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칼럼

수정된 1903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칼빈주의적이 아닌 알미니안주의적인 신앙고백서이다.|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6-05-25 23:18
조회
2639

대신 교단의 정체성과 역사성은 자타가 인정하는 역사적 개혁교단이다. 칼빈주의적 즉 사도적 신앙의 정통에 서 있는 개혁파 교단이다. 특히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를 바른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개혁파 교단이라는 명칭을 버렸다.

 

이번에 출간된 새로운 헌법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헌법 제3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1964년 원문에 제34성령에 대하여와 제35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하여가 첨가된 1903년 미국장로교회가 채택한 수정판을 수록했다.

 

수정된 1903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칼빈주의적이 아닌 알미니안주의적인 신앙고백서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 교단이 어찌 알미니안주의의 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며 묻고 싶다.

 

자타가 인정하는 역사적 개혁교단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수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받지 말아야 하며 고쳐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회가 회의를 하여 다시 건의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1 /수정된 1903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문제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개정에 대한 세계3대 개혁주의 신학자의 견해***

(출처: http://www.samil.org/xe/index.php?document_srl=49285&ckattempt=1&mid=londonhorace_06)

1903년에 있었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개정에 대해서 세계적인 개혁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세 사람 B.B.Warfield, Herman Bavinck, 그리고 Abraham Kuyper의 견해를 들어보라.

(1) B.B.워필드

미국장로교회내의 개정논의에 직접 참여하였던 B.B.Warfield의 입장인데, 미국장로교회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1904년에 발간한 팜프렛의 말미에 한 말이다:

개정된 신앙고백서는 분명히 이전의 신조를 알미니안화 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최소한 명백한 칼빈주의 원리들 사이사이에 명백한 알미니안주의 원리들을 함께 뒤섞어 놓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모순되는 요소들을 함께 두면서 아무 것이나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둘 다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2) 헤르만 바빙크

워필드는 개정된 신조가 알미니안주의화 되었거나 최소한 알미니안 신학적 요소가 뒤섞여 있어서 개혁교회의 신조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네델란드의 개혁주의신학자였던 Herman Bavinck도 미국에서 일어난 이런 웨스트민스터신조개정에 대해서 그의 유명한 개혁교의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정신은 북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North)에도 침투했다. 수년 동안 연구되었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수정안이 1903년에 채택되었다. 이 수정판에서 신앙고백서는 단지 약간의 변경이 있었을 뿐이지만, 첨가와 누락은 - 새롭게 포함된 성령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한 두 개의 장과 개혁교리에 대한 몇몇 거짓 견해들을 반박하는 선언문’(Declaratory Statement) - 모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목적은 신앙고백서에서 가르치는 '제한 구원론과 나란히 하나님의 사랑, 구속, 복음의 설교와 은혜의 제공, 성령의 사역과 유아기에 사망한 모든 아이들의 구원에 대한 보편 구원론을 아주 강력하게 드러내려는 것이었었다. 따라서 수정된 신앙고백서는 두 진영으로부터 거부되었다. 클락스빌(Clarksville)의 신학교 교수인 웹(R.A.Webb)박사와 같은 몇몇 개혁주의자들과 템플턴(S.M.Templeton)박사와 같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수정된 고백서의 보편 구원론제한 구원론과 상치된다는 주장에 의견을 같이했다. 어쨌든 주목할 만한 사실은 19055월에 개최된 북장로교 총회에서, 즉 수정된 신앙고백서가 채택된 지 2년 후, 이 교단이 1770년 부흥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신앙고백상 결정적으로 아르미니우스주의적 입장을 취한 컴벌랜드장로교회’(Cumberland Presbyterian Church)와 연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개혁교회와 신학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성경의 무류성, 삼위일체, 인간의 타락과 무능, 제한속죄, 선택과 유기, 영원한 징벌에 관한 교리들은 슬며시 부정되거나 또는 공개적으로 거부되었다. 미국 칼빈주의의 미래는 낙관적인 장밋빛이 아니었다.”

