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신약성경의 삯과 상 개념 연구
“하늘에서 너희의 삯이 큼이라”
- 신약성경의 삯과 상 개념 연구 -
정 훈 택
(신약신학)
신약신학은 두 언어 즉 이 천 여년 전의 헬라어와 현대 한국어 사이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어를 익힌 우리가 헬라어를 배워 헬라어로 표현되어 있는 신약성경을 이해하고 이것을 한국어로 재생하는 작업을 우리는 신약신학이라고 부른다.
두 언어 사이의 시공간적 간격, 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역사와 문화적 간격 등이 깊은 골, 높은 산, 때로는 건널 수 없는 넓은 강으로 등장한다. 가장 간단한 문자적 번역조차도 불가능할 때가 있다. 정확한 대응어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헬라어에 대한 무지 내지 오해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는 현대 한국어에 대한 무지 내지 오해 때문에 정확한 번역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번역은 실수에 의한 것이든, 고의적인 신학작업에 의한 것이든 잘못된 신앙과 잘못된 신학을 만들어낸다. 최선, 최고의 번역은 그래서 신학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
“상(賞)”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브라베이온(brabei/on)"으로 헬라어 신약성경에 두 번 사용되었다(고전 9:24; 빌 3:14).1) 그런데 개역 한글 신약성경은 스물 한 곳에 “상(賞)”이란 단어를 더 가지고 있다.2) 이 곳에 “상(賞)”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미스토스(misqo,j)"의 변화형들이다. “미스토스”는 한국어의 “삯”에 해당한다. 이 구절들은 문자적 번역이란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오역이다.
“미스토스(misqo,j)"를 “삯”으로 번역하지 않고 “상”으로 번역해 놓은 스물 한 곳은 그 내용에 공통점이 있다. 이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것을 헬라어 성경은 “삯”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상”이라고 소개한다.
삯을 상으로 번역해 놓으면 당연히 본문의 의미가 달라진다. 헬라어 성경이 가진 “삯”의 신학에 대한 토론3)이 불가능하고 대신 헬라어 성경에 없는 “상(賞)”의 신학이 새롭게 만들어진다.4) “상급론”, “차등상급론” 등의 토론이 유독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미스토스(misqo,j)"를 “상(賞)”으로 번역해 놓은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 논문은 “미스토스(misqo,j)”를 “상(賞)”으로 번역한 것은 명백한 오역임을 밝혀 한글 성경의 해당 구절들이 하루 빨리 수정되도록 자극하려는 것이다.
1. 한국어의 “상(賞)” 개념
한국에서 “상(賞)” 개념은 아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상이 무엇인지 체험적으로 익혀왔다.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 대조, 경쟁 속에서 상은 앞 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자극하는 주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혹은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상술로 활용된다. 어디서나 상이 주어진다. 조금만 잘해도 상을 탄다. 유치원에서도 상을 남발하고 ... 사람들은 더 큰 상, 더 좋은 상을 향한 소원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을 참고 내일을 향해 간다. 결과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상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금만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라면 서랍 가득히 무수한 상장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회가 한국이다.
이 “상(賞)”개념이 신앙생활도 자극하고 교회의 활동을 자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미래의 “상(賞)”이 없다고 한다면, 한국 교회의 활동은 상당한 규모 위축되지 않을까? 그만큼 우리는 다른 신자, 다른 교회 혹은 다른 교단과의 비교, 대조에 익숙해져 있고, 소위 선의의 경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더 큰 교회, 더 위대한 삶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의 더 큰 상을 바라보고 진행된다. 하나님의 “상(賞)”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현재의 힘들고 고달픈 삶은 충분히 견딜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상(賞)”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따르면 “잘한 일에 대하여 칭찬하는 표식.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다. 돈으로 주는 것을 “상금(賞金)”, 물건으로 주는 것을 “상품(賞品)”, 증서를 주는 것을 “상장(賞狀)”이라고 부른다. “상급(賞給)”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賞)”으로 줌. 또는 그런 돈이나 물건을 뜻한다. “수상(受賞)”은 상을 받음을, “수상(授賞)”은 상을 주는 것이다. “포상(褒賞)”이라는 용어도 있다. 칭찬하고 권장하여 상을 줌을 뜻한다. 마지막 세 단어는 “하다”를 첨가하여 동사로 활용하기도 한다.
