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을 규정하는 준거들" - 나장열 목사

http://vantil.egloos.com/1492292

* 이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존경하는 김영규 교수님의 글과 유명한 하란 개혁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적 입장을 따른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은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을 규정하는 준거들"


쯔빙글리의 개혁정신과 루터의 핵심적인 내용이 칼빈에 의해서 종합되고 체계화된 개혁주의 신학을 정의하고자 할 때 먼저 전제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그 신학의 역사가 어떤 한 시대나 장소에 한정되고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고 어떤 지역에 따라서 새로운 성격과 독특한 양상 혹은 혼탁하고 혼합된 성격을 가지므로, 그 신학을 규정하는 것은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본 논고는 개혁주의를 규정함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그 독특한 준거들이 무엇인가를 살피고자 함에 있다. 즉 어떻게 해서 그 신학이 독특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한 그 특별한 특성이 무엇인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왜내하면 개혁주의 신학의 준거점들을 규명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받고자하는 바른 신앙전통의 범위와 성격을 결정하고, 또한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하는 분명한 방향성과 확고한 입장을 잡아주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1. 연구방법
개혁주의의 신학의 바른 노선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전제되어야 할 것은 '항상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semper reformanda)는 관점에서 출발해서는 안되고, 그 이전에 '종교개혁이 된'(reformata)것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살피고 그 신학을 순수하게 받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17세기 개혁신학의 본 원류 즉 그 정통신학의 순수성으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맥으로 돌아가는 이러한 연구방법을 통해서만 역사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바른노선을 규정하는 준거점들이 무엇이지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돌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두가지 중요한 문제가 나타나게 되는데, 즉 '돌아가는 방법의 차이와 그 자신의 신학적 전제'이다. 1) 지금 우리가 17세기로 돌아간다는 것은 앞선 두 문제, '그 돌아가는 길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과 '이 시대의 인간상, 우리 신학의 양태들에서 완전히 벗을 날 수 없다는 것'의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문제로 말미암아 그 개혁신학에 대한 상이하고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17세기로 돌아감에 있어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먼저 이 시대의 관심(contest)이나 문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과 또한 그 신학의 연구에 대한 어떤 결과에서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개역주의 바른노선을 규정하는 연구방법은 17세기 개혁주의 인물과 신학을 통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2) 즉 어떤 비교나 노선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논쟁점들에 대한 각각의 입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바른노선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우리가 개혁주의 바른노선을 연구하는 입장이며,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규정하는 바른 준거점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2 루터주의와 개혁주의의 인물과 신학에 대한 평가
쯔빙글리와 루터- 이 두인물을 통하여 우리는 루터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개혁주의의 근본사상은 쯔빙글리부터 시작된다. 바빙크는 루터와 쯔빙글리의 차이는 원리에서부터 기초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있었고, 비록 칼빈이 루터를 존경하였으나 원리적으로 쯔빙글리의 입장에 있으므로 1529 마르부르크(Marburg)의 평화조약은 단지 서류에 불과하였으며, 루터주의와 개혁주의는 결국 연합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3) 
루터주의자들에 의해서 고백된 '협화신조'(Konkordienformel)에 대한 개혁주의자 특히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안우스와의 루터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비롯된 세가지에서, 1그리스도의 보편편재에 반대 2. 기독론과 관련된 성례론 논쟁. 3. 우르시누스와 에라스투스의 논쟁, 특히 처음 두가지의 논쟁점은 루터주의와 구별된 개혁주의 신학의 독특성으로 고정된 것이다. 4) 
그러므로 루터와 쯔빙글리(칼빈)에 대한 인물의 평가의 기준에 따라서 개혁주의 신학의 범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폭넓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부분의 견해는 이 차이를 단지 다소의 교리적인 차이로 본다. 5) 또한 일반적인 개혁주의 노선에서의 평가는 루터주의를 보편 구원론자들로 구분하고 있다. 6) 

