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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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는 아무 죄가 없이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것 뿐이니 정죄할 필요가 없다> 는 주장이 요즘  천주교만 아니라 개신교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들려오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냅니다..  그런 주장이 성경에 맞는 말일까요?  여기서 성경대로 깊이 생각해 봅시다.

 

1920년대부터 기독교 여러 교파에서는 종전에 믿던 대로, 즉 <성경를 성경대로> 믿지 않고 인간의 생각을 가미하여 즉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믿으려하는 경향이 오늘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는데, 오늘에 와서는 <영지주의 Gnosticism> 까지 부활하여 극도의 신비주의로 변신하여 기독교 교계는 참으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여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진리 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필자가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훌륭한 정통적 기독교 학자였던 영국 All Souls Church 의 John R. Stott 박사 같은 분도 지금에 와서는 ‘악한 사람의 영혼은 소멸한다는 (annihilation of the impenitent)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습니다 (David Edwards. Evangelical Essence 란 책 참조).  필자가 신학하던 시절  Stott 박사, Clark Pinnock 박사, G. C. Berkouwer 박사 등은 모두 건전한 개혁주의 학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 자유주의자로 전락했습니다.  주님 재림의 결정적 징후는 Apostasy (배도) 입니다.  많은 정통신학자들이 세상 물결 따라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단에 가까운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Berkouwer (화란의 GKN, 화란개혁교단,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목사) 는 1945년 총회에서 성경에 잘 못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과 화란 개혁교단은 GKN에서 Sydney Greidnus 같은 설교학자 나 Klaas Schilder 같은 성경학자가 대거 탈퇴하고 새롱룬 교단인 VGKN (Vrije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화란 자유 개혁교단)을 만들었고,  Clark Pinnock 는 Infallibility of the Scripture 라는 책을 써서 유명하지만 지금은 카나다 토론토에서 신학생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은 미래를 알수 없다” 라고 하면서 신학계에 새로운 신학용어 “Open Theology"를 만들어 내는 ”공“을 세웠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8:8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 우리들의 눈앞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 문제 뿐이겠습니까?  Austin, Texas에서 Living Truth Ministry를 운영 하시는 Texe Marrs 목사가 발행하는  <Prophecy> 라는 잡지에는 천주교의 일각에서 마리아를 공동구세주 (Co-Redeemer) 로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세계 도처 특히 Portugal 의 Fatima 에서는 “성모 마리아” 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UFO 가 세계 여기 저기에  날아 들어 외계에  “눈이 파랗고 키가 작은 사람들 (green men)이 살고 있다” 고 믿고 있고, 심지어 우주인들에게 납치되어간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무리도 생겨나게 되어 났습니다.  교회의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데도 하나님은 뒷전에 두고 사람들 기뻐하는 형태로 변신하는 모습 (특히 Rick Warren 의 Purpose-Driven Church 라는 책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이 날개를 달고 팔리고 있으니...) 을 오늘의 교회에서 늘 보아 오기 때문에 너무 보편화되어버렸으므로 아무도  그런 현상을 이상히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경대로 예배드리고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도의 원수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17 에 “하나님의 집 (즉 교회 성도)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고 경고합니다.

 