“상(賞)”에는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다. 상을 받는 사람은 이 상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한 사람이다. 최근에는 일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갖추고 있는 자질과 관련해서도 상이 주어진다. 이 때의 특수한 자질도 과거로부터 자라난 결과이다. “상(賞)”이란 용어는 과거의 어떤 행동이 좋은 것임을 혹은 현재의 어떤 자질이 바람직한 것임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잘한 일, 바람직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알리고 칭찬함으로 당사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미래의 그러한 일, 그러한 자질을 적극 권장하고 유도해 내려는 “상(賞)”을 주는 사람의 의도가 “상(賞)”에 결부되어 있다.
잘한 일, 바람직한 자질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이 선물이다. 선물은 받는 사람의 행동이나 상태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그냥 주어지는 것, 공짜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5) 미래에 무엇을 위한 의도를 선물과 결합시킨다면 이는 선물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중개물이거나 뇌물이 된다. 이에 비해 “상(賞)”은 어떤 행동이나 자질과 분명한 인과관계에 의해 주어진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분명한 의도성과 목적이 결합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림, 칭찬, 권장이라는 미래를 향한 의도성 때문에 “상(賞)”을 줄 일이나 “상(賞)”을 받을 자질과 “상(賞)”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 이상의 인과관계가 개입한다. 즉 잘한 일, 바람직한 자질에 “상(賞)”을 주는 것은 부자연스런 인과관계이다. 일, 자질 자체의 인과관계에서 보면, “상(賞)”이란 ’더 주는 것‘ 그래서 ’더 받는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주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상(賞)”을 주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2. 신약성경의 “상(賞)” 개념
한국어의 “상(賞)”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brabei/on”이다. “상(賞)”의 의미를 가장 잘 밝혀주는 것은 이천 년 전의 헬라어나 현대의 한국어에 있어서 힘과 기를 겨루는 운동시합이다. 신약성경에 “brabei/on”이 사용된 것도 시합과 관련하여서이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인의 개선을 촉구하며 달리기 시합을 비유로 사용했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다 달릴지라도 ‘상(賞, brabei/on)'을 얻는 사람은 하나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렇게 달려라”(사역)
바울은 전도자요 사도로서의 자신의 삶을 달리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賞, brabei/on)'을 위하여 나는 푯대를(= 결승선을) 향하여 좇아가고 있다.”(빌 3:14, 사역)
이상의 표현들을 비교해보면 한국어 “상(賞)”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헬라어 “brabei/on”이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는 시점에서 지나간 일을 잘했다고 인정하고 칭찬하는 의미, 상을 얻을 미래를 위해 사람들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의도성이 모두 들어있다.
달려서 이긴 것과 “상(賞)” 사이의 인과관계는 달리기 시합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시합을 시키지 않았다면 달려서 이긴 것과 “상(賞)”의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바울 사도 당시에는 우승자에게만 상을 주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시드니의 올림픽 시합에서는 상위 세 명에게 상을 주었다. 시합의 규칙을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거나 달려서 이겼다는 원인이 없었다면 상을 받지는 못한다. 인과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 자질 자체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인과관계는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상(賞)”을 특별한 목적으로 ‘더 주는 것’이라고 부른 것이다.6)
바울 사도가 살던 시대의 실제 상황을 더 잘 반영하고 있는 단어가 “관(冠)”을 뜻하는 ste,fanoj이다. 당시 경기의 우승자에게 “상(賞)”으로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주던 풍습에서 온 것이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누가 시합을 할 때 규칙대로 시합을 하지 않으면 상을 받지 못한다”(딤후 2:5, 개역)고 썼는데 이 문장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월계관을 씌워주다’의 수동태에 부정사를 붙인 “ouv stefanou/tai(월계관이 씌워지지 않는다)”이다. 개역한글판은 이것을 의역하여 “상을 받지 못한다”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단어 사이에는 의미 상의 차이가 있다. 상은 칭찬하며 사람들을 그런 행동, 그런 자질로 자극하고 선도한다는 의도성이 강한 데 비해 “월계관”은 미래보다는 과거의 행동을 기리는 승리의 영광이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신약성경에는 당시의 이러한 문화 즉 월계관으로 상이나 영광을 표현하는 방법이 반영되어 “상(賞)”에 해당하는 brabei/on보다 ste,fanoj가 더 흔히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쓰신 영광스러운 승리의 관은 역설적이게도 “가시떨기로 만든 관”이었다. 구원의 영광이 고통과 멸시, 죽음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성도들의 미래적 상태와 관련하여 금관, 썩지 않는 관, 생명의 관, 영광의 관, 의의 관 등의 표현들이 만들어졌다.
