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서
"케임브릿지 선언" 의 의의 (Korean)
케임브릿지 선언의 의의 (Korean)
어느 종교에도 마찬 가지 이지만 기독교에는 신앙고백서 가 많다.
초대교회에는 "니케아 신경," "아다나시우스 신경," "콘스탄티노풀 신경," 또 저 유명한 "갈게돈 신경," 과 우리가 잘 아는 "사도신경" 등이 있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쓴 것이 아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후세 사람들이 기록했다. 문헌을 보념 처음에는 "공회" 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았으나 정통적으로 믿는 일반 교회의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서 "굥회," "caholic" "universal" 이라는 말을 추가 하였다.
이것은 천주교를 말함이 아니고 사도신경을 제정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것이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정상적인 정통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민든 보편적인 신앙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이외에 다른 뜻이 없었다. 어쨋건 이런 여러가지 신앙고백서들이 초대교회에 나왔다.
후에 종교개혁기를 맞으면서 더욱 분명하고 풍성한 신앙고백서들이 많이 등장했다.
1561년의 베르기 신앙고백서, 1563년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1566년의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1599년의 프링스 유그노족 (Huguenots) 들의 프랑스 신앙고백서, 1619년의 도르트 신경, 1647년의 웨스트민스터 싱앙고벽서 등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잘 요약한 대표적인 신앙교백서 들이다.
이런 신앙고백서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결정적인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초대교회는 신약교회에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특히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흔들어 놓았다. 그중의 대표적인 것은 헬라의 이교도적 청학 사상인 이른바 "노스틱 주의," 혹은 "영지주의" 라는 불리우는 이단 사상이 었다. 그래셔 초대교부들은 이들과 싸우면서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분별할 필요를 절감했다. 이런 이단들의 교회 침투로 인하여 교회 지도자즐을 서둘러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정립하는 신앙고백서를 제정하도록 박차를 가하였다.
또 한가지 신앙고백서를 서둘러 제장한 이유는 기독교가 점점 전파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때 그들이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기독교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성경의 핵삼 교리가 무엇인지 를 가르칠 핖요가 있서서 이다. 수세자들은 이런 신앙고백서 내용을 터득하고 이 진리에 동의하여 문답을 거쳐 수세하였다.
신앙고백서는 중요하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종교개혁기를 제외하고는 성도들이 성경공부에 등한히 한다. 특히 중세에 살던 성도들은 성경에 무식했고 교회 (유형교회) 에 순종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가르침에 익숙해 있었다.
성경도 라틴어 (5세기에 Jerome 이 번역한 Vulgage 판) 성경을 사용하였고, 설교도 라틴어로 하였으므로 누가 알아 들었겠는가? 특히 Steven 박사가 저술한 The Story of Reformation 이라는 책을 보면, 성직자중에서도 성경지식이 부족한 분들이 많았다고 하니 일반 성도들이 성경에 그리 밝지 못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중세에 문예부흥이 일어나고 문예부흥의 여파로 결국은 종교개혁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 하쎴다. 문에부흥은 "고전으로 돌아가자" 라는 모토를 가지고 고전들을 연구했는데 구라파 남부, 이를테면 이태리, 스페인, 포튜갈 등 여러 나라에서는 문학, 미술, 조각 등에 관심을 두고 그런 방면에 연구가 활발하여 Petrarch, Boccacio, Raphael, Michelangelo, Leonard da Vinci 등의 유명한 인물이 아름다운 예술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복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성경 연구의 붐이 일어 났다. 그들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연구하며 따라서 성경연구에 눈을 돌렸다. 그래서 가령 좋은 예를 들면, Reuchlin 의 히브리 사전은 그 효시 라고 볼수 있다. 15세기에 Johannes Gutenburg rk Printing Press (인홰기) 를 발명한 사실은 종교개혁에 막대한 도움을 주었다. ,하나님의 사람 Gutenburg 가 인쇄기를 발명한 후 처음 인쇄한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었다. 인쇄기 발명으로 성경이 급속히 보급되어 종교개혁에 촉매제 구실을 당당했다. 당시 성경이 얼마나 귀했는가? 몇권 안되는 성경은 모두 교회의 성직자들이 독첨하고 있었고, 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가질수가 없었다. 성경은 성직자들의 독점물이었다. 화약 발명으로 중세 사람들이 세계를 누비면서 영토를 넓히더니 인쇄기 발명으로 정신적인 혁명이 일어 났다.