(3) 아브라함 카이퍼

바빙크는 개혁주의교회가 지니고 있어야 할 특징적인 신앙조항들이 이 개정을 통해서 슬그머니 혹은 공개적으로 거부되었다고 한다.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또 다른 네델란드의 개혁주의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1903년의 개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브라함 카이퍼는 미국에서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개정운동을 염려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면서 미국장로교회총회에서 개정이 완료되기 훨씬 이전에 그 염려를 표현하였다. 1891년에 발표된 그의 관심을 보면, 카이퍼박사는 미국에서의 개정운동을 17세기 네델란드에 있었던 알미니안주의자들의 항의와 관련시키고 있다. 1891년에 발표된 “Calvinism and Confessional Revision"이라는 글 속에 나타난 그의 결론이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개정운동을 듣고 이런 일이 네델란드에서도 일어나게 된다면 있게 될 그 결과를 예상해 보면서 본인은 이런 개정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되는 의무감으로 느끼게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런 신조의 개정이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강력하게 저지하는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되는 의무감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계3대개혁주의신학자의 한 명으로 알려진 B.B. 워필드는 이 개정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는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서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였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네델란드의 개혁주의신학자들은 그 반대운동에 공감하면서, 또한 개정에 대한 반대소감들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참고 2 /수정된 1903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문제점>

(출처:http://cafe.naver.com/hmchurch/3370)

1903년에 미국장로교회(PCUSA)는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모든 유아 사망자의 구원받는 것과 성령 하나님과 전도자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장을 포함한 7개 수정안을 수용하였다. 이 수정작업은 알미니안적인 컴버랜드 장로교회와 1906년에 통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결국 느슨한 신조의 채택과 인본주의적 수정요구는 헌법이나 목사안수에서 형식적으로는 고백하지만 목회현장에서는 점점 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무시하고 왜면하며 실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미국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수정과정은 1903년에 이르러 변질된 형태의 절정을 이루었다. 1903년판에서 핵심적으로 수정된 내용들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로 선언서를 첨부하여 3장 예정론, 103조의 유아세례를 변경했고, 둘째로 문장 자체를 고친 부분은 167조 선행, 223조 맹세, 256조 교황 부분이다. 셋째로 첨부한 장들은 34장 성령, 35장 선교 부분이다.

 

교리적 내용으로 살펴보면 전통적 개혁파 예정론을 예지(豫知)와 조건에 기초한 알미니안적인 예정론으로 변형한 것, 유아로 죽은 모든 자들을 선택에 포함시켜 예정론 개념을 약화 시킨 것과, 중생되지 않은 자들의 선행들을 적극적으로 평가한 것, 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부분을 삭제한 것, 그리스도의 속죄범위가 제한적이 않고 보편적이라는 것 등이다.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 수정의 내용을 보편구원론을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적 수정이라고 비판하였다.

 

(1) 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1647년 초판의 3장의 예정론은 하나님의 결정(작정)에 따라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다라는 고백처럼 선택과 유기의 이중예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1903년 수정판은 유기 부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즉 유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강조하지 말고 모든 이들이 선택 받았다는 방식으로 이해를 촉구하였다.

 

첫째, 신앙고백서의 제 3장에 관련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의 교리는 모든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과 조화되게, 전 세계의 죄에 대한 대상이 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과 조화되게, 그리고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한 그의 호의와 조화되게 주장되어야 한다. 멸망을 받는 사람들에 관한(유기자)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 교리는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의 죽음도 원하시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충족하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게, 그리고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실 구원을 준비하신 것과 조화되게 주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제공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아무도 자기가 범한 죄 이외의 죄 값으로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선택과 유기의 구분을 파괴하고 오직 선택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행위를 약화시키는 알미니안적 형식이다. 이런 표현은 이미 도르트 신조에서 알미니안주의 자들이 믿고자 하고 이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전체적이므로 이 선택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도록 할 뿐, 그 외의 다른 주장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다라고 말하여 이중예정을 공격했던 말들이다. 결국 알미니안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행위를 강조하는 예정예지, 무조건적 예정, 이중예정을 변형시켜 예지예정과 조건적 예정, 단일예정(선택만 강조)을 강조하였는데 1903년 수정판은 이런 인본주의적 예정론을 수용했던 것이다.

