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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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근본주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근본주의 (Fundamentalism) 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좀 자세히 말씀드리고 저 합니다.

 

18세기에 독일에서 일어난 계몽주의, 이에 따른 합리주의 (Rationalism), 그리고 경험주의 (Empiricism) 등은 기독교계에 일대 변혁을 초래 했습니다  종전의 정통적인 기독교에서 떠나서 무엇이든 새로운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비판하여 믿겠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판단하기 보다 주관적으로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며 신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독일의 고등비평 (Higher Criticism) 이고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같은 차원에서 연구하겠다고 나선 종교사학파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 History of Religion School) 가 생겨서 기독교는 독특한 계시의 종교가 아니라 중동지방의 다른 종교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은 창세기의 천지 창조를 바벨론의 신화에서 빌려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바벨론의 설화집인 Gilgamesh 라는 책에 의거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성경대로, 즉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특별계시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사람의 작품으로 믿으려 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학 사상이 미국으로 상륙하여 당시 미국 장로교단이던 PCUSA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아직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의 미국 장교 교단명칭) 이 1812년 총회에서 만장일치 결의로 세운 프린스톤 신학교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비로서  자유주의를 모르던 미국에 자유주의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니, 이로 인하여 미국의 교계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자>는 무리와 <성경을 고등비평에 맟추어서 믿자> 는 무리들 간의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경을 성경대로 비판없이 바로 믿자>는 무리가 나타나 초기의 <근본주의> 가 시작 되었습니다.


근본주의를 “초기의 근본주의” 와 “신 근본주의” 로 구별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 글을 계속 읽으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근본주의는 여러 시대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의 근본주의는 초기의 근본주의와 달라진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1910년에서 1915년까지 5년간에 걸쳐서 <The Fundamentals, 근본주의 교리들> 이라는 책이 나올 무렵과 오늘에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사수하고저 하는 열정으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요즘은 상당히 폐쇄적이며 독선적인 신학 사상으로 발전했는데 가장 좋은 예는 Bob Jones 대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교단보다 배타성이 강한 것이 근본주의 입니다. 물론 기독교 자체가 어느 종교보다도 배타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어느 다른 종교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는 조물주 <야웨>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이며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 4:12).  이것은 철칙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안에서의 강단 교류에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행해 질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폐쇄식 성찬식> 이 아니라 <통제식 성찬식>을 행합니다. 전자는 자기 교회 교인들만, 그리고 그들중에서 “주의 몸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 만 성찬에 참여하게 하는 제도이며, 반면에 후자는 본 교회 교인이 아니라도 본교회와 같은 신앙노선을 갖고 있는, 즉 개혁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면 다른 교회 교인이라도 성찬에 참여케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본교회 성도라도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은 성찬에 참여함을 금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미국의 OPC 는 대표적 이런 “통제적 성찬식” 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1910년대부터 시작하지요. 앞서 언급한대로 자유주의 침투로 미국 교회의 신앙이 변질되어가자 당시 Scotland의 Glasgow 출신의 James Orr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국제 표준 성경 백과사전 편찬자) 가 중심이 되어 미국, 카나다. 영국에 있는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성공회 등 초교파적으로 성경대로 믿으려는 학자들을 총망라하여 37명의 학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수호하며 자유주의의 주장을 근절하기 위해 책을 집필하게 했는데 그것이 1910년부너 1915년 사이에 300만부를 발행하여 무료로 배포한 이른바 <The Fundamentals (근본주의적 교리들)> 라는 12권으로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지금도 서점에서 구입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 9권은 별로 남을 공격하는 것이 없이 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일부 교리를 인정하는 온화한 태도로 집필했지만 나중 3권은 기독교의 진리를 바로 전하며 자유주의의 오류를 공격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당시에 상당한 환영을 받았는데 장로교나 침례교나 감리교나 성공회나 모두 성경의 권위를 지키려는 이 책을 보급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했고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특히 이런 자유주의가 침투해오자 성경을 지키려는 보수주의 교파들은 신학교들을 많이 세웠고, 또한 사경회 (Bible Conferences)를 많이 가졌습니다. Princeton 신학교에서는 J. Gresham Machen 박가 같은 분이 중심이 되어 이 운동을 주도했고 그는 1923년에 <Christianity and Liberalism (기독교와 자유주의)> 라는 책을 저술했고, 잇다라 <Virgin Birth of Christ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이라는 책, 또 <What Is Faith> 라는 책 (그가 인도한 사경회 내용을 요약한 책)을 썼습니다. 