1517년 10월 31일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유럽은 뒤집혀 졌고, 사람들이 성경에 눈을 뜨게 되었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바로 공부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마자 생겨난 것은 Martin Luther 의 오른 팔이었던 Philip Melanchthon 이 만든 "Augsburg Confession" 이라는 신앙고백서 였다. 이윽고 화란에서 The Belgic Confession (베르기 신앙고백서) 가 나왔다. 베르기 신앙고백서를 만든 화란 사람 Guido de Brea 라는 분은 서문에서 말하기를 "내가 등에 채찍을 맞아 등이 찢어셔 나가도, 내 혀가 짤라져 나가도, 나는 이 신앙고백이 옳다고 믿는다" 라고 하면서 베르기 신앙고백서를 제정하여 발표했는데 이 신앙고백서는 곧 화란 전국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1619년의 도르트 종교회의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받은 철저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이며 세계 개혁파 교단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신에 베르기 신앙고백서를 그들이 공식 신앙고백서로 받아 드릴 정도이다. 물론 그들은 베르기 싱앙고백서만 아니라 도르트 신경과 하이델벨크 요리문답도 기본 신조로 하고 있어서 이를 Three Forms of Unity (3대 기본 교리) 라고 하여 개혁교단에서 일하려면 이런 세가지 신조에 익숙헤 있어야 하고 이 신조대로 믿을 뿐 만 아니라 그 신조들이 교훈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들은 징계가 아주 엄격하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학려고 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셔 이외에 새로 신앙고백서가 1996년에 Massachusetts 주의 Cambridge 에서 나왔다고 하는 시실이다. 1996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미국의 개혁주의 교단의 신학자들과 신학교 교장들 20여명이 뜻이 같이하여 Cambridge 의 Harvard University 바로 앞에 있는 회의장소에 모여서 새로 신앙고백서를 제정했는데 이를 Cambriege Declaration (케임브릿지 신앙고백서) 라고 불리운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최근에 제정된 Cambridge Declaration 은 모두 5개 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그전에 이런 새로운 신조가 왜 나오게 되었으며 외 하필이면 Cambridge 이며 왜 하필이면 Harvard 대학 앞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새로운 신앙고백서에 서명한 이들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생각으로는 오늘의 기독교는 정통적 성경적 신앙이 퇴색해 간다는 것이며 그 정도가 이제 위험 수위에 까지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울부직으면서 순교하던 그런 성경적인 신앙은 간데 없고 사람이 만든. 기복신앙이나 극도의 자유주의, 적극적 사고 방식,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New Age 와 야합한 혼합주의, 그리고 극도의 신비주의 등이 교계를 혼탁하게 하는 일을 그낭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감연히 일어난 것이다. 특히 하바드 대학이 있는 도시는 그 주위에 많은 대학 켐퍼스 들이 산재하고 바로 미국의 동북부 이곳 New England 지방이 학구적인 젊은 엘리트들을 많이 배출하는 곳이지만 신앙면에서는 가장 먼저 자유화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첫 Unitarian 교단 협회가 생긴 것도 바로 이 지방이고 유명한 마녀 사냥(Witch hunt) 로 유명한 Salem (영국 Scotland 의 Edinburgh 의 Coven 과 비교) 이 바로 여기 Massachusetts 주에 있다. 미국이 생산하는 지적 elite 들에게
바른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함에서 이다.
그런 케입브릿지 선언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보자" 다섯가지로 종교개혁자들의 옛날 16세기에 외쳤던 신조들이다.
