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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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기독교는 놀라울 정도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 적인 기독교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의 기독교 교계의 변질되어 가는 실상을 같이 생각하고 저 합니다. 네 가지 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하겠습니다. 
   1 정통적인 기독교의 본질
   2 변질되어 가는 기독교의 모습, 
   3 변질되어 가는 이유  그리고 
   4 바로 잡기 위한 대책
이렇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I. 정통적인 기독교의 본질
   정통적인 기독교의 본질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에게 받아 기록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계시와 이성을 분간해야 합니다.
세상에 종교라는 것이 많이 있고 또 자칭 “계시의 종교” 라고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계시의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모르몬교의 모르몬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경이 특별한 계시로 기록되었다고 하지만 연구해 보면 사람이 이성으로 기록한 것이 분명합니다. 

   모르몬 경은 하나님이 성경을 직접 기록하여 New York 주 Palmyra 라는 곳에 묻어 두었는데 교주 Joseph Smith 가 천사 모로니 (Moroni) 의 계시를 받아 가서 파보니 거기에 애급의 회형 문자 (繪形文字, hieroglyph)로 기록된 경전이 있어 판독하여 오늘의 모르몬교의 경전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경전에 나오는 지명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짓 이름들이라는데 있습니다.  미국의 Smithsonian 박물관에 문의해도 그런 경전이 Palmyra에서 발견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원 8세기의 모하마드 라는 사람이 알라 (Allah) 라는 신의 계시로 기록한 것이 코란경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코란경은 기독교의 성경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지만 두 경전은 서로 판이하게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랍 사람들이 기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마엘과 에서의 자손들이 아랍 인종인 듯 생각합니다.  문제는 고고학적 문헌에 보면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이미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 지방에 오늘 날 아랍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인종들이 살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설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이들이 점점 생업을 위해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Robert Morey 저 Islamic Invasion 이슬람의 침략, 책 참고).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무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계시를 받아 기록했다는 것도 실상은 므하마드가 이성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안식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교의 시작은 1844년의 윌리엄 밀러 (William Miller) 라는 침례교 목사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다니엘서 8장14절의 2300 주야를 중심으로 에스라가 성전 재건의 명을 받은 해를 관련시켜서 주님의 재림이 1843년에 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많은 성도를 미혹하여 많은 분들이 기다렸으나 그냥 지나가고, 그 후에 그는 “계산이 잘못되었다” 고 공언하고 다시 주의 재림이 이번에는 1844년 봄에 온다고 했다가 실패하자, 그는 실망하여 신병으로 죽었고, 그의 제자 엘렌 지 와이트 (Ellen G. White)라는 분이  환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문헌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 환상을 무려 200 여회 보았다고 합니다. (Anthony Hoekema 저 The Four Major Cults 나 Walter T. Rea  저 The While Lie 라는 책 참고). 고 Hoekema 박사는 과거 칼빈신학교 교수 였습니다. 특히 Walter T. Rea 는 안식교에 몸담고 있다가 나중에 진리를 깨닫고 탈퇴한 사람으로 그의 책 The While Lie 는 안식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안식을 지켜야 하고, 먹을 것을 지금도 구약 때처럼 가려서 먹어야 하고,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잠잔다고 가르치고 (요즘은 수정하여 달리 가르치는 분들도 있음),  지금도 예수님이 하늘의 지성소에서 사람들의 행적을 조사하여 잘못하면 지옥에 내려 보낸다는 소위 “조사 심판 (Investigative Judgment)”을 하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모든 것은 정통 신앙이 아니고, 계시의 종교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계시를 빙자한 인간의 생각에 불과 합니다.  오늘날 계시를 보았다는 사람들은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릇된 종교 집단의 독특한 특징은 모두 교주가 계시를 보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우롱하고 온갖 비기독교적인 교리를 가르칩니다.  오늘이 부흥사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부류의 설교 일색입니다.  기독교의 계시는 종결 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 계 22:18-19, 히브리 1:1 등 참고). 성경의 기적은 반드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Redemptive History of God 救贖史) 측면에서 해석해야 하며, 그런 기적들은 우리가 모방하여 반복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William Hendrickson저 New Testament Commentary [신약주석] 특히 마가복음 16장 부분을 참고, 필수; 또한 Walter Chantry 저 Signs of the Apostles [사도의 징표], O Palmer Robertson 저 The Final Word [계시의 종결], Richard Gaffin 저 Perspective on Pentecost [오순절의 의미] 등을 참고). 고(故) Hendrickson 박사는 Grand Rapids, Michigan에 있는 칼빈신학교 (옛날) 의 신약학 교수였던 분이고, Walter Chantry 목사는 Pennsylvnia 주 Carliisle (이 도시에는 유명한 Banner of Truth Trust 의 미국 지사 [支社]가 있음)에서 제일 침례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분이고,  Robertson 박사는 과거 St. Louis, Missouri 에 있는 Covenant 신학교의 교수, 후에는 동부 Pennsylvania 주 Philadelphia 에 있는 Westminster 신학교 구약교수로 본인의 은사이며, 미국 PCA 교단 소속으로 Baltimore, Maryland 근처에서 목회하시다가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신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목회자 양성에 종사 하는 분이며 그의 주요한 저서는 The Final Word 말고도 Christ of the Covenant, The Land of Holy Land 등이 있습니다.