 

Machen 박사는 옛 프린스톤 신학교 (1920년대 이전을 <Old Princeton> 이라고 하고 그 이후를 <New Princeton> 이라고 하며 자유주의가 감염된 이후를 말함)에서 신약을 가르치던 학자 이며 자유주의가 프린스톤 신학교에 들어오자 Presbyterian Independent Board of Foreign Mission 이라는 선교기관을 별도로 조직하여 선교에 힘을 썼는데 당시 북장로교회가 이를 못 마땅하게 여겨 그 단체와 손을 끊을 것을 명령했으나 이를 단연히 거부한 John Gresham Machen 박사는 UPCUSA (미국 북장로교)를 탈퇴하여 1936년 <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를 창립했으나 이번에는 그 교단 이름이 <UPCUSA> 와 유사하다고 하여 소송당하여 재판에서 패소하여 그 이름을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OPC 미국 정통장로교단) 으로 바꾸었고,  그 몇 년 전인 1929년 Machen 박사와 그 외에 쟁쟁한 프린스토의 엘리트 교수들이 모두 프린스톤 신학을 떠나, 그로부터 약 40 마일 서편에 있는 Pennsylvania 주 Philadelphia 시 중심부친 Pine Street 에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창립했습니다.  그 신학교는 그 후 귀신이 나온다고 알려져 싸게 내놓은 필라델피아 근교의 큰 개인 저택을 싸게 구입하여 그리고 이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학생수 800 명이 공부하고 있으며 교파에 가입함이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초기의 근본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성경에는 잘못이 있다는 주장, 성경에 고등비평을 적용해서 해석해야 하고, 복음서는 재해석해야 한고 주장하면서  침투해오는 독일과 영국의 자유주의> 를 막기 위해서 성경의 기본교리를 수호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1910-1915년 어간에 나온 12권 짜리 “근본주의 교리, The Fundamentals"  라는 책에는 90개의 논문이 있는데 논조가 모두 성경의 기본교리를 수호하자는 것입니다.

 

당시 Charles A. Briggs 목사 (유니온 신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성경해석에 고등비평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로 인하여 학교와 노회간에 충돌이 생겨 그 교수를 해고하기를 거부하는 학교측과 해고하라는 노회가 맞서 결국 학교가 노회를 탈퇴하게 됨) 가 가르치던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침례교에서 안수 받고 잠시 뉴욕의 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목회하던 Harry Emerson Fosdick 라는 침례교 목사가  노골적으로 1922년 5월21일에  <Can the Fundamentalists Win?, 근본주의자가 이길 수 있는가? > 라는 역사에 남는 설교를 하므로 정면으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의 사이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는 Auburn Affirmation을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얼마나 위험한 시기 입니까? 오늘과 꼭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Fosdick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세 가지를 종용했는데, 죽, 1. 성경의 무오설 은 믿을 수 없다.  2.동정녀 탄생은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가 아니다, 그리고 3 예수님의 문자적 재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며 재고해야 한다는 등 세 가지인데 그의 목적은 근본주의자들이 시야를 넗혀 쟈유주의 자들의 성경관을 용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이 세 가지는  Fosdick 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치장스런  부속물>이 아니라 기독교의 존폐를 가름하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 이므로 근본주의자들은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싸움은 치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의 상황과 비교 해 보십시오.  포스트모터니즘 (Postmodernism)이 주도하는 오늘의 기독교는 부패할 대로 부패해도 누구 하나 나서서 바로 잡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명예와 권세를 위해서 잘못된 신학 사상들을 두둔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교회는 나라의 등불입니다. 교회가 타락한다는 말은 성직자가 성경의 교리를 떠난다는 말이요 성직자가 성경적진리를 교훈하지 아니하면 교인들이 성경에 무식해 지고 성경에 무식하면 도덕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그 다음은 사회가 병들고 사회기 병들면 나라는 망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본 선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신학을 바로 잡아주고, 일반 성도들을 계몽하며 개혁주의로 무장시키려는 목적에 존재의 이유를 찾습니다.  자유주의자 Fosdick (포즈딕) 목사는 이 설교를 한 후 하도 유명해져서 여기저기에서 장로교단 교회에서 목사로 청빙을 받았으나 침례교 목사인 그가 장로교에 갈수 없다고 하면서 그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그가 임시로 설교하던 뉴욕의 제일장로교회 (First Presbyterian Church) 도 이 설교를 마지막으로 사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결단력이 아쉽습니다. 초지를 굽히지 않는 그런 결단 말입니다. 개혁주의 신앙가는 신앙의 <절개>를 죽을 때까지 지켜 나아갑니다. 화란과 Scotland 의 목사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이것이 칼빈의 후예들이 신앙철학 입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순교까지 가는 것입니다.

