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신약성경신학개관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3-11-11 20:26
조회
4577

신약성경신학개관

 

이승미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
신약학)

 

신약
성경신학
(Theology
of New Testament)
이라는
용어를 사실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피하고 있다
.
신약
성경신학

개혁주의 입장에서 표현 한다면
,
신약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Revelation)’
혹은
하나님의
말씀
(Word)',
'
선포’(Proclamation)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
신약의
마태복음은
,
마태의
신학이 아니라
,
사도
마태를 통한 설교요
,
선포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믿고 있다
.

연구에서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성경신학,
특별히
신약 성경신학의 역사

 

A.D.
6-15
세기
어간을 중세 시대라고 한다
.

시대에는 교회의 전통과 교의학적인 시녀로서 성경 연구가 일어났다
.
성경
자체를 위한 독자적인 연구는 아주 빈약했다
.
그럼
그 당시의 성경 연구는 무엇인가
?
교회의
전통과
,
로마
가톨릭이라고 하는 교리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공부했다
.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경 연구라는 것이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옹호하고 발전시키고 변호하기 위해서 학자들이 동원된 어두운 시기였다
.
이와
같은 것이 오래 가지 못했다
.
하나님께서
때가 될 때 뒤집는 일을 하셨다
.
이것이
바로
15세기에서
16세기에,
종교
개혁자들의 등장이다
.
역사의
역할도 중요하게 되었다
.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 가운데는
,
성경은
풍유적
(allegorical)으로가
아니라 여자적
(literal)으로,
특별히
문법적
(grammatical)으로
해석이 되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
이것은
참된 성경신학의 출발이 되었다
.
성경연구의
독자적 출발이 되었다
.
종교
개혁 이후의 시대에서는
,

여기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났다
.
역작용이라는
것은
,
종교
개혁 시대에 너무 강조하게 된 그것 때문이다
.
그것은
정통 교리의 지나친 사수로 인한 성경의 무오성의 강조는
,
성경을
무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하다 보니 성경 연구의 진전 발전이 소홀하게 되었다
.
성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려는 노력이 종교 개혁 이후에 다소 게을러졌다
.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에 무딘 부분이 있었지만
,
18
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된다
.
계몽주의
사상은 성경을 문학적으로 다루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
성경을
교회나 신학적 관습에서 떠나서 성경 자체를 객관적인 역사적 산물로 보려고 했다
.
이것은
합리주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들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성경을 단순히 당시의 고대의 다른 문학 작품의 차원에서 인간 역사의 기록물
,
문학
작품으로 보게 된다
.

성경을 단순히 인간 역사의 산물
,
인간이
만든 문학 작품 정도로 보게 된 것이다
.
단순한
이스라엘의 종교 역사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
그래서
계몽주의 사상 영향 하에서 성경에 관한 것을 요약한다면
,
성경은
일종의 고대 종교적 기록물들의 편집이다
.

고대 셈족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성경 연구는 당시 여러 종족 중 셈 족이 가졌던 종교를 다루듯이 해야 한다
.
이로
인해
,
성경의
영감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
계몽주의
사상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문학 작품으로 보면서
,
성경을
보는 눈이 이성을 가지고 보는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

 

놀라운
것은
1603-1669년에
살았던 신학자 가운데
J.
Cocceius(Ulrum
개혁교회
목사
),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어떻게 보았느냐 하면
,
계약(Covenant)으로
보았다
.
행위
계약
(Act-Covenant)
은혜 계약
(Grace-Covenant)으로
보았다
.
행위
계약은 범죄 이전 하나님과 사람과의 언약
,
예를
들면 모든 것을 다 먹어라 그러나 이것은 하지 말라는 행위적 성격이 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
그리고
은혜 계약이라는 것은 행위 계약으로 인간이 범죄하고 실패해서 하나님께서 은혜의 성격의 계약을 맺었는데
,
그것이
은혜 계약이다
.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율법
이전의 시대
,
율법
시대
,
율법
이후의 복음시대로 나누고 있다
.

사람 이후로 크게 진전이 없었다
.
그리고
J.
A. Bengel

성경 주해를 많이 한 사람이다
.

사람은 주해 내용 가운데 알 수 있는 것은 계시에 대해서 강조를 했고
,
계시의
진행성을 강조했다
.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특별히 교의학에 대한 과목은 상당히 체계화되어서 내려왔다
.
그러나
엄격히 말해 역사적으로 성경신학의 중요한 요소들을 그 이전에 말하기는 했지만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J.
P. Gabler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 볼 때
,
성경신학을
학문화시킨 공로자라 할 수 있다
.

