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강해
주기도문 해설/강종수 목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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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표본이 됩니다. 주기도문을 주님의 기도와 구별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에 있습니다.
교리의 표본은 사도신경이고
윤리의 지침은 십계명이며
우리의 기도의 표본은 주기도문입니다.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기도의 내용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를 배운다는 것이 이상스럽게 들리지만 기도도 배워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눅 11:1)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주기도문을 요약하면 꼭 십계명의 순서와 같은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1-4계명이 먼저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다음 5-10번째의 인간을 향한 윤리적 계명이 그것입니다.
[ 주기도문 요약 ]
서론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본론 :
1. 하나님을 위한 간구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나라이 임하옵시며
3)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 우리를 위한 간구
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 옵시고
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결론 :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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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하늘에 계신’
이 하늘은 공간적 하늘(天)이 아니라 영적 하늘을 말합니다. 하늘은 높고 거룩하며 영광스러움을 상징합니다. 영어로는 sky가 아니라 heaven입니다.
사 6:1-3-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딤전 6: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여기 " 계신"이란 단어는 현재 진행형으로 하나님의 생존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 ‘우리 아버지여’
우리라는 말은 공동체 의식과 하나님의 우주적 주(主)되심을 의미합니다.
롬 3:29=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그리스도를 불신하는 상태의 영혼은 마귀가 지배합니다. 그것이 사회적인 죄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선한 일까지도 마귀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단정합니다.
요 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 아버지" 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는 친 부자(父子) 관계입니다
눅 2:48-50=“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2) 우리 성도들로서는 양자(養子)가 되어 부르는 칭호입니다
롬 8: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3) 하나님은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살아 계신 아버지이 십니다
고후 6: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갈 4:4-6=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요 16:23-26=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롬 8: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마 7: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롬 8: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일 3: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1. 하나님을 위한 간구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를 한다는 것은 개인의 요구를 신께 아뢰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성경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한 개인 기도를 하겠지만 기도의 출발은 하나님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한 감사와 찬양으로서의 기도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성경적으로 알고 거룩하게 불러야 합니다.
(레 22:32)너희는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망스럽게 부릅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들은 주의 이름을 난발하면서 유혹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 7: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아멘 " 이란 말도 주님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계 3: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에서 거룩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 )로 끊다,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세속에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소,성민,성시,성산,성경,성일,성령,성성(城),성직,성찬,성례,성미,성의,성가,성막,성전,성회,성역)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방인들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성경의 하나님으로 오해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칭호에 대한 이해( 야훼)
1. 성경에서 표현된 명칭
(1) 구약 :
(가) 엘, 엘로힘 : 주(主)되심, 권능자, 높으신 분. (나) 아도나이 : 재판자, 통치자. (다) 샤다이, 엘샤다이 : 축복, 위안자. (라) 여호와 : 자존자. (마) 만군의여호와 : 만왕의 왕
(2)신약 :
(가) 데오스 (하나님) : 지극히 높으신 분. (나) 큐리오스(主) : 지배 자. (다) 파테르 : 아버지.
2. 언어학적 고찰, 종교적 유래
(1) 고 양주동 박사 : 천의 원언은 "한"이었는데 음형의 변화에 따라 "하늘" 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2) 천도교 박세명씨 : 하나님, 하느님, 하늘은 같음
(3) 고 홍의석 교수 : 하늘, 하나님은 하늘님에서 온 개념
(4) 우랄알타이어에 속한 " 한 "은 간, 찬, 한 등의 접미어가 관직 명칭에 사 용( 법흥왕 7년,17관급 중 제 1급 )
(5) 몽고족 왕의 이름 "징기스칸, 이루칸국, 킵차칸국, 차카타이칸국, 오코타이 칸국.
(6) 옥스포드 사전: " 한 " = 위대한 통치자, 왕, 왕자, 주(主)
(7) 고대 동부 아시아에 사는 존귀한 자에게 붙임
1) 단군신화
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부인 인을 거느리고 " 태백산 " 산당수(개울가)에서 신시(神市)를 베풀었는데 웅녀와의 사이에서 단군(박달나무)이 출생, 이를 하나님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Halbert).
