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서
프랑스 신앙고백 (1559년)
프랑스는 존 칼빈의 조국이며 그가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고 거기에다가 프랑스의 왕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서문으로 대신하여 붙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자기 조국의 종교개혁을 간절히 염원하였던 증거이다.
다시 칼빈은 만년에 와서 보다 더 원숙한 신학과 개혁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 조국에서 소수파로서 박해를 받고 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위하여 신앙고백을 준비하였는데 그것이 프랑스 신앙고백이다. 그가 준비한 고백을 그의 제자 샤데이우(De Chandieu)가 개편하였고, 이것이 1559년 파리의 노회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동역자이며 후계자인 베자(Beza)가 1561년에 이 고백을 프랑스의 왕 샬 9세에게 발송하였고 서문은 왕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리고 1571년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전국 총회가 로쉘(Rochelle)에서 모였을 때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 신앙고백을 “로쉘 신앙고백”이라고도 부르지만 통용되고 있는 명칭은 “프랑스 신앙고백” 혹은 “갈리칸 신앙고백”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강력한 카톨릭 국가 중의 하나였으므로 개신교도들은 늘 심한 박해를 받았었다. 그러다가 개신교를 동정하고 인정한 앙리 4세가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엄숙하게 이 신앙고백을 공인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 신앙고백은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 하는 것이며 16세기에 작성된 유명한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고백은 본래 프랑스어로 쓰인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 프랑스인들이 일치하여 1559년에 이 신앙고백을 만들었다.
(하나님)
제1조. 우리는 하나님은 단 한 분만 계시며, 그는 영적이며, 영원하며, 보이지 않으시며, 불변하시며, 무한하시며,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시며, 말로써 다 형용할 수 없으며 전능한 단 하나의 단순한 본질을 가지심 분이며, 가장 지혜로우시고, 가장 선하시고, 가장 정의로우시며, 가장 자비로우신 분임을 믿고 고백한다.
(성경)
제2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다음과 같이 계시하셨다. 첫째, 그의 행하신 일들과 창조와 그리고 만물의 유지와 지도를 통하여, 둘째는 더 분명하게 그의 말씀을 통한 것인데 처음에는 직접 말씀 하셨으나 나중에는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책들 안에 기록되게 하셨다.
제3조. 이 성경은 구약과 신약의 정경들로 구성된 것인데 다음과 같다. 모세의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사,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파랄리포메논(Paralipomenon)이라고도 불리는 역대기상, 역대기하, 에스라, 그리고는 느헤미야, 에스겔 욥기, 시편, 잠언 혹은 솔로몬의 격언, 전도서, 솔로문의 노래, 그리고는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그리고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누가의 둘째 책 혹은 사도행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모데에게 본낸 첫째 편지, 디모데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야고보의 편지, 베드로의 첫째 편지, 베드로의 둘째 편지, 요한의 첫째 편지, 요한의 둘째 편지, 요한의 셋째 편지, 유다의 편지, 요한계시록.
제4조. 우리는 이 책들이 정경이며 우리의 신앙의 확실한 규범임을 아는데, 그것은 의견의 일치나 교회의 합의보다는 오히려 성령의 증거와 내적인 조명에 의하는 것이니, 성령께서는 아무리 유익할지라도 교리를 찾아낼 수 없는 교회의 다른 문서들과 정경들을 우리가 구별할 수 있게 하신다.
제5조.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이 책의 권위는 다만 하나님에게서만 받은 것이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성경이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사람이나 천사라 할지라도 성경에 더 첨부하거나 혹은 성경에서 삭제하거나 그 책을 고치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다. 따라서 고전, 관습, 다수, 사람의 지혜, 판단, 선포, 칙령, 포고, 회의, 환상, 혹은 이적 등등의 어떠한 것의 권위도 성경의 여러 책들을 반대할 수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성경에 일치되게 검토되며 규정되며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 신앙고백, 즉 사도신조, 니케아신조 및 아다나시우스신조를 고백하는 까닭은 이 신조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제6조. 성경의 책들은 앞에서 고백한 대로 하나의 단순한 거룩한 본질이시며 곧 삼위(三位)이신 성부, 성자, 성령이 있음을 가르친다. 성부는 만물의 최초의 원인이며 원리이며 기원이다. 성자는 성부의 말씀이며 영원한 지혜이다. 성령은 성부의 덕력(德力)이며 능력이며 효능이다.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부터 탄생하신 분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시는 분이다. 이 삼위(三位)는 혼동되지 않고 구별이 있되 서로 분리되지 않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며 영원성과 능력이 평등하시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옛날의 회의들이 제정한 것을 고백하며, 성 힐라리(Hilary), 성 아다나시우스, 성 키릴(Cyril)과 같은 교부들이 배척한 모든 종파들과 이단들을 기피한다.
