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약의 안식일이 주는 신학적 의미 /류호준 교수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3-10-05 19:10
조회
7092

시간을 제도화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인류의 시작만큼이나 고대적이다. 하루(日)를 시간대로 나누는 일, 날(日)들을 모아 주기화(週期化)하는 일, 달(月)과 년(年)을 구성하는 일 등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7일을 한 주기(週期)로 삼는 제도는 언제 생겼을까? 안식일 제도는 언제 제정되었을까? 안식일 제도는 히브리적 전통인가? 아니면 다른 고대 근동민족들에게서도 발견되는 보편적인 제도인가? 안식일 제도는 인류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창조규례)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는 특정한 법인가? 아담과 해와는 안식일 제도를 지켰을까? 노아와 그의 자손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대표되는 구약의 족장들은 안식일 제도를 신적(神的) 제도로 이해하고 철저하게 지켰을까?




또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구약의 안식일 제도와 신약의 주일 제도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일까? 안식일과 주일은 자연스럽게 동일시되어야 하는 것일까? 십계명중 제 4 계명은 지금도(신약시대) 그대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명령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후로는 모든 날들이 안식하는 날들이 아닌가? 특정한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낫게 여겨야할 이유가 있는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 정도까지 안식일에, 혹은 주일에 일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안식일은 예배를 위한 날이라면 예배 후에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주일성수(主日聖守) 라는 문구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안식한다는 것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어떤 종류의 일을 말하는가? 육체적인 노동이나 일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정신적인 노동도 포함하는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들, 혹은 시민의 생명을 위해 일해야하는 소방관들은 주일에 근무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목사와 전도사들은 주일에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이처럼 안식일에 관한 논의는 실제적으로 많은 어려움 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안식일 본문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남아 있다. 먼저 안식일에 관한 구약성서의 언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관한 제도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구약성서를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직선적(直線的)으로 읽어 내려간다면 안식일은 낙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읽어질 수 있다(창 2:2-3). 그러나 그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가 그때까지 해오셨던 창조 사역을 제 7일에는 '멈추셨다'('cease,' 'stop', 이것이 히브리어 '샤바트'[???]의 일차적 의미이다. '쉬다,' 혹은 '안식하다'[rest]는 개념은 이차적이다)고 말할 뿐이다. 설령 하나님이 그날에 안식하셨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곧바로 아담과 하와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본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더욱이 모세 오경(창세기의 창조시 하나님의 안식을 언급하는 본문을 포함하여!)도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문서이기 때문에 안식일의 준수가 출애굽 이전에 엄격하게 준수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상의 창세기 본문이 안식일 제도를 제정하고 있는 본문으로 이해한다면 안식일 제도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창조질서(creation order), 혹은 창조규례(creation ordinance)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을 실제적으로 지킨 역사적 언급은 출애굽기 16장에 와서 처음으로 언급된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면서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만나를 얻게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어들이지 않도록 지시한 대목이 있다(출 16:23). 이러한 안식일 언급은 그 이전에 안식일에 관한 규정이 있었던 것을 가리킴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식일에 관련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신학적 의미만을 다룰 것이며(특별히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십계명중 4번째 계명을 중심으로), 신약의 주일과 구약의 안식일에 관한 문제는 또 다른 글을 요구한다.






안식일에 관한 구약성서의 언급






절기로서 '안식일'에 대한 언급은 구체적으로 모세 오경 중 십계명 본문 가운데 나온다. 사려 깊은 성서의 독자들은 십계명을 다루는 구약본문이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각각 한 차례씩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저 출애굽기의 기록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준수해야하는 근거로 하나님께서 6일간의 창조사역 후에 제 7일째 쉬신 사실을 제시한다(출 20:8-11). 한편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모압 평지에서 주어진 신명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준수해야하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출애굽기와는 달리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준수해야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신 5장). 다시 말해서 출애굽기는 안식일 제도의 제정을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연관하여서, 신명기는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내신 구원사역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A. 출애굽기적 안식일 이해가 주는 신학적 가르침