끝으로 Gaffin 박사는 필자의 신학교 시절 은사로 졸업후에도 NAPARC 라는 교단기구를 통해서 늘 교분이 있는 분인데 동부 Philadelphia, Philadelphia 에 있는 Westminster 신학교의 조직 신학 교수이며  Clair Davies 교수에 이어 수석 교수로 계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이 이 분들은 모두 개혁주의 신학을 전하는 정통적 신학자들입니다. 특히 Gaffin교수는 옛 Princeton 신학교의 Charles Hodge -Alexander Archibald -Benjaim Breckenridge Warfield -J. Gresham Machen - Cornelius Van Til -Clair Davies 에 이어 그 뒤의 Baton을 이어 받은 분입니다.


참고로 이 분야에 더 관심을 갖고 공부 하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은 Phillipsburg, New Jersey 에 있는 P&R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www.prbbooks.com 을 이용하시면서 책들을 구하시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다운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우선 기독교를 생각할 때,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기독교의 세 가지 주요 교리는, “창조, 타락, 구속” 등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간이 타락하고, 예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시어 재창조 (re-creation) 하셨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 가지를 다루는 종교 입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첫째, 신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가르치며 또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없는 것 중에서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creatio ex nihilo)  흙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입김을 불어넣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령(living soul) 이 되게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문화 명령 (Cultural Mandate, 文化命令) 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사용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만물을 주관하시며 예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며, 어떤 피조물에도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여 계신 분이며 천상천하의 대 주재 (主宰)이십니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전제 주권(專制主權)을 중히 여깁니다.

 

    하나님은 한 분인데 삼위가 계십니다.  세분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 안에 삼위로 계시다는 말입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  삼위가 서로 조화되어 계시며 본체는 하나이십니다(oneness in essence). 다시 말하면, 홍길동, 김막동, 박문수 같이 서로 성격이 다른 분들이 그 안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문제 때문에 많은 이단 논란이 있었습니다.  가령 Sabelius 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일위인데 그 분이 때로는 성부로, 때로는 성자로, 때로는 성령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치다가 이단으로 낙인되어 출교(黜敎) 되었습니다. Sabelius의 이런 생각을 신학적으로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라고 합니다. 오늘에도 그렇게 가르치는 “부흥사”들이 가끔 있습니다. 잘못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은 본질이 같고 각각 하는 일이 다릅니다.  성부 하나님은 믿을 자를 창세 전에 택해 주셨는데 우리가 미리 믿을 것을 아시고 그것을 근거로 택해 주신 것이 아니고 무조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택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예정예지론(豫定豫知論) 이라고 합니다. 또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選擇, Unconditional Election) 이라고도 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그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을 위해 죽어 주시고,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적용하여 죄를 회개하고 구원 얻게 하십니다.  삼위는 각각 다른 일을 하시지만 서로 상치(相馳)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속에서 우주를 운영하고 또한 인간을 통치하십니다.

 

