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옛날 그의 백성에게 세 가지 법을 주셨는데 의식법 (혹은 제사범, 영어로는 Ceremonial Law), 민사법 (영어로는 Civil Law), 그리고 도덕법 (영어로 Moral Law) 을 주셨다. 그런데 이 세가지 법중에서 의식법은 그리스도의 모형을 그린 구약의 의식법이므로 실상이신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 (골로새 2:15-17).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으면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양을 제사장에 가져가면 제사장이 그를 제물로 드렸다. 이 제물이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짐슴이어야 한다는 이유는 우리 택한자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동정녀의 몸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동시에 하나님이로되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은 우리와 성정이 같으나 고린도후서 5:21 말씀대로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고로 구약에서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내다 보면서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짐승을 하나님에게 드렸다.

민사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졌던 유대민족의 헌법이다. 모세 오경에 보면 이런 이런 여러가지 민사법의 규정들을 읽어 볼수 있다. 민사법을 이해하려면, 첫 째 알아야 할것이 구약때 이스라엘은 신정국가 (theocrasy) 라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큰 교회 였다. 나라 중심 예루살렘에는 성전의 지성소에 속죄소아 있었고, 하나님이 친히 백성을 다스리시는데 왕, 제사장, 선지자 등 세가지 제도를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들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렸다. 민사법은 신정국가의 백성, 즉 이스라엘백성에게만 주어젔던 법이다. 이방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법을 지킬 필요 없다. 예를 들면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였을때 삼하 12장에 보면 나단 선지와 찾아 와서 다윗 왕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를 읽어 본다. 나단 선지의 말을 들은 다윗은 "4배나 같아 주라" 고 명한다.


얌양 한마리를 흠쳤는데 왜 4배로 갚아 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민사법이었다. 이런 민사법은 그떄나 지금이나 이방인은 지키지 않으며 이스라엘 벡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법이다. 오늘 우리는 각자가 살고 있는 나라의 헌법을 지킨다. 한국 시민이면 한국의 헌법을 지켜야 하고 미국 시민이면 미국의 헌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세 번쨰로 도덕법 (Moral Law) 은 모든 세대에 모든 인류가 지켜야 할 철칙으로 영속된다. 비단 유대민족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인류가 영영히 이 세상 끝날때 까지 지켜야 할 도덕율이다. 이 도덕법은 변개할 수 없다. 우리 모든 인류가 살아갈 규볌 (Norm) 인 것이다. 나라의 헌법이 있고 따라서 백성은 그 나라 헌법을 지킬 의무가 있듯, 모든 인류는 살아갈 법도로서 이 도덕법이 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도 이 법을 어기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담의 마음판에 이 도덕법을 새겨 두었기 때문이고 그 도덕법이 대대로 유전되어 오기 때문이다 (로마인서 2:15 참고).

이 말의 입증하려면 로마서 5:12-19 을 보아야 하는데, 사망이라는 것이 율법이 있기 전에도 왕노릇하였다. 율법이 없는데 어떻게 죄를 지으며 어떻게 죄의 댓가로 사망이 인류에에 올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아담 시대에 10계명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로 부터 훨씬 후 이스라엘백성이 430년간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건져 냄을 받고 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친히 손가락으로 써서 주신 겻이 바로 이 십계명 (The Ten Commandments) 이다 (출 32:16). 그러므로 아담이 이 십계명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판에는 하나님이 윺법을 새겨 놓았던 것이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이다. 그리스도는 믿는자의 대표자 이다.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의 마음판에 새겨진 도덕법은 그의 후손들인 모든 인류에게 예외없이 유전되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10계명의 내용을 범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의식법과 민사법은 지킬 필여가 없어도 도덕법인 십계명은 반드시 지킬 의무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할 소지를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10계명을 지켜서 그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율법의 목적은 그 것을 지켜서 그런 댓가로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목적은 세가지 이다, 그 세가지란 1) 죄를 깨닫게 하고 (롬 3:20. 갈 2:16), 2)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나와 그리스도에 의지하여 그를 믿게 되고 (갈라디아 3:22), 그리고 3) 인생이 살아갈 지침이며 생활의 유일한 법칙이다 (시편 119:105).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진다는 것이다.(에베소서 2:8).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구원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정확힌 신학은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얻는다> 는 것이니 영어로 표기하면 We are saved by grace through faith in Christ 이다. 믿음은 구원의 수단 (means) 이다. 은혜 (grace) 는 구원의 대행자 (agent) 이며 그리스도는 중보자 (Mediator) 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시 계명으로 돌려 보낸다. 요한이서 6절 요한일서 5:2, 그리고 요한복음 14:15, 23, 24 등을 읽어 보면, "주님의 제자는 계명을 지킨다" 고 했고,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주님을 사랑하는 자" 라고 했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율법을 지킨다. 그러나 이런 율법을 지키다가 완전히 못 지키는데 오는 형벌을 받을 필요는 없이, 그런 형벌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었다.