이 학설을 감리교 신학대학 윤성범 교수는 인정하고 유교나 불교에서 다같이 하나님의 존재 인정 .샤머니즘의 환인, 환웅, 환금(단군)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남선씨는 단군은 무당이라고 했습니다. " 단 " = 박달나무, 단군=무당, " 태백산 " = 클 태(太), 산(白山) = " 큰 산 ".
백두산, 소백산, 백월산, 백운산, 백산 등의 높은 산에는 신이 있다 하여 신산(神山)으로 이해, 단군의 아버지가 환웅인즉 환국(桓國)이 되었다고 합니다.
2) 샤머니즘 ( Samanism ) : 세상에서의 신명(神名)
퉁구스족 언어 '샤먼'에서 유래, 뜻은 ' 흥분한다 '.
모든 물체에는 정령(Spirit)과 혼백(souls)들로 차 있다고 함. 샤머니즘에서는 사제직, 의좌직, 예언직을 함. 그 중재자가 무당인데 귀신과 교통하고 계시함.
여러 최고 신들의 유형
(가) 바벨론 : 이스라, 말둑
(나) 가나안 : 바알
(다) 힌두교 : 다야우스, 피라
(라) 그리스 : 제우스
(마) 로마 : 쥬피터(제우스+피터)
(바) 아랍 : 알라
샤머니즘의 우주관
상계 - 선한 영들
중계 - 인간, 생물
하계 - 악령의 처소
3. 이방인들의 신명(神名)과 인식의 길
(1) 일본 : 야호요르즈노가미( 8백만 神 )에서 " 가미사마 "
(2) 중국 : 상제 - 3황 5제중 최고 중 최고 신
(3) 영어 : God( 하나님 ) god(s)( 잡신들, 귀신들 )
(4) 한국 : 1939년 9월 8일 제 28회 평양 신학교 총회 때 "하나님"으로 규정
(5) 윤성범 교수는 히브리어 발음 상, 아브-아버지, 애미-어머니가 비슷하다고 한국은 본래 하나님을 믿었다고 주장.
참 하나님( 성경적 하나님 )
1) 성경을 통하여
(롬 10: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요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6: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2) 성령으로
(고전 2: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12: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3) 행함으로
(시 119: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요 7: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2)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를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목적입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천국( 天國 ; 하늘 나라 )과 신국( 神國 ; 하나님의 나라 )은 같은 말인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 쓰기가 정신적으로 어려워 마태복음서(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피하였습니다(하늘 나라). 다만 이 말을 직역하여 풀이하면 천국은 장소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신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領域, 靈域)을 말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목표이자 인생의 감동입니다. 이 감동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삶에 충실 할 수 있고 내세의 확신 때문에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모든 기도의 중심이요 시작이요 원인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렇습니다.
천국(天國)
기독교에 가장 큰 소망이자 인간에게 알려지지 못한 세계입니다. 이는 약간의 민간 신앙이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세계입니다. 불교의 극락과는 다른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선 기독교의 천국은 장소성이 있으며 교주의 거처 지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게다가 신자들의 영원한 삶의 장소라 함에는 여간 경이롭지가 않은 사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4대 중심으로 보는 회개의 역할과 기도의 특권 그리고 증거 생활에 이어 천국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성경이 강조한 빈도 수가 그러합니다. 천국은 부활에 대한 가르침의 결과이자 모든 신자의 활동이 보장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생활은 지상에서 그 완전함을 나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약간의 맛을 볼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신자의 생활이 유쾌하고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 할 때 우리는 천국 같다고 이해할 뿐입니다.
기독 신앙자가 이 천국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신앙의 정도를 판단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내세의 천국에 대한 성경적인 믿음이 없이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신앙적 판단으로 처리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천국에서 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한 판단을 받아 그 영광대로 상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신자의 생활은 천국의 영생에 대처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구체적인 모양과 삶의 방식에 관하여는 성경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종교의 내세관보다 명확합니다.
