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약의 그리스도
구약의 그리스도 / 오현철박사
Edmund Clowneys. The Unfolding Mystery Discovering Christ in the Old Testament
-클라우니는 요한은 ‘태초에’ 라는 말로 요한복음을 시작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위대한 이야기의 참된 시작이 어디인가를 가르쳐 준다면서 따라서 요한이 말한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잘 알고 있었던 이야기, 즉 구약의 이야기를 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1 아담은 그리스도의 그림자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아담의 대체자가 아니다. 즉 아담이 실패한 것을 대신할 사람 그 이상이다.
-그분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한히 초월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원하신 아들로서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2 여자의 후손 예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여자(하와)와 뱀(사탄)과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아니라 사탄과 사람 사이에 불화를 일으켜 서로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심
-여자의 후손(예수)과 뱀의 후손(사탄)과의 싸움: 십자가의 고난, 비록 사탄이 승리한 것 같이 보이나 사실은 사탄의 패배였던 사건
3 창22장 사건
-이삭이 약속의 자손이었지만 그도 충분치 않았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을 주신 행위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4 야곱의 사다리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다리는 장차 올 것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다. 그 꿈이 약속한 것이 그리스도의 성육신 속에서 실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거하시기 위해서 그분의 아들 안에서 내려오셨다.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중보자시다. 그분은 참 벧엘이요 즉 하나님의 집이요,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5 유월절 양과 출애굽 사건
-유월절 양은 하나님께서 수행하실 구원사역을 그림자로 보여주고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 준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의미를 완전히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6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들: 성막, 영광의 구름, 돌판, 뱀의 들림, 물을 낸 반석
-모세 시대에는 상징과 그림자로서 계시되었던 것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실체가 계시되었다. 이제 우리가 보는 것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임시적인 성막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던 영광의 구름이 아니라, 깨져 버리는 돌판이 아니라, 참되고 영원한 성막이시며, 곧 영광이시고, 율법의 완성이 되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그분은 뱀의 들림같이 십자가에 들림을 받으셨으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반석이시다.
7 시편의 직접적인 묘사들
-22장(고난받는 종), 23장(목자되신 주), 102장(창조주요 구속자) and so on.
8 평화의 왕; 영존 하시는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사 9:6
9 오실 주님
-사 10:33-34, 25:6-8, 59:16-17, 60:1-2; 겔34:10-12, 믹7:18-19, 호11:8-9, 습3:14-15,17,
James Orr. "Immortality in the Old Testament", Christian View of God and the World :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1.
-오르는 구약에는 부활에 관한 뚜렷한 교리가 없다고 말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이 교리에 대한 잘못된 근거, 즉 부활사상보다는 영원불멸의 교리에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이 성도들이 가졌던 영생의 소망은 바로 부활의 소망이었음을 설명해 나가고 있다.
-오르는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복음 안에서 밝히 드러나 지금과는 달리 그 때에는 아직 완전한 빛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오르는 지난 시간 “신약시대 사람들이 부활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씀하신 신현수 교수와 뜻을 같이하며 단지 이를 구약의 백성에게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dward J. Young. My Servant the Prophets: Exposition of Deuteronomy 18:9-12: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2.
-영은 모세의 글 신명기 18:9-22의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에 대해 “어떤 위대한 선지자(a great prophet)”가 아니라 메시야(Messiah the Prophet)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신약성경의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5-47)"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행3:22,23)”
-이는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직접 관련하여 인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자신을 신명기의 그 위대한 예언의 주인공으로 여기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G. 반 흐리닝겐과 그에게 영향을 준 O. T. 엘리스 역시 같은 입장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G. Van Groningen. "The Final Question: Jesus Christ in the Exodus Story":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4.
-흐리닝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고 성육신 이전의 그 분으로 임재하셨다. 본질적으로는 삼위의 하나님으로 그러나 자신의 신적이고 영적이며 불 가시적인(divine-spiritual-invisible) 임재를 앞에서 클라우니가 지적한대로 유월절 양, 반석, 출애굽 사건, 모세, 뱀 등의 형태로 알리셨다는 것이다.
Huge Martin. "New Testament Commentaries: No. 1, The Type; No. 2, The Parallel; No. 3, The Sign," <요나서 주석>: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5.
-구약학자 말틴은 신약성경은 “역사해석의 주석서”이며 그 주석가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요나 사이에 유추법의 세 가지, 곧 모형(type), 대조적 유사성(parallel) 그리고 표적(sign)이 존재한다고 그의 요나서 주석에서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모형에 대해 그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은 첫째, 예수와 요나에게 모두 죽음과 부활이 있었다는 것, 둘째, 두 경우 모두 죽음과 장사는 심판의 과정이라는 것, 셋째,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었던 것처럼 예수는 이 세대에 그러하다는 것(눅11:30)이다.
Herbert Wolf, "The Desire of All Nations' in Haggai 2:7: Messianic or Not?,"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tudies 19: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5.
-볼프는 학개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석상 흥미를 끄는 몇몇 문제점들에 부딪히게 된다면서 그중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당혹스러운 것은 바로 2:7에 언급된 “만국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이 특정본문에 대한 해석이 메시야적인 해석으로부터 전적으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음을 소개하면서 그러나 2:7의 “소망”과 “영광”과 같은 단어들을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그 책의 마지막 부분의 예언과 잘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총독 스룹바벨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즉 그에 대해 메시야를 가리키는 “내 종” 및 “택한 자”(사42:1; 52:13)라는 칭호들이 주어진 이유는, 이 유대의 지도자가 바로 언젠가는 다윗 왕조로부터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증거 혹은 보증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Fred Carl Kuehner. "Emphasis in Malachi and Modern Thought," The Law and the Prophets :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8.
-퀴너는 말라기의 내용을 더러움의 원인, 더러움에 대한 고소, 더러움에 대한 치료로 구분하면서 말라기의 강조점을 그 궁극적인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예언에서 성취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말라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전환을 해야 한다면서 구약의 마지막 책에서 마지막 선지자가 불러 일으켰고 마지막 사도가 다시 되풀이한 그 기대를 가지고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Walter C. Kaiser, Jr. "The Promise of the Arrival of Elijah in Malachi and the Gospel": 윤영탁 역. 구약논문 씨리즈 Vol. 9.
-카이저는 이 연구에서 말라기와 복음서에 나타난 엘리야라고 하는 미래의 선지자의 신분에 대해 기존의 연구들과 같이 세례요한의 보증이라고 보면서 동시에 아직도 다른 엘리야, 그리고 특별히 우리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올 저 마지막 엘리야 등으로 메시야의 초림과 관계된 유대인의 전(前)세대와 메시야의 재림을 소망하는 우리자신의 세대까지 그 예언 적용의 폭을 제한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출처
http://theologia.co.kr/cgi-bin/spboard/board.cgi?id=a4&action=view&gul=292&page=7&go_cn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