(창조)
제7조. 하나님은 삼위(三位)의 동시적 사역으로 그의 능력과 지혜와 다 알 수 없는 선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들까지인데 그 중의 어떤 것은 타락하여 멸망하였고 어떤 것은 여전히 순종하고 있다. 전자는 악으로 부패되어서 모든 선의 원수들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체 교회의 원수들이 되었다.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그가 선택하신 삶들의 구원을 돕는 사역자들이 되었다.
(섭리)
제8조.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주관하시며 지도하시며, 그의 주권 의지로써 세상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시며 정비하심을 우리가 믿는다. 그러나 그가 악을 지으신 분이라든지, 혹은 죄책이 그에게 전가되는 것을 믿지 않으니, 그의 뜻은 모든 정의와 공의의 최상의 절대무오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악마들과 죄인들이 범하며 죄책을 져야할 악을 선으로 변하게 하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믿으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숨겨진 비밀들 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이며 우리의 이해가 미치지 않는 것에 대하여서는 질문을 일삼지 않고 다만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성경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것을 이용할 뿐이다(적정과 절도의 원칙).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셔서 성부로서의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보시어 자기의 뜻을 어기면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악마들과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제압하셔서 자기의 허락 없이 그들이 우리를 헤칠 수 없게 하신다.
(죄)
제9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순전하고 완전하게 창조된 것과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그가 받은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서 정의와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서 본성이 전적으로 부패되었음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믿음이 어두워졌고 심정이 부패하였으므로 사람의 모든 순수성을 잃어버렸고 그 안에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사람이 여전히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 그가 가진 빛은 어둠이 되어 그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다(노예의지). 또 비록 이것저것을 하도록 사람이 자기를 격려할 의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의로운 일을 행하도록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일반은총).
제10조. 아담의 후손은 다 원죄에 묶여 있는데 이것은 유전적인 악이어서 펠라기우스파가 선언한 단순한 모방이 아님을 우리는 믿으며 그들의 과오를 미워한다. 또 우리는 죄가 어떻게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전해지는지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것은 아담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의 모든 후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든 선한 것들을 박탈당하였고 그와 함께 죄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죄의 전가).
제11조. 이 악은 참으로 죄이며 비록 모태에 있는 어린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전체 인류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며, 하나님도 그 악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우리는 또한 믿는다. 세례를 받은 후도 죄과는 여전히 죄의 상태로 있되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죄과에 대한 정죄가 폐지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에 기인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죄과는 언제나 악의와 반역의 열매를 맺는 본성을 가지는 것이고, 가장 거룩한 사람들이 죄악에 저항하지라도 현세에서는 여전히 많은 약점과 불완전한 것을 지니게 된다.