기독교의 강조 점이 천국이 아니고 삶의 과정에 관설하여 집중한다면 세인들의 철학에는 호응을 많이 받겠지만 성경적으로는 미약합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목표가 그러하고 신약이 구약과 다른 점이 바로 내세에 관하여 궁극적 목표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어쩌면 다른 이방인들이 기대하는 기복적 신앙 사상에는 상통한 점이 많은 것을 봅니다. 구약 성경에는 천국이라는 낱말이 없듯이 정통 유대인은 내세의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구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은 천국으로 종결지으려 하는 성경 사상을 우리는 역력히 알 수 있습니다. 억지로 사람의 요구에 충족키 위한 신학을 만들어 상황론적 신학, 즉 상황윤리 신학이라는 것 등을 발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근본 목적을 흐리게 하고 종교적으로만 가능케 하는 신앙자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 그 이상의 무엇이기에 우리는 종교적 색채로 잘 소개 해 주는 세속을 위한 가르침에 속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를 성경에는 초등 학문이라 했으며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의 세계로 알 것뿐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사람이 가서 살 곳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곳에 가셨습니다. 우리가 그의 재림 시에 부활되어 그곳에 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약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신앙의 전면적 활동과 사상이 헛되고 말 것이라 하며 중심이 되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태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자들의 천국에 대한 간증으로 그 세계를 이해하려 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오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설명 또한 규칙적이지 못한 것을 듣게 됩니다. 성경에서 천국을 이해 할 수 있도록 한 여러 증거가 있습니다. 다만 난해하기 때문에 학문적 이해와 아울러 천국형 인격과 감동을 힘입어 깨닫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천국에 대하여 추상적이지 않고 보다 소상히 그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적 해석만으로는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과 모양을 말하려는 자는 성경에 일치할 것을 우리는 주장할 뿐입니다. 천국은 육감과 이성적(理性的)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성령의 감각 지대이기 때문에 지상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를 지닙니다.
영광스럽다든가 환하다는 말들은 실로 이해하는 자에게 그 실체를 느끼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지나간 사건의 감동적인 실록이나 과학적 물체나 수학적 이치를 표현하는 것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 이를테면 시적 감각을 형용 할 때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까지 필요로 하는 언어의 전달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단어는 세상의 지형을 말하듯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곳이며 의식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완전한 증명을 할 수도 바랄 수도 없다는 결론입니다. 우선적으로 부활의 신체적 조건과 감각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천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부활하신 몸으로 사람들과 땅에서 40일을 생존하시고 음식을 드신 것으로 부활의 몸은 영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을 증거 하셨습니다(눅24:).
그런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했기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선물로 보는 것입니다. 부활, 그것은 모든 신앙의 조건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현대 신학자 중에는 예수의 역사적 부활이나 우리들의 부활을 불신하는 자도 있습니다(불트만). 또는 부활이 강조 될 것이 아니라고 하는 식의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절대적으로 증거 되야 하는 진리는 천국 그것입니다.
성경이 시대적 산물 같은 철학 도서나 이스라엘의 국지적 종교의 이상이라면 우리는 분명히 역사를 바로 이해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진리이며 진리는 역사를 관통하는 완전의 저력을 갖춘 것입니다. 진리는 시대 역사에 호응하기 위해 자신을 개혁하지 않습니다. 단지 인간이 개혁해야 할 것이다.
천국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의 한 장르가 아니라 어른 신자에게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기독 신앙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설교에 있어 전도에 있어 부활과 천국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 사상자들의 행위가 아닙니다. 성경은 종교의 서적이 아니라 내세에 가야 할 인간의 역사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이것이 예언이고 희망입니다. 짤막한 이생의 삶을 위한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허무를 솔로몬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사회의 비리와 정치가들의 죄 그리고 여러 가지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학적 비판과 개혁을 해 왔지만 아직도 우리는 문제 속에서 거듭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을 느낍니다.
일생을 연구하고 개혁하고 또 변화를 추구하여도 우리는 스스로 이생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소망 가운데서 살다가 간 자들의 유언과 그들의 실록에는 만족과 기쁨이 내재했고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케 했습니다.
천국은 교회가 가진 가장 큰 소망의 노래이며 전도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것을 빼놓고는 아무런 활동의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의 한 모습을 위해 기독 신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천국이 있기 때문에 믿고 목회하고 전도하며 순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천국에 대해 많은 비유와 교훈으로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사역의 목표가 곧 천국의 소개임을 밝히셨습니다.
