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인물

오스왈드 챔버스1874-1917) 의 신학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2-10-26 00:10
조회
17057

OSWALD CHAMBERS (1874-1917) 의 신학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교수
www.tulipministries.com

오래전부터 인기리에 팔리던 Oswald Chambers 의 책들 (그 중에서도 특히 My Utmost for His Highest 라는 책) 이 한국에서는 요즘 날개 돋힌듯 팔리고 있어서 일반 교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목사들도 이 책에 열중한다고 한다. 사람은 어떤 사람과 교제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변하지만 그 사람이 읽는 책의 영향을 밚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Barth 나 Schleiermacher, Bultmann, Brunner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게 되고, Henri Nouwen, Thomas Merton,Thomas Keating, Mark Borg, Matthew Fox 같은 사람들이 쓴 책을 읽으면 신비주의자가 되고, Calvin, Turretin, Bavinck, Ridderbos, Kuyper, Spurgeon 같은 사람이 쓴 개혁주의 서적을 많이 읽으면 개혁주의 신앙에 서서 흔들림이 없게 된다. 그러기에 책이 우리 신앙인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대부분 목사들이 신학교 시절 책을 잘못 선택하여 성도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에 책들은 차고 넘친다. 책방에 가면 책은 넘쳐난다. 그러나 서가에 놓여 있는 책들이 모두 유익한 책은 아니다. 또 신문에 대문짝만큼 크게 광고하는 소위 “Best Seller" 라는 책들이 모두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우리의 영혼을 손상하는 책들은 아이로닉하게도 오히려 그런 유명한 책들 속에 많다. 과거에 출판되었던 Bruce Wilkinson 의 ‘야벳의 기도“ 나, Joel Osteen 의 ”긍정의 삶,“ 이나 2천만부가 팔려 나갔다는 Rick Warren 의 ”목적이 이끄는 삶,” 또한 예수를 모독하는 Dan Brown 의 Da Vinci Code, 그리고 William Young 의 Shack 등 예는 얼마든지 들수 있다. 이런 책들은 우리의 신앙을 저해하는 서적들로 예수를 바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절대 금물이다. 바른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면,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Oswald Chambers 의 신학 사상은 어떠한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그의 신학을 개혁주의 입장에서 비평한 것이다. 절대로 근거 없는 공격이 목적이 아님을 밝혀 둔다.



우선 Oswald Chambers 의 생애를 잠시 더듬어 보고저 한다. Oswald 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는 1874년 7월 24일 영국의 Scotland Aberdeen 이란 아름다운 항구도시에서 한 침례교목사 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는 신학을 공부할 의도가 아니었고 예술을 좋아하여 미술을 전공했으나 15세에 부모를 따라 London 으로 이사를 나와서 Royal Academy of Arts 에 다니다가 유명한 침레교 목사 Charles Spurgeon 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고 급기야 신학을 공부하게 되는데 그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mentor 가 있다. 그 “mentor" 에게서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받는다. Mentor 를 잘 선택하는 것이 필요한데 Chambers 의 경우는 그릇된 mentor 를 택하여 그의 신학에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의 mentor로 등장한 사람은 독일의 신비주의자 Johann Tauler (1300-1361) 였다. 그의 신학은 개혁주의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말씀보다도 ”내적경험“(inner experience)이 더 중요하다고 설교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하여간 Chambers 는 예술과 미학(美學) 공부를 버리고 신학의 길로 접어 들어 1895 년에 에딘버 대학 (University of Edinburgh) 에 입학하여 1년간 공부하는 과정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생각은 영국 사람들의 생활이 침체되고 그 원인은 성별된 삶이 없음을 직감하고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면서 영국 국민의 정신을 거룩한 성품으로 개조하려고 결심했다. Edinburgh 대학을 나와 영국 서부 Glasgow 부근에 있는 Dunoon College 에 들어가 신학에 열중했다. 1906년에는 미국에 와서 Cincinnati, Ohio 에 있던 God's Bible School에서 6 개월간 성경을 강의했고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동경성경학교에서도 강의를 맡는등 활동을 많이 했다. 이때가 1906-1907 였는데 영국에 돌아온 Chambers 는 League of Prayer 라는 기관의 설립자인 Harris 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 분이 하던 일을 맡아 일했는데 Harris 는 성령을 강조하는 분이었다. 이 기관은 오순절 계통의 기도를 권장하는 기관이었다. 여기서도 Chambers 는 그의 신학에 영향을 받게 된다.