사람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성경신학의 개념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
교의학과
구분된 성경신학이라는 과목을 이론적으로 주창한 첫 학자라고 볼 수 있다
.
1787

그의 저서
성경신학과
교의 신학의 정확한 차이
에서
성경신학과 교의 신학의 구분을 분명히 밝혔다
.
그의
이론은 성경신학은 엄격히 역사적이며 교의신학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에
의하면
성경신학은
이스라엘의 종교 사상을 추적해서 성경 저자들이 종교적인 제 문제들에 대해서 품었던 사상을 역사적으로 밝히는 작업
,
임무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개념
,
사상을
취급하는 정도로 성경신학의 정의를 내렸다
.
반면에
교의신학을 정의내리기를
,
성경신학을
이용하여 철학적
,
합리적으로
각 시대의 전망과 요구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일을 살펴보는 것이다
.
성경신학과
완전히 결별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
그의
성경신학의 정의를 살펴 볼 때 문제점을 볼 수 있다
.
첫째,
그의
성경관의 전제가 우리와 다르다
.
특별히
구약성경을 이스라엘의 종교 역사로 보고 있다
.
단순히
인간 사상의 산물로 전제하고 있다
.
이점에
있어서 우리와는 다르다
.
그리고
역사성을 말하고 있지만
,
그가
말하는 역사성은 순수한 인간 사상의 변천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계시의 진정성
,
점진성의
차원은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기여는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정경론을
다루어 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
사본학에
있어서도 자유주의 학자들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를 개혁주의 진영에서 많이 혜택을 받고 있다
.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보다 정확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
여기서도
마찬가지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이후에 성경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게블러의 추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다
.
주된
관심사는 성경 안에 있는 종교적 사상
,
인간
이성의 법칙에 관련되어서 연구한다
.
이것은
개혁 주의가 표방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에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 후
종교 철학의 시대로 접어든다
.
종교
철학은 합리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특별히
헤겔
(Hegel)
관념론적 철학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된다
.
신학계는
헤겔의 철학적 사상을 많이 받았고
,
신학자들
가운데도 헤겔의 종교 철학의 영향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을 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
특별히
헤겔의 사상 체계 가운데 변증법적 사상 체계가 있다
.

사상 체계도 합리성을 추구하고 표방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그대로 받아 들여서 성경을 보고 성경을 분류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
예를
들면 신약 성경신학 분야에서 독일의 사상을 바로 중용한 사람으로
F.
C. Baur

독일 튀빙겐 학파의 중심인물이다
.

사람도 헤겔의 철학 사상을 직접 받아서 신약 성경을 마태복음에서 요한 계시록까지의 전체 내용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분류하려고 했는데
,
그의
사상 체계는 헤겔의 정
->
->
합에
의해 분류했다
.
신약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대 교회가 아주 진리와 구원과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롭게 하나 된 듯하지만
,
내면을
연구해보면 그것은 갈등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

사람의 갈등의 성경 근거는 고전
1:11이다.

개의 파가 있다
.
1. Petrine Christian Party(
),
2. Pauline Christian Party(
)
3. The Acts 15:1-21 (
)이다.
예루살렘
공회
(
15)
모였다
.
그곳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있었다
.
거기서는
바울에 대해서 따지려고 모였다
.
그런데
베드로가 바울을 공격하지 않았다
.
바울의
편에 들어서 바울을 이해하는 발언을 했다
.
이것을
합의 단계에서 이해하고 있다
.
그는
바울과 베드로의 대결 구도를 갈라디아서
2
11-14에서
보고 있다
.
베드로와
바울이 만났을 때
,
바울이
베드로에게 외식을 지적했다
.
이런
것을 갈등 구조로 본다
.
신약
성경 전체를 정
,
,
합의
구도에 맞추어 보고 있다
.
따라서,
바우는
정 반 합의 논리에 맞추어
,
신약
성경의 저작 연대를
1세기
후로 늦추고 말았다
.

 

보스(Vos,G.)
성경신학

 

역사적으로
대략 살펴볼 때 자유주의로 인해 성경신학이 개설되었다
.
그러나
문제점이 있었다
.
그들의
성경신학에 있어서 성경관에 문제가 있다
.
우리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이후에
성경신학이 진전되어 갔다
.
종교
철학 체계에 의해 성경을 보게 되는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
특별히
독일 튀빙겐 학파
,

종교 철학 체계를 근간으로 성경을 들여다보는 그룹의 영향을 받았다
.
그래서
여기에 대한 반작용이 즉시 나타났다
.
1829-35

어간에 헹스텐베르크
(Hengstenberg)
바우
(Baur)
위시한 성경신학에 일탈된 것에 대항했다
.
헬버크(Helberg),
슐츠(Schultz),
데이비드슨(Davidson)
구약 성경신학에 관한 책을 많이 썼다
.
특별히
헹스텐베르크는 구약의 기독론
,
구약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썼다
.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다루어서 자유주의 학자들의 편향된
,
인간
이성 중심의
,
철학
체계 중심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
이렇게
진행되다가
1895
58
게하르스 보스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자신이 성경신학 교수로 취임했을 때
,
특강을
하게 되었다
.