천국의 조직
왕은 하나님( 예수님 )
(계 1: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국민은 성도들
(빌 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국토는 신천신지
(벧후 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국법은 성경
(요 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국가( 國歌 )는 찬송
(계 5:9)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8:3-4)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나라의 전통은 영원함
(단 7: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시 145:14)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천국의 비유(씨 뿌리는 비유)
씨를 뿌림 ( 천국의 선포 ,예수님이 오심, 복음 전도 )
씨가 자람 ( 믿음의 성장, 교회의 부흥, 선교의 활동 영역이 넓혀져 감 )
씨가 열매를 맺음( 주의 재림으로 완성 )
(고전 3:6-7)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엡 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롬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엡 5:26-27)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3)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섭리를 찬양하는 것이며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됨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전 11:5)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롬 11:33)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막 1:15)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행 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마 26: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눅 22: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고전 15: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벧후 3: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2. 우리를 위한 간구
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매일의 양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신앙입니다. 양식은 땅에서 구하는 것이고 땅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인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정신입니다. 남의 것을 빌려서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자기 것인 양 자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얻어 사용하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은 노력해야 하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으며 살지만 그 모든 것이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정신은 부족합니다.
(출 16:17-20)이스라엘 자손이 그 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 16:26-27)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제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출 16:35)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영육간 양식을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학 2: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에게 이 양식들을 주십니다
(마 21: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죄에는 원죄(原罪)와 도덕적인 본죄( 본죄, 本罪 )가 있습니다
원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 주심으로 속죄되었으나(믿으면) 자범죄(본죄)는 형제를 용서함으로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사죄를 구할 뿐 아니라 형제에게도 사죄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형제의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사함 받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마 6: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18: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5:23-24)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6: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원죄 용서 본죄 용서
* 마 18:21-35의 빚진 자의 비유 *
금 일만 달란트(6000 데나리온 : 16,500,000 달러)-용서받은 우리의 죄
백 데나리온 ( 1/600,000의 차이 ) - 용서해야 할 타인들의 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회개의 3대 요소
지적 인식
죄로 규정하는 것은 관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죄라 규정하면 죄로 시인 할 수 있어야 회개와 구원이 가능해 집니다.
(롬 7: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인식은 구원을 얻는데 가장 귀한 깨달음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 1:10)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정적 아픔
죄를 인정하나 그에 대한 정서적 동요가 없으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시인할 뿐 아니라 그 죄 때문에 가슴이 아파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바른 정서에서 울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세의 사람은 죄를 거듭하여 심령이 둔해져서 애통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딤후 3: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마 26: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시 34: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지적 결단
회개의 완성 단계로서 죄를 시인하고 아파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시인하고 슬퍼하며 통회하여도 순간뿐이지 그 죄를 거듭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죄를 다시 지을 수 있으나 회개하였다는 사람이 거의 같은 시간에 똑같은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의 감정일 따름입니다.
[ 회개의 마무리 ]
그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공간적인 것도 따를 수 있습니다(죄의 장소를 떠남).
갚을 수 있는 것은 다시 갚습니다( 삭개오처럼,눅19: )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나님께 그저 회개하고 또한 어려운 문제라면 교역자와 상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히 새로운 생활과 새로워 진 자로서 받을 하나님의 은총을 위한 것입니다.
[ 형제의 죄에 대한 간섭에 대하여 ]
형제라 하는 자가 내게 대하여 잘못했을 때 용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에 비교하여 당연히 행할 의무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라는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상대들입니다. 협의적 의미로는 육친의 형제가 아니라 신앙자 사이를 말합니다.
(마 18: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갈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마 18:15-18)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첫째, 형제가 죄를 지으면 개인적으로 권고할 것입니다
(눅 17:4)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둘째, 개인적 권유를 받지 않으면 두세 증인을 세워 권유할 것입니다
(마 18:16)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셋째, 그래도 안되면 교회에 말하라 하셨습니다( 공개 석상에서 )
(딤전 5: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딤후 2: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갈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넷째, 교회의 권면도 안들으면 교회에서 추방하라 하셨습니다
(마 18: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히 12:7-13)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하라
형제의 죄를 위하여 용서하고 기도해 줄 것이나 어떤 일에는 불간섭의 원칙이 있습니다.