옛날 유대인들은 율법을 613개로 나누어 그중 248 개 조목은 <...을 해라> 라는 조목이고 365 조목은 <...하지 말라> 라는 조목이 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613개 조목만 잘 지키면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지킨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엇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산상보훈이 적힌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그런 정도가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가 더무서운 죄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2:16 말씀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육체가 아주 없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대로 창세전에 택새 주신 그의 백성들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일 뿐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헤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시 116:12).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그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 중에서 십계명 도덕법만은 하나님이 집접 손가락으로 기록하였다 (출 31:18, 출 32:16). 십계명은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 오늘 부터 열번에 걸쳐서 십게명의 내용을 게재하여 십계명이 오늘 교회에서 어떻게 무시 당하고 있는지 샆펴 보려고 한다.

오늘은 우선 제 1 계명을 보자, 충애급기 20:1-3을 펴기 바란다.
제1계명의 내용은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설명:
마태복음 4: 10을 보면 "다남 주 하나님을 경배 하고 그만 섬기라" 라고 주님이 말씀 하신다.
십계명은 처음서 부터 끝까지 주님을 경배하고 그만을 섬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 혹자는 처음 4 계명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고 남어지 5계명에서 끝까지는 사람에 관한 계명이다 라고 가르치지만 엄말한 의미에서 제1계명에서 제10계명 에 이르기 까지 모두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다.


처음 제 1계명은 경배의 대상, 제2계명은 경배의 방법, 제3계명은 경배의 태도, 제4계명은 경배의 시기, 제 5계명은 하나님이 주신 베도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 제6계명은 생명의 존업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 제7계명은 결혼의 신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 제8계명은 사유재산의 보호를 통해서 하나니을 섬기고, 제9 계명은 진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법, 그리고 제 10계명은 자족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각각 가르쳐 준다. 마태복음 22: 36-40 에 기록된 말씀 즉 율법의 대강령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이 우리의 삶의 원칙이어야 함에도 오늘 십계명은 도외시되고 미국의 학교나 관공서에서 십계명은 모두 철거 되고 있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 1 계명이 교훈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 경배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오늘 잘 지켜 지고 있는가? 다른 신들은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만드신 천상 천하의 대 주재 이시다. 그 분만이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다. 다른 대상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기독교 인이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든지 나라의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서 이슬람교의 <카바, Ka'bah, 사우디 아라비아 멕카에 있는 이슬람교의 본부 사원에 있는 운석, meteor) 에게 절한다는지, 일본에 가서는 <야스쿠니 진쟈 >에 가서 손바닥을 치며 일본의 800 만 신들에게 절한다는지 하는 것은 정면으로 제 1계명을 범하는 행위이다. 일본의 <야스쿠니 진쟈> 는 필자도 1969년 미국에 유학 오는 길에 일본 동경에서 하루 저녁을 보내면서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마어마 하게 엄숙한 분위기로 그 안에는 일본군으로 제2차 대전에서 전사한 일본 전몰장병들의 위패가 수도 없이 많이 진렬되어 있다. 그런데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손바닥을 치며 그들의 풍습대로 절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하나닝 보시기에 가증한 죄이다. 이런 것을 하지 말라고 제1계명이 가르친다.

제1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경배하라고 가르친다.
그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나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도 신경을 외울때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하오며" 라고 할때도 그 하나님은 천지 만물만 창조하신 분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지시고 인도해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믿는 다는 마음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삼위일체 이신 하나님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닝만 을 믿고 섬긴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하나님이 언약주셨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믿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오늘날 우리가 믿을자를 택하여 그만 섬겨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을과 성품을 다해서 그 만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만이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그래서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담이나 소요리분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믈으며 그 대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법죄하여 그 형상이 손상되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아갈 능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 저것 다른 신들을 만들어 숭배한다.

하나님은 조물주이고 우리는 피조물이므로 피조물은 조물주에 경배해야한다. 그리고 조물주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며 여호와와 같은 신이 또 어디 있는가? "미가야후" 라는 히브리 말의 의미는 <여호와와 같은 신이가 누구뇨?> 라는 의미이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고 세상을 나중에 심판할 분이며 우리의 앉고 누움을 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감창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자. 그는 천상 천하의 대 주재 이시다.

톨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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