특강 주제가 성경신학에 대한 이론을 나타내었다
.
이것이
개혁주의 진영에서 찬성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래서
게블러가 교의 신학과 구분되는 것을 내세웠지만
,
편향적이었다.
그러나
보스로 인해서 교의학과 구분되는 성경신학을 비로소 정착시켰다고 볼 수 있다
.
이때
특강에서 신학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
신학의
개념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

통상 여기서는 신학이라고 한다고 했다
.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라는 이면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주 핵심부분인 것으로 말했다
.
결국
보스가 밝힌 성경신학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아 계시
(The
Self-Revelation of God)

과정을 다루는 분야

정의했다
.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계시라는 골격으로 제시했다
.

 

보스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를 하나님의 자아 계시라고 하면서 계시를 삼등분해서 설명을 했다
.
첫째는
구약을 말씀 계시
(Word-
Revelation)
,
둘째는
신약의 복음서를 행동계시
(Act-Revelation),
셋째는
신약의 서신서를 설명 계시
(Interpretative
Revelation)

분류를 했다
.
말씀
계시는 예언적이고 예비적인 것이다
.
구약의
반복되는 예비적이고 예언적인 말씀 계시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매 행동화되었다
.

증거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
행동으로,
생활로써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나타내주셨다
.
이것이
행동 계시이다
.

행동 계시의 핵심은 구속적인 계시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포인트는 아들을 중심한 것이었다
.

아들이 현장에 오셔서 행동으로
,
생활로써
보이신 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fact
보인 것이다
.

핵심은 죽으시고
復活하신
구속 사역이 핵심이다
.
행동
계시의 주요 예는 복음서이다
.
복음서를
통해서 구속 사역을 땅에서 행하신 것을 보이신 것이다
.
설명
계시는 사도들이 말로 전했고
,
그것이
나중에 기록된 것이다
.
주로
신약의 기록 형태로 남긴 계시는 설명적이다
.
서신의
내용들이 사도들 개인의 사적인 사상의 내용이 아니다
.
만일
그렇다면 자유주의 견해들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인물
,
계속
대를 이어 갈 수 없는 사도들을 통해서 그의 행동 계시에 대한 것을 설명적으로 풀어서 기록한 것이 서신서이다
.
예를
들면
,
예수님께서
실제적으로 행동 계시의 차원에서 기록된 십자가의 죽으심은
,
어떤
측면에서 보면
,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
,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바리새인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죽으신 것으로
,
혹은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해 죽으신 것으로
,
당시의
빌라도 총독의 정치적인 그릇된 선고에 의해서
,
혹은
로마 군인의 잔인한 창에 찔려 죽으신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행동 계시만으로는 우리의 연약성과 부족함 때문에 오해 할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을 통한 행동계시를 쉽게 풀어서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설명 형식으로 주신 계시가 바로 신약의 서신서들입니다
.
예수님의
죽으심에대한 설명은 고린도전서
15
3절에
바로 나와 있습니다
.

 

그리고
보스 이후에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보완되었다
.
보스는,
영어로
"Historic
progressiveness of the revelation-process"(‘
계시
과정의 역사적 진전
’)으로
표현했다
.
하나님의
자아 계시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아 계시가 점차적으로 밝아진 것으로
,
그래서
오순절 이후의 이 시점은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완전히 계시가 펼쳐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
그러나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자아 계시는 아주 적다
.
하나님의
자아 계시가 구약의 창세기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계시가 밝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계시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 잘 알 수 있다
.
천국은
마치 씨와 같다
.

씨가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
특별히
신약 성경신학에게 다루는 것도 하나님의 자아 계시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
신약은
불과
100
미만에 쓰였다
.

 

지금까지,
성경신학에
관한 역사부분을 개요적으로 살펴보았다
.
성경신학,
특별히
개혁주의 진영의 성경신학이라는 과목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역사는 오랜 역사는 아니다
.

과정을 보면 자유주의 신학자
,
특별히
개블러라는 공헌이 컸다라고 할 수 있다
.
그가
교의학과 성경신학을 구분했지만
,
우리가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성경신학과 교의학의 구분
,
학문의
한 구분을 확장한 공로는 크다
.
이것을
근거로 해서 보스가 개혁주의 입장의 성경신학과 교의학의 구분을 했다
.
그리고
성경신학이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신학으로 정착을 시켰다
.
그러나
그 동안 자유주의 학자가 성경신학에 대한 것을 교의학과 구분하기 이전에
,
보스가
본격적으로 성경신학 과목을 개설하고 시작하기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여러 학자들이 성경신학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는 부분적으로
말했다
.
코케이쿠스(cocceius)
신구약 전체를 계약이라는 주제에다가 신구약 성경을 꿰뚫어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
뱅겔도
계시의 움직임
,
점진성,
진행성을
말했다
.
결국은
이런 것이 다 참고가 되어서 게하르드 보스와 그 이후의 개혁주의 학자들의 부가적인 연구의 결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
그리고
역사의 과정 가운데
,
개블러
이후에 종교 철학적인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드려다 보는 시대도 있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
그에
대해 반기를 든 글들이 많이 있었다
.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서 보스에 의해서 개혁주의 입장의 성경신학이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성경신학과
교의학
(Dogmatics)
우리의 입장에서 구분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공통점은 있다
.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료로 해서 연구한다는 것은 같다
.
교의학도
신구약 성경 전체를 자료로 연구하고 성경신학도 마찬가지다
.

