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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2 21:22

프린스톤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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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강의의 주제는  <프린스톤 신학> 입니다.

프린스톤 신학교는  1812년에 설립 당시보다 지금  신학이 많이 변질되었습니다만 근 100년간 프린스톤은 개혁주의의 보루로서  미국 장로교회의 어머니로서 많은 우수한 신학자, 선교사, 목사를 배출했습니다.  프린스톤 신학이 이렇게 오늘처럼 변질된 것은 영국에서 식자간에 일어난 새로운 신학사조인 (자연신교, Deism )에 기인하고 또 한편 독일의 합리주의가 몰고 온  종교사학파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 의 영향에 기인하며 또 한가지 이유는 이웃 New York 에 있는 Union 신학교에 새로 부임한  동양어 교수 인 Charles A. Briggs 목사의 영향에 기인합니다.   오늘은 프린스톤 신학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연구해 보고저 합니다.

 

미국에 장로교가 들어온 것은 1680년  Maryland Baltimore 시 의회의 의원이던 William Stevens 가 Ireland 의 <Laggan 노회> 에 편지하여 Maryland 와 Virginia를 목회할 선교사를 파송해달라고 청원 하자 Ireland 의 <Laggan 노회>는 젊은 20대의 Scotland에서 교육을 받은  유식하고 믿음이 좋은 Francis MaKemie 목사를 Baltimore 에 파송하여 그가 미국에 상륙하여 1706년에 목사 6명을 놓고 미국에서 최초로 필라델피아 노회 (Presbytery) 를 조작한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Francis MaKemie 목사를 <미국 장로교의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최초의 필라델피아 노회의 회원인 6명이란 스콜틀란드계의 장로교 목사와 또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이 노회는 필라델피아 제1장로교회에서 모였습니다. 10년후인  1716년에는 4 개 노회에 목사 17명으로 최초의 대회(Synod) 가 조직되었습니다.

 

여기 모인 네 개 노회란 Long Island 노회(주로 뉴욕주와 뉴저지주의 교회들); Philadelphia 노회; New Castle 노회 (Delaware 주의 교회들); 그리고 Snow Hill 노회 (Maryland 주의 교회들) 이었습니다.  그 후 1788년에는 16개 노회에 목사 177명, 목사 , 교회 419개로서 필라델피아 제2장로교회에서 교단 창립총회가 열리게 되었고 교단 명칭을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미합중국 장로교단, PCUSA)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와 대소요리문답서 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대륙 미국에서 첫 장로교단이 탄생합니다.

 

초기의 미국의 장로교는 그들이 채택한 신앙고백서가 칼빈주의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조> 였던 것처럼 철저하게 칼빈주의를 따르는 건전한 교단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회원이 없이 모두 일치된 마음으로 <성경의 모오설,> <주님의 동정녀탄생,>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인간의 전적 타락>.<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 <예수님의 육적인 부활>, <주님의 육적인 재림> 등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옛날 대회가 조직된 후인 1729년에만든  채용법규 (Adopting Act) 를 적용하여, 교단에 속한 목사와 장로, 목사후보생은 모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를 신조로 받아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PCUSA 가 믿는 교리가 항상 그대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서 자유주의 물결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하여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800-1920년  어간에 구라파에서 많이 사람들이 이민으로 미국에 들어왔는데 이 120년간에 미국에 들어온 유럽 이민자의 수는 약 4,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대개가 개신교 신자들었지만 여러 교파출신이어서 교리가 달랐습니다. Ireland 출신은 대개가 천주교 신자였고, 독일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대개가 루터파와 경건주의자 였으며.  Netherlands에서 온 사람은 거의 전부가 개혁주의를 따르는 칼빈과 Abraham Kuyper의  후예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Scandinavia 반도에서 온 사람들은 루터파 일 수밖에 없는 것이 종교개혁을 단행한 루터의 가르침은 북으로 전파되어 가서 Norway, Finland, Sweden 등 여러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 여러 나라에서는 단연 루터교가 우세합니다.