 

또한 1910년에 당시 미 북장로교 (UPCUSA) 총회는 반드시 “다섯 가지 근본교리”를 믿을 것을 정식으로 결의했습니다. 그 다섯 가지란 1. 성경의 모오성, 2.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3.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4.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성, 그리고 5. 예수님의 육적 부활 등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1925년에 Auburn Affirmation (오번 선언)을 야기하게 된 직접적 동기가 되었는데 1925년 1월 New York 주 Auburn 에 있는 Auburn Theological Seminary 에 모인 목사들은 총횡가 결의한 이런 다섯 가지 기본 교리를 목사 후보생들이 반드시 믿을 필요 없다는 내용의 결의를 했고,  몇 달이 지나서 1925년 5월에 모인 회의에서는 이에 서명한 목사의 수가 도합 1,274명이 되어 큰 물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오번 선언 사건입니다. (1925).  또한 이 다섯 가지 교리는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며 고수 하려는 핵심 교리입니다.

 

<근본주의, Fundamentalism> 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침례교 목사인 Curtis Lee Laws 라는 분으로 그는 침례교 잡지인 <Watchman Examine> 에서 1920년에 근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 무렵 같은 침례교 목사인 John Roach Straton 은 새로운 신문을 발행하면서 그 이름을 <The Fundamentalists> 라고 명명한 일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근본주의는 이제 도처에서 <성경을 성경대로 바로 믿자>는 사람들 속에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근본주의를 말함에는 여러 가지 단계로 말할 수 있는데 처음에 이렇게 건전하게 시작된 근본주의가 1950년대를 거치면서 그 색상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초기의 근본주의가 주장하던것, 이를테면,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성, 그리고 그의 대속의 죽믕,  그의 육적인 부활 등은  모두 개혁주의와 일치하는 교리들입니다.  그래서 초기의 근본주의는 아무것도 잘 못된 것이 없습니다. 훌륭한 성경 수호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주의가 시대를 거치면서 점점 양상을 달리합니다.  성경을 수호하려는 목적으로 저작된 The Fundamentals (근본주의 교리) 라는 12권짜리 책을 앞서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그 책에 기고한 사람들은 모두 개혁주의자들이 아니고, 아르미안주의자, 세대주의자, 천천년주의자, 후천년주의자, 무천년주의자 등 실로 salad bowl처럼  다양한 색깔의 신앙이 총망라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동의 적 (Public Enemy)> 이 <자유주의> 이며 하여간 성경의 기본 교리를 수호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뭉쳤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요소의 크고 작은 교리의 혼합으로 인하여” 근본주의 신학에는 개혁주의처럼 <확고하고 일정한 교리>를 정립하지 못한 것이 결점입니다.

 