(예정)
제12조. 우리는 모든 사람이 빠져 있는 이 부패와 보편적인 정죄로부터 하나님은 자기의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선하심과 자비로써만 선택하신 사람들을 그들의 업적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자비의 풍부하심을 그들 가운데서 나타내시기 위하여 부르셨으며 자기의 공의를 그들에게 나타내시기 위하여 여타의 사람들은 동일한 부패와 정죄 아래 남겨두셨다고 믿는다. 전자를 하나님이 세계의 창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신 자기의 불변한 목적에 따라 분별하시기까지는 후자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누구도 자기 자신의 선행으로 이러한 보상을 얻을 수 없으니 그 까닭은 본성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들 마음에 먼저 넣어 주시지 않으면 단 한 가지도 선한 감정이나 애정이나 혹은 생각을 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제13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었고 또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워진 분이며 또 “우리의 지혜와 의와 성화와 구원이 되셨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그를 거절하면 우리의 피난처로서 발견될 수 있는 유일한 성부의 자비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제14조.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그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하나님과 사람이 한 인격(Person) 안에 있게 되었으며(이성일인격/二性一人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몸과 영혼이 고난을 당할 수 있으되 죄의 모든 허물에서 자유로우심을 믿는다. 그리고 비록 그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었을지라도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과거에 교회를 어지럽혔던 모든 이단들과 특별히 세르베투스의 악마적인 망상을 배척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환상적인 신적 속성을 돌리면서 그를 만물의 이념이니 모형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혹은 상징적인 아들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피조물이 아닌 세 가지 요소를 지닌 몸을 가진 분이라고 말함으로써 양성을 혼돈하거나 파괴하게 이르렀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제15조. 우리는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실질적으로 그리고 분리되지 않게 접하고 연합되어 있으나 각 본성이 그 본래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이 연합으로 신성이 그 속성을 보유하면서 피조물이 아닌 무한하고 무소부재한 존재로 남아 있음을 믿는다. 또 그의 인간성은 유한하고 인간의 형태와 한계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또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그의 몸이 영생을 얻었지만 그의 몸에서 몸의 참된 본성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신성을 생각하되 그의 인간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제16조.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과 무한한 선의를 보여주시기로 의도하시고 모든 의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를 죽는 자리에 내어주셨고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음을 믿는다.
(칭의=의롭게하심)
제17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주신 완전한 희생제물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그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하셨으니, 이는 그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도말하시지 않는 한 우리가 하나님에게 용납될 수 없을뿐더러 그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끗하고 완전하게 되었으며,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완전히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으며, 오직 그의 공로로써만이 우리가 우리의 허물과 죄과로부터 구제될 수 있음을 선언한다.
제18조. 우리는 시편 시인이 말한대로(시32:2) 우리의 모든 의는 우리 죄의 용서에 달렸으며 우리의 유일한 축복도 또한 거기에 있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달리 의롭게 되는 모든 방법을 거부하며, 어떠한 선행과 공로도 내세우지 않고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면전에서 은혜와 선의를 발견할 수 있게 우리에게 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만 단순히 의지한다. 그리고 실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 토대에서 떠나가면 다른 데서 안식을 찾을 수 없고 언제나 괴로워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받을 것을 결단하기 전에는 결단코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을 것이니, 우리 자신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19조. 우리는 이 방법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아버지로서 나타내실 것을 확신하고 그에게 기도할 자유와 특권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 까닭은 이 중보자 밖에는 하나님에게 접근해 갈 수 있는 길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기도의 응답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머리이신 그에게서 우리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
제20조. 우리는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명하지 않으리라”고 기록대로 믿음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약속들을 우리의 것으로 삼으며, 또 그 약속들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움을 받았으며 속일 수 없음을 확신하면서 그 약속들의 효과를 느끼는데 달렸다. 이렇듯 믿음을 통한 우리의 의인됨은 하나님이 선언하시고 그리고 자기 사랑을 우리에게 증명하여 주신 자유로운 약속(말씀)에 달린 것이다.
제21조. 우리는 성령의 신비한 힘으로 믿음 안에서 조명을 받았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뜻하신 사람들에게 주신 고마운 특별한 은사이어서 선택된 사람이 영광을 받을 이유는 없고 다만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낫게 호의를 받은 데 대하여 이중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믿음이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서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끝까지 믿음을 계속 가지도록 하시는 것으로 믿는다(견인).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일을 시작하셨을 뿐더러 그 일을 또한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선행)
제22조. 우리는 이 믿음으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나 본성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의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복음서가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을 받음으로 거룩하게,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다. 이 믿음은 거룩한 생활을 못하게 우리를 방해하거나 혹은 의를 사랑하지 않게 만들지 않고 반드시 우리 안에서 모든 선한 일을 맺게 하신다. 더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구원을 위하여 일하시며 또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선한 일을 결심하게 하시지만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위들은 그의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의인을 위하여 공을 세운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선행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채택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아니니, 그 까닭은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놓아주신 그 속량에 의존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의심하며 마음에 쉼이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의식법/도덕법/율법의 제3용법)
제23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율법의 명령들은 끝났으며 비록 그 의식들은 이제는 더 사용되지 않지만 그것들의 실체와 진리는 그것들을 완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더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다스리기 위함과 동시에 복음의 약속들의 확인을 위해서 율법과 예언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제24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변호자이시며, 또 그가 자기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기도하도록 명령하시므로, 따라서 하나님이 자기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신 모범과 일치되는 기도가 아니면 올바른 것이 못되기 때문에 죽은 신도들을 대신하여 드리는 기도에 관한 착상은 불합리하며 예배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유도하는 사탄의 생각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구원하려고 하는 모든 다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을 해치는 것이므로 배격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연옥이 동일한 출처에서 나온 착각으로 생각하며, 거기에서 또한 수도원의 서약, 성지순례, 성직자의 결혼금지, 육식금지, 특정 제일(祭日)들(성일<聖日>들=부활절 및 성탄절 등)을 지키는 의식들, 고백제도, 면죄부 그리고 사죄와 구원을 얻는 공적을 세우려는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생겼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배격하는 까닭은 그것들에 부착되어 있는 공로사상만이 아니고 그것들이 사람들의 양심에다가 멍에를 메우는 인간의 발명이기 때문이다.
