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자

개혁주의교회와 신학정체성 (2)

작성자
쥬니어칼빈
작성일
2012-12-04 02:58
조회
3784

개혁주의교회와 신학정체성 (2)



칼빈신학의 중심 주제를 일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듯이 칼빈신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획일화할 수 없다. 필자는 칼빈신학의 부요함, 역동성, 보편성, 그리고 윤리성을 그가 제 신학적 견해들을 삼위일체론적 - 기독론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전개하였음에 기인한다고 여긴다. 칼빈의 신학에는 삼위내적 진리와 삼위와 우리간의 외적 진리가 함께 논구된다. 삼위내적 진리는 삼위 하나님의 진리로서 그리스도시며, 삼위와 우리간의 외적진리는 삼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진리로서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in se)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분께서 우리 구원의 전체 과정을 주장하신다. 그분께서 우리를 주장하심이 곧 하나님의 주권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말함으로써 전체를 말할 수도 있으나, 삼위일체 하나님과 중보자 그리스도를 함께 말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심을 동시에 파악한다. 즉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분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동시에 구원받는다. 이러한 이해를 통하여서 우리는 단지 관념적인 신관이나 인식론에 편향된 실존주의적 기독론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관점하에 계시론,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론, 성령론, 교회론의 순으로 칼빈신학을 간략하게 고찰한다.


 


    5. 칼빈 신학의 정수


 


(1) 계시와 성경,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 사역



칼빈은 진실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천명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기 때문에(행 17:28). 이 두 지식은 하나님 자신의 '손'으로부터 주어진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autoritas)를 논하면서 그것이 저자(autor)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계시는 성부 하나님에게서 유래하며,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 온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구원의 길로서 중보자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획득함이 참 신지식의 길이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참 지식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주이시며 내적 교사이시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제외하고는, 성경 계시의 은총을 논할 수 없다. '우리 밖에(extra nos)' 계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in nobis)' 중보하신다는 사실이 성경 가운데서 자신의 거룩한 입술로 친히 말씀하시는 성령의 은밀하고 내적인 증거와 함께 확증된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친히 말씀하심은 그의 말씀이 믿음 가운데서 성령의 은밀하고 내적인 증거와 함께 확증된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친히 말씀하심은 그의 말씀이 믿음 가운데서 우리 속에 인쳐짐을 의미한다. 성령의 인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경의 학교에서 겸손하고 가르칠 만한 독자가 된다. 곧,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경은 '신성한 어떤 것을 숨쉰다.' 말씀의 확실성과 믿음의 확신이 아버지께 받은 것을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고리 가운데 하나로 묶여져서 삼위일체론적으로 역사한다. 이러한 삼위일체론적 - 기독론적 이해 가운데 칼빈이 전개한 '오직 믿음으로(sola Scriptura)'라는 원리의 신학적 지평이 획득된다.


 
(2)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



칼빈에게 있어서 내재적 삼위일체적 이해와 경륜적 삼위일체적 이해는 상호 지향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원하고 실체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아들의 중보가 없으면 '가까이 가지 못할 빛'(딤전 6:16)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다. '세상의 빛'(요 8:12)이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생명의 원천'(시36:9)이신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눅 10:22).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6)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의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끌림을 받은 자(요 6:44; 12:32; 17:6)만이 아버지를 알게 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칼빈은 중보자의 필연성을 구속사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계속적인 중보의 의의와 관련해서 설명함으로써 개인 구원 과정에 전체적으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역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보자가 없이는(absque mediatore)'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며, 구원이 없고, 하나님께 이를 길이 없다.


 


칼빈은 신인 양성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주심으로써 지금도 중보하시는 역사를 부활과 승천과 보좌 우편에서의 은혜를 논하며 특히 강조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삼중직과 관련해서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사장만이 진정 자신의 의를 전가하심으로써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다스리심을 부각시킨다.


 


그리스도의 무름의 범위는 복음의 범위와 일치한다. '완전한 구원의 전체'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포괄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무름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의의 전가를 받는다. 그리스도의 대리적 무름은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어서 생명에 이르는 언약에 기초한다(롬 5:19).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므로(히 9:15), 언약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죄를 사하시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의 보호자 되심에 이른다.


 


(3) 성령의 일반은총적, 특별은총적 사역



칼빈은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는 필리오께(Filioque) 교리에 기초하여 성령의 신위격을 다룬다. 성부와 성자는 같은 영으로 계심으로 한 하나님이시다. 또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한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사역은 다음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로 창조와 일반은총에 있어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서(Spiritus Creator), 성령의 영원성이 창조 전과 후를 통한 그의 사역을 통해서 적시된다. 성령께서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존하실 뿐 아니라, 창조전의 혼돈의 덩어리도 돌보셨다. 둘째로 성도의 구원에 역사하시는 성령으로서, 성령은 고유한 생명력으로서 새 생명을 지으시는 분으로 제시된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임을 그들의 영혼에 인친다. 대체로 칼빈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그의 중보로 전가하는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적시하기 위하여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특정해서 말한다. 살리는 영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의 작용은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는 죄와 의와 심판에 미친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영의 내주로 임마누엘의 약속이 성취된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 행하는 능력을 전가한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의 전체 과정으로서 파악되기 때문에 칭의와 함께 성화가 시작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명을 부어주심으로써 그가 우리 속에 우리가 그의 속에 거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주시며 자신의 의와 은혜를 충만히 베풀어 주신다. 이것이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거룩하고 신비한 연합의 은총이다.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중보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격 뿐만 아니라 행위도 받으신다. 그리하여서 성도는 불완전한 나그네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큰일의 도구로서 헌신하며 또한 그만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에 있어서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그것의 한 점이라도 우리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4) 교회 :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자라감



칼빈은 교회의 신학자였다. 교회의 기초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 교회 공동체가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고 일치되어서 한 머리에 의지함으로써 한 몸으로 자라가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의 극장이라고 불리는 바, 이는 선택된 사람들의 총수가 오직 하나님의 은밀한 경륜의 손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의 영으로 연합하여 함께 자라감이 곧 교회의 보편성과 거룩성의 표이다. 교회는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와 같고 좀 더 자란 사람들에게는 학교와 같다.