3. 예정론에 대한 개혁주의의 인물과 신학에 대한 평가
개혁주의를 규정하는 준거점에 있어서 베자(타락전 선택설)와 불링거(타락후 선택설)에 평가가 연구되어야 한다. 베자(Theodor Beza.1519-1605)는 칼빈을 계승한 그의 참된 제자이며 제네바 대학의 지도자이고, 칼빈의 교의에 관한 해석으로 유럽 전역의 칼빈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성경의 단순성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며 예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으로서 창조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믿었다. 예정과 유기에 대한 작정도 하나님의 의지이외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 목적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두었다. 섭리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일반섭리와 특별섭리에 의해서 다스리신다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도와 같은 약속과 같은 은혜에 기초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에 의해서 거룩히 된다는 칼빈주의적인 신학이었다." 7) 
웨슬레안 주의자들은 베자가 이중 예정에 대한 칼빈과 어거스틴 신학에 내재된 숨겨진 요소를 '하나님의 작정의 순서'(order of God's decrees)에 반영하여 타락 전 예정(supralapsarian)-인간 창조의 신적 작정 이전에 일부 사람들을 구원으로 선택하는 신적 작정과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을 유기하는 신적 작정을 포함시켰다. 8) 고 한다. 그러나 칼빈은 분명히 타락전 선택자였으며, 요1서 2:1-2의 주해에서 암시적으로 불링거를 '사단까지도 구원 을 인정하는 미치광이'라고 비난하였다. 베자의 의해서 이 두가지 예정에 대한 뚜렷한 차이점이 발전되었다. 개혁주의내에서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 신학의 노선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칼빈을 이은 베자의 라인인 타락전 선택설은 인간의 범죄를 예정에 포함시키고, 블링거의 라인인 타락후 선택설은 단순한 신적 예지의 대상으로 포함시킨다. 알미니우스와의 논쟁 중에 개혁주의 안에서 이 두 가지의 다른 예정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차이점은 인간의 타락도 역시 신적인 작정속에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도르트회의의 결정과 과정에서 보여진 예정론논쟁은 개혁주의 신학의 규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예정론논쟁의 배경은 세바치안 카스텔리오(Sebatian Castellio)가 칼빈과 베자의 예정론을 비판한 것이 화란에서 개혁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서 번역되므로 델프지역의 설교자들사이에 생긴 예정론에 대한 논의가 발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델프지역의 설교자들은 그 논의 과정에서 칼빈과 베자의 견해를 포기하고 불링거 입장인 타락후 선택설을 옹호하는 입장을 택하였다. 그 당시 레이든 교수 리디우스는 아르미니우스를 신용하여 베자의 개혁주의 입장을 옹호하도록 그 문제를 맡겼으나 그는 선택의 근거는 예지된 신앙(fides praevisa)이요 예정의 대상은 타락한 인간(homo lapsus), 창조해야 할 인간(homo condendus) 창조된 인간(homo conditus, homo creatus)이 아니라 믿을 사람(homo fidelis)이라는 전통에 벗어난 주장을 하였다. 9) 
아르미니안주의는 칼빈,베자,피르카토르,마르티르,페어밀리우스,짠키우스,우르시누스의 입장에서 벗어난 것이며,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앙고백과도 벗어난 것들이었다. 도르트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타락후 선택설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타락전 선택설을 가진 학자들은 고마루스,페스투스, 홈미우스,트리글란드이고 고마루스의 제자들인 Hieron,Vogelius와 Casp,Sibelius였다. 타락후 선택설 입장의 학자들은 레이든 학파의 Polyander,Walaeus,Thysius,Lubbertus와 영국 대표자들, 하이델베르그 대표자들, 제네바, 브레멘, 엠덴, 벨직, 북부 홀란드, 젤란드, 우트레이트, 프리스란드, 흐로링겐에서 온 대표자들이다. 이들은 예정의 대상을 타락한 인간으로 제시하였다. 결국 Gomarus의 침묵으로 10) 타락후 선택설 입장으로 가게 되었으나 타락전 선택설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혼합적 전통주의(syncretismus)라고 볼 수 있다. 1645-1649년 마레시우스(Maresius)와 보에티우스 사이의 논쟁에서 보에티우스는 고마루스의 입장에서 예정에 대해서 분명한 정의는 없었음을 강조하고 마레시우스는 타락후 선택설의 입장에서 예정의 대상을 타락한 인간으로 주장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작성에 참여한 퓨리탄들은 아르미니안주의를 완전히 배제하고 타락전선택설의 확고한 기초로 하여 작성하였다. 이것은 도르트신조보다 훨씬 엄밀한 칼빈주의 노선을 확인한 것이다. 11) 그러나 우리의 노선을 결정함에 있어서 참여한 인물의 신학의 근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도르트는 물론 웨스트민스터의 신학자들의 사상이 다양해서 혼합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12) 
*타락후 선택설의 위험성: 