머레이
((Murray)
교의학은
,
성경에
나타나 있는 진리의 다양한 사실들을 분류
,
조직화,
체계화시켜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그리고
성경신학은
교의학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계시의 점진적인 과정들을 살펴보는 것
이다
라고
구분했다
.
교의학은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진리의 사실들을 각론적으로 살피는 것이라면
,
성경신학은
각론의 내용들을 다 포괄하면서 역사성을 띠고 계시의 점진성을 취급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
여기에
대해서 예리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
머레이도
교의학도 각론을 다룸에 있어서 성경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말했다
.

 

현재
실재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주제들을 살펴보자
.
주로
영국 쪽의 신약 학자들의 타이틀에 있어서
,
신약
성경신학이라고 하고 있지만
,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교의학 차원인지
,
성경신학적인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것이 있다
.
영국
학자 중 거드리
(Guthrie,D.)
그의 책 이름을 신약 성경신학이라고 붙였지만
,
목차를
볼 때
,
10
개를
다루고 있다
.
예를
들면 하나님
,
인간과
세계
,
그리스도의
사역
,
성경,
그리스도의
생활
,
교회론,
미래,
신약의
윤리 등의 주제를 가지고 신약 성경신학에서 다루고 있다
.
그리고
다른 신학자
A.
리차드슨(Richardson)
분명히 신약 신학의 서론이라는 주제로 책을 썼는데
17개의
주제이다
.
믿음과
들음
,
지식과
계시
,
하나님의
구원 능력
,
하나님의
나라
,
성경,
메시야
재해석
,
사도
교회의 기독론
,
그리스도의
생애
,
그리스도의
승천
,
승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
완전하신
그리스도
,
교회의
직분
,
신약의
성찬 신학 등이 있다
.
그리고
G.E.
래드(Ladd)
신약 성경신학이라는 타이틀로 여섯 개로 분류하고 있다
.
신약
성경의 분류로 했는데 공관복음
,
사복음,
초대교회,
바울,
일반
서신
,
계시록으로
분류했다
.
그리고
C.H.
라이리(Ryrie)
6-7개로
나눈다
.
공관신학,
사도행전의
신학
,
야고보
신학
,
바울
신학
,
히브리
신학
,
베드로와
유다 신학
,
요한신학을
분류를 했다
.
지금까지
신약 성경신학이라는 타이틀 속에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을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다
.
성경신학에서
이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이 학자들의 성경신학이라는 이후에 개혁주의 입장에 있는 학자들 가운데
,
로버트슨(Robertson,
O. P.),
보스와
같은 사람들의 책을 보면
,
로버트슨은
계약이라는
용어로써 신구약 성경 전체를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로버트슨은
모두
3
Chapter

하나님의 계약
,
창조의
계약
,
구속의
계약으로 나누었다
.
첫째,
둘째는
구약 부분이다
.
그리고
구속 계약은 신약 성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
상당히
큰 범위에서 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
그리고
보스는 구약 신학
,
신약
신학으로 분류를 해서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라는
주제로 해서 다루고 있다
.
그리고
래드의 신약 성경신학 주제 가운데서는 영국과 구분이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상당한 무게를 두고 저술을 한 것을 눈여겨 볼 수
있다
.

 

신약
성경신학의 주제
:
하나님의
나라

 

이제
범위를 좁혀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신약 성경의 주제에 해당하는 것을 살펴보자
.
신약
성경신학의 주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
이미
성경신학이라는 것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계시에 해당하는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했다
.
또 그
계시가 역사를 통해서 점진성을 가지고 진전된 것을 말했는데
,
이런
것이 과연 어떤 것이 있는가
?
이것을
생각할 때
,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
예수님께서
땅위에 오셔서 구약과 관련해서 가장 강조한 부분이 있는가
?
분명히
강조된 부분이 있다
.
구약과
약간의 차별성이 있으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강조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Hei
Bsileia)’
혹은
천국이다.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강조를 했다
.
예수님
자신이 이 땅위에 임하신 동시에 인격적 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으로 말씀하시면서 공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 크게
강조된 것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구약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 있다
.
누가복음
4
43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여기서
중요한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비로소 독자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
구약에서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
하나님의
의도는 그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명을 위해서 보내셨는데
,
주님은
그 말씀을 받아서 성취된 말씀으로 말하고 있다
.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사역 초기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구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이다
.
우리가
Basileia
(
나라)라고
말하지만
,
그것은
통치
(Reign),
다스림(Rule),
왕권(Kingship)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하나님의
통치
,
주권,
왕권에
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그리고,
나라는
중요한 세 요소 즉
1.통치자,
2.
백성.
3.
영역을
갖추어야 한다
.
통치라고
하면 백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
나라라고
할 때는 위의
3가지가
있어야 한다
.
그러면
신약 성경신학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들도 결국은 나라라는 통치 개념 속에 다 포함 할 수 있다
.
통치자와
백성 사이의 언약
,
계약,

주님의 구속 사역도 통치자가 백성들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관계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
그리고
교회라고 할 때
,
하나님의
통치권 내에 있는 그의 백성들의 모임이다
.
세례,
성찬의
내용들도 통치자와 백성간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그래서
신약 성경신학의 중요한 주제로써 이제 다룰 것은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
신약
성경신학에서 다룰 것은 주로 점진성
(progressiveness)
가진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로서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서 점진적으로 그의 계시를 밝혀 나가셨다
.