지금 Princeton University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Elaine Pagels 라는 교수는 “오늘은 <사복음서를 재조명>해야 한다” 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기원 1세기에 기록된 ‘도마복음“ (Gospel According to Thomas) 이 그간 땅에 매몰되어 있다가 1945년 애급의 나일강 유역에 있는 <Nag Hammadi, 나그 하마디> 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에 입각해서 우리의 현존하는 공관복음과 제4복음서를 재해석 (reinterpretation)하여 다시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오늘 신학의 현주소입니다. 비단 가롯 유다 문제만 아닙니다.  Tennessee 주에 있는 Vanderbilt 대학에 재직 중인 Robert Funk 교수를 중심한 천주교와 개신교 학자중 일부는 이른바  <Jesus Seminar, 예수 세미나>라는 것을 만들어서 가끔 모여서 사복음서 기록을 각자 나름대로 연구 평가하여 복음서 기록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횐색으로 투표하고 그 기록이 의심스러우면 분홍색으로, 틀리다고 생각하면, 즉 복음서 기록자들이 조작한 것이라고 믿으면 검은 색으로 투표하는 일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천주교이건 개신교이건 “유다가 억울하다” 라고 생각하는 “기독교 학자” 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훼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개신교나 개혁주의 성도의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지식이 부족한 일반 성도나 심지어 신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신학이 약한 목사님들이나 천주교의 신부들까지도 속아 넘어 갑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은 “속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키라”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 둡시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성경해석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구속의 역사를 인간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구약에서 노아의 홍수나 <노아의 방주?를 비롯해서 무수한 전쟁이야기, 놀라운 이적기적 등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약에 들어와서도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 기사 혹은 병 고침, 그리고 또한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수많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 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즉 <구속의 역사> 를 가르쳐 준다는 말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미문 앞의 거지” 사건을 봅시다. 그는 남에게 구걸하며 육신의 양식만 생각하고 살면서, 아무런 구원의 소망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가 사도들의 도움으로 일어나서 한 일이 무엇인가요?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일어나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이 약하여 늘 제자리만 보존하고 도모지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는 걷습니다.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는 집에 먼저 간 것이 아니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것도 아닙니다.  먼저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앉은뱅이로서 육신의 양식만 위해 살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알게 되면 우선 하나님의 나라 일부터 새로운 인생이 출발되는 놀라는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이적과 기사도 그것을 우리가 모방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적 기사를 통해서  구원의 성질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만 바라보면서 갈리리 바다를 건너던 베드로는 안전했으나  주위의 풍랑을 보는 베드로는 물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의 신앙은 항상 주님만 바라보면서 그분을 푯대로하고 전진해야하며  세상을 바라보면 마치 <엉겅퀴 속에 떨어진 씨> 처럼 실패하고 맙니다. 장님이 눈을 뜨면, 주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즉 <앞을 못 보는 장님> 같은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주의 영광, 구원의 도리를 깨들을 수 있다는 진리 입니다. 귀먹어리의 귀가 열리면  세상의 속된 일에만 열중하던 사람이 영의 귀가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성령이 교회에 하는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귀는 보통 자연인 (예수를 모르는 사람) 의 귀를 말함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심령의 귀를 말합니다.  나사로의 무덥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니 죽은 지 오래된 나사로가 수의를 걸친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불러 주실 때 죄악을 벗고 주님에게 나올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은 주님의 재림 주제 말고는 모두 역사상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제로 실제적인 인물에 의해서 이루어 진 사건들입니다.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설명이 아니며, 초역사적 사건 (Ungeshichtliche Sache) 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일이 우선입니다. 이런 Presupposition 의 생각테두리 안에서 신학이 정리된 상태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평범하지만 독특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사를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살아 있는 실증입니다.  애급은 죄악 상태를, 광야는 현세를, 가나안은 구원 받은 상태, 혹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가령 신명기 5:15에 안식일 문제를 언급하면서 모세가 안식일 지킬 이유를 설명하며 이르기를 “애급 땅 종 되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의 강하신 팔로 건져 냈으므로 나 여호와가 명하노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킵니까?  여기에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출 애급기 20:10에서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만 신명기 5:15에서는 다른 이유, 즉 “백성을 애급에서 건져냈으므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애급에서 나왔다는 말이 무슨 의미 입니까?  “애급”은 죄악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이 죽은 곳” 이 “애급, 소돔” 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은 모두 죄악된 상태를 나타내 주는 곳입니다. 애급도 소돔도 죄악의 곳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나온 것은 죄악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 주셨습니까?  그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주의 첫날 즉 일요일 죽음에서 부활하시므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토요일이 아닌, 주님이 구속을 완성하신 날, 첫 부활절, 즉 주의 첫날인 일요일을 주일 (계시록 1:10 에 he kuriyake hemera, 주의 날) 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재정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베다니에서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는 여인에게 왜 향유를 낭비하는가 라고 불만을 토로 했습니다 (요 12:4).  우선 알아야 할 것이 그는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나 에수님의 사역을 모르던 분입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에 매주 출석하면서 유다가 은 30에 탐이 나서 예수님을 팔았듯, 내 자신의 유익만 구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다도 그런 사람주의 하나입니다. 에수님과 동행한 제자라고 특별한 권한이 없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 나간다고해서 모두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만 구원을 얻는 진리와 같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 문답 61문, 참고)  그런 사람이 에수를 파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롯 유다는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성경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성경 이외에 계시나, 우리의 이성을 믿을 수 없습니다. 변증학적으로 인간은 모두 타락하여 지.정.의 가 모두 완전 타락했으므로 우리 자신의 이성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비추어 문제를 풒어야 합니다.  심판의 기준은 다른 것과 비교가 아니고 성경적 진리 입니다.


