 시기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지금도 교리룰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교리를 완벽하게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바로 정립했으므로 다시는 교리의 수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새로운 교리를 발견했다고 떠들며 다른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 들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으로 4세기에서 5세게 까지 살았던 Augustine (354-430) 도 처음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 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하여 이루어 진다” 고 가르쳤으니 다른 말로 말하면 “협력구원설, synergism) 을 주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그가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 "독력구원설, monergism)을 주장하면서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 진다"는 성경적 진리를 알게 되어 다행이지만 우리가 알 것은 교부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한 것이 하루아침에 모두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자체가 모호해서가 아니라 성경은 분명하지만 그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제한된 지혜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거려서 오늘에 이릅니다.



교리를 최종 점검한 것은 종교개혁기입니다. 종교개혁 기에는 르네상스 (Renaissance)의 영향을 받아 고전을 깊이연구하면서 성경에 관심을 쏟았고 지금까지의 교회의 잘 못된 가르침을 바로 잡았습니다. 물론 종교개혁의 사상을 모두 지지한 것은 아니고 종교개혁이 완성된 다음 어떤 사람들은 급진적인 종교개혁을 요구하면서 교리보다는 오히려 실천생활에 중점을 두는 교파도 생겨났습니다. 이를테면 필라델피아 Lancaster 에 있는 “Amish 파” 나 Bethlehem 에 있는 “Moravian 파” 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교개혁의 이론, 즉 교리보다 실천생활을 강조하여 검소한 생화로 일관했습니다. 


 


그 후에 감리교와 침례교, 또 Quaker 교도가 출현했고 기독교의 교리보다는 사회봉사를 중점으로 하는 William Booth 의 “Salvation Army 구세군”이 생겨났습니다. 구세군이 “자선  냄비” 로 많은 사람을 돕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참교회의 세 가지 특징 중  하나인 성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통적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Quaker 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왕실이 William Penn 의 가족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하여 William Penn 에게 미국 식민지의 Pennsylvania 지방을 하사했는데 그는 자기 이름을 따서 Penn 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숲이라는 Latin 어 인 Sylvanus 를 합하여 Pennsylvania 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후 Pennsylvania 주는 “Friends's Meeting Hall” 이라고 불리는 Quaker 교도의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고,  George School 을 창립한 George Fox 도 유명한 Quaker 교도였습니다.  이들은 성례식이 없고 말씀의 선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회입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성시대로 접어듭니다. 17세기는 “이성주의 시대, The Age of Rationalism" 으로 특징 지을 수 있습니다. John Locke (1632-1704) 나 Rene Decartes  (1596-1650)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무엇이든지 이성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시기는 유럽에서 화약이 발견되고 갈릴레오 (Galilelei Galileo 1564-1642) 나 Copernicus, Nicolas 1473-1543) 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Johann Gutenberg (1398-1468)이 활자를 발명하는 등, 과학이 발달할 때 이므로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도 이성에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성주의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프랑스의 Notre Dame 사원도 프랑스 혁명이후 과격분자들은 다른 이름으로  개명할 정도였습니다. Notre Dame 은 많은 수난을 거처 오늘에 이릅니다.  이성주의는 계몽주의로 계몽주의는 다시 고등비평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에 이런 사상이 상륙한 것은 1910년대 즉20세기 초엽입니다. 프린스톤 신학을 강타하여 프린스톤 신학이  변질되어 갔습니다. 자유주의가 개혁주의를 능가하는 풍토로 변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침례교가 앞장을 서서 근본주의를 부르짖었고 장로교 감리교도 뒤따랐습니다만 역부족으로 자유주의는 이미 미국에 너무 많이 퍼져 나갔습니다. 1910년에 발행된 “The Fundamentals,근본주의 교리" 10권은 자유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서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유주의에게 함락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미국의 교계를 보면 이름만 ”기독교“ 이지 실제에 있어서는 혼합주의 와 신비 주의 일색입니다.