(요일 5:16-17)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마12:31-32)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히 6: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와 반성의 차이를 잘 알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반성하는 양심적 기능이 있기 때문에 혹 이를 회개로 착각하는 수가 생길 것입니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 줄 압니다.
진정한 회개( 悔改 )
진정한 회개(悔改)가 바로 이해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구원과 그에 따르는 수많은 논증에 적합한 사고력을 얻게 되고 온전한 기독교인으로서 인격적 수양을 통하여 거룩히 성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 나는 회개하였노라 "고 하는 고백의 자각과 의식을 무엇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말로 고한다고 해서 그것을 성경 구절에 연결하여 확증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세례를 베풀어야 할 목사로서는 올바른 신학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 본인으로서도 성경적인 바른 이해가 요구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의 생활에 걸쳐 이 회개는 지속되고 성경적으로도 신앙생활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이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진정한 기독 신앙을 전면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이행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 회개와 반성
우리는 회개라는 말 대신 반성(反省)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 영향권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살아도 일어나는 양심의 동작으로, 언행심사(言行心事)에 대한 도덕적 가치의 재고(再考)이자 인간의 고결한 정서에 대한 애착에 비롯되는 영적 활동입니다.
물론 이 반성은 기독교의 구원이라든가 영생으로 이어지는 동기 유발로 해석될 수 없는 인간의 양심적 활동입니다. 그러나 반성으로 얻어지는 양심적 정신적 기쁨 그리고 육체적 쾌활함이나 성경적 회개를 통한 것과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비기독교인에게 어떻게 다른 점을 객관적으로 학문적 정신적 공감을 얻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경험적으로나 타인의 모양에서 느낄 수 있는 바 반성 후의 감정과 그 태도는 기독교의 회개자와 별 다를 바 없음을 봅니다. 눈물로 잘못에 대한 자각의 표현, 그후 곧바로 얻어지는 양심의 모습으로 밝은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가능한 타인에 대한 겸손의 말과 태도 또한 노래까지 곁들어 질 수 있는 것 등입니다. 이런 현상과 기독인의 회개 후에 따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을 부르짖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큰 상이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반성이라는 양심의 움직임과 회개의 양심이라는 다른 정서적 혹은 역사에 없는 주관적 양심의 세계가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을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2) 진정한 회개
성경에,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에 반성과 다르게 하라든가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구체적 요구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죄를 회개하라고만 했을 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죄란 가식적 종교 행위와 명분상 이스라엘이라는 것만으로 교만한 선민(選民)의식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회와 정치적인 면에서는 부도덕과 불법 등에 대한 고발입니다. 이는 어느 사회에든 있을 수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식의 죄는 무엇이며 회개가 반성과 어떤 차이를 가진다는 것인가?
이것이 정립되지 않으면 소위 선량한 사람의 자력(自力)구원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명쾌하게 비판해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회개한 후에 가지는 정서가 일반인의 반성 뒤에 가지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다르다면 또 죄를 짓거나 거듭되는 나약한 정서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은 한번 죄를 회개하면 언제나 죄와 상관이 없다고 한 것은 아니고 계속 그 회개한 양심을 보유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절로 양심의 상태를 보유할 수 없는 것은 같은 처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회개할 때 특별한 기준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양심의 발로로 잘못하였음을 스스로 시인하게 됩니다. 불신자로서 반성할 때 죄명에 따라 부모나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독인은 예수님을 연상으로 떠올리고 동시에 사람에게도 죄의식을 갖습니다.
그러면 불신자의 반성은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이 없고 기독인은 예수님을 연상했기 때문에 구원이 주어지는 것인가?
예수님이 전도하시고 제자들이 전도하고 회개를 권유할 때 이방 나라에서도 그 때 그런 시간에 이곳 저곳에서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생활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기독교를 전도 받지 못한 관계로 하나님께 혹은 예수님께 직고할 것을 육친의 아버지 혹은 죄지은 대상에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고 성경의 사람들은 구원(영생)이 주어지는 엄청난 기회의 차이가 역사적으로 연속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성령(聖靈)의 기쁨을 말할 때 일반인은 단지 착한 심정의 변화 그것을 스스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양심이라는 넓고도 큰 진리같이 여기는 법 앞에서 스스로 혹은 타인으로부터 반성을 통해 죄사함에 대한 인정을 받아 왔습니다.