둘째, 인간에 대한 바른 신학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시편 8:5에 인간은 천사 보다 좀 못하다고 하였으나 나중에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고린도 전서 6:3 에 말합니다.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은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 한 조상 아담과 하와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므로 인종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유색인종이 생긴 이유는 바벨 탑 사건 (창 11장) 이후에 인종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기후의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유대인들은 원래 백인들이었으나 애급에 내려가서 430년간 살면서 애급 사람들에 의하여 피부색이 변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백인이나 흑인이나 누구나 한 핏줄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6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한 혈통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를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에서 나왔고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아 타락하였으며 그 타락의 결과는 모든 인류에게 그 죄가 오염되게 하여 인간은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시편 51:5 과 같습니다.  그 옛날의 아담의 죄와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고 묻는 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김씨 성 가진 사람은 그 조상이 김씨이기 때문에 자손만대에 김씨 성 (姓)을 갖게 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첫째 아담”으로 육적인 인류의 대표자일 뿐만 아니고 계약적으로도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둘 째 아담” 혹은 “마지막 아담”으로 모든 믿는 자의 대표자가 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義, righteousness) 나 공로 (功勞) 때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보아주셔서 되어 지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을 위해 피흘려 십가가에 돌아가셔서 이룩한 의가 그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에게 전가 (轉嫁, imputation) 되고 죄인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공로없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중전가 (double imputation, 二重轉嫁) 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실제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외롭다고 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재판소에서 죄인이 심문 받을 때 재판장이 }“무죄” 라고 선언하면 그 사람은 죄를 지었어도 무죄입니다. 그런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12-19에 이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로마인서 5:12-19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로마인서 6:23에 말합니다.  타락한 인생은 지(知., intellect) 정(情 emotion). 의(意, volition) 가 모두 타락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일들이 모두 빗나가      선을 행할 인간이 한 사람도 없다고 시편 14:1 이나 시편 58:4-6, 또 로마서 3:11이나 로마서 3:23에서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은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이런 인간이 영생의 소망을 얻어 재창조되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구속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성경의 가르침은 세 가지, 즉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범죄한 인간이 살 길,   즉 구속 (救贖)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죄에 빠져 죽게 된 인간이 어떻게 구속함을 받아 살수 있습니까?
   어떻게 재창조됩니까?   타락한 인생은 스스로는 구원 얻을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선행으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갈라디아서 2;16이나 로마서 3:20 이 이를 분명히 말해 줍니다. 구약 이사야서 64:6은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같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공로로 그의 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는데 하나님은 그를 믿을 자들을 엡 1:4 말씀대로 창세전에 택해 주시고, 엡 2;8 말씀대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누군가가 내 대신에 죽어야 하는데 보통 인간이 죽어서는 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가 용서되지 못합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하여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어 주신 것입니다 (갈 3:13)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지금부터 2000년 전이지만 그는  영원 전부터 성부 성령과 같이 계신 분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선재하심 (preexistence of Christ) 라고 합니다. 창세기 1:26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하리라는 말씀은 그가 출생하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라고 예언되었습니다(이사야 7:14).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의 몸에 탄생하였습니다. 그는 신성과 인성을 겸하신 분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시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 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의 인성의 죽으심이며 그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장사 된지 삼일 만에 죽음에서 육적으로 부활 하시고 부활한지 40일 후에 승천하셨으며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 만국을 통치하고 계시며 최후의 날에 세상을 심판하려 재림하십니다.


넷째,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의 영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11세기 1054년에 동방교회 (Eastern Church) 와 서방교회(Western Church) 가 갈라졌습니다.  동방교회는 오늘의 희랍 정교(希臘正敎, Greek Orthodox Church) 나 러시아 정교입니다. 서방교회는 오늘날의 천주교입니다. 동방교회는 헬라어를 사용하였고, 서방교회는 라틴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갈라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1) 성직자의 독신문제: 동방교회는 최고의 성직자만 독신을 지킬 것을 주장하는 반면에 서방교회는 모든 성직자는 독신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성상(聖像)문제: 동방교회는 평면적인 그림을 숭상, 서방교회는 그림만이 아니라 입체상 (立體像)도 숭상 함. 3). 성령의 문제: 동방교회는 성령은 성부만의 영이라고 하고 서방교회는 성부 및 성자의 영이라고 함.   이상 여러 가지 이유로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인데  성부는 구원받을 자를 택해 주시고 성자는 성부가 택하여 준 사람들을 피 값으로 사주셨는데 그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친히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성령 하나님은 성자가 이룩한 십자가의 대속(代贖)의 공로를 신자에게 적용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고 주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성령은 또한 율법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하여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밭에 씨가 심겨지면 열매가 맺도록 하시고,  인간의 양심을 주장하시고, 믿는 자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믿는 자에게 분량을 따라 은사를 주셔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합니다.  은사에는 보통은사(ordinary gifts) 와 특수 은사(extraordinary gifts) 가 있으니 특수 은사는 성경을 기록하는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주셨던 은사들이고 (그러므로 “임시은사” 라고도 함),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특수 은사는 사라지고 보통은사만 남아서  보통 은사로 교회를 봉사하도록 역사 하십니다.

다섯째, 종말관입니다.


   종말관은 일반종말과 개인 종말 등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인 종말은 이 세상 끝 날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일을 말하며 개인 종말론은 인간 각 개인이 죽은 후에 이루어지는 일을 말합니다.  일반 종말은 세상 마지막 날에 임하는 것이며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부활하여 요한복음 5:28 의 말씀대로 각각 생명의 부활과 심팜의  부활로 나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신자의 죽음은 영혼과 육신의 분리입니다.  잠시 동안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죽은 후에 의식이 아주 없어져서 소멸되거나 잠자는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신자는 죽는 즉시 영혼이 하늘나라에 올라갑니다  증거 구절인 빌 1:23, 고후 5:8 등을 참고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올라간 영혼은 주님 재림 시에 다시 주님과 같이 재림하여 땅에 잠자던 육신과 연합하여 “영화로운 몸(Glorified body)을 이루어 영과 육이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됩니다. ( 벧3:10).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러하고 장차 영원한 세계에 살 때도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 지니고 있는 우리 몸은 썩을 몸, 병드는 몸, 죽을 몸이지만,  부활하는 몸은 썩을 몸이 아니고 병드는 몸이 아닙니다. 영화로운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35절 이하를 읽어 보십시오.  불신자의 죽음은 비참합니다. 이 세상에서 불신자는 하나님의 보편 은혜(common grace)로 살아갑니다. 즉, 하나님의 최소한의 은혜를 받으며 산 다는 말입니다. 공기를 마신다든지. 물을 마신다든지 건강을 유지한다든지 모두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주 단절됩니다.  죽는 즉시 어느 곳에 머물다가 최후의 심판 날에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의식이 있는 고통을 받습니다. 