 

독일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경건주의자들이 다른 개신교 성도들과 어울리면서 활동한 좋은 예는 Jacob Albright (1759-1808) 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원래 신앙이 미약했으나 그의 아들이 1791년에 죽어 장례식 때 회심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Pennsylvania 지방에서  영국에서 건너온 감리교 사람들과 접촉하여 설교하면서 교세를 확장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 지자 1800년에 감리교를 확장하여 1807에 첫 감리회를 만들었고, Albright 는 Francis Asbury 와 같이 경험을 위주로 사역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종교의 특징은 처음에는 장로교이건 뉴잉글란드의 회중교회이건 간에 개신교는 모두 철저한 칼빈주의를 지향했는데 이것이 점점 추세가 경험위주로 돌아서면서 인간의 자유(human autonomy) 를 내세우다보니 <뉴잉글랜드 신학, New England Theology> 은 이제 칼빈주의 와는 거리가 먼 <단신론주의 Unitarianism>로 변하게 되어 훗날 1830 년대에 활동한 Charles Finney를 통해서 <아르미니안 주의> 와 <자유주의>로 변신하게 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공부하는 <프린스톤 신학> 도<Old Princeton> 과 <New Princeton> 으로 두 파가 갈리는데 1920년대 이전을 Old Princeton 이라고 하고 그 이후를 New Princeton 이라고 합니다. New Princeton 은 오늘의 프린스톤 신학이며 고등비평도 받아 드리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앞서 영국과 독일 그리고 이일란드로부터  미국에 이민이 많이 들어 왔다고 했는데 장로교와 천주교만 아니라 루터교도 상당히 많이 들어 왔습니다. Samuel Simon Schmucker (1799-1873) 은 루터 교를 전파한 목사로 그는 1820년에 <Gettysburg Lutheran 신학교> 교장이 되어 루터 교를 전파에 공을 세운 분이며  1530년에 나온  Augsburg 신앙고백서 와 루터의 소요리문답 을 충실히 가르치면서  미국에서  루터 교를  이끌어 간 분입니다.  독일 Halle 대학은 당시 경건주의의 총본부였는데 거기에서 파송된  Henry Melchoir Muhlenberg (1711-1787) 도 미국의 루터 파를 만드는데 공헌을 많이 한 학자입니다.

1800년대의 미국은 두 사람 즉 Francis Asbury 와 Charles Grandison Finney 가 부흥회를 열면서 열심히 활동하던 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아르미니안 주의자> 였으며,  두 분 모두  열정적인 부흥사였습니다. Finney 는 1830년대에 활동을 많이 한 사람인데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정에 호소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회개할 것을 가르치며 설교가 끝나면 단 앞에 나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당시 <Anxious Bench> 라고 했는데 이것은 먼 훗 날,  BILLY GRAHAM 의 <ALTAR CALL> 제도의 도입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인  IAIN MURRAY 교수는 이런 ‘alter call" 제도를 평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혹독하게 비난합니다 (그의 저서, Invitation 참고). BILLY GRAHAM  집회에서도 앞에 나와서 결심하는 사람 중에서 30 퍼센트만 그 후에 계속 신앙을 유지한다는 통계가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앞에 사람들을 불러내는 것이 전도의 길은 아닙니다.  BILLY GRAHAM 은 말하기를 <앞에 나오면 사람과 하나님에게 약속하는 것> 이라고 하지만 그 약속은 반드시 단 앞에 나가지 않아도 혼자서 능히 지킬 마음만 있다면  지킬 수 있는 것이니 구태여 단 앞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1811년에 미합중국 장로회 총회는 신학교 세우는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했는데, 세 가지 안을 내 놓았습니다. 즉 1) 중앙에 신학교 하나를 세운다, 2) 남과 북에  각각 한 개 씩 세운다, 그리고 3) 각 노회에 하나씩 세운다, 이렇게 세 안이  나와서 투표하니 만장일치로 중앙에 강력한  신학교 하나를  세우기로 표결하여, 1812년에 <프린스톤 신학교>가  프린스톤 대학교 campus 안에 세워졌습니다.  초기의 프린스톤 신학교는 우편에 Archibald Alexander 교수의 사택이 있엇고, 신학교 좌편에는  Charles Hodge 교수의 사택이 신학교 건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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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톤 신학교에는 처음에 상당히 유능한 교수들이 많았습니다. Samuel Davies 같은 분, Archibald Alexander, 그리고 그의 제자인  Charles Hodge, 그 뒤를 이어 유명한 Benjamin Breckenridge Warfield  같은 당대의 쟁쟁한 분들이 교수하면서 철저한 개혁주의적 노선을 걸어갔고 학교는 그 후 100년간 명실 공히 <장로교의 어머니 >라고 불리우며 많은 목사와 선교사와 학자를 배출하여 세계 도처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특히 Archibald Alexander 의 구약, Charles Hodge 의 조직신학, O.T.Allis 의 구약, E. J. Young 의 구약, Cornelius Van Til 의 변증학  Ned B. Stonehouse의 신약, Paul Wooley의 교화사 등은 모두 자유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던 당시에도 타협할 줄 모르는 정통신학 바로 그 것이었습니다.  교수들은 책도 많이 써서 1789년 총회가 처음으로 조직된 이후로 프린스톤 신학교는 문자 그대로 가장 활발하게 학구를 하는 신학 기관이었습니다.  Princeton Review 라는 잡지는 지금은 많이 좌경되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권위 있는 학술잡지로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음을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당시 독일에서는 이른바 <religionsgechichtliche Schule> 라는 <종교사학파> 가 등장하고 <고등비평 (Higher Criticism)> 이 등장하고 영국에서는 <자연신교>가 등장하여 인본주의가 팽창하여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신학계에 자유주의 물결이 침투하기 시작할 때 였습니다. <자연신교> 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는 스스로 계속 통치하기를 포기하고  우주의 질서의 법에 맡겨두셨다고 믿는 신앙이니 하나님도 결국은 우주의 질서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론이 됩니다.  Isaac Newton 이 신앙가라고 하지만  이런 자연신교를 믿는 사람이었고, 미국에서도 Benjamin Franklin 그 역시 자연신교를 믿는 사람이습니다. 