결국 기독인의 회개와 일반인의 반성과의 차이점은 성령이라는 명제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회개와 반성의 차이점을 어떻게 논할 뚜렷한 상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나타나는 장면들은 유대인들의 회개 혹은 유대인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이방 사람들의 회개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권유할 때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라는 말로 자연스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다시말해서 한국 사람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할 때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신은 하늘님 정도인데 성경의 인격적 신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신앙은 없었으니까.
성령에 관해서도 들어보지도 그런 낱말에 대한 종교적 언어 영역도 없는 나라였기에 성령의 충만이라든가 성령의 세례 등은 반성으로 얻어진 양심의 영역에서 찾아내기 힘든 전혀 새로운 세계가 됩니다.
우리는 전도 중에 이런 생소한 언어 영역을 비기독교인에게 전하고 권유할 때 새로운 양심의 영역에 대한 신비로운 관념의 세계를 안내하게 됩니다. 그런 영역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부흥회의 분위기와 기도원 등에서 혹은 평범한 예배 시간에 동원하여 지도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이 종교 영역의 세계를 광신적이라든가 선택의 자유에 속한다고 단정하고 회피합니다.
감동, 깨달음의 극치, 새로운 가르침의 성경 상식 등으로 관심 하여 기독인으로까지 발전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인이 되었다 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성령의 감동에 대한 지각이 있고 지식도 갖추고 나면 소위 불신자에게 성령을 운운하게 됩니다.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는데 성령의 은사 면에서만 강조한 나머지 기적과 능력으로 성령에 관한 지식을 대신하게 될 때 이단 내지는 불건전한 신앙자로 전락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은 인격적이고도 양심적이며 도덕적인 인간의 내면적 존재에 대한 작용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사역(事役)이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성령을 직접으로 전하는 것보다 성령의 사람으로서 감화를 그리고 능력이면 능력으로 대처하게 될 때 새로운 세계 곧 성령의 세계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자연스러운 이해력을 동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성령의 작용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상태이어서 명제보다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인격적 혹은 권능적 감화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일반적 이성의 태도보다 더 강하고 더 귀할 때 관심을 유발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본원으로 돌아가 반성과 다른 기독교의 회개란 진정한 의미에서 무엇인가? 반성의 감정을 교회라는 장소에서 표현하면 회개이고 다른 곳이면 반성 그 자체뿐인가?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든가 사후(死後)의 심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는 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심정으로 각오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역사가 계셨던가? 물론 그들은 영생도 지옥도 모른 체 그냥 한 생을 마감하고 갔다. 성경상 복음의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섭리되고 진행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구원 여부가 인간의 고민 동기에서 시도될 수 없으므로 이런 유의 사념은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으로 결론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여기서 사고(思考)하고자 하는 바로는 당면한 현실적 과제로 우리가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희소식 앞에 보통 반성이라는 이방인의 것과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특이성을 어떻게 논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상 우선적으로 죄의 규정이 일반적 이해와는 다릅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부터가 죄가 된다. 물론 이것을 처음부터 죄로 알고 회개하였으므로 성도가 되었다는 기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도의적 죄감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나머지 기독신자가 되고 난 뒤에 더 첨가된 죄라면 신앙의 불충분한 점들에 대한 회개가 일반인과 다른 영역일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예수의 제자 가룟.유다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며 때문에 회개가 불가능하였다고 진술한다. 물론 교의적(敎義的)으로 유능한 표현이지만 그 사람이 스승을 팔고 뉘우친 최소한 인간 양심에 대한 소위 반성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유다 예찬론처럼 기독 복음 사상을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성령의 사람과 그래서 회개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과 반성으로만 그치는 일반인으로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충분할 것이고 저 혼자 우리처럼 하늘님이나 용왕님을 부르짖던 사람은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개 -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반성을 못했습니다. 그런즉 일반 이방 나라에서 반성하는 사람에게야 성령의 회개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새사람으로 착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각오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삶의 방식이 신앙으로 온전하겠다는 것과 신앙이 없는 자에게는 그저 선량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으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상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죄를 통곡하는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구원으로 접목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어차피 당시 상황이 유대땅 주변이자 그 신앙 영역권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한국에 복음이 전해질 때 신의 존재가 다르고 문화 영역도 다른 입장에서 전하고 이해되어지는 인식의 교착은 매우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성질은 오늘처럼 그 때도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등을 통하여 인간의 죄에 대해 호소했습니다.