 

    이상 언급한 기독교의 믿는 도리는 주일마다 예배시에 외우는 사도신경 속에 모두 들어 있는데. 사도 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후세 사람들이 요약한 신앙고백서입니다. 보통 기원 6세기에 완성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Philip Schaff 저 Creeds of Christendom, 3 vols 참고).  믿는 도리는  사도신경만 아니라 다른 역사적인 신앙고백서, 이를테면, 기원 325년의 Nicea 신경, 350년의 아다나시우스 신경, 381년의 콘스탄티노풀 신경, 451년의 갈게돈 신경, 1561년의 베르기 신앙고백서, 1563년의 Heidelberg 요리문답, 1566년의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1599년의 프랑스 신앙고백서, 1619년의 도르트신경, 1996년의  Cambridge선언문 (혹은 이를 “ACE 신앙고백서” 라고 도 함) 등에도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납니다.

 

II. 변질되어 가는 오늘의 기독교의 모습
   이상과 같은 정통적인 기독교의 교리와는 달리 근자에는 기독교의 진리가 많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무엇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합시다.

 

첫째, 지옥이 없다고 가르치는 신학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이며 많은 보수주의 책을 쓴 유명한 분이 계시는데 이분은 요즘 새로운 주장을 펴고 있어서 기독교계의 정통신학자들에게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인데  어찌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겠는가 하는 것이 그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지옥이 있고, 꺼지지 않는 불 못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말씀입니다.  지옥을 부인하는 학자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미래를 모른다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하나님인들 미래를 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것도 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물론 18세기 독일의 이성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한 것은 별로 놀랄 것이 없는 일이지만 오늘에 와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Michigan 주에서 Bethel 신학교의 교수로 있는 Gregory Boyd 박사님 같은 분입니다. 또한  Clark Pinnock 박사님 같은 교수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불과 20년 전 까지만 해도 정통적인 신학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상은 요즘 미국에 있는 대학 교수들 간에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신학을 "Open Theism" 이라고  부릅니다.  "미래불가지론” 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는 사도신경을 믿지 않습니다

 

셋째로, 어느 종교를 믿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대등하기 때문에 사람이 선행만 하면 어느 종교를 믿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신학자나 목사들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은 1948년에 조직된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에 속한 기독교 지도자들이지만 우리의 눈길을 끄는 사람은 유명한 전도자 Billy Graham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1997년 5월 Garden Grove 소재 수정교회 담임인 Robert Schuller 목사님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Hour of Power" (권능의 시간) 에 출연하여 하는 말이 "선행을 하면, 어느 종교도 구원이 있다“ 고 말하여 파문을 던진바 있습니다. 이런 사상은 요즘 소위 ”종교다원주의" 라는 이름으로 아무 껴리낌없이 목사님들중에 상당히 많이 파급되어 있습니다. 이런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도 상당한 수에 달합니다.

 

넷째, 개신교 목사들이 천주교를 따라가는 경향입니다.
     Canada, Vancouver 의 유명한 개신교 신학자인 James Packer 라는 이는 본의이던 아니던간에 1995년에 조직된 이른바 ECT 즉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라는 단체의 명단에 올라 있는데 1996년 필자가 서한으로 Packer 박사에게 문의한바 자기의 이름이 들어 가 있지만 그 주동은 Charles Colson 이었다고 말씀 하셨읕나 문헌에 개신교측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그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John Ankerberg 와 John Weldon 두 분이 공저한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라는 책을 참고할 것). 천주교의 구원의 교리와 개혁주의적인 구원의 교리와는 타협될수 없는데도 이런 운동은 요즘 상당히 개신교 목사들 중에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연하고 싶은 것은 개신교 목사중 이 운동에 가담했다가 총회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던 RPCNA 교단의 모 목사님은 즉시 서명을 철회한 사실도 있습니다. 그 분은 모 대하교의 총장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꾸준히 전하고 있습니다.