 


1960년 대 부터는 영지주의가 들어오고 Michel Foucault 의 Postmodernism 이 들어와서 기독교는 점점 핵심 교리 (cardinal doctrines) 를 상실한 채 과격하게 변질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상대주의적으로, 주관적으로 감정주의 위주 와 개인주의로 변함으로 성경을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다를 것 없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상이 대두합니다. 이 무렵 Anton LaVey의 “Satanic Bible, 사탄 경" 도 1967년에 출판되어 그해에 등장한 ”The First Church of Satan, 사탄 제일 교회“ 의 공식 신조로 대두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세계 종교 통일 운동” 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UN 에는 이를 위해서 Temple of Understanding 이라는 종교기관을 만들어 어느 종교를 믿건 모두 같이 모여서 명상하는 장소를 만들었고 인도의 New Delhi 에 New Age 본부를 만들어 UN 지도자들이 그곳에 가서 영적 훈련을 받고 옵니다. 자세한 내용을 볼려면 David Jeremiah Film 의 “Gods of the New Age" 라는 video 를 침고 바랍니다. 일반 성도들의 눈으로 볼 때는 별로 의심이 가지 않지만 훈련된 신학자의 눈으로 볼 때 요즘에 나오는 책들은 옛날 나오던 책들과 성질이 매우 다른 것을 느낍니다.


 


요즘에 나오는 기독교 출판물들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 하면 교회가 하나의 기업체처럼 되어 갑니다. 그래서 옥성호 씨는 이를 날카롭게 공격하는 책을 펴냈습니다.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서울: 부흥과 개혁사 간행)”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널리 추천합니다. 꼭 사서 보십시오. 오늘의 많은 목사들은 교회를 하나의 기업체 운영하듯 하고 영적인 성장 즉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인의 숫자를 증가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예배가 교인중심이며 결코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예배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교인의 편이와 쾌락 중심이고  교인이 좋아하는 교인중심의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열린 예배” 라는 것이 바로 기독교를 파괴하는 “예배 아닌 예배”입니다. 


 


예배의 내용도 변하는데 <명상, Contemplative Meditation> 에 중점을 두고 <인간의 잠재능력, human potentiality> 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명상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특별한 명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뉴에이지의 경우는 Mantra (주문) 를 외운다던지, 말하지 않고 가만히 머리를 비우고 명상만 한다든지, 외계와 신접 (神接) 을 한다든지, 요가를 한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을 말 합니다. 동양의 신비종교를 기독교에 도입하여 기독교의 독특성을 파괴하고 하나의 공통적인 세계 종교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종교 운동은 구체적으로 우리들 주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봅시다.


 


요즘 사탄의 전술은 우리로 하여금 <어느 것이 진리인지 어느 것이 비 진리인지 구별을 못하게 하는 것> 입니다. 모두 그럴 사하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모두 <예수 이름으로> 나옵니다.  요즘 나오는 모든 소위 “기독교 서적” 들이  모두 이전과는 달리 성도들이 보다 기분 좋게 믿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유혹에 빠져 들어갑니다. 목사들마저 얼마나 많이 빠져 들어가 저주 받을 다른 복응을 양떼들에게 먹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머리에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다”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Fourth Dimension, Bk I, pp.60-70). 그리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그것을 받아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머릿속에 그려보라는 말도 한 적이 없고 더욱이 기도하면 모든 것을 응답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응답되는 것입니다. 고후 12장의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육신의 가시” 를 위해서 세 번 기도했어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기도가 조용기 목사보다 못했기 때문 입니까?  바울이 기도할 때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머리에 육신의 가시를 제거당하는 그림을 그리며”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거짓 가르침에 속지 마십시다.  요한복음 15:7 이나 롬 8:26 을 읽어 보십시오. 해답을 찾을 것입니다. 