어른 앞에서 혹은 일반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빌고 용서를 받던 지난 양심의 작용이 성경의 신 앞에서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었다고 단정하게 됩니다. 즉 성경의 신이 전달되지 않는 곳에서는 어떠한 반성과 화목의 눈물겨운 상황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마는 인간의 삶의 한 형태로 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의 반성은 인간이기에 울어나는 양심이라는 짐승과 다른 도덕성의 한 면이 작용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가지는 반성이라는 고결한 감정을 성경에서 말하는 종교적이고 구원에 관여하는 차원으로 비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양심은 아름다울 뿐 그 이상의 종교적 효과를 논할 차원이 아니라고 판단되어집니다. 그 가치면에서 존경스러운 것은 신앙에로 곧 정진(精進)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성과 회개라는 차이는 예선과 결성의 차이요 구원의 도상에서는 그 차이를 함께 관찰 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맙니다. 냉정하지만 사람의 반성이라는 것은 종교가 될 만큼 숭고한 것이 아니었음을 일축합니다. 만약 그것이 성경에서 일컫는 성령의 사역(事役)같았다면 인류 역사에 양심의 세계가 공헌한 바가 위대하되 종교처럼 확보되고 어느 곳에서나 찬양의 대상이 되어 여러 사상들을 제압하기까지 하는 힘이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매냥 보통인들은 그 양심의 일을 아름답게는 보아 왔으나 기독 신앙 양심의 저변만큼으로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기독 신앙의 회개의 결과에 대한 국면으로 집중하여 논증하고자 합니다.
3) 회개의 결과
반성의 결과와 회개의 결과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나 의지의 방향 차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일반인의 반성 즉 양심의 단순한 죄의 뉘우침은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었으나 기독교의 회개는 단순한 양심의 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신 곧 하나님께로 돌이켜 행동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인식 불가능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순종이라는 성경의 미덕으로 따르기까지 합니다. 어떤 이는 맹목적으로 행함으로 광신자라는 비평을 받든가 신앙의 불균형을 이루는 자도 있겠지만 대개 참된 회개를 한 직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건전한 순종의 태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로 이르는 회개를 한 자는 성령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되고 한 동안은 그 즐거움을 찬송과 감사의 기쁨을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계속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4:24)감각의 영역이 소위 신령해집니다. 영감의 소견을 좇아 행동하라는 성경대로(갈5:16)성령의 인도를 받으려고 간절하고 조심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우선 일반적 신앙 규범을 따르며 동시에 기도하여 적응하는 이념적 의지를 키우게 됩니다. 이를 신령한 삶의 방식이라 하고 신학 용어로 성화(聖化)되어 가는 삶이라 합니다.
회개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외적 표현은 눈물을 동반합니다. 일생 일대의 큰 통곡도 있는데 보통 반성하는 양심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죄감이요 통곡입니다. 이를 혹 중생의 시기에 한다고도 하나 보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깨닫게 되면 감격과 감사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람마다 감성의 차이는 있으나 적어도 신에게로 귀의한다는 정도에서는 모두가 크게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뉘우침에 젊잖을 수 있는 의지는 없습니다.
회개의 결과를 나열하면, 첫째가 용서받음에 대한 심적(영적) 쾌유의 감사하는 눈물이며, 대체로 입술로 주님의 용서를 시인하며 감사하는 말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증거 합니다. 그리고 찬송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예배의 정상적 생활과 충실한 신자의 임무를 다하려는 겸허함이 충만합니다.