1.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성경만이 우리 생활과 신안의 유일한 법칙이며 다른 계시와 환상이나 꿈이나 천사의 방문등이 아니라 서경의 충족석을 믿으며 성경외의 다른 경전을 인정치 않으며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성경 해석의 원칙을 준수하며 성경의 완전 영감설과, 성경의 모오설등을 철저하게 믿는다.
2. Sola Fide (오직 믿음)
사람이 구원얻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진다. 이는 성경 엡 2:8-9에 잘 나타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성경에 입각해야 하며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18세기의 독일의 합리주의 (Rationalism) 이나 종교사학파 (Religionsgeschichte Schule) 의 생각이나 자유주의의 문서설 (Documentary Hypothesis), 나 성결비신화화 (Demythologization), 이나 상황윤리 (Situation Ethiic, New Morality), 나 적극적 사고 방신 (Positive Thinking), 번영신학 (Word-Faith Movement), 등은 성경적인 신앙에서 벗어남으로 배격한다.
3. Sola Gratia (오직 은혜)
구원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구원을 시작하면 하나님이 돕는 다는 가르침을 Synergism (협력적 중생설) 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가 구원할 자를 구원하며 처움서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시는 사역이라고 믿는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Monergism (독력적 중생설) 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구원은 독력적 중생으로 이루어 진다. 우리의 공로는 조금도 가산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아담안에서 죽었던 사람들이다. (엡 2:1) 죽은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갈수 있겠는가? 우리가 중생하는 것은 엡 1:4 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많은 사람들중에서 우리를 택해 주어 믿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로마서 9장 을 처음서 부터 끝까지 읽으라 이해가 될것이다. 한번 구원 얻은 섣도가 다시 구원을 잃지 않는것은 엡 2:8의 분법이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그 구절의 "구원을 얻었다" 는 말은 원문에서 "완료형분사" 이다.
그러므로 그 상태과 효력이 영원히 불변하는 핼레어의 문법이 입증한다. 또한 요 10:28, 롬 8:35-39 등 여러 구절들이 입증한다. 구원은 인위적인 노력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지는 것이며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이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이다.
4.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이다. 마리아가 우리의 구세주가 아니며 마리에에 경배할 필요가 업다. 딤2:5은 분명히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무이 한 중보자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 마리아가 언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 주었는가?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려 도성인신 (incarnaion) 하신 것 뿐이다.
예수를 믿던, 부처를 믿던, 모하메드를 믿던 구원을 얻는댜고 가르치는 것은 잘 못이다. 행 4:12에는 천하 인간에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독특한 분이시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 (Lord Jesus Christ)" 란 말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자
"주 (Lord, adonai) 란 말은 구약에서 여호와릉 칭한다. 예수님의 신성을 말한다. 그는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삼위일체로 계신 분이다. 그가 정하신 때에 인성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셧가도하여 그에게 인성의 예수와 신성의 에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 Nestorius 의 실수), 하나님 한분이 어떤 때는 성부로, 어떤때는 성령으로, 어떤때는 설자로 나타나는것도 아니다.(Sabellius 의 양태론의 실수).
삼위는 아다나시우스 신경에 분명히 말하는 대로 각각 득특하며 불변하고, 혼합되지 않고, 분리하지 않으며 통일을 이루고 계시다. 예수님이 인성을 입으셨다고하여 신성에 손상이 간것도 아니고 그가 우리와 다른것은 아니다 (죄를 제외하고). 그는 한 위 (One person)에 두 성품을 지닌 분이다. 그는 우리의 구워을 위해서 신성과 인성이 필요하신 분이다. "주님" 이라는 말은 여호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 란 말은 구약의 "예솨" 와 같은 말. 우리말 성경에는 "여호수아" 라고 기록되엇고 영문에는 "Joshua" 라고 되어 있지만 모두 구원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들이다. 우리는 민수기 13:16 에서 눈의 아들 호세아가 여호수아로 이름이 변경되는 것을 본다. 구원할자 라는 이름이다. 과연 그는 갈렘과 함께 이스라엘백성의 2세중에서 20세 미만의 병정 60만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성경에서 애급은 구원받지 못한 죄악상태를 상징하고 광야는 현세를 상징하고 가나안은 구원받은 상태를 상징한다. 가령 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 이 죽은 곳은 영적으로 말하면 소돔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애급이라고 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라고 했다. 구원 받지 못한 곳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참고로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은 바로 페역한 시대에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는 참된 교회를 말한다. 죽는다는 말은 문자그대로 죽음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의 설교를 듣는 이가 없으니 두 증인으로보아서는 죽은 것이다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어쨋건, "예수" 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 (히브리어 발음은 "에솨") 와 같다.