 

미국 초기의 대부분의 대통령이 자연신교나  메이슨교를 믿는 분들이었습니다. 현재 수도 워싱톤 시를 설계한 모습을 보면 그 도시를 설계할 당시나 지금이나 메이슨교 (Free Masonry) 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수도 와싱톤의 국회 의사당 (Capitol)에서 시작하여 오픈 편으로 Jefferson Memorial 까지 직선을 긋고, 또 같은 Capitol Building에서 이번에선 왼편으로 백악관까지 직선을 그으면 Mason 교도들이 즐겨 싸는 compass 가 성립됩니다.  그리고 의사당 뒤에 있는 여러 작은 도로들의 intersection 들을 연결하면 <귀 耳> 모양이 되고 백악관이 있는 Pennsylvania Ave 근처의 intersection들을 연결하면 오각형의 별이 거꾸로 (upside down) 서 있는 모양이 됩니다. 이것이 우연일까 아니면 고의적으로 그렇게 설계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사학파들은 기독교도 다른 원시 종교의 일부이므로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연구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천지창조나 노아의 홍수도  기독교의 독특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신화인 Gilgamesh 에서 모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성경을 비판하자는 역사적 비판 연구를 야기했고, 양식비평 (Formgeschichte) 이나 비신화화작업 (demythologization) 의 연구를 유발하여 드디어 독일Berlin 대학에서 공부한 Charles A. Briggs 목사 같은 이는 성경에 잘못이 있으니 신학교에서는 “고등비평”을 수용해야 한다“ 고 공공연하게 취임설교에서 자기의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교수로 부임했던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는 이로 인하여 노회에서 탈퇴하게 되었고 극도로 자유주의로 흘러 나중에는 Paul Tillich 같은 분이 교단에 서는 일도 있게 되었습니다.

 

1910년대부터 줄기차게 불기 시작한 자유주의 물결은 1910년 Scotland 출신 신학자 James Orr 를 중심한 R.A.Torrey, B.B.Warfield, 세대주의를 주창하는 C.I.Scofield 등 여러 교파의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모여서 이른바 <근본교리집, The Fundamentals> 라는 10권 자리 책을 대량으로 발행하여 모든 신학생과 목사들에게 무료 배부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장로교 학자만 아니고 루터파, 침례파, 감리교파도 총망라하여 성경을 자유주의로부터 사수하기 원하는 학자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했기 때문에  교리상의 혼돈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당시로서는 자유주의를 막으려는 일념으로 이런 대담한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자유주의가 팽창하니 드디어 미합중국장로교 PCUSA) 안에서는 <Auburn Affirmation 어번 선언> 에 참가하는 목사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1923년 교단 총회는 당시에 자유주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 교단 내 모든 목사 후보생은 반드시 <기독교의 다섯 가지 기본 교리 (The Five Essential Doctrines of Christianity)>를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결정을 했는데 그 다섯 가지란 . 성경의 무오설, 주님의 동정녀 탄생, 주님의 대속의 죽음. 예수님의 기적, 주님의 육적인 부활 등 다섯 가지였는데 자유주의가 편만한 당시 이런 다섯 가지를 믿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뉴욕의 오번 신학교에 모여서 이 다섯 가지는 사람이 만든 교리로서 반드시 믿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일이 방생햇습니다. 1924년 1월에 모여서는 장로교 목사 150명이 서명하고 그해 5월에 모인 제2차 모임에서는 무려 장로교목사 1,274명이 서명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오번 선언 (The Auburn Affirmation, 1924)> 입니다.  