이 말을 설명하자면, 근본주의는 장로교만 아니라, 침례교에서 더욱 열심이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침례교내에서의 근본주의자들의 신학은 오늘까지도 미국 남 침례교에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교파에게도 근본주의는 전수되어옵니다  근본주의는 Dwight L.Moody 같은 분에게도 전수되어 Chicago 에 Moody Bible Institute 라는 신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Moody Press 라는 춮판사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Moody 는 근본주의 자이면서 세대주의자 였고, 무디 성경학교 나 무치 출판사도, 또 그들이 월간잡지 Moody Monthly 도 모두 세대주의 신학을 가르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Moody 는 세대주의를 믿는 부흥사 였고 Moody 성경학교도 세대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또한 Dallas 신학교, Bob Jones 대학, 필라델피아 성경대학 (PCB,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Grace Theological Seminary(Winona Lake, Indiania, 또한 남가주에 있는 BIOLA (Talbot) 등이 세대주의를 가르치면서 근본주의를 따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Pat Robertson, Carl MacIntyre, Jerry Falwell 등이 모두 근본주의자 들입니다.  Ronald Reagan  대통령이 추라할 때 근본주의자들의  활동이 걸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근본주의는 1910년에 UPCUSA 교단 총회에서 결정한 다섯 가지 교리  1. 성경의 모오성  2.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3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성 4.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리고 5 예수님의 육적인 부할 등은 근본주의자들이 믿는 교리인데 이런 교리라면 아르미니안주의자 (Arminians) 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Arminians 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 가 아님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가 근본주의 의 교리를 믿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주의가 개혁주의 의 신조 전부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참고로 개혁주의가 믿는 교리를 말씀드리지요


<개혁주의의> 란 의미는   사회전반에서와 우리의 믿는 교리와 사회생활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개혁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의 신앙면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회 전반을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앙은 성경만 묵상하고 가만 교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 열심히 참여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마치 칼빈이 프랑스 Strassburg에서 스위스의 Geneva 로 가면서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자” 고 웨친 것과 같습니다.  개혁주의는 적극적으로 인간의 심성을 개혁하며 적극적으로 성도의 생활을 개혁하고,  적극적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갑니다.  신비주의자처럼 운둔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목적으로 개혁주의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웁니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 2 성경의 절대적 권위, 3. 생활의 성경화 입니다.  이 말을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높이어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순종한다는 것과, 성경은 신구약성경이 통일된 일관성이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조금도 원본에 있어서 틀림이 없다는 것과  성경의 필요성, 명료성, 충족성을 믿는 다는 것인데 <충족성> 이란 옛적에 성경이 완성되기 전, 기록과정에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셨던 <계시>, <환상>, <꿈>, <천사의 방문> 등의 현상이 성경이 완성된 지금은 그쳤고 완성되어 기록된 성경만 인정한다는 것이며, 사람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생활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상과 같은 원칙을 가지고 있는 개혁주의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교리를 믿습니다.  
1. 인간의 완전 타팍 (Total Depravity of Man)
 인류의 시조이며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이 타락하여 그 타락한 심성이 후손에게  유전되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에게 나갈수  있는 능력을 상실 랬다는 것.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지옥에 들어갈 인생 중에서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해 주셨는데 우리가 믿을 것을 근거로 하여 택해 주신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의 공로 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그의 백성을 무조건적으로 택해 주셨다는 말씀.  이는 같은 근본주의를 믿는다고해도 아르미니안 주의 와는 정반대가 되는 가르침입니다. 아르미니안 주의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을 뿐, 구원을 완성했다고  (accomplishment of Redemption)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택도 “예지예정론”입니다  즉 인간이 믿을 것을 아시고 이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택애 주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 않고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아르미안주의자와 개혁주의 자는 서로 합의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개혁주의자는 <독력구원설, monergism>을 믿고 아르미니안주의자는 <협력구원설, synergism>을 믿습니다.  
 

3.  제한된 속죄 (Limited Atonement) 
예수님의 죽으심의 효과의 능력은 온 세상을 덮고 남음이 있지만 그 효과가 적용 되는 대상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가르침.  아르미니안 주의는 예수님의 죽음은 온 세상을 위한 죽음이고 그 죽음의 효과를 얻는 것은 내가  나의 자유의지로 예수를 믿을때 적용된다고 믿는다.
 

4. 무저항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한번 특별은혜 (은혜에는 <보펀 은혜> 와 <특수 은혜>가 있음)를 받으면 거역할 수 없이 구원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가르침,  이것도 구원은 내게 달려 있다고 믿는  Arminianism  (아르미니안 주의) 와 다릅니다
 

