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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서

케임브리지 선언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3-08-01 01:56
조회
5994

케임브리지 선언
1996년 4월 20일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은 점점 더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이 시대의 영의 지배를 받아가고 있다. 복음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죄를 회개하고 역사적인 기독교의 믿음을 회복할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 말은 변화한다. 우리 시대에는 ‘복음주의’라는 단어에 이 일이 일어났다. 과거에 이 말은 여러 다양한 교회의 전통들 가운데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결속시키는 끈의 역할을 했다. 역사적인 복음주의는 고백적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공의회가 정의한 핵심 진리들을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복음주의자들은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오직’에 담긴 유산 또한 공유하였다.

오늘날 종교개혁의 빛이 심각하게 희미해졌다. 그 결과 ‘복음주의’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여서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그 단어가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결속을 잃어버릴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난국으로 인해,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교회를 향한 우리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종교개혁과 역사적 복음주의의 핵심 진리들에 대한 헌신을 새롭게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가 이 진리들을 확인하려 하는 것은 전통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성경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 권위의 쇠퇴

성경만이 교회 생활의 무오한 규범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복음주의 교회는 성경을 그 권위 있는 기능으로부터 분리해버렸다. 실제로는 교회가 문화의 인도를 받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교회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기능하며, 무엇을 제공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보다 치료 기술, 마케팅 전략,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소리가 할 말이 더 많은 경우가 많다. 음악에 담긴 교리적 내용을 포함해 예배에 대해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감시를 목사들은 태만히 하였다. 성경의 권위가 실제로는 버려지고, 성경의 진리들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에서 사라지고, 그 교리들이 중요성을 잃어감에 따라 교회는 점점 더 그 고결함과 도덕적 권위와 방향성을 잃어갔다.

우리는 소비자의 감지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참된 의로움의 유일한 기준으로, 복음을 구원하는 진리의 유일한 공표로 선언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는 교회의 지각과, 양육과, 훈련에 필수불가결하다.

성경이 우리를 우리의 인지된 필요를 넘어 참된 필요로 데려가야 하며, 자신을 매력적인 이미지와 상투적 말들과 대중문화가 주는 희망들과 우선순위들을 통해 바라보는 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빛 안에서만 우리 자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해야 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견해나 이 시대의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그 가르침들에 대한 강해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외에 무엇으로도 만족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경험하는 성령님의 역사는 성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성령님은 성경과 무관한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영적인 경험이 아닌 성경 말씀이 진리의 시금석이다.

[제1명제: 오직 성경]
우리는 무오한 성경이 기록된 신적 계시의 유일한 근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오직 성경만이 양심을 구속할 수 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 받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오직 성경으로 판단 받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신조나 공의회나 개인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구속할 수 있음을 부인한다. 성령이 성경에 진술된 것에 무관하게, 혹은 반하여 말씀하신다거나 개인의 영적 경험이 계시의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 중심 신앙의 쇠퇴

복음주의 신앙이 세속화됨에 따라 그 관심사도 문화의 관심사로 더럽혀졌다. 그 결과는 절대적 가치의 상실과 자유방임적 개인주의이며, 건강함이 거룩함을 대치하고, 회복이 회개를, 직관이 진리를, 느낌이 믿음을, 우연이 섭리를, 그리고 즉각적인 즐거움이 영속적인 소망을 대치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우리 시야의 중심에서 사라졌다.

[제2명제: 오직 그리스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의해 성취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분의 죄 없는 삶과 오직 대속적인 속죄만이 우리의 칭의와 성부와의 화해를 가져올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선언되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한 믿음이 요청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이 선포된 것이 아니다.


오직 은혜: 복음의 쇠퇴

인간의 능력에 대한 부당한 신뢰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산물이다. 자존감의 복음으로부터 건강과 부의 복음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팔아야 할 상품으로 변형시키고 죄인들을 물건을 사고자 하는 소비자로 변형시킨 사람들로부터 단순히 효과로 복음의 진실성을 평가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현재 복음주의 세계는 이 거짓 확신으로 가득하다. 교회들의 외적인 서약에도 불구하고 이는 칭의 교리의 입을 막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필요 인자일 뿐 아니라 유일한 동력인(efficient cause)이다. 우리는 사람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나며 중생케 하시는 은혜에 협력할 능력조차 없음을 고백한다.

[제3명제: 오직 은혜]
우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그의 진노로부터 구출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으로 일으켜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
우리는 구원이 어떤 의미에서건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사람의 수단, 기술 혹은 전략은 그 자체로는 이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우리의 중생하지 않은 본성에서는 믿음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믿음: 가장 중요한 신조의 쇠퇴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신조이다. 오늘날 이 신조가 종종 무시되고, 왜곡되고, 때로는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들과 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부정되기까지 한다. 비록 타락한 사람의 본성은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를 언제나 싫어했지만, 현대성은 성경의 복음에 대한 불만의 불꽃에 기름을 퍼부었다. 우리는 이 불만이 우리 사역의 본질과 설교에 영향을 끼치도록 허용했다.