계시의 점진성의 내용 가운데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
,
백성에
대한 계시
,
영역에
대한 계시들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다
.

 

하나님의
나라
:
구약과의
관계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가 신약 성경에서는 용어상으로 강조되어 있다
.
그러나
구약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주제가 어떻게 구약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자
.

 

마태복음
1:1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이 나온다
.

하필 아브라함과 다윗이 나오게 되었는가
?
모세와
다니엘과 같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것이 있는가
?
아브라함과
다윗이 나오는 성경 내용을 참조할 때
,
하나님과의
계약
,
언약,

당시로만 그치는 언약이 아닌 영원한 언약과 관련이 있다
.
아브라함과
다윗도 모두 죽었다
.
인간적
차원에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수 없다
.
그의
자손 가운데 영원한 언약이 나오는데 그것은 메시야와 맺어지는 언약이다
.
아브라함과
관련해서는 창
12:2-4,

15:4-5,
17:3-7, 18:18-19, 26:3, 24, 28:15
절은
아브라함과의 영원한 언약의 성격을 띤 내용을 담고 있다
.
다윗과
관련된 성경 구절은 사무엘하
117:13-16,
23:5,
대상
17:14-15이다.
다윗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맺었는데
,
그것은
메시야를 통해서 나타난다
.
다윗과도
영원한 언약을 맺었는데

나라 위는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했다
.
다윗과
관련된 신약 성경은 눅
1:32-33
나타나 있다
.
이것은
다윗과 맺은 영원한 언약의 내용을 누가복음
1
초두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이미 다윗과의 영원한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그 성취가 임박했음을 말하고 있다
.
Basileia

나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를 그 아들에게 주어서 그 나라를 영원하게 하리라고 했다
.
하나님의
통치
,
다스림,
경영하심,
그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
,
주권
행사
,
왕권
행사를 구약에서뿐 아니라 신약에서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그의 나라에 대한 것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더 구체화되고 우리 연약한 사람들도 나라가 점점 진전되는구나라고 느낄 만큼 진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구약에는
전체적으로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내용이다
.

왕권에 대한 내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첫째,
구약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통치자
,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는 왕으로서 그와 백성과의 관계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통치자로써
그 백성을 다스리고 꾸짖고 있다
.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이웃의 이방까지도 친히 다스리고 주장하시는 왕권을 발휘하고 있는 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

내용을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만유의 주
,
우주의
통치자로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다
.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창조가 우주의 주인
,
우주를
통치하는 분으로 나타나 있다
.
구약
성경 전체를 보면 만물을 통치하시는 통치자로써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
그분은
특별히 자기 백성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운영하심을 볼 수 있다
.
그의
백성을 길들이기 위해서 이방 나라들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신다
.
이 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 가운데
,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주 영역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은 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거주한다
.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주 영역과 관련해서 한때는 애굽 땅에
430
동안 살았다
.
이방
나라에서 살았다고 할 때는 대단한 것이다
.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 바로의 마음을 부드럽게도 하고 강퍅케도 하셨다
.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통치권을 말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백성을 광야를 지나게 하신 후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하셨고
,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
가나안에
들어가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나라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통치권 속에서 보다 안정된 삶을 살 것을 기대했지만
,
그렇지
못했다
.
사사들을
통해서
,
왕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제도들로 그의 백성을 다스렸지만
,
문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들조차도 범죄하고 실수하고 넘어지는 일들이 있었다
.
사사들도
강력한 통치권을 발휘했다
.
그러나
그들이 범죄할 때 그 백성들은 비참했었다
.
구약에
나타난 사사와 왕들로 다스려본들 죄로 인해 불행해졌다
.
그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약적 방법들을 시도했지만
,
그것들은
일시적이었다
.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는 완전한 나라를 형성해야 하겠다
,
통치자도
완전한 통치자로 삼고
,
그의
백성도 죄의 문제에서 완전히 해결되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
그의
아들을 통해서 구속 사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일들을 하기 위해서 구약에서 서론적으로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
구약
성경 전체를 한 주제로 생각할 때
,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로 보면 될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역사이다
.
그래서
구약의 역사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또 당대 뿐 아니라 대대로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
인간
통치자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
인간
통치자는 불완전하다
.

한가지는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필요성도 절감했다
.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왕정 시대가 있었다
.
북이스라엘,

유다 나라가 있었다
.
이 두
나라가 갈리게 된 것도 동족상잔의 불행이다
.
북이스라엘은
19
왕조였다
.
평균
통치 기간이
11년이었다.