그러며 성경이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예수님은 유다가 자기를 팔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6:71), 과연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요 13:2, 눅 22:3).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는 사탄이 시험은 하되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합니다. 요한일서 5:18 에 이르기를 거듭난 자는 자기가 자기를 지키므로 악한 자가 범접치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요한일서 4:4에는
“우리 안에 있는 이는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니라, He that is within us is greater than he that is in the world" 라고 성경을 가르쳐 줍니다.  이 모든 말씀이 입증하는 것은 유다가 죄가 없는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버리운 유기자, 즉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또한 그는 마태복음 27장 4절에 보면 그가 행한 일을 “뉘우쳤다” 고 했는데 이 말은 회개하고 다시 변한 회개 (metanoew, 메타노에오) 가 아닙니다.  <회개>란 구약에서 히브리말로는 “슈브” 이니 <가던 길을 돌아온다>는 말, 즉 요즘 말로 말하면 U Turn 한다는 말입니다.  신약에서도 <회개한다> 는 말은 "anastrepho (아나스르펩포)" 인데 이는 <가던 길을 돌아온다> 는  말입니다. 또한 metanoew 라는 말은 <생각이 바뀐다> 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의 "뉘우침“ 은 “metameleseis, 메타멜레세이스" 이란 단어를 썼는데 이는 ”metamelomai (메타멜로마이)" 라는 동사의 정과거 직설법 수동태 남성 단수 주격 분사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metamelomai" 는 ”metanoew“ 와는 다른 말입니다.  ”metanoew" 는 생각이 바뀌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 인데 반해서 “metamelomai" 는 ”어떤 행동 한 가지에 대해서만 잘못한 것을 후회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27:3을 원어로 읽어보면 이런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니 가롯 유다는 진정으로 성경적인 회개를 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은 누구나 행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영혼은 주님에게로 돌아 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짓고 회개하고 마귀에게 자신을 맡긴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자신을 맡겨 평생을 순교할 때 까지 할례당 (유대인들)을 위한 전도자로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경우는 회개하고 베드로처럼 주님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고 마귀에게 돌아가 자신의 목을 매고 자살하는 이중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18:7에 “실수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수 사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는 죄인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나 여전히 우리는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죄인이로되 “용서받은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은 그를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라고 분명히 그가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과.그가 예수님을 팔 사람인 것과, 그를 파는 자을 죄 없다 하지 않고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요즘 자유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성경을 성경대로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만일 가롯 유다가 아니어도 주님은 누구에 의해서인가 배반당하여 십지가게 돌아가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메시야가 배반당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합니다. 가롯 유다는 죄가 없다고 하는 말은 에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훼방하는행위입니다.  우리도 유다와 다를 것이 아무도 없습니다. 앞서 서두에서도 언급한대로 성경의 모든 사건들과 인물은 우리의 구원사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다는 사이비 신자의 모형입니다. 성경은 사이비 신자의 무죄를 말한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칭찬한 적도 없습니다.오히려 로마인서 1장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유다처럼 예수를 파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전도라는 미명으로 얼마나 많은 비행, 즉 예수님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를 파는 일입니다.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권세를 위해서, 재물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요?  이것도 가롯 유다가 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전제주권을 가지고 구속사역을 행하시고 지금은 종말을 향하여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유다의 경우도 성경의 예언에 따라 누군가가 사탄의 사주를 받아 주님을 팔 것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유다이건 다른 사람이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할수 없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번 복음서에 그가 거듭나지 못한 사실을 맗하고 있습니다. “나지 아니했더라면 좋았다” 느니, “ 한 사람은 나를 팔리라” 라 느니, “마귀가 들어갔다” 느니, “실족케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느니 등의 말로 분명히 그를 판자 (여기서는 가롯 유다) 가 죄가 있고, 화가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한 것을 사람이 의인이라고 고치는 것은 성경을 무시하는 처사요 하니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비 신앙적 자세입니다.