교회성장운동을 하는 많은 이들은 성공적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회중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를 갖는 일이 선포되는 성경의 진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 결과 신학적인 확신과 사역이 유리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많은 교회들의 마케팅 지향성은 이보다 더 나아가 성경 말씀과 세상의 구분을 없애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치는 것을 없애며, 기독교의 믿음을 세상 사업체의 성공을 위한 원리들과 방법론들로 축소시켰다.

이런 운동들은 십자가의 신학을 믿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십자가에서 그 의미를 제하여 버린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리자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그에게 전가하시고, 우리에게 그의 의를 전가하시는 것만이 복음이다. 그가 우리의 심판을 짊어지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영원히 용서 받은 자, 영접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자로서 그의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우리의 애국심이나 교회에 대한 헌신, 도덕성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을 선포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제4명제: 오직 믿음]
우리는 칭의가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을 통해 이루어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의가 칭의시에 우리에게 전가된다.
우리는 칭의가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공로나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의가 주입되는 것에 근거한다는 말을 부정한다. 또한 스스로를 교회라고 주장하면서도 오직 믿음을 부정하거나 정죄하는 기관이 합당한 교회로 인정될 수 있다는 말을 부정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하나님 중심적 예배의 쇠퇴

지금까지 교회에서 성경의 권위가 상실되거나, 그리스도가 다른 것으로 대치되거나, 복음이 왜곡되거나 믿음이 부패하는 일은 언제나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일어났다. 우리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관심사를 대치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방법대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성이 사라진 것은 일반적이고도 통탄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예배를 엔터테인먼트로, 복음 전파를 마케팅으로, 믿음을 테크닉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는 것으로, 신실성을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변형시키게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 결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경은 우리에게 너무도 의미 없고 너무도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사람의 야망이나 갈망, 소비욕, 혹은 우리의 개인적인 영적 관심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필요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예배의 주인이시다. 우리 자신의 왕국이나 인기, 혹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5명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 성취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며, 우리는 언제나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오직 그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예배를 엔터테인먼트와 혼동하거나, 설교에서 율법이나 복음을 무시하거나, 자기개발, 자존감, 자아실현이 복음의 대안이 되도록 허락하면서도 합당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부정한다.


회개와 개혁으로의 초청

과거 복음주의 교회의 신실성은 오늘날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이십 세기 초 복음주의 교회들은 선교를 위한 놀랄만한 시도를 지속하였고, 성경적 진리와 그리스도의 나라의 대의를 섬기기 위한 신앙 기관들을 많이 설립하였다. 그 때는 그리스도인의 품행과 기대가 문화 속의 그것과는 현저히 다른 시기였다.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늘날의 복음주의 세계는 성경적 정절과 도덕적 범위와 선교적 열정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성을 회개한다. 우리는 전혀 복음이 아닌 세속 문화의 ‘복음’에 영향 받아 왔다. 우리에게는 진지한 회개가 없었고, 스스로의 죄에 대해서는 눈 먼 채 다른 사람의 죄만 뚜렷이 보았으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원 사역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설명하는 일에 있어 변명의 여지 없는 실패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우리는 교회를 나약하게 만들어왔다.

우리는 또한 이 선언문에서 논의된 문제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복음주의자들이 돌아올 것을 진심으로 요청한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이도 영생의 소망이 있다고 선언하는 사람들, 이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이 영원한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멸절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비록 칭의라는 성경의 교리를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복음주의자와 로마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신앙고백적 복음주의자 연합 (The Alliance of Confessing Evangelicals)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예배와 사역과 정책과 삶과 전도에서 이 선언문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멘.

신앙고백적 복음주의자 연합 실행 위원회 (1996)

존 암스트롱 (Dr. John Armstrong)
알리스테어 벡 (The Rev. Alistair Begg)
제임스 M. 보이스 (Dr. James M. Boice)
로버트 갓프리 (Dr. W. Robert Godfrey)
존 D. 하나 (Dr. John D. Hannah)
마이클 S. 호튼 (Dr. Michael S. Horton)
로즈마리 젠센 (Mrs. Rosemary Jensen)
R. 알버트 몰러 (Dr. R. Albert Mohler, Jr.)
로버트 M. 노리스 (Dr. Robert M. Norris)
R. C. 스프룰 (Dr. R.C. Sproul)
진 에드워드 비스 (Dr. Gene Edward Veith)
데이빗 웰스 (Dr. David Wells)
루더 위틀록 (Dr. Luder Whitlock)
J. A. O. 프레우스 3세 (Dr. J.A.O. Preus, III)

(이 선언문은 The Alliance of Confessing Evangelicals의 허락을 받아 예수가족교회 임범진 집사가 번역한 것입니다.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www.alliancenet.org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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