먼저 이러한 안식일 이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적어도 안식일에 관한 출애굽기의 이해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을 지탱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일을 기억하다"는 문구를 통하여 유대인들은 칠일을 일주간(seven-day-a-week)으로 인식하는 삶의 리듬이 본질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피조물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창조주 하나님께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는 의미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사역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인간 창조를 통하여, 인간은 진정한 안식이란 인간적 노력의 결과나 열매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의 선물(divine gift)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인류인 아담과 해와는 창조 사역의 마지막 날일 6일째, 그것도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된 다음에 마지막으로 지음 받았다. 그렇다면 첫 인류인 아담과 해와가 그 다음날에 주어질 하나님의 충만한 창조세계의 아름다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식을 얻기 위해서 그들이 '해야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들이 해야할 일이라고는 오직 '잠자는 휴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6일째가 저물어가고("저녁이 되고…") 다시 아침이 되자 첫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를 멈추신 날(안식의 일차적 뜻), 곧 하나님의 안식일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첫 인류가 그들의 생애에 처음 맞이한 날이 하나님의 안식일이었고, 안식일을 통하여 첫 인류는 완성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와 충만함에 대한 뿌듯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안식과 충만함, 평화와 경이, 향유(享有, 누림)와 감사 ― 이것을 히브리적 표현으로 '샬롬'이라 부른다 ― 는 창조주 하나님이 첫 인류에게 하사하신 선물(divine gift)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통제와 조작을 수반하는 인간의 모든 자만과 허영을 배척하고 물리친다. 인간이 안식일에 그들의 모든 '창조적'인 일들을 멈춤으로서 인간은 그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모든 창조물들을 보살피시고 지탱하시는 하나님께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또 세상이라 불리는 실체 역시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B. 신명기적 안식일 이해가 주는 신학적 가르침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신명기는 안식일 제도 제정의 의미를 이스라엘의 구원역사(salvation history)와 관련지어 설명한다(5:12-15).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제도이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야웨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야웨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15절). 출애굽기의 안식일 제도 언급을 통하여 모든 인류는 그들 존재의 기원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기억하도록 요구되었던 것처럼, 신명기의 안식일 제도 언급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기원(origin)과 정체성(identity)을 하나님의 구원사역에서 찾아야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민족이 아니라, 비참한 환경 속에 있었던 그들의 '이전 삶'을 기억하고 그러한 비참과 불행으로부터 그들이 구출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들이 애굽인들에게 노예였던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류 구원의 우주적 드라마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주제가 된다는 신호였으며,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생각나게 하는 절기였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성결케(거룩케) 한 이스라엘 백성들(그들의 자손들을 포함하여) 사이에 있는 징표(sign)"인 것이다(출 31:12-17; 겔 20:12).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에게 자신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징표인 것이다.