 


요즘의 교회는 성경적 교리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한다” 고 가르치고 (고후 11:14), 또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 고 말합니다. 사실 "신학자" 와 "목사" 중에 <거짓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십시오. Rick Warren 도 목사라고 자처합니다.  Osteen 도 목사라고 자처하면서 <긍정의 삶> 이란 책을 써서 떼돈을 벌었습니다. Bruce Wilkinson 도"예수 믿으면 돈 많이 벌고 성공 한다"고 야벳의 기도라는 책을 써서  몇백만 권을 팔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정말 주님에게 순종하며 충성된 중으로 살면 모두 “무병장수” 하고 “억만 장자” 가 되는 것입니까?  가난했던 Calvin 의 경우은 신앙이 형편이 없었는가요?  30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Robert McCheyne 목사는 믿음이 없던 분이었는가요?  바울은 믿음이 없어서 “육시의 가시”를 제거하지 못했는가요?


 


또 한 가지 요즘의 교계의 동정은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차이가 없다“ 는 생각을 하도록 가르치는 풍조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동방 종교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주사 대학교의 Richard Foster 목사입니다. 그는 불교와 힌두교의 종교형태를 기독교에 도입하려고 합니다. 그의 유명한 책  Celebration of Discipline 이라는 책이 바로 그런 가르침을 조장하는 책이고 미국 내 어느 신학교에서는 그 책을 참고도서로 사용하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불교나 힌두교 같은 동양의 신비종교는 기독교와는 아주 질적으로 다른 종교이며 절대로 서로 합할 수가 없으며 그런 종교에서 모방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조 목 목사는 동국대학의 불교신자 학생들에게 “기독교와 불교는 다를 바가 없다, 내 집안에도 불교 믿는 사람이 있다‘ 라고 말한 것은 기독교를 몰라서 한 말이고 회개로 고쳐야 할 신앙태도입니다.


 


이를 본받아 한국에서는 과거 미국에서 목회하던 이 모 목사라는 분이  Foster 목사의 <영성 운동> 을 전파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중국에 가서 중국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런 운동을 전하려다가 중국 공안 당국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목사는 작년 한국에 Foster 목사를 초청 큰 집회를 인도하도록 주선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대형교회 목사라고 해서 또 과거 이름이 있는 목사라고 해서 요즘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한때 정통으로 믿던 많은 목사들이 이상한 신비주의로 빠집니다. 이유는 세상의 종말이 닥아 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닥아 오면 “배도, Great Apostasy" 가 있으리라고 성경이 말합니다 (살후 2장).


 


James Dobson 이라고 하면 우리가 잘 아는 Focus on Family 라는 가정 상담 기관을 운영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요즘은 그 단체의 연중행사인 세미나에 Foster 목사 계통의 명상 (관상기도) 훈련을 가르치는 목사들로 강사진을  만들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요즘에 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관행으로 변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전에 보수적이고 성경적이던 많은 목사들이나 학자들이 근자에는 놀랍게도  이상한 교리를 가르치거나 이상한 사람들을 강사로 초청하여 자신들의 세미나 집회를 연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James Dobson 이 주관하는 Focus on Marriage 라는 집회에 초청된 인사들을 보면, Gary Thomas, Beth Moore 등이 두두러지는데 Beth Moore 라는 여자는 Be Still (잠잠할지라) 이라는 제목의 DVD 를 만들어 노골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관상기도> 를 주장하는 뉴에이지 운동에 심취한 여자 분인데 뻐젓이 강사로 초청되었으니 그가 그 세미나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Beth Moore 는 그의 또다른 책인 When Godly People Do Ungodly Things 라는 책에서도 <관상 기도> 를 장려합니다.  이런 기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니고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기도형태입니다.


 


<관상기도> 란 <머리를 비우고 가만히 앉아서 내 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는 것입니다.   “내속에서 나오는 소리” 를 듣지 못하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속에서 나오는 소리” 가 무엇입니까? 성도는 위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지 속에서 나오는 주관적인 생각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 같은 이방 종교에서 하는 행위입니다.  James Dobson 의 Focus on Marriage 라는 세미나에서 강사로 나오는 Gary Thomas 는 말하기를 “어떤 단어를 20번만 계속해서 반복하면 ”거룩한 길, Holy Pathway"  이라고 불리는 “침묵 상태” 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모두 성경과는 관계없는 동양종교의 가르침들인데 목사라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자행하며 성도들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타락하는 기독교의 실상입니다.