봉사적이며 협력하고 화목합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며 성령으로 축복하고 빌기를 다합니다. 기독교적 반성이라고 표현할까 이 회개는 일반인의 반성에서 나타나는 심적 변화와 의지와는 비길 수 없는 작정이 일어납니다. 기독 역사에서 그 차이점을 여러 각도에서 입증하였으니 기독교의 문화는 대단하고 일꾼들의 사적(事蹟)은 매우 영광스러웠으니 회개한 자들의 결과였습니다.
회개와 반성의 차이는 그야말로 인심적(人心的) 논란의 선상의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동원되는 사건적 형편이었음을 입증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의 회개의 결과로 보건대 반성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입장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회개는 반성과 다르게 구원과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되고 신에게의 귀속을 함께 인정하게 됩니다. 다만 복음 사상이 전달되지 않은 곳에서 반성하는 자의 양심이 그것으로 그친다는 것이 서운할 뿐인데 우리가 전도하는 대상자에게 그들의 반성된 감정과 구원 얻는 회개와의 연결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가 소위 선교이며 복음 사역입니다.
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는 두 가지로 선한 시험과 악한 시험이 있습니다.
(약 1:12-15)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 선한 시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잘되게 훈련하시는 시험입니다
(신 8:3-5)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 8:11-18)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므로 이런 시험을 받습니다
(히 12:7-8)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사랑하시므로
(히 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거룩케 하시기 위해
(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위해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믿음을 주시려고
(약 1:2-3)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겸손케 하시려고
(신 8:2-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약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후 12: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주의 율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시 119: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연단하여 영적 평강을 주시기 위해
(히 12: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안한 열매를 맺나니
영광스럽도록 하기 위해
(밷전 1:6-7)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자신의 믿음의 정도를 알게 하시기 위해(욥1:2:)
결국 복을 주시려고
(신 8:16)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불같은 시험을 하시고
(벧전 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유 1:22)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죽지 않을 만큼
(욥 2:6)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시 118:8)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이길 수 있는 시험을 주십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 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2) 악한 시험
마귀가 주는 시험으로 이 시험된 삶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욥 1:7)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아 이기신 것과 첫 아담의 실패 차이 ]
이 악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할 것입니다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예수께서는 40일 금식 후 마귀의 시험을 당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마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6)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 와서 수종드니라
마귀를 대적하라 하셨습니다
(창 4: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엡 6: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약 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히 12:4)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악한 시험의 성격(마귀의 시험 성격)
마귀는 하나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 3: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눅 4:34)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행 19:13-20)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비슷하게 사용합니다
(창 3: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나 마귀는 거짓말을 합니다
(요 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왕상 22:21-23)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교만한 마귀
(창 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쏘는 살처럼 재빠르게 임합니다
(고전 15:55-56)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누룩같이 퍼지는 죄
(고전 5:6-8)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죄는 잘 자랍니다
(약 1: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기회를 잘 이용합니다
(롬 7: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천사같이 변장합니다
(고후 11: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언제 어디서나 시험합니다(시공간 제한이 없습니다)
(뱃전 5: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적주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계 13:13-15)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술취한 것처럼 정신을 희미하게 합니다
(엡 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악한 시험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욥 7:18)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주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롬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피를 실제적으로 꼭 흘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라신 말씀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죄와 싸워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주님은 피 흘리시는 그 순간까지 유혹과 조롱을 받으시되 참으셨습니다.
(히 12:4)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창 4: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약 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여기 " 다만 "은 뿐만 아니라 , 꼭 이라는 뜻입니다.
" 악 "은 마귀를 뜻합니다
(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일 5: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결론 부분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대개 " = 지당하게, 만 아니라, 헬라어 오티( , for ) ; 조건 접속사 로 "앞에 간구가 이루어지면 " 이란 뜻입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찬양입니다.
(롬 13: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사 62:11)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 아멘 " = 진실로, 그대로 믿습니다는 뜻입니다.
이 아멘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속성입니다.
(사 55:16)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 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계 3: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요일 5:7)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주기도문을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함에 대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것을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룁니다
먼저 사함 받기 전에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시험에 이길 수 있도록 영적 힘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영광을 찬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처: 강종수 목사(늘새롬교회)/http://cafe.daum.net/bible-moths.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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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해설/강종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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