5. 성도의 궁극적 인내 ( Perseverance of the Saints)
한번 구원을 얻은 사람은 구원을 영원히 상실하지 않는다는 가르침.  1618-1619 화란의 도르트 종교회의 (Dort) 에서는 <아르미니우스>의 제자들이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성도는 한번 구원을 얻어도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그들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총 87명이  모여  153차에 걸친 회의 결과 아르미니안주의들의       주장이 그릇된 것이 판명되어 유명한 Canons of Dordt (드르트 신경, 1619) 이 나오게 되어 오늘 세계에셔 개혁주의를 믿는 교단들은  사도신경과 같이  모두 <도르트 신경> 을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교리를 가지고 있는 개혁주의는 다음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주장합니다.
1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성경의 필요성, 명료성, 권위, 충족성)을 믿습니다   따라서 직통계시, 환상, 꿈, 천사의 내방등이 성경완성된 이후에는 종결되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오늘 대부분의 교회의  가르침과 철저하게 다른 면입니다.

   

2. Sola Fide (오직 믿음)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수단이며 방편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리스도안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영어로 나타낸다면,   We are saved by grace alone, through faith alone, and in Christ alone. 꼭 외워 두시기 바랍니다.

   

3. Sola Gratia (오직 은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우리의 공로는 조금도 가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창조부터 타락한 우리의 재창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에게서 그의 전제주권 (Sovereignty)에서 오는 것입니다.

 

4.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는 바로 인간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마리아가  우리의 구주가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같이 구주가 필요한 분입니다 (눅 1:46).  인간은 그리스도안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의 신앙임니다.

 

5.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사는 목적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에게 순종하면서 살아가자는 교리 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요즘은 교회마다 제멋대로 자기 편한대로 교인들이 원하는대로 예배를 드리지만 개혁주의자들은  성경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에서 지시한 대로 예배합니다. 성경에 하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말도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다른 신학과 개혁신학의 다른 점입니다.

 

이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근본주의 와 개혁주의는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를 보도록 합시다.

   

1. 근본주의 가 성경의 기본 교리를 옹호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개혁주의와 같지만  개혁주의가 성경의 가르침을 남에게 전파하려는 사역에 더욱 중점을 두는 반면 근본주의는 말씀을 전파하기 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을 사수하려는 일에 더욱  중점을 두며 공격적이라는 점이  개혁주의와 다릅니다

   

2. 성경의 진리를 사수한다고 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은 <다섯 가지 기본교리> 이외에 다른 교리의 차잇점은 무시하고 외면하는데 반하여, 개혁주의는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모두 균형 있게 가르치면서 다른 교리를 비판하여 토의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아마도 근본주의가 이런 면에서 어두운 것은 개혁주의가 순수한 하나님의 주권주위를 우선순위로 하는 반면,  근본주의 안에는 아르미니안 주의, 세대주의 등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혁주의는 세대주의와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이며 근본주의가 전천년설을 믿는 것과 같이 세대주의자 (Dispensationalists)는 모두가 전천넌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전천년설을 믿는다고해서 모두가 세대주의자는 아닙니다. 전천년설에는 “역사적 전천년설” 이 있고, “세대주의적 전천년 설” 이 있는데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 사람은  세대주의자가 아닙니다.  근본주의 는 전에도 언급한 대로 다섯 가지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세상을 개 혁하기 위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대한 교리는 그들의 문헌에서 비교적 언급이  적습니다.

 