이 말은 그의 인성을 말한다. 예수님은 탄생때부터 마태복음 1:21에 "아드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니라" 라고 예언 된 분이다. 그는 마 20:23-25 말씀대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위해 오신 분이다. 예수님의 3가지 직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읖 핀한다.
그는 구약의 의식법의 완성이시다. 구약의 모든 의식법은 바로 예수님을 내다 보고 모형으로 행하신 것이다. 히브리 9장과 10장을 자세히 읽어 보라,
"그리스도" 란 말은 구약의 "메시야" 란 말로, "기름을 부움을 받았다 (the anointed one)" 의미이다. 그는 참 하나님으로 주님이 되시며, 여호수와 처럼 참 인간이시며 구약에서 왕, 선지자, 제사장 등 세가지 직분이 모두 기름 부움을 받아 직분을 감닿했듯, 그 한몸에 왕, 선지자, 제사장 등의 세가지 직분을 지니신 기름부움을 받으신 분이다. 그는 바로 우리에게 하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마지막 선지자이시며, 택함받은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저 십자가에서 유월절의 희생의 제물로 돌아 가심으로 구워을 완성하신 마지막 대 제사장이시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다스리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케임부릿지 선언은 이 점을 강조하여 "오직 그리스도" 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5.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니에게만 영광)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 요리 문답서 제 1문에 말하고 있고 성경 고린도전서 10:31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근자에 이런 성경적 가르침이 점 점 해이해 지면서 많은 분들이 인본주의 신앙을도입하여 자기 도취에 빠진다. 이 점을 시정하기 위해 종교개혁가들이 못토였던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 을 마지막 다섯번째 조항으로 케입부릿지 선언에 도입했다.
어떻게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는가? 케입븨릿지 선언의 서명자들의 생각은 우리의 말이나 생각이나 행하는 것이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햑의 세가지 특징이 있다. 그 세가지 특징이란 (1) Absolut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절대 주권), (2) Absolute Authority of Scripture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 그리고 (3) Faithful Application of Bibllical Principle to our Daily Life (일상 생활에 셩경의 원칙을 충실히 적요하는 일) 등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성도는 성경의 절재적인 권위를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재걱 주권을 높이며 일상생활에서 성경대고 충실하게 살려고 의식적으로 (consciousnly) 노력한다. 그러나 오늘의 사정은 이른바 "상황윤리" 니 "신도덕률" 이니 하여 교묘하게 성경적인 생활을 피해 간다. 공립학교에서 이른바 Values Clarification 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무엇이든 자기가 판단헤서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의 표준이 되어 그대로 행한다는 가르침이다. 실로 극히 비성경적인 생각이며 가장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성경의 권위을 무시하며, 자행자지 하는 패역적 생활이다.
대략 이상과 같은 설명을 Cambridge Declaration 에 달아 볼 수 있다. 이 선언에 서명한 학자들이 기대와는 반대로 이 선언은 극히 미미한 반응을 얻을 뿐, 신앙계는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기독교의 실태이다
그래서 본 튤립 교육 선교회을 비롯하여 여러 뜻있는 신학자들은 오늘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한다. "다른 복음을 따라가면 저주를 받는다" (갈 1:8) 라고. 우리는 심히 어려운 떄를 살고 있다. 문화 전번이 타락하고 기독교 전반이 배도하기 때문에 바로 믿으려는 사람들은 따돌림을 당한다 (ostracizing). 디모데후서
4장 1-5에서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말씀이 어쩌면 오늘 그렇게 정확히 우리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는가는 참으로 놀랍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빕니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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