 

     2003년 2월 19일자 중앙일보 E.-22 면에는 장로교 합동 보수파 소속 목사들과 전도사들이 충북 옥천에서 보은으로 가는 길가에 “나실 수도원” 을 만들어 세상을 등지고 천주교식 의복을 입고 천주교식 수도에 몰두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필자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전자우편으로 경위를 문의했는데 친절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정통 장로 교단에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기사화한것이지 만일 이단 집단의 사람들이라면 기사화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라는 것이 그 기자의 답변이 었습니다.  이런 일은 미국에 있는 교회에서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그것이 너무도 보편화되어 있으니까요. 가령, 예를 들면, New York의 Cathedral of St. John the Divine 이라는 개신교 교회에서는 천주교 신부, 이슬람교의 Immam (회회교 지도자), 불교의 중, 일본 신토교 (神道敎, Shintoism)의 사제(司祭) 등이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또한 부활절에는 짐승들을 본당에 들여 넣고 축복해줍니다.  이유는 모든 종교는 하나이고 지구는 “어머니 신(神)” 이기 때문에 지구가 낳은 모든 짐승은 형제자매이므로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식 (人間意識) 의 진화를 외치다가 타계한 프랑스의 천주교 신부 Pierre Teilhard de Chardin (“삐에르 타이할 드 샤르뎅“ 이라고 발음함) 의 가르침을 교회에거 실천하는 현장입니다. 이 교회의 목사였던 James Morton 는 이 교회 일부에서 화재가 난 후에 교회를 사임하고 지금은 보다 차원이 높은 Interfaith Movement (종교간 통일 운동)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유명한 Scotland 에 있는 Findhorn 이라는 New Age 운동본부의 부장이 었던 David Spangler 박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Morton 박사는 그의 종교간 통일 운동을 오늘도 열심히 전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분야에 좀더 알고 싶으신 분은 Samantha Smith 의 The Trojan Horse, Lafayette, La: Huntington House Publishers, 2001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남의 종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주장으로 나의 주장만이 절대적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주장도 내가 주장하는 주장과 같은 비중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나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수용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며 남의 주장을 수용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의 주장은 대등하기 때문에 남의 종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만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전도” 라는 방편을 통해서 “기독교만 진리의 종교이다” 라고 전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미국의 문화를 타락시키는 근간인 Postmodernism(후기 근대주의) 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번신론적 사상이 어떻게 기독교 교회에 스며 들도록 방치해 두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기독교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독소 (毒素, venom)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 화해를 중요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합니다
    교리의 진위(眞僞) 논쟁보다도, 진리탐구보다도, 사람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나는 것” 이 더욱 생산적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런 사고반식은 오늘 어디를 가도 기독교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이런 사고방식에 성도들이 깊이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연실색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종교이던 종교의 차이는 없고, 누가 무엇을 믿던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인정하고 화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남을 고쳐 주려고 해서도 안 되며 남을 어떤 이유로든 대적해서도 안 되고 모든 종교와 모든 다른 의견들을 최대한으로 수렴하며 서로 서로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신학용어(神學用語)를 만들어 냈는데 프랑스어 "Rapprochement" 이라는 단어입니다. “라프로쉬망”  이라고 발음하는 이 단어에 담긴 사상은 1967년에 채택된 미합중국 연합장로교단 (UPCUSA)의 새 신앙고백서 (The Confession of 1967) 의 골자입니다,. 

 

새 신앙고백서 에는 "지옥과 천당," "삼위일체," "속죄" 등의 말은 들어 있지 않고 오로지 인간과의 "화해"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고백서를 일명 “화해의 신앙고백서” 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은 화해의 신학은 요즘 이사하게도 널리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Church Militant) 라고 하는데 교회는 점점 이단과 싸우는 힘은 약해지고 교회가 점점 여성화(feminization)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남을 이단으로 정죄하지도 말고, 설혹 이단으로 판명되어도 비평하거나 고쳐 주려고 하면서 얼굴을 붉히지 말고 서로 감싸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눈감아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십자가의 군사로 마귀와 싸우면서  “악을 대적하라” 는 성경말씀에 부합하는 신앙태도 일까요?

 

일곱째,  성경위주보다 경험위주로 믿는 신앙풍토가 표준화되어 갑니다.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개인의 경험이나 이성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합니다. 고로 교회 예배도 하나님 중심의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소위 “Seekers' Service, 열린 예배" 라고 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살려주는 이른바 감정위주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예배가 말씀 중심이 아니고 오락중심이 되어 갑니다. 유명한 영화배우의 간증집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말씀중심의 집회는 인기가 없습니다.  요컨대 진리의 말씀에서 귀를 도리켜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디모데 후서 4:1-8 말씀이 오늘 교회에서 그대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교도들의 예배형식과 설교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1741년 7월 5일 오전 11시 Connecticut 주 Enfield 라는 작은 마을에서 마참 본교회 목사가 사정이 생겨서 pulpit supply (대신 설교해 주실 목사)를 찾다가 나중에 만난 Jonathan Edwards (요다단 에드워즈) 가 그 교회에서 행한 40분짜리 설교 원고를 한번, 두 번, 세 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설교는 너무도 유명해서 이 설교만 따로 pamphlet 혁태로 만들어서 P&R 출판사에서 $2에 팔리고 있을 정도 입니다. 그 설교는 원래가 40분 길이 였으나 너무도 청중이 울기 때문에 설교 시간이 한시간 반이나 걸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명설교중 명설교입니다. 여기서 그 설교의내용욜 논하기 전에 이 필자의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꼭 한번 사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다운 설교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입니다. 그 설교와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듣는 설교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스스로 배우십시오. 경험이 표준이 될 수 없습니다. 막동의 경험은 길동의 경험과 다를 것입니다. 누구의 경험을 믿어야 하나요?  기록된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며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가는 것이 개혁주의 신자의 신앙태도입니다.