1910년까지 이 기관에서 일하다가 London 에 있는 Bible Training College 의 교장이 되었는데 이 학교는 Laague of Prayer에서 세운 학교로 성경보다도 성령을 강조하던 학교 였으니 Chambers 의 신학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1916년에 애급에서 벌어진 전쟁에 영국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애급에 내려가서 주로 영국군의 군목으로 활동하던 중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았는데 경과가 좋지 않아서 1917년 11월 15일 애급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독서와 음악에 남다른 취미가 있어서 “독서광”(bibliophile) 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책을 좋아해서 늘 책으로 친한 벗을 삼았다고한다. 1910년에 결혼한 그의 아내 Gertrude Hobbes 는 법원에서 속기사로 일하던 유능한 분이어서 그의 책들은 대부분 부인이 썼다고 한다. 그가 좋아하던 성경구절은 눅 11:13이었는데 이 성경구절은 Chambers 의 trade mark 격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는 유명저자 Oswald Chambers 의 신학 사상을 검토하여 개혁주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하자.

전에도 언급한대로, Chambers 는 원래 미학과 미술, 철학, 심리학 을 좋아하다가 Spurgeon 목사의 설교로 회심하여 Edinburgh 대학과 Dunoon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그 후에
Lague of Prayer 의 창시자 Harris 를 만나 그와 친숙해 지면서 나중에 Harris 가 세운Bible Training College 의 교장도 지냈고 또 League of Prayer 도 이끌어 나가는 직책을 맡았다고 했다. 이 모든 기관들은 오수절 계통의 학교들이었다. 영국에는 Keswick 이라는 전도단체가 있다. Keswick 운동은 특별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침체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영적인 갈증을 푸는 기관으로 유명하다. 필자가 2006년 New Jersey 주에서 열렸던 “목사 수련회” 하던 수양관도 Keswick Retreat Center 였다. Oswald Chambers 는 Keswick 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므로 다른 목사들처럼 개혁주의 신학에는 별로 접촉한 점이 없고 그의 서적들은 My Utmost for His Highest 가 의미하는 것 처럼 내가 최선을 다해 거룩해 져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Arminian 주의적 교리를 전파했다. 그는 John Wesley 를 좋아하여 그의 책 여러군데에서 그를 찬양하며 그리워 하는 모습을 불 수 있다.



그의 책들은 그가 쓴 것은 별로 없고 대개 그의 부인이 과거 법원에서 속기사로 일하던 속기 실력으로 남편이 강의한 것이나 애급에서 영국군인들에게 설교한 내용을 모두 문자 그대로 받아 기록하여 Oswald 가 죽은 다음에 펴 냈는데 My Utmost for His Highest 라는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매일 일기장을 쓴 것 처럼 매일 매일 그 날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일종의 수상록 비슷하게 편집되어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며 이 책의 판매부수도 상당하다. 요즘은 한국에서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Chambers 의 신학을 알기위해서는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그에게 영향을 준 학자들이나 목사들 그리고 그가 관계했던 신앙운동을 아는 것이 지름길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한바 있지만 Chambers 는 예수를 믿기 시작하자마자 League of Prayer 라는 기관의 창시자인 오순절 신앙을 가진 Harris 와 교제하면서 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Keswick 신앙운동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그가 읽은 책들은 독일의 신비주의 신학자 인 Johann Tauler (1300-1361) 였다. 그는 철저한 신비주의자로 항상 성령을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가 주장하는 내적경험 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내적 경험( 신비적으로 얻는 내적 경험) 이 가장 중요하고 내적 경험에 치중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그의 독특한 신학은 그가 예수님의 승천을 설교할 때도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언급은 없고 내적 경험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one with God) 신비스런 경지만 논했다. 오늘의 Henri Nouwen 이나 Thomas Merton 같은 생각이었다. Nouwen 이나 Merton 그리고 Pierre Teilhard de Chardin 은 모두 천주교 신부들이다. Teilhard de Chardin (타이하드 드 샤르뎅) 은 인간의 머리도 진화한다고 가르친다. Oswald는 또한 사람의 신학자의 영향을 받았는데 Peter Taylor Forsyth (1824-1921) 라는 목사인데 그의 사상은 “이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말고 ”Justification by holiness" 즉 “성결함으로구원을 얻는다“ 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Oswald 는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그의 신학을 짐작할만 하다.