 

(2) 10장 실제적 부르심에 관하여

수정 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3항에서 택함은 받은 영아는 어려서 죽는다 할지라도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고 구원을 받는다라고 언급하여 제한적 선택을 강조하는 예정론을 분명히 언급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1638년 스코틀랜드 총회는 그리스도가 모든 이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보편적 선택 입장인 아르미니우스주의, 혹을 일명 카메론주의와 박스터주의를 정죄 하였다. 벌콥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개혁파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개혁파의 입장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리고 확실히,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구속 사역의 혜택을 실제로 베풀어 주신 사람들만을 구원하려는 목적에서 죽으셨다는 말과 동일하다. 개혁파임을 자처하는 여러 분파들 가운데 이러한 입장을 수정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오까다 교수도 신조 해설에서 영아의 죽음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소개하면서 선택받은 유아만이 구원받는 것이 전통적인 개혁신학 입장임을 강조하였다.

 

어린아이가 죽는데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유아가 죽으면 모두 구원받는다. 2. 세례받은 자는 모두 구원받는다. 3.복음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멸망받는다. 4.신자의 자녀는 구원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하간 택함을 받은 자만이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적 자유에 기초하여 외적 소명을 절대적 조건을 보지 않는다.

 

이처럼 수정의 정신들 바탕에는 단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넘어선, 진리를 흐리게 하는 사단의 공격이 있음이 분명하다. 즉 개혁신앙의 독특성인 무조건적이며 제한적 선택과 유기를 강조하는 이중예정론은 수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부인되었다. 이런 부인은 다음의 1903년 선언문에서 더욱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신앙고백의 제 103절에 관련하여, 유아시절에 죽은 아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유아시절에 죽는 모든 아이는 구원의 선택에 포함되어 있으며,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서 거듭나고 구원을 받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성령은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 하실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하신다.

 

결국 수정된 신앙고백서는 유아와 관련하여 원죄를 부정하고 자범죄만을 강조하여 모든 유아의 구원을 주장한 펠라기우스의 입장과 인간의 자유의지적 죄만을 강조한 알미니안주의 입장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결국 1903년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신적작정과 예정론을 인간 중심적 사고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수정은 주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을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는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인식되어지도록 놔두어야 한다라고 경고한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크게 벗어난 것이다.

 

(3) 16장 선행에 관하여.

수정 전(1647년판) 신앙고백서는 고귀한 사람들의 선행일지라도 그것은 임을 분명히 하였다. 167조 선행에서 삭제된 부분은 그것들은 죄악되며, 그렇지만 그같은 행위들을 그들이 게을리 하게 되면 그것은 더욱 죄악되며, 하나님을 더욱 불쾌하게 하는 것이 된다라는 마지막 문장이다. 초판은 불신자의 선행에 대하여 형식적으로 선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죄악됨을 강조하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임을 주장하는 개혁파 신학을 잘 드러내었다. 그러나 수정 후에는 죄악이라는 부분을 삭제하고 단지 불신자의 선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칭찬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인간의 전적타락을 약화시키며 결국 부정하는 것이다. 1903년 수정판은 인간의 행위가 단지 구원을 얻는데 부족할 뿐이며, 자연인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방법과 목적만 제대로 갖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변질시켰다.

 

(4) 223조 맹세에 관하여.

고쳐진 것들 중 두 번째는 맹세에 대한 부분이다. 1903년 판은 1647년 판에서 그와 동시에 합법적인 권세가 선하고 정당한 것에 대한 맹세를 요구하는 때에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죄가 된다.”라고 고백한 부분을 삭제했다.

 

(5) 25장 교회에 관하여

수정 전(1647년 판)에는 교황은 적그리스도로 명백하게 규정되었으며, 자신을 높이 올리며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수정 후의 신조는 교황은 단지 비성경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로 표현을 완화시켰다. 그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가 아니고, 단지 비성경적이고 부당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명예롭지 못한 월권행위이다라고 수정하여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관용적 태도를 취했다.

 

(6) 34장 성령에 관하여

1903년 수정판의 첨부한 장들 중 처음은 34성령에 관한 장으로 본문은 다음과 같다.

1. 성령은 삼위일체 신의 제 삼위로서 성부와 성자에서 나왔으나 동일한 실체를 가지시고 권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이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세세토록 믿고 사랑하고 복종하고 예배드렸다.