 

여덟째, 계시를 중요시 합니다.
    안식교의  Ellen G. White 라는 여자 분은 평생에 200 번의 환상과 계시를 보고 안식교 교리를 만들었고, 모르몬교의 Joseph Smith씨도, 통일교의 문선명씨도 마친 가지입니다.  오늘의 빗나가는 신앙은 예외 없이 모두 하나같이  계시나 환상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람이나 계시를 보았다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신명기 13장과 18장에 두 번 하나님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백성에게 모세가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신명기 (Deuteronomy)라는 말은 헬라어로 “두번째 율법” 이라는 의미 입니다. 그 신명기에서 환상을 보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또한 성경은 계시록 22:18, 히 1:1,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에 계시의 종결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에는 계시의 운동이 너무도 어지러울 만큼 많은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다고 하는 분, 내가 육신을 떠나서 수술대에 누어 있는 내 몸을 보았다는 말 (이런 것을 요즘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OBE 라고 하는데 Out-of-Body Experience)라고 합니다. 좀 더 아시고 싶으신 분은 Shirley MacLaine 의 Out on a Limb 이라는 책과 Dancing in the Light 이라는 비교적 서적 (秘敎的書籍, occultbooks)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명쾌하게 반박한 이는 Malibu에 있는 Pepperdine 대학교의 F.LaGard Smith 박사입니다. 그는 형법학 교수인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이런 비교에 젖은 학생들을 카운슬링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근자에는 은퇴하고 영국에 건너가서 저작에만 몰두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가 남긴 명저 Out on a Broken Limb 은 바로 MacLaine 이 쓴 뉴에이지의 환상과 계시를 공격한 책입니다.

 

아홉째, 번영 신학에 젖어 드는 이들이 늘어만 갑니다.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제4차원의 영적세계 같은 책들이 그렇게 주장합니다. Kenneth Copeland, Charles Cabbs, Napoleon Hill, Robert Schuller, Norman Vincent Peale 같은 분들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잘못된 가르칩니다.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한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12장).
근자에는 번영신학이 테레비존 설교가의 80 퍼센트를 넘는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암으로 고생할 수 있고,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고,  남이 당하는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Shamanism 적으로 믿는 성도들이 너무도 늘어만 간다는 사실앞에 아연실색(啞然失色)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잘 못된 가르침입니다. John Calvin 은 55세에 몸에 27까지 병을 가지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Robert Murray McChenye 목사는 26에 목사가 되고 29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때 그의 오른 팔격인 드로비모는 밀레도에 병들어 누어 었었던 일을  아십니까?

 

열번째, 뉴에이지 운동의 교회 침투가 활발합니다.
   뉴에이지는 오늘 도처에서 이유없이 부활하는 옛 영지주의를 통해서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활발하게 주님의 교회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예배 형식, 설교내용, 교회 행정, 특히 교회 음악 등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John Armstrong 박사가 쓴 The Coming Evangelical Crisis 라는 책이나. Hank Hanegraaf 의 Christianity in Crisis, 혹은 Michael Horton 가 편집한 The Agony of Deceit 라는 책, 또는 Herbert Pollitt 박사가 쓴 Interfaith Movement; Invasion of New Age into the Church 라는 책들을 참고 바랍니다..

 

III  변질되어 가는 이유
첫째, 성경의 예언대로
   눅 18:8에 보면 “인자가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경 헬라어 원문에서는 믿음이라는 말앞에 정관사 (he) 가 붙어 있으니 그저 아무런 믿음을 말함이 아니고 “하나뿐인 믿음”, 즉 “성경적인 믿음“을 말함이 분명합니다.  ”믿음“ 이라는 이름은 많지만 따지고 보면 성경적인 믿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성경적인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전제주권과 성경의 절대적 권위, 그리고 성경의 생활화를 믿고 실천하는 개혁주의 신앙 (The Reformed faith)를 말합니다.