가운데
19대째
왕 가운데
8왕이
반역자에게 살해되는 비참한 역사를 가졌다
.
여기에
비해서 남 유다는 평균 통치 기간은
16
정도였다
.
그러나
결국
B.C.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다
.
북이스라엘은
더 일찍 망했다
.
(721
)
왕정
시대를 통해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이면서 죄가 없는 메시야의 통치를 기대하도록 약속하시고
,

약속에 대한 것이 점차 밝아질 수 있도록 계시가 점진적으로 분명해지도록 진전시키셨다
.
이것이
구약의 역사이다
.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계시를 진행해 오시다가
,
구약에서
말씀하신 내용대로 그 아들을 이 땅에 직접 보내셔서
,
그의
사역을 끝낸 후에
,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말씀하셨던 그대로 아들의 죽음과
復活
통해서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믿음
-십자가와
속죄 사역에 대해서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되어서 그의 친 백성이 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흐름 가운데 보다 구체적인
,
사람들이
직접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이다.
하나님의
통치라는 주제이다
.
그리고
이 내용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

1:1-2절이다.
1
절은
구약에 대한 글이고
,
2
절은
신약에 대한 글이다
.

 

하나님의
계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우리가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주제로 설명되고 있는데
,
이것이
구약성경부터 지금 현재까지 어떻게 진전되어 왔는가를 이해하자
.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보자
.
하나님의
나라
(Basileia)이다.
나라라는
개념 가운데는 통치자
,
백성,
영역의
요소가 포함이 된다
.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
,
그의
아들에 대한 지식의 정도를 예를 들어 설명하자
.
옛날
구약 시대 주전
8세기경에
이사야
,
예레미야,
다니엘,
호세아가
있다
.
이사야의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앙을 받는 유명한 선지자였다
.

당시에 유명한 선지자라고 하는 이사야가 메시야에 대한 지식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사
7:14절에
보면
메시야는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것이다

53
장에
의하면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것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

정도의 고난의 지식도 대단한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
2012
4월의
시점에 있어서
,
초등학교
3,
4, 5,
학년들의
메시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가
?
메시야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고
,
마리아는처녀로서
성령을 통해서 예수를 낳았다
.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과정에서 동방 박사의 내용까지도 알고 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과정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
예를
들어 대 제사장에게 시기 질투를 받아서 넘기어지고
,
골고다
언덕에서
,
겟세마네
언덕에서 기도하시는 모습
,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운명하시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있다
.
지금
초등학생들의 지식은 이사야의 지식보다 월등하고 구체적이다
.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
세례
요한도 대단한 사람이다
.
구약의
최종적 선지자이다
.
그러나
세례 요한보다도 오늘날 더 지식이 월등하다
.
이런
시대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계시의 밝아짐이 점차 밝아져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완전히 개방된 상태이다
.
더군다나
지금은 계시록을 통해서 아는 것은 영원한 나라
,
그리스도가
완전히 다스리시는 나라
,
악의
세력이 없고 영원히 운영하실 나라까지도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밝아진 상태인지 알 수 있다
.
구약
시대의 계시의 흐름에 대한 진전 과정은 천년 가까운 간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그리고
신약 성경신학에서 다룰 계시 역사 시대는
100
어간이다
.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현장에 오셔서 시간이 진행되면서 구약에서 계획하고 예언했던 내용을 하나하나 시간이 진행되면서 이룬 것이다
.
그리고
계시록의 내용을 보면 영원한 나라의 도래까지도 계시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100
년의
시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
신약
성경에서 다룰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
,
그리고
초림 이후에 세례 요한
,
그리고
예수님의 공적 사역 시작
,
공적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십자가에 죽으심
,
復活,
승천,
승천
후의 오순절 성령 강림
,
성령
강림 이후의 내용들
,
계시록을
통한 영원한 나라에 대한 것을 다루게 된다
.

 

이제,
이어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강조점
,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
,
통치에
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특이성 가운데 그 하나는 용어사용에 있어서
,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대해서 많이 나온다
.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빈약하다
.

그런지
,
그럼
그에 상응하는 특이한 강조점이 있는지도 살펴보자
.

 

구약시대
하나님 나라와의 관련 내용을 다시 간략히 요약하면
,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
시대별로
보면 점진적으로 진전이 되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
,
하나님의
통치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
모세를
통해서
,
그리고
모세 후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의 사사시대
,
왕정시대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화되고 체계화 된 것을 우리가 안다
.
그런데
구약에서 문제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땅위의 인간 통치자는 그 어느 누구도 완전한 통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다
.
아브라함,
모세,
사사들,
왕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린 사람도 있지만
,
죄로
인해 무너진 사람들도 많다
.
왕은
바르게 통치를 하지만
,
백성
가운데 우상을 섬기는 가운데 나라 전체가 무너진 경우도 있다
.