 


칼빈은 교회의 말씀 선포와 성례 거행을 교회의 표지로 삼고 권징을 동일하게 강조한다. 참 교회에는 "하나님은 한분이심,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에 달여 있음, 그리고 기타 합당한 경건의 원리들"에 대한 선포와 들음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권징은 이러한 말씀을 "그리스도의 영의 온유함으로 부드럽게 다스리는 아버지의 매와 같다." 그리스도의 구원 교리가 교회의 영혼과 같다면 권징은 교회의 힘줄들과 같다. 그러므로 참 교회의 표지는 머리이신 예수 안에 있으며 예수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서의 하나임의 진리에 기초하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감(aedificatio, 건덕)'이며 이 가르침에 순종함으로써 성도는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에게로 날마다 자라가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복음의 사역보다' 더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성령의 은사는 직분에 앞서며 성령의 은사로서 직분이 표현된다. 하나님은 다양한 은사들을 주심으로써 성도들이 직분을 합당하게 감당해서 지체들을 서로 세워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신다. 은사들은 다양하지만 영은 하나인 것과 같이, 직분들은 다양하지만 몸은 하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 이것이 사역의 신비이다.


 


6. 우리가 서 있는 자리 : 칼빈의 칼빈 신학


 


지금까지 우리는 칼빈의 신학은 단지 신학적 자료를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서 성경 진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후 개혁신학의 토대가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칼빈신학의 심오함과 역동성은 그것이 sola Scriptura의 원리에 확고하게 서 있기 때문이라고 논증되었다. 보수 장로교단의 신학으로 대표되는 한국 개혁주의는 칼빈의 교리들을 신앙의 조항들로 여긴다. 오늘날 많은 경우 칼빈은 단지 이용될 뿐 신앙적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이 시대의 요청이 다시금 말씀을 들음으로써(ex auditu) 성도와 교회가 마땅해지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칼빈신학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더욱 더하다고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그 분량의 한계상 칼빈의 주요 교리들을 모두 소개하지는 않았다. 예정론, 섭리론,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교리, 성찬론 등이 상론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 교리들이 터잡고 있는 칼빈 신학의 기초를 본고는 분명히 제시했다. 그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내재적-경륜적 이해로부터 중보자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로 나아가는 교리로서 파악되었다. 칼빈은 성도와 교회의 본질, 의의, 삶을 이러한 삼위일체론적-기독론적 관점에서 합당하게 파악함으로써 이후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책임, 복음과 율법,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은혜 언약 가운데서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개혁주의의 길을 열었다.


 


칼빈은 "신학자의 임무는 말을 많이 함으로써 귀를 즐겁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확실하며 유익한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양심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그가 추구했던 신학이 어떠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신학은 참되고 확실해야 하며 성도를 세우는 데 유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악으로부터 선을 분별하고 그 선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성도의 양심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 강요의 성격이 교훈적이며 고백적이며 변증적임을 보았다. 성도들의 삶은 배움과 고백과 배우고 확신한 바에 거하는 참 신학과 신앙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가르치고, 성도들이 가르침을 받은 대로 고백에 이르게 하며, 불법과 미혹의 영의 역사가 말로 더하는 작금 참 교리를 변호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신학자로서 칼빈은 말씀 가운데서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서 오직 들은 것만을 성령의 감화에 따라서 기록하기에 힘쓴 주님의 일꾼이었다. 신학자는 주님의 일꾼으로 주의 남은 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 일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께서 모든 것을 다 전가해 주신다는 오직 은혜, 절대 은혜의 선포이며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리적 무름의 공로만을 찬미함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전체 구원과 그것의 모든 부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행 4:12).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작은 한 부분이라도 다른 곳으로부터 끌어오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구한다면, 우리는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서 그것이 '그분 안에' 있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고전 1:30). 만약 우리가 성령의 다른 은사들을 구한다면, 그것들은 그분의 기름부음 가운데 발견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능력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분의 주권에, 순결함을 구한다면 그분의 잉태에, 온유함을 구한다면 그분의 나심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심으로 그분께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히 2:17) 우리의 고난을 느끼셨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분의 수난에 있다. 형벌로부터 방면을 구한다면 그분의 징계에, 저주로부터 사함을 구한다면 그분의 십자가에(갈 3:13), 무름을 구한다면 그분의 희생 제물에, 정결함을 구한다면 그분의 피에, 화목을 구한다면 그분의 지옥 강하에, 육신의 죽음을 구한다면 그분의 무덤에, 삶의 새로움을 구한다면 그분의 부활에, 영생을 구한다면 역시 그곳에, 하늘 왕국의 유업을 구한다면 그분의 하늘로 들어가심에, 만약 보호 안전 모든 축복의 부요함을 구한다면 그분의 왕국에, 떨림 없는 심판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분께 주어진 능력에 있다. 요약하면, 모든 종류의 선함으로 부요한 곳간이 그분께 있으니 다른 곳이 아니라 이 샘으로부터 우리를 가득 채우도록 하자(기독교강요 2.16.19).



[출처] [본문스크랩] 개혁주의교회와 신학정체성 (2) / 문병호 교수 (성경과 외국어) |작성자 진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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