3. Misqo,j 어군(語群)
한글 신약성경 스물 한 곳에서 “상(賞)”으로 번역된 헬라어 “misqo,j(삯)”도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인가를 주거나 받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misqo,j(삯)”에는 “상(賞)”이나 brabei/on과는 달리 일이나 자질에 대한 평가,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장려하는 의도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Misqo,j(삯)의 내용 즉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주고 받느냐를 결정하는 요소는 주는 편의 일방적인 약속이나 결정이 아니라 사회의 실상에 근거한 양편의 사회적 합의이다. 따라서 “misqo,j(삯)”에 내포되어 있는 인과관계는 원인으로서의 일과 이 일에 대한 대가라는 결과를 자연적스럽게 연결하는 사회적 인과관계이다. 일한 만큼 주고 일한 만큼 받는다는 사회적 당위성이 misqo,j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단어는 한국어 삯과 거의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명사 misqo,j와 삯은 ‘일한 데 대한 품값으로 주는 돈이나 물건’을 말한다. 이 단어가 바르게 번역되어 있는 구절들을 여기 인용해 본다. 모두 개역한글판에서 가져온 것이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misqo.n) 주라 하니”(마 20:8).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misqou/)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눅 10:7)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misqo.n)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4:36)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evk misqou/)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행 1:18)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misqo.j)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지거니와”(롬 4:4, 부분 사역)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misqou/)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misqo.n) 사랑하다가”(벧후 2:15)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misqou/)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유 1:11)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misqo.j)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베드로후서 2장 13절에는 “값”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물론 삯으로 번역되었으면 더 좋았을 구절이다.
“불의의 값으로(misqo.n)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벧후 2:13)
동사 misqo,w는 ‘삯(을) 내다’ 즉 ‘삯을 주어 일을 시키다’ 혹은 ‘세를 내다’를 뜻한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misqw,sasqai)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마 20:1). “삯낸 집”을 헬라어로 misqw,ma라 불렀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misqw,mati)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행 28:30). 삯을 받기로 하고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삯꾼, 품꾼, 삯일꾼이라고 부른다. 헬라어 단어는 mi,sqioj와 misqwto,j이다. 이 단어가 들어있는 구절들을 아래에 인용해 본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20)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9)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요 10:12-13)
명사 misqo,j가 ‘상’일 수 없고 ‘삯’이어야 함을 뒷받침해주는 합성어가 신약성경에 둘 더 있다. Misqo,j와 “돌려줌”을 뜻하는 avpodosi,a, 혹은 “돌려주는 사람”을 뜻하는 avpodo,thj와 결합된 단어이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이것을 히브리서 2장 2절에서는 “보응” 이라고 번역해 놓았으나 다른 구절에서는 “상”, “상주시는 이”로 번역해 놓았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히 2:2)
4. “상(賞)”으로 번역된 misqo,j 어군
위의 관찰에서 개역한글판 신약성경이 부분적으로는 misqo,j 어군을 정확하게 “삯”과 관련된 단어로 번역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아주 중요한 구절에 이 단어는 불행스럽게도 “상(賞)”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구절들이 “삯”으로 번역될 때 신학적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번역자들을 지배했던 것 같다. 아니면 삯과 상의 정확한 차이를 간과했거나 몰랐었는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한 신학적 난제인 보상론(報償論)을 신약성경에서 삭제한 효과를 얻었는 지 몰라도 포상론(襃賞論), 수상론(受賞論), 수상론(授賞論) 혹은 (차등)상급론이라는 다른 신학적 난제를 끌고 들어오고 말았다. 이렇게 개혁신학의 한 주제가 한국에서 사라지고 다른 한 주제가 한국에만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복음을 받았고 개혁신학을 꽃피운 서구 언어가 misqo,j를 한국식 “상(賞)” 개념으로 번역하거나 이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단어는 독일어 성경에서는 Lohn, 화란어 성경에서는 loon으로 번역되었다. 영어 흠정역은 대부분 이를 reward로 번역하였다. reward는 한국어의 “상(賞)” 개념과 통하는 점도 조금 있지만, 오히려 보수, 대가의 개념이 훨씬 강하다. 한국어의 “상(賞)”은 영어의 prize와 더 잘 통한다.
아래에 “상(賞)” 어군으로 번역된 misqo,j어군을 “삯”과 관련된 단어로 번역해 본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삯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삯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삯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삯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삯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5)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삯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16)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삯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삯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삯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1-42)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삯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삯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3)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삯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 6:35)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삯을 받으리라”(고전 3:8)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삯을 받고”(고전 3:14)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삯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삯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전 9:17-18)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삯을 얻느니라”(히 10:35)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삯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삯주심을 바라봄이”(히 11:26)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삯을 얻으라”(요이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삯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삯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출처] 신약성경의 삯과 상개념 연구/정훈택 교수|작성자 쥬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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