2. 그는 주요, 생명의 부여자다. 어느 곳에든지 계시고 모든 선한 생각과 순결한 욕구와 사람 안에 있어서의 거룩한 고문이 되신다. 그에 의해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충동을 받았고 모든 성경 기자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무오하게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았다. 복음의 경륜은 특히 그에게 위임 되었다. 그는 그 길을 준비하시고 그의 설득력으로서 동행하신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과 양심 위에 복음의 사신(使信)을 주어 그러한 자비로우신 은사를 거절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구실이 없게 되고 성령을 거역하는 책임을 지게 된다.

3.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언제든지 성령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 성령은 구속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단 하나의 효율적인 기관이다. 그는 사람을 그의 은혜로 중생케 하고, 그들의 죄를 시인케 하고, 참회하도록 마음을 움직이시고, 믿음 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모든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 결합시키고 위로자와 성화자로서 그들 안에 남아 있어서 그들에게 입양의 영과 기도를 주신다. 또한 모든 은혜로운 일을 행하여 그것으로써 신자들이 구속의 날까지 성화되고 인치심을 받는다.

4. 성령이 내재함으로써 모든 신자는 먼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강하게 결합이 되며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 안에서 서로 연합이 된다. 그는 그의 교역자들을 부르고 그들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기름을 부어 주신다. 그리고 그들의 특수한 일을 위하여 교회 안에서의 모든 다른 직책을 위한 자격을 준다. 또한 그의 회원에게 여러 가지 은사와 은총을 부여해 준다. 성령은 교회가 드디어 지구를 덮을 때가지 교회를 보존하시고 늘어나게 하시며 순화시키시다가 종당에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거룩하도록 만드실 것이다.

 

이 항목을 보면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정의 배경에는 당시 오순절주의자들을 통해서 부흥운동이 전 교회적으로 급속도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미국의 2-3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것은 1820년대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1792-1834)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강조를 기점으로 해서 시작된 미국교회 내에서 성령의 능력적인 은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때와 병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 운동의 여파로 장로교인들 조차도 신비주의적 성령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신앙고백의 기준을 따라서는 성령운동을 소화해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 안에도 성령운동이 급속도록 들어왔지만 신조의 내용은 이런 운동을 금지하는 교리적 내용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성령에 대한 교리를 통해서 이런 신비주의 운동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수정 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령장을 따로 두지 않았지만 수정된 신조는 본 신조가 성령론이 약하다고 비판하면서 성령장을 첨부하였다. 개혁교회의 조직신학은 성령론을 구원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통이다. 이런 이해가 바빙크, 벌콥, 박형룡, 조석만의 조직신학에서 제시하는 전통적인 성령론의 구성이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조도 성령론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10-18장에 이르는 구원론 안에 넣었다. 그 결과 본 신조는 성령론이 전체 33장 중 1/3에 해당할 정도로 많아졌기 때문에 결코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백석대 유태화 교수나 일부 신학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성령론보완해야라고 지적하는 평가들은 잘못된 지적이다.

 

또한 성령의 구원사역을 설명할 때도 1647년 판은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모든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만을, 자신이 정하시고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때에, 효과적으로 부르시되,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하시며라고 하여 예정론에 기초한 성령의 구원사역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1903년 판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언제든지 성령을 주시기를 원하신다(3)”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미니안적 예정론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회원에게 여러 가지 은사와 은총을 부여해 준다. 성령은 교회가 드디어 지구를 덮을 때가지 교회를 보존하시고 늘어나게 하시며 순화시키시다가 종당에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거룩하도록 만드실 것이다.”(4)라는 표현을 통해서는 당시 유행하던 신비주의적 성령운동에 기초한 은사론과 대형교회적 부흥론을 정당화 시켰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나 그 외의 신조들에서도 분명히 성령에 대한 이해가 잘 정립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교리의 내용 속에 성령의 자리와 역할이 구원론 형태로 분명히 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정통 신조에 대한 전면 부정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성령을 삼위일체에서 분리하여 구원에 대한 독립적 사역을 강조하게 되면 어거스틴 이래 개혁신학에서 외쳤던 외부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은 분리되지 않는다”(opera trinitas da extra indivisa sunt)라는 삼위일체의 조화 균형이 파괴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수정에는 삼위의 사역 중 성령만을 강조하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에 대한 사색의 길을 추구하려는 사상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수정으로 신비주의의 길은 장로교 안에서 급속도로 넓어져 가기 시작했다.

