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강해
십계명 공부: 제 6 계명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찌니라> 이다 (출애급기 20:13, 신명기 5:17)
하나님이 인간에게 대인관계에 주신 두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오늘은 제6계명을 같이 공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자.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짐승을 제외한 인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하나님 앞에 가서 헌 번은 인생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잣대로 심판 받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중대한 문제이건만 사람들은 이런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그리고 향락을 누리며 살까 하는 문제만 생각하다가 죽음에 임박해서 비로소 몸부림치며 죽음 다음에 있을 일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병상에 있는 중환자를 심방가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임종을 보면 죽음이 두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마음이 평안하다” 라고 하면서 생을 조용히 평안히 그리고 근심 걱정 없이 마감하는 분들도 있다. 죽을 때 마음 편이 죽을 수 있는 분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야 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자.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자는 말이다.
이제 제6계명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자
1. 이는 사람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요 짐승의 생명을 말함이 아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살인” 이라고 했으나 의미가 분명하다. 짐승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영문 성경에 보면 출애급기 20:13에 “Thou shalt not kill"(KJV).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 말만 보고는 불교에서 말하듯 “살생”을 금하라 라고 말로 들릴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영문 성경은 “You shall not murder" 라고 아주 정확하게 번역하였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lo rtzsach (라짜흐)> 로 되어 있다. “라짜흐” 라는 동사의 미완료형 qal 형 2인칭 남성 단수의 모양을 취하니 <tirtzsacha (티르짜하“ 라고 기록되어 있다. rtzsach 란 히브리어는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니 원문에서 우선 우리가 알고 지나야 할 것은 제6계명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지 동물이나 곤충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 아님을 알수 있다.
II. 이 말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 계명은 또 달리 오해를 불러 올수 있는데 그것은 제6계명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 했으니 어떤 경우이던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오해이다. 그러나 여기 출애급기 20장이나 신명기 5장만 보아서는 완전한 답을 줄수 없다.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못 이해하는 이유, 특히 사이비종파들이 성경을 잘못해석하여 남을 오도하는 이유가 성경의 한 구절을 따로 독립해서 아전인수격으로 자기의 기호에 맞게 해석하기 때문인데 이들에게는 성경은 “이현령, 비헌령(耳懸鈴鼻懸鈴)” 로 보인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항상 성경은 성경전체를 통해서 그 맥락속에서 주어진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예레미야 7장에 보면 하나님이 진노하여 “너는 이 백성을 위해서 내게 부르짖지 말라, 내게 기도하지 말라 기도해도 듣지 않겠다” 고 하신 대목이 있다 (렘 7:16). 이 구절 한 절만 독립해서해석하면 기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전체가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는가? 아니다. 성경은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 말은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님을 알수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방신을 섬기니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하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렘 7장 17절 이하를 읽어 보면 왜 하나님께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는 지 그 이유를 밝히 알 수 있게 된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알지만 어느 경우이든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가? 아니면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경우가 있는가? 이것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본문 출애급기 20장 13절이나 신명기 5장 17절 만 가지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성경 전체를 읽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전체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는 성경의 어느 구절도 해석할 수 없다. 한 가지만 더 예를 들고 넘어간다면, 요한복음 3:16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원문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믿게 되는 것인가? 믿는 것을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인가? 에베소서 2:1에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믿게 되면 또한 2:8에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으니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찐대 어떻게 내가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이른다.
그 “믿음” 이란 옙 2:8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로마인서 10:17을 보면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곰부에 참석할 때 말씀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다시 말하거니와 “살인하지 말찌니라” 란 말도 피상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전쟁이라는 것이 있고 또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처리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사람을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가? 우선 전쟁을 보자. 구약성경에는 전쟁이야기가 많다. 이스라엘백성은 여호수아 와 갈렙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그 땅에 거하는 거민들을 많이 죽였다. 전쟁의 와중에서 아군도 죽고 적군도 죽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순종할때면 적을 맞아 싸울때 반드시 승리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러나 백성이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순종하지 않고 자만 하면 반드시 패전했다. 좋은 예는 사무엘 상 초두에 나오는 엘리와 그의 두 아들 비느하수와 홉니의 경우이다. 엘리는 자식을 잘 못 길렀고, 두 아들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배척하여 악행을 많이 행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불레세군사와 싸울때 엘리는 출전한 아들들을 기다리다가 뒤로 넘어저 목이 부러져 죽었고, 두 아들은 전사했고, 자부는 유복자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법궤를 불렛세 사람들에게 빼앗겼으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떠났다. 그래서 유복자의 이름을 “이가봇‘ 이라고 했다. ”이“ 라는 말은 영어의 ”not, un-" 이라는 의미이다. “가봇” 이라는 말은 “무겁다, 영광” 의 의미다. 이스라엘에서 “무거운것, 영광” 이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순종하라고한다.