(교회)
제25조. 이제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권위로 세워진 교회의 제도는 신성한 것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교훈을 주기 위한 목사가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가 정식으로 초청되고 그 직책을 충실하게 수행할 때 우리가 그를 존경하며 순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이러한 도움과 종속적인 방편을 꼭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러한 제약으로 그가 우리를 다스리시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자기들의 세력이 미치는 한도에서 말씀의 설교와 성례전을 파괴하고자 하는 모든 공상가들을 배척하는 바이다.
제26조. 우리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유리시켜서 혼자 만족할 것이 아니고 오직 모두가 합동하여 교회의 연합(공동체)을 유지해야 하며, 하나님이 교회의 참된 제도를 세우신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또 비록 집정관들과 그들의 법령이 이 제도에 역행한다 할지라도 공적인 교훈과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교회제도에 참여하지 않거나 혹은 거기서 분리해 나가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제27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것이 참된 교회인지를 조심스럽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데 참된 교회라는 명칭이 악용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는 그의 말씀과 그 말씀이 가르치는 순수한 종교에 순종하는 일에 하나가 된 신실한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 성도들은 그 말씀 안에서 생애를 이끌어 전진해 가며 성장과 전진이 있어야 하겠다고 느낄 때는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으로 더 성장해 간다. 그들이 비록 계속적으로 노력하지만 자기들의 죄의 용서 밖에는 다른 아무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도들 가운데는 위선자들과 버림받은 자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그들의 사악이 교회의 이름을 파괴할 수 없음을 믿는다.
제28조. 우리는 이 신앙을 가지고 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또는 신앙고백이 그 말씀에 종속하지 않거나 또는 성례전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황의 집회들을 정죄하는 까닭은 거기서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추방되었고 그들의 성례전은 부패되었거나 거짓된 것으로 변했거나 혹은 파괴되었으며 모든 미신과 우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여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다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키고 절단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어떤 흔적이 교황의 교회에도 남아 있고 세례의식의 효과와 실체가 남아 있으며 또 세례의 효과가 집례자에게 달린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세례의 부패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이 계속해서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된다면 아이들은 반드시 오염되게 될 것이다.
(교회정치)
제29조. 우리는 참된 교회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질서에 따라 통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즉 교회에는 목사들, 장로들, 그리고 집사들이 있는 까닭은 순전한 교훈이 유지되며 악덕이 시정되고 억제되며, 또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구제를 받기 위함이다. 또 집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며 거기서 성인이나 아이들이나 다 경건의 훈련을 받기 위함이다.
제30조. 우리는 모든 참된 목사는 어떠한 곳에서든지 단 한 분의 머리, 단 한 분의 군주, 전체교회의 감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동일한 권위와 평등한 권세를(동등권)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교회도 다른 교회를 통치하거나 지배할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고 믿는다.
제31조. 우리는 누구도 자기 자신의 권위에 따라 교회의 통치에 간여할 수 없고 다만 가능한 한,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선거를 통하여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여기에 예외적인 조건을 만든 까닭은 때에 따라서는 또는(교회의 지위가 방해를 받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 하나님은 황폐되고 부패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고 치고라도 우리는 언제나 이 규칙에 맞춰야 하며, 모든 목사, 장로 및 집사는 자기들의 직책이 소명을 받고 있는 증거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제32조. 우리는 또한 감독으로서 선택된 사람들이 교회의 모든 지체의 관리를 위하여 취할 방법에 대하여 그들이 서로 연구하며, 그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정해 주신 것에서 결단코 떠나서는 안될 것을 믿는다. 그런데 이것은 편의상 각처에서 어떤 특별한 제도들이 있을 수 있음을 막지 않는다.