애굽의 바로에게 노예생활을 하였던 그들의 이전 삶, 즉 바로를 주님으로 섬기고('섬기다'는 히브리어는 '예배하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삶았던 그들의 삶을 뒤로하고 이제는 야웨 하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섬기기(예배하다)로 하였다는 징표로 성결케 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결케' 하신 이스라엘인들에게 안식일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리고 성결케 된 이스라엘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요구되었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요 위대한 주석가인 요한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강론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리고 다시금 에스겔을 통하여 어디에선가, '안식일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유대인들 사이의 표징(表徵, sign)이다' 라고 선언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거룩케 하심'(聖化, sanctification)의 대의(大意)와 본질을 살펴보아야 한다. 즉 '성화'('거룩케 하심')란 죄된 성품(육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즉 사람이 자신을 부인하고 그들의 세상적 본성을 끊어버리고 포기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고 인도함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애굽적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는 모습을 성례전적(聖禮典的, sacramental)으로 이해하는 바울을 기억할 수 있다(고전 10:1ff.). 즉 애굽의 바로의 다스림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홍해에서 옛사람을 수장(水葬)하고 다시 태어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알리는 예표(豫表)로서 안식일을 기억하도록 한 것은 중요한 성서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안식'은 단순히 바로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그들의 새로운 주인이신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또 다른 '속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 다른 주인은 누구인가? 언약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구원자 하나님이 곧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내산 밑에서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왜 출애굽기와 신명기가 각각 안식일의 문제를 창조신학(creation theology)과 구원신학(salvation theology)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가를 알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새 언약의 백성들로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음으로서, 옛 사람(육에 속한 사람, 혹은 첫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새로운 창조 질서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부활하심으로 시작된 이러한 새로운 창조세계는(고후 5:17) 아직 그 완성을 남겨 놓고 있다. 그렇다면 세례를 통해 새로운 인종으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조 질서에 들어온 사람은 부단히 새로운 창조의 절정인 영원한 안식의 세계를 갈망하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한 안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가로막는 모든 인간적인 죄들과 욕망들을 벗고 거룩해져야 한다. 이렇게 거룩해져 가는 과정을 '성화'(聖化)라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성화와 관련이 있는 날이 안식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특별히 '안식의 날'에 기억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옛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들을 불러내어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지금도 새 이스라엘은 주일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죽음의 영토에서 불러내어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통하여 우리는 현세에서 우리의 모든 죄성(罪性)들을 부단히 씻고 제거하여야 할 것이다.




잠정적 결론




(1) 구약성서에 의하면 안식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날로 정하였으며, 그런 목적을 위해서 안식일에는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노동을 멈추도록(휴식) 되었다. 안식일에 노동을 금한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은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었으며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심지어 밭을 경작하거나 추수하는 시기에도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금지되었으며(출 34:21),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여섯째 날에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출 16:5,23). 안식일에는 불도 지피지 못하였으며(출 35:3) 먼 거리를 걷는 일도 금지되었다(출 16:29). 안식일에 불을 지피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은 그 날에 음식을 만드는 일도 금지했다는 뜻도 된다(출 35:3). 안식일에 상거래를 하는 일도 금지되었으며(암 8:4-6; 렘 17:21, 참조 느 13:15-22), 안식일에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다가 발견된 사람은 돌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민 15:32-36).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이러한 엄격한 안식일 준수를 명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안식일 엄수주의자'들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2) 안식일은 사람을 평등하게 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권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 4계명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명시한다: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들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체류(滯留)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 주어졌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안식을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된 선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안식이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안식은 인간이 성취하는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창조에서도 그렇고 구원역사에서도 그렇듯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현세의 삶 속에 충만한 안식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안식을 갈망하고 기대하게끔 인도한다. 안식일 준수는 이러한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와 지적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진정한 창조, 진정한 구원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3) 성서 신학적으로,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안식을 예표한다. 그리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날'(主日)을 지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구원 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안식을 기념(remembrance)할 뿐만 아니라 기대(expectation)하는 것이다. '기념'은 갈보리 산에서 이루어진 구원 사역을 회고하는 행위이며, '기대'는 장차 천상의 시온 산에서 이루어질 완성된 구원사역(영원한 안식)을 기다리는 행위이다.




우리를 죄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골 1:13-14) ― 여기에 출애굽적 표상을 보라! ―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통하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안식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하여 원리상(in principle)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최종적인 안식은 앞에 놓여 있다(히 4:9). 아직도 죄악의 잔존세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세상에서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없다. 신학자 플란팅가(Cornelius Plantinga, Jr.) 박사가 잘 표현하였듯이, "죄는 샬롬의 파괴자이기 때문이다"(Sin is vandalism of Shalom). 마치 에덴의 샬롬(안식)을 휘저어 놓고 파괴하였던 것이 죄였듯이, 죄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안식과 샬롬을 가로막는 대적자요 무서운 세력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안식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결케 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힘입고 죄와 싸우며 거룩해져 가야 할 것이다.




옛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음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안식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심(全心)의 순종을 통하여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