1. 타락전 선택설의 비판하는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즉 죄를 '의도하셨다'는 진술에 반대하여 '허용하셨다'라고 주장.-하나님께서 막지 못하신 것인가(알미니우스주의의 위험성), 허용하기로 작정, 분명히 하셨다(타락전 선택설과 일치) 
2. 유기를 하나님의 공의의 행동으로 설명하고 싶어함-암시적으로 유기가 하나님의 선하신 기뻐하심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경향-알르미니우스와의 접촉점- 그러나 조건적인 작정을 원하지 않음으로 타락전 선택설의 사상과 동일하게 됨(타락후 선택설의 위험성은 알르미니우스와의 연결의 가능성에 있다.)-예정론부분에서 논의
이중 예정에 대한 웨슬레적 이론- 성경해석으로부터 유도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수호할 논리적 필요성에 의해 요구된 교리이다. 
아르미니안주의- 

1. 예정 교리는 논리적이거나 철학적이 아니라 성경적이어야 한다.(웨슬레의 원리) 
2. 예정은 받드시 기독론적으로 이해 
3. 구원은 반드시 복음적,그리스도를 믿음 
4.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 인간의 자력구원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5. 베자와 고마루스가 교리를 기독론에서 분리하고 그리스도를 보다 선행된 추상적 작정을 수행하는 단순한 도구나 수단으로 만들 위험성을 비판. 칼바르트- 예정의 주체를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로 제한속죄를 포기하려는 사상은 바르트주의는 루터주의는 된다고 해도 정통개혁주의와는 거리가 있음. 그리고 베자와 고마루스는 그리스도를 그들의 선택의 교리에서 제거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뜻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비판.(비판: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것의 의미가 없음)
불링거를 개혁주의라인에서 포함시키는 부류- 월필드, 이근삼.,유해무.후크마,헨리미터,......... 
베자를 개혁주의라인에서 포함시키는 부류-바빙크, 김영규 
대체적 우리 시대의 학자들은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없고 예정론에 대한 입장이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귀결로 여기므로 그 선이 거의 불링거선으로 이어지고 있고 아르미니우스적이고 에큐메니칼적인 칼빈을 발견하려는 자가 칼빈연구의 대표자들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칼빈의 '섭리에 관한 특별논고(De occulta Dei providentia)'에서 그리고 리베트(A.Rivert)와 불란서 쇼무르학파(J. Camero, M.Amyraut)와의 논쟁에서 종결된 것이다. 13) 

