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회개’의 개념   
 

조병수 교수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1. 회개의 용어들 
 사도 바울에게 회개를 나타내는 용어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메타노이아/메타노에인’(meta,noia/metanoei/n)인데 주로 심정적인 회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poenitentia). 다른 하나는 ‘에피스트레페인’(evpistre,fein)으로 회개가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conversio). 사도 바울은 회개를 나타내는 이 두 단어를 그다지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메타노에인’(metanoei/n)은 고린도후서 12장 21절에서, ‘메타노이아’(meta,noia)는 로마서 2장 4절, 고린도후서 7장 9절, 10절,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서 사용되었다. ‘에피스트레페인’(evpistre,fein)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에서 사용되었다. 1)

 

사도 바울에게 회개를 말하는 용어들이 희소하게 나타나는 것은 회개 사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현상은 사도 바울에게 더 특수한 개념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도 바울은 회개가 신앙과 함께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2) 사도 바울은 회개를 믿음(pi,stij)이라는 개념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개를 나타내는 용어가 드물게 사용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2. 회개의 개념들
사도 바울의 회개 용어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차원에서 회개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사도 바울에게는 단회적 회개 개념이 있다. 4) 이것은 구원의 회개이다. 구원으로서의 회개는 단회적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에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돌이킴에 관해서 말한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 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 (말하니)”.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에피스트레페인’(evpistre,fein)을 사용한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회개는 우상종교에서 하나님 신앙으로 돌이킨 것이다. 이것은 구원으로서의 회개이다. 구원 회개는 중생이나 칭의와 마찬가지로 단회적이다. 구원을 이루는 회개가 단회적이라는 사상은 사도 바울의 회개 개념에서 지배적인 특징이다(행 26:18, 20).

 

이에 비하여 사도 바울에게는 반복적 회개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신자들이 구원 이후에 행하는 윤리적 회개를 가리킨다. 반복적 회개란 사도 바울이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회개를 이룬 신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21절에서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회개 용어는 ‘메타노에인’(metanoei/n)이다. 회개의 내용은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에 대한”(evpi. th/| avkaqarsi,a| kai. pornei,a| kai. avselgei,a|)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인 죄악들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이 불결·음행·방종이라는 윤리적인 죄악들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는 것을 슬퍼한다. 고린도교회의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자주 청결하지 않은 생활, 성적인 타락, 무절제와 같은 문제들에 빠진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와 같은 도덕적인 죄악들을 반복해서 회개해야 한다.

 

3. 회개의 주체들
그러면 사도 바울은 회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회개 용어가 들어있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회개의 주체를 어디에 두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먼저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4절에서 말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회개로 인도한다”(to. crhsto.n tou/ qeou/ eivj meta,noia,n se a;gei)고 말한다. 5) 사도 바울은 회개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의 동인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다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라고 설명된다. 하나님에게 이것들은 풍성하다. 이렇게 풍성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회개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와 같은 회개의 신적 동인 때문에 회개는 엄격하게 말해서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회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성품(인자하심·용납하심·참으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에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사도 바울은 회개의 신적 동인을 알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인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경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9~10에서 말한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회개는 사람의 근심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너희는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다”(evluph,qhte eivj meta,noian). 회개는 근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악에 대한 근심이 회개를 일으킨다. 근심은 인간적인 차원에 속한다. 이렇게 볼 때 근심은 회개의 자아적(自我的) 동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인간의 근심은 회개를 위한 표면적 동인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개를 일으키는 근심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심이란 사망을 이룰 뿐이다(h` de. tou/ ko,smou lu,ph qa,naton katerga,zetai). 사도 바울에 의하면 회개를 일으키는 근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회개를 유발하는 근심은 하나님을 표준으로 삼을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회개는 근심에서 나오고, 근심은 하나님을 표준으로 삼을 때 나온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두 번 반복해서 말한다. “너희는 하나님을 따라 근심했다”(evluph,qhte kata. qeo,n). “하나님을 따라 하는 근심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룬다”(h` ga.r kata. qeo.n lu,ph meta,noian eivj swthri,an avmetame,lhton evrga,zetai). ‘하나님을 따라’(kata. qeo,n)는 신적 차원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규범이며 표준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표준으로 삼을 때 근심하게 되고, 근심할 때 회개를 이룬다. 그러므로 회개의 근본적인 동인은 하나님이다. 사도 바울은 회개를 철저하게 신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도 바울에게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이기 때문에 신 인식이 없는 회개 개념은 없다. 사도 바울은 회개를 단순히 내적 충동에서 발생하는 심적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개는 외부에서 신적인 수여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신적인 수여로서의 회개가 있고야 비로소 심적인 변화로서의 회개가 있다. ‘회개되는 회개’가 ‘회개하는 회개’보다 우선한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서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도 사도 바울은 회개(meta,noia)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훈계하는 것(paideu,ein)이다. 회개에는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훈계는 회개의 인간적인 방편이며 물리적인 도움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온유함으로’(evn prau/thti)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개를 이루는 것은 인간적인 방편만으로는 안 된다. 회개의 근본적인 동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회개를 주신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6) 사도 바울에 의하면 회개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회개는 막강한 것이며,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회개이다.