 

끝으로 부연할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다고해서 그 대상 자세는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 아니면 예수님의 선지자의 직분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들로 말씀을 훼방하는 자이니 말씀은 곧 그리스도 이므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 집니다.

좋은 예로, 바벨론을 봅시다. 성경은 모든 세상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시기도 하고 폐하기도 합니다 (단 2:21). 바벨론은 하나님의 나라를 괴롭혔던 나라 입니다. 마치 가롯 유다가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고 주님의 사역에 도움을 주지 못했듯,  그러나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이루고저 바벨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에게 돌아오도록 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까?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우상 숭배하는 유대나라를 쳐서 포로 삼았으니 바벨로는 죄가 없고 의로운 나라 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바벨론은 구원받지 못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로 기록되었고, 적그리스도의 모양으로 기록되었고, 하나님은 바베론의 멸망을 예고했고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 참고), 과연 적 그리스도의 나라 바베론은 파사 나라 (오늘의 IRAN 이라는 나라) 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계시록에 비치는 “바벨론” 은 항상 적 그리스도의 나라로 표현됩니다 (계시록 14:8; 18:2; 18:15; 18:21; 등을 읽어 보십시오) 또한 고난당하고 있던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는 베드로전서 5:13절의 “바벨론에 있는 교회” 란 어떤 교회(성도) 입니까? 여기서 <바벨론> 은 적그리스도가 도처에서 성도들을 체포 처형하는 로마의 지배 하에 있는 성도들을 말함이니 바벨론은 성경에서 항상 <적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죄없다고 입증되지 않습니다. 

 

또한 유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유대인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서도 말씀이 빛으로 “자기 백성에게 왔으되 아무도 영접치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0-11).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주님을 못 박았으니  죄가 없는 의로운 백성입니까?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2:15-16을 읽어 보십시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서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 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살전 2:15-16).  라고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씀 하십니다. 

 

유대인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가롯 유다보다 더한 죄이지요. 그들이 성경대로 주님 십지가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니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이성이나 판단이 아니라 성경자체의 증언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듭난 성도의 신앙태도 입니다.  성경은 유대민족이 죄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대신에 흉악범 <바라바>를 석방하고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은 AD 70년 로마군 제10군단 군당장 Titus (디도) 장군이 이끄는 군사의 포위 공격을 받아 그때 유월절에 전 세계에서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 100만 명이 무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Masada 에서도 800명의 결사대원 열심당원들이 모두 자살했습니다. 나라 백성은 흩어졌고, 그로부터 2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유랑민으로 Diaspora 에서 지나더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따라 1948년 5월 15일 실로 오랜만에 이스라엘 독립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속사를 포함하여  시간과 공간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전제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예정속에 이루어지지만 나라나 일반 개인이 짓는 죄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며 하나님은 죄를 짓게 하는 이가 아니기 때문에 죄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며 (영혼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되어지지만) 죄을 지은 당사자를 죄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성경말씀에 대한 도전이 됩니다. 문제의 가롯 유다의 경우 성경은 아주 확살하게 그가 택함을 받거나 구원을 받지 못한 자임을 입증하며 그러기에 사탄의 사주로 주님에게 해를 끼쳤고, 하나님의 나라에 해를 끼셨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이 죄를 면할 수 없고, 구약의 바벨론이 죄를 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가롯 유다가 다른 11 사도처럼  거듭난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을 저질렀을리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로 정확 무오한 (inerrant and infallible) 말씀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다음에 상급을 논할 때 성경대로 믿었는가 여부를 따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0).  고린도교회에는 성도의 부활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교인들 중에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이라는 주제로 말씀하다가 맨 끝에 가서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라고 했는데 저도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누가 무어라고 속여도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여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튤립 교육 선교회
툴립 신학 연구원
김명도 교수
www.tulipministries.co
rv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