제33조.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구실 아래서 사람들이 도입하여 사람의 양심을 구속하려는 모든 인간의 발명들과 법들을 우리는 배격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파문(권징)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에 따라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파문의 선행조건들과 결론들을 위하여 필요함을 증명하며 또 고백한다.
(성례전)
제34조. 우리는 성례전이 말씀을 보다 더 충분하게 확인하여 주며, 또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과 표가 되며 또 이 방법으로 우리의 신앙을 도우며 위로하여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약함 때문이며, 또 성례전은 하나님이 자기의 성령을 시켜 역사하시는 외부적인 표지들이니 그는 아무 것도 헛되게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심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성례전의 본체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성례전 그 자체는 다만 연기와 그림자에 불과함을 주장한다.
(세례)
제35조. 우리는 모든 교회에 공통되는 단 두 가지 성례전을 고백한다. 그 처음 것은 세례의식인데 이것은 우리를 자녀로 삼는 증거로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받아 우리가 정결하게 되며 그의 몸에 접붙임을 받고 그 결과 성령으로 순진한 생명으로 중생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한 번만 세례를 받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받는 은혜는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확대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우리를 의롭게 보시며 성화하시는 영구한 보증이 됨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의식은 믿음과 회개의 의식이지만 하나님은 어린이들을 그 부모들과 함께 교회에 받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신자들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받게 할 것을 주장한다.
(성찬)
제36조. 우리는 (둘째 성례전인) 성찬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 사이의 결합의 증거임을 고백한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한 번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피와 살을 가지시고 우리를 양육하시기 때문이니, 이것으로써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며 그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실 때까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의 신비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그의 몸의 피의 실재를 가지고 우리를 양육하심을 믿는다. 이 일은 영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주장하는 까닭은 사실과 진리 대신에 상상과 공상을 대치시키기 때문이 아니고 다만 이 신비의 위대성이 우리의 감각과 자연의 법칙들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것은 하늘에 속하는 일이므로 믿음으로만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37조. 우리는 (이미 말한 대로) 성찬과 또 세례의식에 있어서 하나님이 거기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을 현실에서 또 사실로서(참으로)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표지들과 함께 그것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을 참으로 소유하며 즐긴다. 또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거룩한 식탁에서 물이 그릇을 채우듯이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은 다 그 표지들이 증명하는 것과 같은 것을 참으로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빵과 포도주가 몸을 가리키듯이 영혼의 식물과 음료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제38조. 이렇게 하여 우리는 세례의 물은 약한 물질이지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효능으로 우리의 영혼을 내부적으로 정결하게 하심을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빵과 포도주는 성찬 의식에서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의 참된 영의 식물이 됨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살은 우리의 식물이고 그의 피는 우리의 음료수임을 우리의 육안으로 보듯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것은 내 몸이며 또 이 잔은 내 피라고 말씀하신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지들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 열광주의자들과 성례전 상징주의자들을 배격한다.
(국가)
제39조. 우리는 하나님이 무질서한 욕망을 억제할 법률들과 집정관들을 두셔서 이 세상이 통치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왕국, 공화국, 또 세습적 및 비세습적인 여러 나라와 또 정당한 정부에 속한 모든 것과 또 그것들의 창시자로 인정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들을 설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만 십계명의 제2계명을 어길뿐더러 제1계명도 어기는 범죄를 제지하시기 위하여 위정자의 손에 검을 쥐어 주셨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저 그들이 고관이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며, 또 그들을 하나님의 대리자, 또는 사무원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올바르고 신성한 직무의 수행을 위임하셨다.
제40조.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법률과 규칙에 따르며, 세금, 조세, 그 밖의 의무를 수행하며, 또 선의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비록 그들이 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침해를 받지 않는 한 복종하는 멍에를 메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위를 거부하고 재산의 공유와 혼란을 일삼으며 정의의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모든 사람들을 배격한다.
[출처] 프랑스 신앙고백(1559)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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