신약성경에서도 바울은 엡 5:10에서 “주께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라” 가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려 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세태 이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과 싸울 때 태양이 멈추어 서게 하면서까지 적을 뭇찌르도록 함께 하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수아 10:13).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전쟁에서 하나님은 항상 적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붙이셨던 일을 성경에서 읽어 본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이방나라의 군사들은 번번히 패전하여 오늘까지 이스라엘은 보존되어 왔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사람들과는 싸움이 있어야 하고 그 싸움에는 반드시 살상이 따른다. 전쟁이 없이 양보만 했더라면 16세기 종교개혁이 가능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했다. 프랑스에서 성 바돌로메오의 날에 개신교 성도 2만명이 천주교 신도에게 살해 당했다. 피신 한 사람들도 있지만 사운 사람도 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처음으로 큰 싸움을 벌린 것은 아르메니아에서의 싸움이다. 많이 죽이고 많이 죽었다. 죽음이 없는 전쟁이 어디 있는가?
그러면 성경이 전쟁을 허락하는가? 분명히 성경은 전쟁을 허락한다. 로마인서 13장은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성경이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 (양민)을 괴롭힐때는 싸움을 하도록 명령한다. 국가, 가정, 교회 이 세 가지 제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제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되어야 하면 그러기 위해 각각 지도자들을 세우셨다. 가정에는 가장이 있어서 가솔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야 하며, 교회에선 성직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인도해야하고 나라에는 국가 수반이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
이런 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이 있다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도 칼빈도 싸웠다. 초대교회에서도 이단들과 싸웠다.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창세기 9:6에는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의 손에서 피 값을 찾겠다고 하였다.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죽여서 인간사회에 악을 제거해야한다는 것이다. 로마인서 13장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이럴 때 형무관이 형을 집행하는 것은 단지 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것이니 사형을 집행한다해도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악한 사람을 우리들 사이에 용인하므로 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금한다.
무고히 선한 시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시민을 살해한 사람은 반드시 죽여여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 살인범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그냥 석방하는 예가 많은 것을 보면 이미 나라의 위정자들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하나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도전하면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와 자기 멸망이 있을 뿐이다. 자고로 하나님과 도전해서 승리한 사람은 없다.
III. 낙태와 안락사도 살인입니다.
미국에서는 1973년 1월 23일 미국 대법원에서는 이른바 Roe vs Wade Case 라는 재판 건이 있었는데 낙태를 합법적으로 허락할 것이가 여부를 다루는 사건이었는데 결과는 태중에 있는 아이는 생명은 인정하되 인격은 인정하지 못한다는 해괴한 대법원의 해석으로 낙태를 주장하는 측이 승소하여 그때부터 오늘까지 죄 없는 태아가 어느 통계에 의하면 매년 500만 명씩 가위로 찔리거나 칼로 도려내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이다. 이런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태아들의 피 값을 그 의사들의 손에서 찾겠다고 한다. 시편 51:5 이나 시편 58편 3-5에 보면 사람의 생명은 수정즉시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오늘의 세태는 Francis Schaeffer 의 말대로 멸망의 무턱에 와 있다. 개인이고 가정이고 국가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멸망한다.
고대 헬라나 로마 사회에서는 동성연애나 낙태가 보편화되어 있었지만 크리스챤들은 단호히 이를 배척했다. 옛날 기원 314년에 성직자들은 Council of Ancyra (앙쿠라 종교회의)를 열어서 낙태문제를 논의했는데 “낙태를 하는 여인이나, 방조하는 의사나 도와주는 사람은 <10년간 수찬정지 (교회에서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벌)>를 하도록 결의했다. 얼마나 교회의 법이 엄격했는가? 오늘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말하면 말의 의미도 모른채, “율법주의자” 라고 매도하기 일수 이다. 성경에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에서는 “오락중심”으로 자기 만족으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자도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보다는 회중들의 마음에 드는 예배나 설교를 행하니 결국은 알맹이 없는 “사이비신자”만 양산한다. 알맹이 없은 신앙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믿음이 구원을 약속 못한다. 갈라디아 1:8을 다시 읽어 보자. 뿐만 아니라 이보다 좀 일찍 열렸던 엘비라 대회 (Synod of Elvira, AD 305-6) 에서는 낙태하거나 낙태를 방조하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파문하기도 결의했다 (Francis Schaeffer. How Shall We Then Live? Crossway Book, 1976, p. 222).