 


또 한명의 연사는 Frank Buchmann 인데 그는 옛날 “도덕 재무장 이란 Moral Rearmament” 라는 운동을 창시한 본인입니다. 그 단체는 지금 이름을 바꾸어 <Initiatives of Change (변화의 선구자)> 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지만 하는 일은 <전 세계를 하나의 종교로 만들자> 는 종교운동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를 믿는 사람 가운데 바른 사람이 나오기만 하면 전 세계를 하나로 하루 밤에 변화시킬 수 있는데“ 라로 말하는데 이는 전 세계 종교를 하나로 만들 지도자가 나오면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말입니다. 요즘 Paradigm Shift 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Paradigm Shift (파라다임 쉬프트) 라는 말을 가볍게 듣지 마십시오. 무엇을 변화한단 말인가요?  우리의 사고방식을, 우리의 잔통적 기독교 의식을, 우리의 믿는 철학을, 우리의 종교에 대한 편견을, 기독교의 교리들을, 기독교의 독특성을, 기독교의 예배 형태를 변화하고 기독인들이 생활을 모두 종전과는 달리 모든 것을 포용하도록 변화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종교도 포용하면서 전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만들어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스럽게 살자> 는 것입니다. 요즘 <평화> 란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 평화라는 말의 참 뜻이 무엇입니까?  진리와 비진지가 하나가 되어 평화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 종교 통일론자의 주장과는 달리, 성경적 가르침은 기독교는 <주안에서만> 평화가 있는 것이지 주를 떠나서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원수가 집안에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면 항상 충돌이 있을 뿐이며 기독교의 진리를 타협하면서 평화를 추구하라는 주장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항상 “주안에서‘를 강조 합니다 ”주안에서“ 평화가 있습니다. ”주안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란 말은 ”성경적인 진리 안에서“ 란 말입니다. 요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Paradigm shift“ 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 뉴에이지에 물든 사람들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MRA> 의 창시자  Frank Buchmann 은 어떤 인물인가요? 그는 목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아니고 뉴에이지 운동을 조장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쓴 책  “Remaking the World (세상을 새로 만들기)” 라는 책에서는 “New World Order, 새로운 세계 질서" 라는 단어가 수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New World Order 새로운 세계질서" 란 말은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기독교의 독특성을 파괴하고 범신론을 주장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Brian McLaren 이나 Tony Jones, 그리고 Doug Pagitt 등은 <Emergent Church movement>  를 주장합니다. 이 운동의 골자는


 


<기독교를 재해석 하자> 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도, 예배도, 전도도, 성도의 신앙생활도, 모두 재해석해서 변화를 초래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전래되어 온 기독교는 의미가 없고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하는가?  기독교의 교리를 설교하면 안 되고 <기독교가 유일한 참 종교>라고 하면서 기독교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것은 현대 감각에 맞지 않고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니 이는 사리에 맞지 않는 것임으로 남의 종교를 비판하지 말고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도 비판해서는 안 되고 모르몬교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 종교마다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진리가 있는데 그 진리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기독교가 진리” 라고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고난 받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 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들의 <하나님의 나라> 의 개념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고통이 없고, 부유하고 성공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못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난하건 병들었건 부유하건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이 땅에는 가난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고, 질별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하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친 것은 구원의 성질을 가르쳐주기 위한 목적으로 병을 고치시고 눈먼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은 우리에게 그런 기적을 반복하라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이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불러주셔서 되어 진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히브리 2장 3-4절 사이에 이 진리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는 2008년 7월 16일부터 Spain 의  Madrid 에서는 전에 없던 큰 행사가 있게 되는데 전 세계에서 힌두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유대교 지도자 200명 이 모여서 <세계 종교 통일 연구회> 모임을 갖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주최국은  기독교 신자를 수없이 핍박하고 학살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왕> 입니다.  그의 주장은 “종교간 서로 분쟁이 없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며 모든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슬람교의 교리를 바로 인식시키자” 는 것입니다.  여기에 놀랍게도 기독교 목사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기독교의 현주소입니다.