 

둘째, 영지주의 의 부활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기원 1-2세기에 풍비 했던 반 기독교적인 셀라의 이룬론적 이교도 철학 사상으로 이단입니다. Valentus나  Mani, 또는 Cerintus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 인물들입니다.   요한 일서는 영지주의와의 싸움을 기록한 책입니다.  초대교회 시대는 영지주의가 만연하여 교리가 흔들려 교회에 큰 혼란을 빚어냈습니다.  이들은 헬라의 신비종교의  이원론 (二元論, dichotomy) 을 도입하여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습니다. Cerinthus 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세례 시 그리스도가  예수님에게 임했다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죽을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가 떠났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금욕을 장려했는데 사람은 은둔한 금욕생활을 통해서 새로운 특별한 계시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신비적인 계시를 받으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데 예수님은 이를 해방시키려 왔다고도 가르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는데 선한 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 주고, 악한신은 그 이름을 Demiurge 라고 하는데 그가 우주를 창조하였기에 마땅이 우주만물은 악할 수 밖에 없고, 구약도 악한 신인 Demiurge 가 기록하게 했으므로 구약은 믿을 것이 없으리만큼 악하며 따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Marcion 같은 사람은 구약은 도모지 인정치 않고, 신약중에서도 가장 비유대교주의적인 누각복음중에서도 예수님의 탄생기록은 제외하고 눅 4-24장을 인정하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열세개의 편지중에서 목회서신 3개를 제외한 10개의 서신만 인정하여 그의 정경은 눅 4-24장과 바울의 10개의 편지 (목회서신 제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속사도(續使徒) 그리고 교부들은 이런 이단적인 영지주의와 싸워야 했습니다.

 

    또한 이들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에덴동산에서 뱀과 여자는 현명한 지도자였고, 하나님과 아담은 어리석은 자로 묘사합니다. 왜냐 하면, 뱀이 지혜를 여자에게 가르쳐 주었고 여자가 아담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는 뱀을 숭상하고 여자를 숭상합니다.  뱀은 사탄의 상징인데 여기서 사탄숭배가 나오고 여성숭배가 나오게 됩니다.  여성숭배는 이윽고 지구 숭배 (worshiping the Goddess of the Earth, or Gaia) 로 비약하는데, 하늘은 하나님 아버지이고 땅은 하나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보호론 자 들이 나오게되고 (환경보호론이 뉴에이지와 관계없을 수도 있음). 그래서 지구에서 난 것은 모두 신성하므로 짐승들도 숭상되어야 하고 인간과 짐승이 다를 것이 없다는 진화론이 나오게 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은둔의 생활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특별한 지식이나 계시를 받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중세의 수도사들이 이를 본받아 수도원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성경은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라고 가르치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은둔한 생활을 강조하며 금욕을 강조합니다.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무분별한 금식행위가 성행 (盛行)하게 되는 것은 이런 영지주의에 기인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오늘의 기독교의 타락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옛날의 영지주의와 같은가 하고 탄복하게 되는데 과연 마지막 때에  옛 영지주의가 다시 되 살아나서 교회에 파고들어서 기독교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성도들의 영적 경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영지주의가 뉴 에이지 라는 사탄의 운동을 통해서  세상의 문화는 물론이려니와 기독교 문화를 타락시켜 교회를 여유있게 파괴하고 있는 실증입니다.

 

셋째, 사탄의 단말마적(斷末魔的)인 공격에 기인합니다. 
    살후 2장에 보면 불법의 사람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마다 이 적 그리스도가 과연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지만 문맥을 보아서 사탄임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에 사단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어느 것이 진정한 복음이고 어느 것이 거짓 복음인지 분간하기 어렵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미혹한다는 말은 성경에도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되어 있지만 성도들을 미혹한다는 말은 교회를 파괴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으로부터 떠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진리인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그런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신앙의 식견이 있는 분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볼 수 있습니다.