 

이런 자유주의 경향은 뉴잉글랜드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니 1758년에 Jonathan Edwards 가 죽자 그의 외손자인 Timothy Dwight (1752-1817) 이 1795년 Yale 대학의 총장이 되고 그의 제자인 Nathaniel William Taylor (1786-1858) 이 Yale 대학 신과대학 (Divinity School) 의  초대 교수가 되면서 Yale 신학을 자유주의로 변질 시킨 역사적 사실도 프린스톤 좌경에 한 몫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프린스톤 좌경보다 훨씬 전의 일이긴 하지만 총명했던 Taylor는  Dwight 총장의 비서로 있으면서 <부흥주의적인 아르미안주의> 로 New England 의 신학에서 칼빈주의를 변질 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는 당시 Charles Finney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인간의 타락을 인정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려면서 부흥주의와 사회개혁을 주창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점 점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치면서 프린스톤에도 영향을 주엇습니다.

 

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의 1800년대의 프린스톤은 순수하게 칼빈주의적 신학을 전파했다고 발씀 드렸습니다.. 성경의 절대적인 영감설, 완전 영감설을 믿었습니다. 동정녀탄생이나 대속의 죽음이나 육적인 부활등을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제1차 대각성운동>으로 인하여 그 힘으로  미국의 독립전쟁이 있었고 미국의 기초가 신앙인 것처럼 프린스톤 사람들은 이 나라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끌어 갈수 있도록 바른 신앙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는 1812년에 세워져서 1921년에 이사회를 자유주의 인사들로 개편할 때 까지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칼빈주의적 개혁주의를 사수하는 정통신학교로 정평이 나있었고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나 있는 신학교였습니다. 약 100년간 프린스톤은 보수신앙을 지켜오는 교수들이 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이름있는 학자로서는 앞서 언급한바 대로  Archibald Alexander, Charles Hodge, Archibald A. Hodge, Benjamin Warfield, Gresham John Machen, Ned B. Stonehouse, Oswald Thomas Allis, Edward Joseph Young, Paul Wooley, Cornelius Van Til 등 당대에 쟁쟁한 교수들이 교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프린스톤 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성경의 완전영감설,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인간의 타락, 언약 신학 등을 어거스틴 (354-430), 사도들의 가르침,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의 신학, 칼빈의 기독교강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그리고 스위스의 신학자로 후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Francis Turretin  (1623-1687) 등의 신학을 가감 없이 그대로  가르쳤습니다. 프린스토의 장점은 이들은 절대로 당시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유주의가 서서히 미대륙에 상륙할 때도 이들 개혁주의 학자들은 굳건히 성경의 권위를 지켜왔습니다. Archibald Alexander 교수 는 영국에서 건너온 자연신교 (Deism) 과 싸웠고, Hodge 는 구파라의 고등비평과 싸웠고, Benjamin Warfield 교수와 Charles Hodge 교수의 아들인 A.A.Hodge 교수는 성경의 권위를 위해서 싸워 개혁주의 신앙, 프린스톤의 신학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은 원본에 있어서 조금도 무오한 것을 강력히 주장했는데 스콜틀란드의 신학에 바탕을 두고 철저하게 개혁주의적이 었으며 모든 철학사상을 성경이라는 렌즈에 비추어서 해석했습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장점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읽을 것을 강조했고, 직업은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하는 방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Charles Finney의 불건전한 신앙으로 인하여 동요하던 사회풍토에서 프린스톤신학은 <경험위주의 부흥사상> 을 철저히 배격하고  성경적 신학에 근거한 믿음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Charles Finney는 1830년 40년대에 미국을 풍비했던 부흥주의 설교가 이지만 그는 <장로교가 가르치는 선택의 교리가 잘 못되었다> 라고 주장하고 또한 New Haven 신학의 그릇된 Nathaniel William Taylor 의 서적과  John Wesley의 Plain Truth on Perfection 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흔후  장로교를 영영 떠났고 아르미니안 주의자가 된 사람이며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택할 수 있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프린스톤 신학은 이런 감정에 호소하는 <부흥주의 신학> 을 배격하고 인간의 회심과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높여 일상생활에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 최고의 선 (summum bonum) 이라고 가르치면서 성도의 진정한 감사의 눈물은 성경을 체계 있게 연구하는데서 나온다고 그들은 가르쳤습니다.