여기서 잡시 영국에서 1875 년에 시작된 Keswick 운동의 성격을 보고자 한다.
이 운동은 이윽고 미국과 카나다로 펴져 나갔는데 목적은 교리를 연구하거나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침체된 교인들에게 새로운 힘을 넣어주는 사역을 담당했고 오늘날도 그런 사역을하고 있다. 이 운동의 골자는 “승리의 기독도, Victorious Christian" 인데 이런 승리하는 기독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은 회심한 후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 오순절이나 순복음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람이 회심하는 것은 성령으로 되어 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고전 12:3; 롬 8:9).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거듭날 수 없다 (요3:5, 딛3:5)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난 후에 다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다. 거듭난 다음에는 “성령의 충만” 이 있을 따름이다. “성령충만” 이란 다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신앙이 성장해 가는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Joseph Price 라는 부흥사는 이 점을 간과하기 때문에설교할 때 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으니 회개가 필요 없고 오직 감사만 해야한다“ 고 이단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가 사해 진 것은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를 가리워주셔서 죄가 있지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죄없다고 간주(看做) 해
주시는 은혜이지 우리의 죄가 하루 아침에 천사처럼 없어져서 도모지 죄를 짓지 않는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생한 사람도 죄를 짓는다 불신자와 차이는 죄를 “상습적으로 아무런 가책없이 함부로 짓지 않은다는 것이 요일 3:9 의 말씀의 해석이다.

My Utmosts for His Highest 라는 책에서 Chambers 는 거룩해지려고 애를 쓴다. 물론 성도는 거룩해야 한다. 성도란 말 자체가 “거룩하다”는 말인 hagios 이며 이말은 성경에서는 복수로만 사용되는데 이말의 원래 의미는 “성별한다, set apart" 의 의미이다.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에수를 믿으면서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삶은 사는 사람은 "professingChristian"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 일뿐 spiritual Christian (영에 속한 사람) 은 아니다. 성경은 입으로 예수를 시인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제61문에는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가면 모두 구원을 얻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가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 라고 아주 분명히 말한다. 오늘의 교계에는 너무도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런데 어떻게 거룩해 지는가? Oswald 의 생각대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노력해서 되어지는가? 아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여야 한다. 이 말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인데 내 자신의 경험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이는 큰 교리상의 오류이다. 이 한가지만 보아도 Chambers 는 위험 인물이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성경의 교리를 잊지 말자. 성령은 반드시 말씀을 동반하여 역사하신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리의 오유를 범한다.

My Utmost fof His Highest 나 그 외에 다른 Chambers 의 책들, 이를테면 Faith-A Holy Walk, Biblical Ethics, 그리고 Biblical Faith 등 대개가 그가 죽은 다음 그의 부인이 그의 남편이 생전에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군에서 설교한 내용을 글자 한자 빠짐없이 녹취하여 나중에 책으로 출판했다. 그러면 우리 개혁주의 성도가 Oswald 의 책을 읽어야 핱까? Oswald 의 모든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Oswald 의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지혜의 말씀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의 수양서적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개혁주의 성도로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인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그의 가르침이 “성경적” 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다면 반드시 모든 성도들에게 읽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결단코 읽기를 금해야 할 것이다. 왜? 영혼엔 손상을 가져 오기 때문이다.