4.언약론에 있어서 개혁주의자들에 대한 평가(코케이우스에 대한 비판적 고찰)
칼빈의 신구약의 통일성은 기독론적인 통일성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의 통일성이고 구원의 길과 서정에까지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터투리안,어거스틴의 삼위일체의 경륜적 통일성이 칼빈의 언약의 통일성 뒤에 내재되어 있다. 칼바르트는 루터주의 국가교회를 저항하면서, 신구약 통일성 즉 칼빈의 예레미야 주석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독론적인 통일성의 수준에 있다. 정통 개혁주의는 칼빈의 신구약 실체의 통일성을 지켜왔으며,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여전히 고백되고 있다. 
* 개혁주의 파괴의 원리 14) 이미 종교개혁시대에 있었고, 그 배후에는 재세례파들과 쏘시니안주의에 의해 촉진되고 15) 더 나아가 재세례파, 쏘시니안과 아르미니안과 데카르트주의가 결합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파괴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16) 
개혁주의 몰락의 주요 인물은 코케이우스로, 그의 새로운 언약론적인 방법 17) 은 전통신학에서 벗어난 데카르트적인 방법론이었다. 그는 성경신학을 전통신학과 대조, 언약을 작정과 대조, 역사를 이념과 대조, 인간론적인 방법을 신학적 방법과 대조시키므로 결국 언약의 실체(substantia foederis)를 언약의 경륜(oeconomia)의 흐름으로 전락시켰다. 주된 것은 여전히 정통적이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완전히 이탈함(특별속죄,선택, 성자의 발생,삼위일체,행위언약,이성과계시 의심) 
보에티우스파 18) 와 코케이우스파사이의 논쟁에서 보에티우스의 침묵으로 정통주의의 완전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부흥운동, 에큐매니칼운동-개혁주의 몰락을 정착시키는 운동* 


5.장로교 정치에 영향을 준 인물에 대한 평가
스코들란드 장로교회 정치- 메리의 박해로 유럽 대륙에 있던 개혁자들이 엘리자베드 때 돌아옴으로 죤낙스외 6명의 개혁자들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왕이다는 정신아래 25조항의 스코틀란드 신앙 고백서를 작성- 장로교 총회란 명칭은 아직 없었고 '스코틀란드 교회'총회란 이름이 생김. Andrew Melville에 의해서 칼빈의 견해대로 목사위에 상위 개념을 없애는 영향을 끼침, 스코틀란드 교회는 주교의 개념과 장로의 개념이 동일한 것이 기본개념이었음. 
웨스민스터 성직자회의 정치 원리- 엄격한 약속과 맹세로서, 오직 성경에 대한 권위와 해석의 원리로부터 시작, 회의 과정은 순전히 성경에 대한 토론장이 됨,. 그 원리에서 작성된 '교회 정치에 관해서'는 장로교 정치론의 기본정신을 이루고 있다. 교회안에 네 직책만을 인정 즉 목사, 교사, 장로, 집사직이다. 세가지 치리회- 공동의회, 노회, 대회이다. 19) 
웨스터민스터 총회당시 문서 출판을 통해서까지 장외논쟁을한 인물 중에 개혁주의 장노교 신학적 입장을 변명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로서는 샤무엘 러더포더, 스티븐 마샬, 죠지 길레스피등을 들 수 있다. 리더포더는 회중교회의 입장과 에라스투스주의에 반대하고, 다니엘 코드레이도 회중교회를 비판의 책을 저술. 웨스트민스트 성직자들 가운데 독립교회주의를 주장한 사람의 근원으로 돌아가 회중교회주의자들의 교회관들을 비판-Henry Ainsworth, Henry Jacob, Francis Johnson, John Robinson, Thomas Hooker, John Cotton, John Davenport 등 
이 논제의 중심은 교회의 열쇠가 누구에게 있는가, 교회 회중 자체가 완전한 교회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개혁주의의 입장- 개인 베드로가 아닌 사도들을 대표하는 베드로로 해석, 이 근거로 그리스도로 직접 제정된 공직자들을 가진 지교회들로 구성, 한 고위 성직자나(one Lord prelate)나 한 머리 교회 혹은 주교회과 결합된 교회가 아니라, 한 정치형태의 다스리는 직책과 다스림을 받는 여러 지교회들로서, 가시적으로 교통하는 지역교회, 국가교회, 세계교회가 완전한 교회라는 것이 장로교의 근본된 입장이다. 러더포더는 회중교회는 전유럽개혁주의들(J.Calvin, Th.Beza, Peter Martyr, H.Zanchius, F.Junius, D.Pareus, W.Whitaker, Tilenus, Rrofssors of Leyden- J.Polyander, A.Walaeus, A.Thyius, A.Rovetus-J.Piscator, W.Bucanus.)로부터 인정되지 않았으며, 그 신학적인 근원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소시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에서 나온 것이며, Robert Baillie는 그 근원을 재세례파에게로 돌린다. 죠지 길레스피의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에라스투스주의 20) 에 대한 서적으로 개혁주의 장로교 입장을 변증한 결정적인 책- 오직 교회의 열쇠는 장로회 자체에 주어졌다는 원리를 설명, 이것은 회중교회 지도자 토마스 후커의 본질적인 교회전체에게 주어진 권리와 구별된다. 