왕이 처음에는 잘 출발했지만
,
마지막에
무너진 경우도 있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자자손손으로 인간 통치자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심어주는 과정 가운데서
,
완전한
사람이면서 죄의 문제를 능히 다스리고 초월하실 수 있는 통치자
,
메시야에
대해서 늘 그의 자손들에게 예언하고 나타날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해서 대망케 했다
.
인간의
다스림으로 인해 실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를 제시해서 대망케 했다
.
그리고
때가 되어서 그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
통치를
실현시키고 세워나가는 일을 신약 시대에 시작하셨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백성들에게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가르치신 것은 이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

 

마태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신약
학자들 중에는
,
마태복음의
구조를 분석적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
마태복음은
구조적으로
13,

천국 비유
,
천국에
대한 설교가 마태복음의 중심 혹은 초점으로 보고 있다
.

 

예를
들어서
,
꼼브렁크(Combrink,
H.J.B),
로오르(Lohr,C.H.),
엘리스(Allis,
O.T.),
포스터(Vorster,W.S.)등의
학자들은 마태복음을 천국
,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특별히
마태복음은 수신자를 생각할 때
,

수신자는 유대인들과 그 이외의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대상이 되지만
,
특별히
유대인을 다분히 의식해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
당시
유대인은 구약의 메시아를 통해서 완전한 나라
,
역대
이스라엘의 여러 죄로 인해 무너지고 불완전한 통치자가 아닌
,
메시야를
통한 통치
,
이것을
늘 기대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태복음이 기록되었다고 할 때
,
용어상으로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보다도
,
하늘나라라는
용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
이것은
유대인을 의식해서
,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표현하기 보다는 하늘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그러나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
54

나라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
왕이라는
용어는
22,
하늘나라,
천국이라는
용어는
34
정도 사용되고
,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는
3
나타난다
.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아버지의 나라라는 표현도 있다
.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천국 복음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
4:23, 24:14. 13:19
절에는
천국 비유가 나오는 장이지만
,
여기에는
나라의 말씀이라고도 했다
.
나라의
복음과 서로 교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로 사용된다
.
그리고
마태복음 첫 부분에서 특이한 것은
5장에서
9장까지에
의하면
1)5-7
2)8-9장으로
나눌 수 있다
.
5-7
장은
산상보훈이다
.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
천국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필요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셔서
8-9장까지의
내용은 말씀하신 후에 초자연적인 행위를 직접 행하신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말씀만 던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한 내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행동
,
이적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하심이 하나로 묶어서
9:35,
4:23

문맥에 의하면 천국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우주적
,
특히
주권에 대한 것을 아들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
,
하나님의
통치
,
나라가
구약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전되고 구체화된 것으로 실현되었음을 마태복음에서는 보여주고 증거하고 있다
.
그리고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의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위에 직접 실현된 것을 힘차게 보여주고 증거할 뿐
아니라
,
동시에
그 내용 가운데는 아직도 사탄의 저항이 이 땅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여러 차례 말하면서 동시에 사탄의 나라까지도 말하고 있다
.
12:26, 25:41
등에
보면 사탄의 나라도 잔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
그리고
특이한 것은 마태복음에는 아들을 통해서 아들이 인격적으로 이 땅위에 임한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

현장에 현재적으로 임한 것
,
실현된
것을 말함과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는 미래에
,
장차
완전한 나라로 실현될 것으로
,
미래에
속한 것으로 동시에 말하고 있다
.
마태복음
내에서 동시에 천국의 현재적 실현
,
미래의
완성의 나라를 말하는데
,
이것은
결코 두 관계가 부자연스럽게
,
부조화의
마찰이나 충돌이나 모순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말씀하고 계신다
.
그리고
현재적 실현에 대한 것은
4:1-11이다.
그리고
미래의 완성은
7:21,
13:1-37, 16:18-19, 28, 24:1-51
등이다.

 

마가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마가복음은
양이 적음
(16)
비해서 나라
(Basileia)라는
용어는 모두
19
사용되고 있다
.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
14
나오고 있다
.
그리고
왕이라는 용어는
12
사용된다
.

12
가운데 예수님에게 적용된 것이
15:2,
9, 12,
등등으로
6
나온다
.
마태복음과
비교할 때
,
마가복음에는
그 용어가 하나님의 나라로 되어 있다
.
천국이라는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
마태복음에는
천국이 압도적이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
마가복음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만 나온다
.
이유는
마가복음은 주로 이방인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이방인에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생각할 수 있다
.
그리고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자,
그리스도
예수
에게
속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충성되게 소개하고 전파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이유도 마가복음의 수신자로 인한 강조가 아니겠는가 볼 수 있다
.
그리고
마태복음에 비해서 마가복음에 강조된 것은 예수님을 여호와의 종으로 표현하고 강조하고 있다
.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이방인에게 여호와의 종이라고 할 때
,
이방인에게는
가볍게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
마가복음
전체를 읽어 나갈 때
,
이방인은
놀랄 것이다
.
마가복음의
클라이맥스에 가면 보통 일반적인 종이 아니라 굉장한 종으로 나타난다
.
예수님이
처음에는 종이었는데
,
마지막에는
유대인의 왕으로 간주된다
.
물론
죽음에서
復活하심으로
인해 이방인의 입을 통해서도
,