 


요즘은 기독교의 목사라고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목사로 안수 받으며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나서도 성경을 무시하고 일말의 양심도 없이 기독교를 파괴하는 일을 자행하는  “적그리스도” 같은 목사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12에 “천하 인간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다른 이름을 우리게 주신 적이 없다” 고 했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하리로 라고 고후 6장15절에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기독교 목사들이 힌두교와 천주교와 불교와 이슬람교 지도자와 같이 앉아서 종교문제를 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임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유대교에서 David Rosen 랍비 이 사람은 현재 <미국 유대교 협회 종교통일 문제 연구소 소장> 입니다.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Rowan Williams 도 참석하는데 영국의 Archbishop of Canterbury 는 옛날 16세기  Thomas Cranmer 가 대주교로 있을 때와는 하늘과 땅만큼 타락했습니다. 이 모임에는 또한  전 미국 부통령 Al Gore 와 Billy Graham 의 아들인 Frank Graham 목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l Gore 는  The Earth in the Balance 라는 책을 쓴 사람인데 그 책에서 환경론을 주장합니다. 요즘 환경론자 중에는 뉴에이지 운동을 조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생각은 하늘에는 “하나님 아버지” 가 있고 “땅은 하나님의 어머니”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Gaia 를 숭상합니다. <Gaia> 란 희랍신화에서 지구의 여신을 말합니다.


 


이렇게 오늘의 특징은 마음대로 성경을 떠나고 기독교의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혼합하여 진리를 왜곡하여 구원의 교리를 왜곡하려는 무리들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참가하지만 기독교의 목사들도 자진하여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Florida 주 Lakeland 라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Todd Bentley 라는 32살 먹은 카나다 태생 자칭 <신유 부흥사> 의 목불인견의 사역은 모두 이런 각도에서 해석되는데 문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성도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믿고 따르면서 헌금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이런 비성경적 <신앙운동> 은 독 버슷 처럼 창궐해 가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막으려는 사람이 없는 실정입니다.


 


저들은 저들의 잘못된 신학을 바로 잡아 주려는 정통신학자들을 공격하고 핍박합니다. 성경은 벧전 4:17에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고 말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 날 터인데 “여기 있다 해도 믿지 말고 저기 있다 해도 믿지 말라” 고 합니다 (마태 24:26). 또한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마태 24:4).  오늘 너무 많은 일반 성도들이나 신학생들 또 심지어 신학이 약한 목사들 중에서도 미혹의 영을 받아 정통신학을 버리고 이단을 따라가는 분들이 많은데 이른 심히 슬픈 일입니다.  영계는 지식이 많다고 정통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는 순연히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바른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마귀가 단말마적으로 마지막 발악으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세워 <어느 것이 진리인지 어느 것이 비 진리인지 구별하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공부하는 <세계 종교 통일 운> 은 무서운 세력을  가지고 기독교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깨어서 기도하며 속지 맙시다.  속지 않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목사보다 똑똑해야 합니다. 목사보다 기독교의 믿는 도리 즉 교리를 더 분명히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체계 있게 공부하는 일이 절대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피상적 성경공부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이 정신 차려서 역사적 신앙고백서 이를테면 1561년의 베르기 신앙고백서나, 1563년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599년에 나온 프랑스 신앙고백서, 1619년에 나온 도르트 신경, 1647년에 나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와 대소요리문답서, 1966년의 켐부릿지 선언 (Cambridge Declaration) 등 좋은 신앙고백서들을 통달해야 합니다. 지금은 목사보다 똑똑해야 속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오늘 강의 “세계 종교 통일 운동” 강의를 마칩니다.


 


필자: 김명도 교수
튤립 교육 선교회 회장
튤립 신학 연구원 원장
칼빈 신학 대학 대학원 변증학 교수 
rv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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