6 바른 준거점에 과제
이 시대에 정통개혁주의를 회복한다는 것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것 같다. 비록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온건하고 중용적이며 성경신학적이며, 초자연주의로의 회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보수주의 분파는 몰락의 심화단계에서 발생하며, 몰락하는 원리에 이미 참여한 운동으로 개혁주의 신학의 재건이라고 보다는 개인의 신학의 영향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개혁주의의 바른 원류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시대의 종교개혁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논의 되어진 대로 우리는 16세기 17세를 순수하게 바로 돌아갈 수 없고, 도르트 신앙고백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는 것만으로 정통개혁주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개혁주의 바른 준거점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물을 선택하는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쯔빙글리, 부쪄, 불링거, 칼빈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인물들 안에서 신학의 다양성을 보게 된다. 우리가 진리를 위한 열망이 있다면 하나님의 진리가 확고히 밝혀진 역사 비록 잠깐 도달한 것일지라도-하나님의 은총이 있다면- 그 명백한 진리에 선 인물을 통하여 돌아가는 노력이 바로 이시대의 종교개혁 내지는 축복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며 그 분의 종들을 통하여 계속되는 사역인 것이다. 참된 개혁의 역사를 살필 때 그 시대마다 진지하게 진리에 수종들었던 헤르만 바빙크, 죠지 길레스피, 사무엘 러더포더, 스테반 마샬, 다니엘 코드레이. 카아트라이트, 월터 트래버스, 멜빌, 베자, 칼빈과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 시대에 풍요로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상고하는 것이다. 오직 개혁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원하며...



각주1 바빙크와 칼바르트의 공통점은 두분다 신학의 기초를 세울 때 바빙크는 쯔빙글리에서 최종적으로 칼빈을, 바르트는 칼빈을 연구한 것과 바빙크는 '순수신학통론'-도르트회의를 승리로 이끈 레이든 교수들이 공동으로 낸 정통개혁신학교재-으로, 바르트는 헤페의 책을 재편집하므로 17세기 개혁신학으로 돌아간 것이다. 1.정통주의라는 정거장을 인식 2.정통주의로 돌아가고자 함 3.헤페의 역사관을 비판(1멜랑히톤을 개혁주의 아버지로, 2.데카르트주의와 결합된 코케이우스와 그 추종자들의 언약신학을 문제로 여기지 않음). 그러나 바르트는 그 바탕이 변증법적인 요소와 루터란들과의 관련성(17세기로 돌아가기전의 신학)으로 인해 신(Neo)정통(그의 원함과는 달리)이라 할 수 있다. 
각주2 칼빈,베자, 짠키우스,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피스카토르, 유니우스, 파레우스-죠지 길레스피가 평한 '가장 좋은 개혁주의 신학'-, 그리고 16세기말 17세기의 퓨리탄의 신학의 다양성 비교. 