이른바 “안락사,euthanasia" 도 마찬가지 이다. 흔히 중환자가 고통을 당할 때 생명을 부지하는 ”산소호흡기“ 를 단절하여 환자로 하여금 속히 죽게 하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이것 역시 명백한 살인 행위이다. 그 이유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만 거두어 가실 수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거두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이 우연히 되어지는 것 같지만 모든 기한을 하나님이 정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이 땅에 오기도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가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의 신앙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큰 죄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가 피 값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전“ 이기 때문에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 고 고린도전서 3장과 6장에 말하고 있다.
IV. 살인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제6계명에서 “살인하지 말찌니라” 라고 하면 언뜻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죄없는 무고한 사람을 칼이나 권총으로 죽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무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이 계명을 잘 모르는 사람의 성경해석방법이다. 10 계명의 모든 계명이 그러하듯, 사람을 죽이지말라는 말은 육체적으로 죽이는 것만 말함이 아니고 “마음으로 살인 하는 행위” 도 포함함을 알야 한다. 성경은 “속으로 형제를 미워하면 이미 그 사람을 살인한 것” 이라고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말씀 하신다. 여인을 보고 다른 생각을 가지면 벌써 간음한것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과 같다. 물건을 흠치지 않았다고 해도 훔칠 마음이 있다면 벌써 흠친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사상이다.
그러면 살인하지 말라 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마음을 이윳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랑하고 권면하고 충고하고 돌보아 준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아니하면 교회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교회의 당회원들의 말도 듣지 아니하면 출교하고 회개할 때 까지 상종하지 않는다. 마태 18장에 나타난 권징의 방법을 읽어 보라, 남을 미워해도 하나님이 보실때는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을수도 있다. 나도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야 할 사람이므로 남이 하는 사소한 잘못으로 인하여 그를 해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요즘 유행하는 ,RAPPROCHEMENT (라프로쉐망> 의 사상과는 다르다. 오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은 아무리 이웃이 잘못해도 그냥 내어버려 두라는 것이며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주입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을 "politically correct" 라는 말로 편리하게 덮어 버리고 만다.
어떤 이유이건, 악을 행하건, 해를 끼치건, 사람을 죽이건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생각인데 왜그러냐하면 절대적인 진리, 절대적인 가치 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무엇이든 자기가 생각해서 옳으면 그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New Age 용어로는 <values clarification> 이라고 한다. 요즘 국민학교나 중고등부 학생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즉. ”남의 말을 들을 필요없이 무엇이든 내가 생각해서 옳은 것이면 그것이 곧 진리이다“ 라는 사고 방식이다.
생각으로 남을 살인하는 행위도 성경은 실제로 흉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죄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살인 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좋은 예를 다윗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사무엘 하 12장에서 다윗은 죄를 짓는다. 남의 부인을 범한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독점하기 위해서 그 여자의 남편을 전쟁의 최전방에 보내서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하라는 명령을 군대장관에게 내린다. 죄 없는 우리아 는 이렇게 해서 아내를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겼다. 이것은 직접 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지 라도 글로 사람을 죽인 예이다. 물론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그가 지은 죄상을 회개했고 시편 32편에서 죄 사유함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리고 회개와 함께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살인하지 말찌니라“ 란 주의 말씀을 위반한 죄이다.
요컨대, 직접 범법 행위를 범하는 것 보다 그 동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산상보훈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이 심령을 수술 하는 일이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살아가면 죄에서 자유할 수 있다.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죄의 법에서 자유로워 졌다는 말이며 계명을 모두 다 지키다가 완전히 지키지 못하여 지옥에 내려가는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도모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살인하지 말찌니라> 라고 하나님은 지금도 악하고 패역한 우리 세대를 향하여 말씀 하신다. 그 말씀을 귀담아 듣고 순종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자.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의 생활화를 주장한다.
튤립 교육 선교회
회장 김명도
rv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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