 

(7) 35장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관하여.

1.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완전한 사랑가운데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와 희생을 통하여 은혜의 언약을 마련하셨다. 그는 생명과 구원의 길이다. 사람의 모든 잃어버린 족속을 위해서는 충분하고 적합하다, 그리고 이 구원은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이 제공되었다.

2. 복음 안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위한 그의 사랑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을 원하시는 그의 뜻이 선언되었으며, 구원의 유일의 방법이 충분하고도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참으로 참회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약속하시고 주어진 자비를 받아들이도록 권하시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말씀에 따르는 그의 영에 의하여 그의 은혜로우신 초청을 받도록 사람에게 역설한다.

3.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주저 없이 그의 자비로우신 준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의무요 특권이다. 반면에 참회도 하지 않고 불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악화된 죄책을 초래하게 되며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 망하게 된다.

4. 복음 안에서 제시된 것 이외에 구원의 길은 없으며, 신적 확립과 보통방법을 통해서 주어진 은혜 안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서 오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에 위탁하기를 온 세상에 나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로고 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이미 질서가 확립되어 있는 기독교의 질서를 지지할 의무와 그들의 기도와 기부와 개개적인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왕국을 온 세상에 확장하는 데 공헌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본 내용도 34장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과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으로 신앙고백서에 추가 된 부분이다. 당시 오순절운동을 통해서 성령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런 부흥운동이 전 교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선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부각되었다. 이런 흐름에서 선교에 대한 주제가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신비적 부흥운동과 선교가 얼마나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부흥운동에 영향을 입은 장로교회는 비()개혁교회들의 운동과 영향을 자연적으로 좇아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적 기준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로교회 안에서도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본 내용을 새롭게 추가시켰다. 왜냐하면 기존의 신조가 예정론을 강조하고 있어서 선교에 대한 적극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교에 대한 교리적 정립을 새롭게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이 선교에 대한 추가 주장은 전통적 예정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의 표현이었다. 이미 알미니안주의자들도 도르트 총회 때에 예정론이 선교와 성화에 방해가 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었다.

 

예정론과 여기에 첨가된 몇몇 요소들에 관한 개혁교회의 교리는 그 특징적인 경향에 비춰 볼 때 사람들에게서 모든 경건한 신자의 의무를 무시해 버리고 있으며, 이 세상적인 사단에 의해 조작된 일종의 마취제이다. 또한 이것은 사단의 견고한 요새이며, 여기에서 사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며 실망과 나태함의 화살로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며, 하나님을 죄와 불의의 원인으로 돌리며 또한 하나님을 폭군이요, 위선적인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도르트 신조는 결론 부분에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비판을 배격하며 대학이나 교회 안에서 이 교리를 조심스럽게 가르칠 것을 바라는 바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나 설교를 함에 있어서 이 가르침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경건한 생활을 이루며 고난당한 영혼을 위로하도록 해야 하며라고 권면했다. 즉 이들은 예정론을 잘 정립하면 그 속에 가장 열심 있는 선교와 성화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복음 자체는 전도, 즉 선교와 분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도를 생각하지 않고 복음의 내용을 정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기존의 신앙고백서는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 미흡하니 이제 새로운 교리를 정립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기존의 신앙고백적 기준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본문의 내용도 보면 이 표현을 통해서 기존의 개혁교회의 예정론과 제한 속죄에 대한 교리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와 희생을 통하여 잃어버린 모든 인류를 위해서 충분하고 적합하다, 그리고 이 구원은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이 제공되었다.”라는 표현은 도르트 총회에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보편속죄의 핵심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결국 1903년 수정판도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알미니안적 보편속죄와 보편구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 1903년 수정판은 개혁교회의 신조 역사 속에서 그토록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예정론, 제한 속죄, 전적부패,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라는 교리를 파괴하고 있다. 즉 과거에 분명히 위험한 교리로 정죄했던 내용을 수정과정을 통해서 점차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을 추가한 미국개혁교회나 한국장로교회는 점점 더 알미니안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교회로 변형되는 심각한 상태를 나타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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