반면에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 주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제도 즉 가정, 교회, 극가 에 대해서 모두 개혁을 주장합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전체가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 근본주의는 1675년에 독일사람 Philip Jacob Spener 가 쓴 <Pia Desideria  (Heartfelt Desire 진정한 소원> 이라는 책으로부터 비롯된 이른바 “경건주의,  Pietism) 의 영향을 받아서 경건주의 의 특성인 성경연구, 기도회, 교회 출석, 음주 금연, 극장출입 금지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감정주의 (Emotionalism)를 중히 여기고 이를 충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등 개인의 경건한 신앙생활에 역점을 두며,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개혁주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의 이른바 ”보수교회“ 가 대개 이건 근분주의 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먼 거리에 사는 성도가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뼈스를 이용했다하여 중징계를 받은 사례가 과거 한국의 모 <보수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4. 근본주의는 교회론 (ecclesiology)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데, 교회의 성격에서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를 논함에 있어서 무형교회의 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유형교회와의  연합은 등한시합니다. 따라서 근본주의 교회는 고립된 상태에 있게 됩니다.  같은 근본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 반목 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개혁주의 자는 개혁주의 신조들을  믿는 교회들이라면 그들과  연합하여 강단 교류나 선교활동이나 사회 윤리를 바로 잡는 활동에 동역합니다.  개혁주의 기본 원칙만 지 키는 교단 이라면 손잡고 일을 하며 배척하지 않습니다. 예룰 들어 설명하자면,  개혁교단은 순복음이나 감리교나 천주교 사람들과는 같이 일을 못하지만 예배시에 악기를 도무지 인정치 않고 사용하지 않는 교단인 RPCNA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북미주 개혁장로교단 Pittsburgh, PA 소재)라도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 즉 베르기 신앙고백서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나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를 받아 드리고  1560년의 스콧틀란드 신앙고백서, 1569년의 프랑스 유그노 사람들의 프랑스 신앙고백서, 또 1619년의 도르트 신경이나  1647년 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등을 믿는 교단과는 강단교류는 물론이고  협력 선교를 합니다.  유그노 사람 이란 프랑스에 있는 킬빈주의 성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보수주의를 부르짖는 J.I.Packer 목사가 천주교와 연합하여 선교한다는 이른바  <ECT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개신교 천주교 공동 선교기구) 에  가입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쓰고 있는 필자가 1994년 이 운동이 태동하던 무렵에 Canada Vancouver 에 있는 Regent  신학교로 J.I.Packer 교수에게 이에 대한 해명요구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는 필자에게 보내온 회신에서 “그 일은 Charles Colson 이라는 감옥 선교 하는 분이 시작한 것을 측면에서 도와준 것 뿐이며 직접적인 책임은 없댜“ 고 말했지만 그 <ECT> 문 서에 Packer 가 서명한 것이 사실이고 보면 어디까지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John Ankerberg 와 John Weldon  두 사람이 공저한 책을 보시면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는데 그 책의 이름은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World Evangelism in the Third  Millennium> 이라는 paperback 으로 Eugene , Oregon 에 있는 Harvest House  Publishers 에서 1995년에 펴냈습니다.  그러므로 <신 근본주의> 는 개혁주의와 외견상 닮은 점이 많이 있지만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상당히 다른 검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는지요?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 에 속한 교회들은 모두 근본주의에서 비롯되었고, 또한 <경건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라파에서는 개혁주의는 고사하고 기독교 교회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슬람교  회당이 점점 들어서며, 교회는  공장으로 변신하는 형편이고 Scandinavia  반도의 나라들에서는 동성 연애하는 목사들의 수가 늘어만 갑니다. 개혁주의의 보루였던 화란의 GKN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화란개혁교단) 은 아주 좌경되어 VGKN (Vrije Kerken in Nederland, 화란 자유개혁교단) 이라는 새로운 교단과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전자는 극좌이고 후자는 개혁주의 교단입니다.  
     
개혁주의는 한국에서는 생소하고 한국에서 개혁주의를 가르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점점 개혁주의 신학은 자취를 감추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는 사람들이 진리에서 떠나간다는 것입니다(딤후 4:1-5; 눅 18:8, 딤전 4:1-2).  참고로 개혁주의에 대한 책을 보시려면 Gordon Clark 박사가 집필한 <장로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What Do the Presbyterians Believe?> 라는 책을 보시면 좋고 신앙고백서로는 1559년의 French Confession (프랑스 신앙고백서), 1561년에 나온 Belgic Confession (베르기 신앙고백서), 그에 입각해서 만든 1563년의  Heidelberg Catechism (하디델베르그 요리분답), 1566년의 Second Helvetic Confession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 1619년의 Canonts of Dort (도르트 신경), 1647년의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96년의 Cambridge Declaration (케임브릿지 선언) 등을 보시면 우리가 믿는 개혁주의 신학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본 튤립 교육 선교회 사이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주위에 있는 많은 친지분 들에게 본 선교회 홈 페지이지를 알려서 <개혁주의 신학> 이 지구 끝까지 전파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선교회는 <오늘 빗나가는 기독교를 역사적 신앙고백에 의거 개혁주의 신앙으로 바로 잡으려는 문자 그대로 교육하는 선교 기관입니다.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에 말합니다.

 

튤립 교육 선교회// 튤립 신학 연구원
김명도 교수
Tulip Teaching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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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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