그의 책 My Utmost for His Highest 란 책의 골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성화시키며 성화된 그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자그대로 Forsyth 의 Justification by Holiness 를 받아 드리는 것이다. 이는 성경과 어긋난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미의 은헤로, 그리스도안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라고 외쳤던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거룩해도 그 거룩이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모두 범죄하여 타락했다 (롬 3:10; 3:23; 시 14:1; 롬 5:12-19).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같다고 이사야 64:6에 이사야는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의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는 잘못이다. John Wesley를 중심한 Arminian 주의자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죄를 짖지 않을 정도로 거룩해 진다고 가르치지만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가? 이들은 윱법을 지킬수 있는 정도로 낮추고 나서 그 모든 율법을 지킬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John Wesley: Plain Account 라는 책 참고), 하나님의 율법을 낮추어서 지키라고 누구 허락했는가? 율법의 목적은 우리가 죄인됨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롬 3:20),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육체가 아주 없다 (갈 2:16). Chambers 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인 누가 복음 11:13은 그의 Motto 이다. 그는 죽을 때도 그의 무덥 비석에는 그의 이름과 성경 누가복음 11:13이 기록되었다고 전해 질정도로 그 구절을 좋아하며 “거룩”을 좋아했다. 아마 그것이 많은 독자를 확보한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거룩하라는 말에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그러나 그 “거룩은 성경을 통해서” 성화되는 과정이어야 하며 “내적경험”을 통해서 거룩해 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아 진다. Oswald 가 은혜 받아 회심한 Charles Spurgeon 목사가 그렇게 가르쳤을 리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를 사귀느냐 누구의 책을 읽느냐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Spurgeon의 신학을 버렸다. Spurgeon의 신학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무릇 기독교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 (stauros kai anastasis) 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빠진 신학은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가 왜 Osteen 이나 Warren 을 비평하는가? 그들에게는 십자가와 부활 신학이 없다. 모두 현세적인 (mundane) 그리고 세상적인 (secular) 내용들 뿐이다. 마치 Harvey Cox 의 세속도시 (Secular City) 를 읽은 것 같다. Oswald 의 신학은 모두 “내가” 거룩해 지고 “내가 하나님을 찾아 가는” 신학이다. 구원의 주는 “내” 가 아니라 “하나님” 이시다. 구원은 우리의 거룩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흠이 없이 거룩한 구세주 옉수 그리스도가 이룩한 의 (righteousness) 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거룩해 진다. Oswald 는 자주 “기독교의 근본은 그리스도에게 거룩함으로 봉헌하는 것” 이라고 가르치지만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 그 분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 신학을 전해야 한다. Oswald 에게는 그럽 부분이 약하다. 개혁주의 신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Oswald 가 그의 My Utmost for His Highest 라는 책에서 말하는 “my utmost" 란 말은 그가 스스로 설명한대로 내가 완전히 거룩해 질 수 있다는 신념에서 그 용어를 사용하였다.
사람이 완전해 질수 있는가? 성도는 죽을때까지 성화가 계속되다가 죽은 후 성화가 완성된다. Oswald 는 요일 3:9 을 예로 들어 “성도는 죄를 짓지않늗다” 고 가르치지만 그 말을 오해하고 있다. 문제의 요일 3;9 의 말은 헬라어 문법적으로 보면, “죄를 도모지 짓지 아니한다‘ 란 말이 아니다. “죄를 상습적으로 짓지 않는다‘는 말, 영어로는 One having born God does not continue sinning 의 의미이다. 죄를 짓지 않을 만큼 거룩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여기서 Oswald 는 중대한 신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죄를 아주 짓지 않게 되었다 가 아니라 죄 지을 생각을 버렸다 는 의미이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중생자라도 죽을때 까지 늘 죄를 지으며 살지만 함부로 죄를 짓지 아니한다 란 말이다.