각주3 이 두 차이를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은 신론적으로 생각하고, 반면 루터주의 그리스도인은 인간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점이다. 개혁주의자는 역사 안에 서서 머물지 아니하고 이념 즉 영원한 하나님의 결정에까지 끌어 올라간다는 것이요, 루터주의자는 그 입장들을 구원사의 중심에서 취하고 더 깊이 하나님의 성정에까지 꿰뚤고 들어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경우 선택이 교회의 핵심이고, 루터주의자들의 경우 칭의가 교회의 항존적이고 항상 출발하는 조항이다", "개혁주의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루터주의자들은 인간의 축복을, 개혁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결정에 되돌리고 물의 원인을 축적하며 모든 것을 하나니의 영광에 유익되게 하기 전에는 쉬지 않는 반면에, 루터주의자들은 현상에 만족하고 그가 신앙을 통하여 부여받은 축복에 안락하는 자들이다." 신론적 신학과 인간론적인 신학의 차이와 신학의 핵심에 있어서 선택과 칭의의 차이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형상, 원죄, 그리스도의 인격, 구원의 서정, 성례, 교회정치, 윤리등의 교리에까지 논쟁이 된 것이다. (바빙크 "개혁주의 교의학I p207-208) 

각주4 세계관 기초 자료집, 김영규, "17세기 개혁신학의 개관", p39 참고. 

각주5 김영안,"개혁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칼빈의 독창성을 성례전론, 교회기구론에 불과하며, 칼빈의 사상의 대부분은 부처(Martin Bucer)를 거쳐 루터에게서 온 것이어서 개혁신학은 루터교신학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각주6 B.B.Warfield, 구원의 계획,(크리스챤다이제스트 p27) 

각주7 기초자료집.1997,봄,p21(J.Barnaud. Pierre Viret: sa vie et son aeuvre, Saint-Amans 1991,667.) 

각주8 밀드레드 와인쿱, "칼빈주의와 웨슬레 신학"pp,39-44에서 웨슬리안 입장에서 베자를 비판하면서 평가한 내용. 

각주9 세계관 연구 모임 기초 자료집.p.40 

각주10 고마루스가 타락전 선택설을 공적으로 강의하자 흐로링겐의 Jonckr Clant가 도르트회의의 결정을 들어서 그를 비판함. 고마루스는 도르트는 예정론 자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다양한 질서에 관한 문제로 대답하였다고 함으로, 지금도 화란에서 교회가 갈라져 있을 정도로 미묘한 문제이다. 

각주11 웨스터 민스터의 성직자중에 평화주의자 리차드 박스터와 절친한 에드문트 칼라미(Edmund Calamy)는 요3:16에 대한 논쟁에서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택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유기자를 포함한 모두로 이해, 그러나 죠지 길레스피에 의해서 카메론과 아미롤드가 그와 비슷한 조건적 구원을 주장하였다고 논박하였을 때, 칼라미는 해명하기를 유기자에 대한 어떤 은혜의 경륜에 대한 것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변경하므로 종결되었다. 

각주12 교리적으로는 개혁주의자이면서 교회정치에서는 감독교회적이거나 회중교회적인 인물이 함께 참여함.-바빙크의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평가 23-24 참고 

각주13 연구모임자료집 I, p9 각주18. 

각주14 주관주의(재세례파), 권위와의 단절(르네상스),인간의 자율성의 특징을 가진다. 

각주15 바빙크는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두 극단은 쉽게 결합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주16 쏘시니안주의-로마카톨릭의 은총과 자연 구조를 모순대당관계로 나누므로 결국 자연을 위해서 은총을 버림, 데카르트- 모든 권위와 객관성으로부터 해방, 이성이 계시로부터 분리, 합리주의. 

각주17 헤르만 바빙크, "개혁주의 교의학1" 김영규 역,(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p116-117)참고 

각주18 바빙크는 보에티우스파인 말크의 '기독교 신앙의 정수'와 브라켈의 '합리적 신학'이 마지막 교의학들이라고 평함. 

각주19 장로교정치에 대하여, p32

각주20 교회의 주권을 관원에게 허용하는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