분은 과연 왕이시다 라는 것이 강조된 것으로 나타난다
.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의
나라가 특이하게 강조되었고
,

나라를 세우실 주된 통치자가 예수님께서 왕으로 간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누가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누가복음은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누가복음에는
다른 두 복음서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표현이 아주 풍부하게 나타나 있다
.
누가복음에서는
특이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
이것을
보면 말라기 이후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줄 수 없을 어두운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1:32, 11:20, 22:29-30, 12:32

나타나고 있다
.
12:32
절에
보면 너희 아버지께서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다
.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나라이기도 한 것으로 말한다
.
1:32-33, 22:29-30
등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동시에 예수님의 통치로 여기고 있다
.
그리고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차별성이 있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
4:5-8, 22:24-27
등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탄의 것과는 결코 합류할 수 없는 구별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실제를 말하고 있다
.
7:18-23, 11:20, 17:21-22
등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을
21:5-38에서
말하고 있다
.
누가복음1-24장까지가
독립된 것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
완전히
종결 된 것은 아니다
.
사도행전1-28장까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One
Volume

대한 것이다
.

책의 제
1,

2부로
볼 수 있다
.
그래서
사도행전과 분리시킬 수 없다
.
이런
차원에서 누가복음
1장에서
사도행전 끝장을 전체로 볼 때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
2부에서는
다른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

 

공관복음을
통해서 본 것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공통적으로 유대인을 의식해서 기록했든 이방인을 의식해서 기록했든
,
공통으로
하나님의 나라
,
통치,
다스리심,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아주 강조되었다
.
구조적으로
부분적으로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
주목할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임재하신 인격적 임재로 하나님의 통치가 그 아들과 동시에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이다
.
그러면서
동시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도록 미래적인 것까지 말하고 있다
.
하나님의
통치의 현재적 측면과 미래적인 측면을 계시 하고 있다
.

 

요한복음과
생명
(영생)

 

공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 강조된 것을 살펴보았다
.
그럼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같이 넣어서 공동으로 취급할 수 없을 만큼 요한복음의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에 대해 특징을 가지고 나타난다
.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강조점의 차이중의 하나는
,
기록
목적에 대한 것이 요한복음에는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성경을 읽는 사람이 유의해서 꼼꼼히 읽어야 한다
.
그럴
때 목적에 해당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렇지 않다
.

부분은 요한복음의 목적이 구나하는 것이 있다
.
20:30-31
절이다.

내용을 보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첫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
둘째는
믿도록 하여
,
셋째는
그 믿는 자에게 생명
(영생)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이 세 가지 내용을 강조하고
,
지금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얻게하기 위한 것이다
.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땅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만이 할 수 있는 생생한 이적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signs)이라고
되어 있다
.
표적은
공관복음에서의 이적과 예수님의 행하신 행동
,
특별히
구속사역과 관련된 행동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

엄선해서 첫 번째 표적
,

번째
,

번째 표적으로 계획적으로 구성해 놓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이다
.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는데
,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서 강조된 부분은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측면이지만
,
요한복음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영생
(Eternal
Life:
ζωη)
있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는 어떤가
?
하나님의
나라에는 백성
,
주권,
통치를
생각할 수 있는데
,
요한복음의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본질적인 문제
,
내용의
문제이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본질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의 영생이다
.

 

공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
요한복음에서는
영생
대한 용어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
요한복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2회이다.
3:3,5
절이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
그리고
18:36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

나라
“(My
Kingdom)
라는
표현을 했다
.
하나님의
나라 즉 예수님 자신의 나라
,
예수님의
통치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
하나님의
나라라는 직접적인 용어 대신에 구성원의 본질적이고 내용적이고 자질적인 영생을 요한복음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
그리고
자세히 요한복음을 보면 영생
,
생명이라는
것도 현재성과 미래성이 나타난다
.
3:36, 5:24-25, 4:35

보면 메시야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이 현재적으로 소유상태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
.

다른 성경은 미래의 것을 말한다
.
4:14, 7:37-39, 10:10, 20:22
등이다.
영생이
미래에 대망의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이것도
공관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현재성과 미래성과 밀접한 관계에서 볼 수 있다
.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확실히 지적이 되었지만
,

세상과의 어떤 적대 관계에 있음을 아주 강조하고 있다
.
요한복음에
보면
세상이라는
용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
.
특별히

세상

많이 나온다
.

세상이라고 할 때는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하지만
,

세상이라는 내용 가운데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
반대하는
어떤 그룹
,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

세상이 영접하지 않고 적대하고 멀리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
그러나
요한복음 전체의 구조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復活하신
것을 통해서 이 세상의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으로
,
하나님의
아들이 승리하신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이것과
생각해서 영생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다
.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강조의 차이가 있다
.
그러나
공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는 외형적이고 가시적이라면
,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는 영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이고 본질적이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강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지금까지
하나님의 굵은 선에서의 계시에서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임을 우리가 확인했다
.
우리가
그동안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도 역시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가르치신 중요한 주제임을 확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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