 

프린스톤 신학은 그의 가르침을 교실에서 보다는 글로 많이 전파했는데 가령 Archibald Alexander 는 Evidences of the Authenticity, Inspiration, and Canonical Authority of the Holy Scripture 즉 성경의 진실성, 영감, 정경적 권위의 증거들 이라는 책을 1836에 썼고, Charles Hodge는 유명한 조직신학 3권을  1782-1783에 써서 믿는 고리를 바로 정립했으며,  A.A. Hodge 는 그의 유명한 Outlines of Theology 신학개요 라는 책을 1860년에 펴 냈습니다. 한편 Gresham J. Machen (1881-1937) 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는 1923년 자유주의 물결이 프린스톤 강단에 밀려들어오고 1921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사회가 자유주의자들로 개편되자 Christianity and Liberalism 기독교와 자유주의 라는 아주 유명한 책을 집필 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라> 고 말하면서 <자유주의와 기독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종교> 라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Gresham Machen 교수는 후에 Westminster 신학교를 설립하여 프힌스톤의 옛 정통 신학을 그대로 이어 갑니다. 1936년 North Dakota에 설날 설교하려 갔가 오는 길에 소천했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사진이 모두 진보적인 자유주의 인사들로 채워지는 이사회 개편이 1921년에 이루어지자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대거 프린스튼을 사임했고, 학교에서 40 마일 서편에 있는 Philadelphia 의 downtown 인 Pine street에 건물을 매임하여, 1929년 가을에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의 시작이며 후에 Chestnut 라는 Philadelphia 의 시외로 이사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2005년에 5월에 제76회 졸업생을 배출했고, 오늘까지 배출한 수 천명의 졸업생들은 대개가 신학교나  대학의 교수 혹은 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옛 프린스톤의 정신을 이어받아 개혁주이 신학을 전파하고 충실히 전파하고 잇습니다. 그러므로 프린스톤의 옛 정신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이어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앞서 언급한 미국 최초의 장로교인 PCUSA 는 1861년에서 1865년에 이르는 어간에 노예문제로  남 장로교 (PCUS) 와 북 장로교 (UPCUSA) 로 갈라졌다가 1983년 6월 Atlanta Georgia 에서 극적으로 근 130년 만에 재통합되었는데 그간 북장로교에서는 EPC 라는 교단이 1978년에 분리되어 나갔고, 남장로교에서는 PCA 라는 교단이 갈라져 나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오늘 프린스톤 신학교는 새로 만들어진  PC(USA) 의 직영 신학교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새로 통합된 교단의 이름은 원래의 장로교단과 구별하기 위해서 USA 라는 단어를 괄호로 에워 싸서 PC(USA) 라고 했습니다.


1812년에 세워진후 유명한 교수들이 가르칠 때와는 달리 오늘의 프린스톤은 Elaine Pagels 같은 분이  <Gnostic 주의적인 복음> 을 주창하는 교수로 강단에서 강의할 정도가 되었으니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린스톤 신학은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프린스톤 만이 아니라 Grand Rapids, Michigan 에 있는 Calvin 신학교도 화란의 개혁주의와는 달리 진화론을 주장하는 교수도 등장하게 되었다는 소식이고 보면 어디도 <안전지대 (safe zone) 라고는 할 수 없으며 신학교에는 어디나  모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신학의 풍토입니다. <찬란한 옛 프린스톤 신학>은 오늘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의 특징은 신학이 본연의 사명을 버리고 타락해 가는 사회의 문화를 따라서 변질되어 가는 것인데 이는 개혁주의를 신봉하는 성도로서 매우 슾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은 또 어느 신학교가 본연의 자세에서 이탈할른지.... 신학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__________________
참고문서:
Loetscher, Lefferts A. A Brief History of the Presbyterians. 4th ed.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8. 224p.
Noll, Mark A.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2, 576p.

튤립 교육 선교회 회장
김명도
www.tulipministries.com
e mail: rv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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