IV. 대책
    어떤 대책이 필요 할 까요?  몇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시대를 분별합시다.
    마태복음 18:1 천기는 분별하면서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는가? 영적 무장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들은 오늘의 교계 현실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때가 악합니다. 슬기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만방에 전파된다고 하지만 진리의 복음보다 인위적인 복음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위에서 살펴 보십시오. 설교를 들은 다음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뵈레아 사람들처럼 “그것이 절말 그러한가?" 하면서 성경과 설교내용을 대조해 연구해 보십시오. 얼마나 잘 못된 교리들이 여과없이 그냥 그대로 설교로 흘러 나오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둘째, 성경 공부를 체계 있게 합시다. 
    그릇된 스승에게 배우면 잘못되기 일 수입니다.   신학교가 너무 많고 미 자격 교수 밑에서, 읽어야 할 만큼 책을 읽지 않고 졸업한 후, 안수 받고 남을 가르치게 되므로  필연코 이상한 교리를 가르치게 되어 많은 이단이 출현하게 됩니다. 신학교에 갈 분들은 신학교 선택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무런 신학교에 가도 공부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크게 잘 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어서 성경에 모순이 있다고 믿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학생이 3년 내지 4년동안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일까요?  신학교가 수도 없이 많지만 진실로 하나님의 전제주권과, 성경의 절대권위와 성경의 생활화를 드대로 믿고 가르치는 신학교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좋지 못한 신학교에 들어가면 좋지 못한 신학을 배우고 나오게 되고 바른 신학이 아니면 설교를 듣는 사람을 독살하는 결과가 됩니다.  나쁜 공장에서는 나쁜 제품만이 범남할 뿐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명감 있는 사람만 신학교에 들어와야 하며, 부흥회에 가서 은혜받고 즉흥적인 흥분에 신학 이라는 어려운 학문에 뛰어 들면 반드시 나중에 후회합니다.  신학은 모든 학문의 여왕 이라고 합니다 (The Queen of Sciences).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물론 바로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적당히 학점을 마치고 졸업하고 안수받고 목사가 되어 설교한다면 이는 하나님앞에 심히 가증한 일입니다. 신학생들은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으로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은 신학생이 아닌 분들도 모두 하는 기본입니다. 신학생들은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연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탐구해야 합니다.  책을 읽어야 합니다. 필자는 신학교에서 오랜 세월을 공부하면서 박사 학위을 받기 까지 점심값을 절약하면서 그 돈을 책을 사서 닥치는대로 읽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신학생은 재학 3년 내지 4년 ( 미국의 정통 신학생은 보통 4년내지 5년에 졸업함) 공부하는 동안 서적을 2천, 혹은 3천권을 마련하고 졸업후에는 만권가까이 구입하여 읽어야 합니다.  우리 교수는 “If you do not want to read books, get yourself out of my sight" 라고 강의실에서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던 일을 기억합니다. 유명한 변증학 교수였던 고 Cornelius Van Til 박사의 말입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들의 책을 충분히 읽히지 않고,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않고 학점을 주어 졸업시켜 적당한 목사고시로 목사를 만들면 목회 현장에서 회중에게 독약을 먹이는 결과가 되므로 결국 교수들과 신학교들이 하나님 앞에 설때 벽력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요? (고후 5:10).  일반 성도는 내 영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충분히 생각해야 합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는 많고, 졸업생은 해마다 수없이 나오고 모두 전도와 선교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해 사역해도 신학과 목회자의 윤리와 도덕을 겸비한 분들을 만나서 성경공부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해야 지요. 그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면 세간을 늑탈 당할 염려가 없지만 잠을 잔다면, 나태해진다면 세간을 도둑에게 늑탈당하고 생명까지 위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꺠어서 “오늘이 나의 인생의 마지막 날” 인 것처럼 근신하며 살아 가세요 “우리의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종말을 준비합시다.
      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종말이 오게 마련입니다. 기독교의 종말관은 Arnold Toynbee 의 말대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고 수직적으로 (vertically) 일직선으로 종말을 향해 달립니다.  종말에는 일반 종말이 있고 개인종말이 있다고 앞서 언급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는 일반 종말과 나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개인 종말을 모두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 종말의 징조는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배교한다는 것“ 이 가장 뚜럿한 주 재림의 징조이고  개인 종말의 징조는 하나님 만이 아십니다.  누구나 인생대학을 졸업하면 천국 소환장이 날아 오게 마련인데 어떤 분은 아주 젊은 나이에, 어떤 분은 중년에, 또 어떤 분들은 늦으막에 찾아 오기도 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자기가 인생을 졸업하는 날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만날 그 날으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다섯째, 각 개인별 영적 완전 무장의 긴요성
   교파나 교회에 의존하지 말고 각자 개인의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할 때입니다. 교파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교회 헌법도 준수하지 않으므로 교회나 교단에 의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교회에 출석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끝 날 까지 존속해야 하며 성도는 “그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라” 고 히브리서 10:25에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출석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이 바로 선포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어려운 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심히 혼탁한 시대입니다. 사정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때에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 고 마태복음 24장에서 경고합니다.  이 어지러운 시대에는 성경실력 있는 사람만이 슬기롭게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넘어 집니다. 영적 전쟁에 패배합니다.  성경을 바로 배워햐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쓰으로 그 모든 말씀은 구약이 신약에서 성취된 것 처첨 성경의 모든 말씀은 반드시 모두 성취되고야 만다는 엄연한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결론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교회의 숫자는 늘어가고, 성도의 수는 늘어간다고 하지만 진리의 복음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참 복음은 들어보기 어려운 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경성해서 더욱 더 영적인 무장을 통해서 잘 못된 교리들을 분별하고 유다서 3절대로 우리에게 단번에 전해 준 말씀을 순수하게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신앙풍토를 바로 잡는 일에 동참할 동역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연락처는 rvkim@yahoo.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끝-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선교회 웹사이트: www.tulipministr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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