그런데도 Oswald 의 책 My Utmost for His Highest 란 책 영문판에서 8월15일자의 글을 보면
“not merely that we have the power not to sin, but that we have stopped sinning"
우리가 죄를 안지을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만 아니라 실제로 범죄하는 일을 그쳤다“라고 아주 성경과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Oswald 의 신학의 그릇된 증거들은 그의 책에서 여러 군데 나타난다.
그의 신학은 아르미니안 주의 일색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성결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 11월 12일자에는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이룩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할 때 머뭇거리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라고 말하므로 역시 비성경적인 말을 하고 있다. 한번 구원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머뭇거린다고 해서 구원을 급작스러히 잃어 버리는 법이 없다. 여기서도 Oswald는 복음적이 아닌 말을 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아르미니안 주의 신학이다.

Chambers 의 글에는 교리가 없다. 오직 “거룩해져야 하나님을 섬길수 있으며 거룩해야 구원을 얻을수 있다‘ 는 신학 일색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 신학은 보이지 않는다. 교회나 목사의 직분에 대해서도 언급이 별로 없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신비하게 연합되어 있는 공동체 인데도 그런 언급은 거의 없다. 성도가 회개하자는 말도 인색하다 성도들에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Chambers 는 회개를 말하기를 인색하다. 회개가 없이 어떻게 그가 말하는 “거룩한 품성”을 이룰 수 있는가 그에게 묻고 싶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Oswald 은 순종을 강조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리스도인은 순종해야한다. 첫 아담은 순종치 않아서 범죄했고 죽음을 초래했다. 둘째 아담 (혹은 마지막 아담) 은 죽기 까지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어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는 공로없이 의롭다함을 얻었다. 그러나 Oswald 가 말하는 순종은 성경을 도외시한 순종이다. 이것은 모순이다. 성경을 도외시하면 무엇을 순종하는가? 순종의 근본은 말씀이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럼에도 Oswald 는 10월10일자 글을 쓰면서 말하기를 “공부를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뜻하는 바] 조금만 순종하면 하늘이 열려서 깊은 하나님의 진리가 곧바로 내려 온다“ 라고 하는 이 말은 분명
비성경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믿는 도리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Oswald 는 거룩함과 순종만 강조하다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소홀히 한다. 말씀 공부가 불필요한가? 그가 “공부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It is not study that does it...) 이 말은 받아 드릴 수 없는 궤변이다. 왜? 순종하려면 순종할 주제를 알아야 한다. 성경공부 없이 어떻게 순종한 주제를 알 수 있는가? 이렇듯 그는 교리를 소홀히 한다. 믿는 성도는 교리를 바로 배워야 한다. 한국에서 이단이 창궐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교리 공부가 없기 때문이다. 교리 공부가 시급한때 순종만 강조하는가? 무엇을 순종한단 말인가? 순종할 주제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말씀을 교리적으로 공부해야
하지 않는가? Oswald 는 하나님의 백성은 성결한 생활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하지만 그 성결을 구원의 근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필자는 Oswald 에게서 십자가 의 교리를 듣고 싶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개혁주의 성도는 Oswald Chambers 의 신학을 수용할 수 없다.
주를 섬기려는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그의 설교는 대개가 성경 한 두 구절 정도를 본문으로 작성되는데 이는 Spurgeon 을 모방한 것이다. 그런 점은 좋지만 Spurgeon 의 가장 중요한 신학 사상인 “십자가와 부활” 사상은 보이지 않는다. 개혁주의 학도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지 않는 서적이나 학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요즘은 속임수 시대 (era of deception) 이다. 도처에 속임수가 한창이다. 속지 말자. 사람은 누구을 사귀는가 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인격이 변한다는 진리를 꼭 명심하자.
-OSWALD CHAMBERS 의 신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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