 

4. 회개의 결과들
그러면 사도 바울은 회개가 어떤 결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가?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대답을 고린도후서 7장 9~10에서 구원을 회개의 결과로 제시했는데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서 또 하나의 대답을 준다. 사도 바울은 회개가 하나님의 근본적인 동인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방편을 가지고 이루어진다고 말하면서 그 결과가 무엇인지 언급한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회개의 목적을 밝힌다. 그것은 ‘진리를 알게’(eivj evpi,gnwsin avlhqei,aj) 하는 것이다.

 

회개의 목적은 진리인식이다. 회개는 감정적인 목적보다 인식의 변화를 목적한다. 회개의 결과는 진리를 아는 것이다. 회개로부터 진리인식의 길이 열린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리인식의 가능성이 없다. 진리인식은 회개를 전제로 한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어지는 구절(딤후 2:26)에서 회개의 결과는 진리의 인식 뿐 아니라 생활의 변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 잡힌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이것은 앞 구절에서 언급한 회개의 성격에 관한 설명이다. 회개는 ‘~으로부터’(evk)라는 전치사와 ‘~에게로’(eivj)라는 전치사의 결합이다. ‘~으로부터’(evk)는 회개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마귀의 올무이다. ‘~에게로’(eivj)는 회개의 긍정적 측면으로서 하나님의 뜻이다. 물론 이런 전이는 “하나님에 의하여 사로잡힐 때”(evzwgrhme,noi u`pV auvtou/) 가능하다.

회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확인하는 행동에 근거하여 지금까지의 무지로부터 돌이킴(Abkehr)이며,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 예수에 대한 신앙에서 구체화되는 하나님에게로의 돌이킴(Hinkehr)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경우를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에서 잘 설명해준다. 과거의 종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변경시킨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완성하는 하나님에게로 돌이켜야 한다. 7)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전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메타노에인과 에피스트레페인을 함께 사용한다(행 26:18~20, 참조. 행 3:19). 사도 바울은 이 두 동사를 병렬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회개와 함께 통치의 변화가 실행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사탄의 통치 아래 놓여있던(엡 2:1f.)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다(행 26:18, 참조. 엡 5:8). 하나님께로의 회개와 이양은 믿음 안에서 실행된다.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다(행 11:21).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신적 동인에 의하여 회개에 이른 사람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인생을 사는 것으로 이해한 것처럼 보인다. 회개로 말미암아 전 인생의 근본적인 변화를 얻는 사람은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목적을 얻는다(행 26:20). 사람에게 가졌던 하나님의 원초적인 창조의도가 새로운 삶 가운데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면서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살전 1:9, 행 14:15, 참조. 히 9:14). 8)

 

이것이 바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회개를 얻은 사도 바울 자신이 그 후로부터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인생을 산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회개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 회개는 진리 인식이라는 것, 회개는 생활의 변화라는 것, 이 모든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의 다메섹 체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체험으로부터 회개 개념을 형성한 후에 자신을 철저하게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았다(빌 2:17, 딤후 4:7, cf. 고후 12:15).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회개에 제사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 미주
1) 사도 바울은 evpistre,fein을 일반적 의미로 고린도후서 3:16과 갈라디아서 4:9에서 사용하였다. 사도 바울은 명사 evpistrofh,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한 번 사용되었다(행 15:3).
2) Goetzmann, "meta,noia / metanoe,w," 74.
3) Merklein, "meta,noia / metanoe,w," 1029.
4) 누가도 “회개를 단회적 행동”(Umkehr als einmaligen Akt)으로 이해한다(Merklein, "meta,noia / metanoe,w," 1028).
5) Merklein, "meta,noia / metanoe,w," 1029.
6) Merklein, "meta,noia / metanoe,w," 1029.
7) Légasse, "evpistre,fw," 101.
8) Laubach, "evpistre,fw," 70-71.

 

△ 참고문헌
Goetzmann, J., "meta,noia / metanoe,w," Theologisches Begriffslexikon zum Neuen Testament, Brockhaus, 1971, 1993, 72-74.
Laubach, F., "evpistre,fw," unter "Bekehrung, Buße, Reue," Theologisches Begriffslexikon zum Neuen Testament, Brockhaus, 1971, 1993, 69-71.
Légasse, S., "evpistre,fw," Exegetisches Wörterbuch zum Neuen Testament, Bd. II, Stuttgart/Berlin/Köln/Mainz: Kohlhammer, 1981, 99-102.
Merklein, H., "meta,noia / metanoe,w," Exegetisches Wörterbuch zum Neuen Testament, Bd. II, Stuttgart/Berlin/Köln/Mainz: Kohlhammer, 1981, 1022-1031.


[출처] [본문스크랩] 성경적 ‘회개’의 개념 (성경과 외국어) |작성자 진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